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지역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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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16개팀 본선 진출권 배당은 아래와 같다.
스웨덴이 2승으로 본선에 진출하였고, 탈락이 확정된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의 경기는 취소되었다.
스페인이 본선에 진출했다.
원래 피파는 개최국은 지역예선은 면제하는 이점을 규칙으로 했었으나, 이탈리아가 우리도 예선 치루고 정정당당히(?) 진출하겠다며 저 이점을 걷어 차버렸다.[5] 다음 대회의 개최국인 프랑스는 개최국 자동 진출을, 이탈리아는 디펜딩챔피언 자동진출을 했다. 따라서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 진출을 위해 FIFA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른 개최국으로 남게 되었다.
원래 홈-어웨이로 싸우나 한 경기만 치르고 그리스가 기권하여 이탈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불가리아가 중도에 기권하여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폴란드가 한 경기만 치르고 기권하여 체코슬로바키아가 진출했다.
루마니아와 스위스가 진출했다.[10]
벨기에가 아일랜드 자유 주를 골득실 차이로 힘겹게 물리치고 네덜란드와 함께 이탈리아행 티켓을 차지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룩셈부르크를 잡았고, 룩셈부르크가 2패로 탈락이 확정되면서 본선행이 확정된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는 생략되었다.
쿠바가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멕시코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11조 예선은 여러 라운드를 거쳐서 다른 조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게다가 미국이 최종 엔트리를 늦게 내는 바람에 더욱 늦어졌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상업 항공편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과 멕시코가 월드컵 개막 사흘 전에 개최국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최종 예선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알도 도넬리의 원맨쇼에 힙입어 미국이 멕시코를 4대2로 꺾고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다.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16] 과 이집트는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 지역예선 참가 및 이집트는 아프리카 최초의 최초의 16개국 본선 진출국이다.[17] 당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팀은 아랍계 선수들보다는 영국과 유태계 선수들이 많았던 팀[18] 이라 이들의 데이터는 현재 이스라엘이 이어받았다.
- 순위표에서 이름이 굵은 글씨로 적힌 팀은 16개국 본선에 진출한 팀을 의미한다.
1. 진출권 배당[편집]
16개 팀을 뽑는 지역 예선에서 16개팀 본선 진출권 배당은 아래와 같다.
2. 예선[편집]
2.1. 1조(유럽)[편집]
스웨덴이 2승으로 본선에 진출하였고, 탈락이 확정된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의 경기는 취소되었다.
2.2. 2조(유럽)[편집]
스페인이 본선에 진출했다.
2.3. 3조(유럽)[편집]
원래 피파는 개최국은 지역예선은 면제하는 이점을 규칙으로 했었으나, 이탈리아가 우리도 예선 치루고 정정당당히(?) 진출하겠다며 저 이점을 걷어 차버렸다.[5] 다음 대회의 개최국인 프랑스는 개최국 자동 진출을, 이탈리아는 디펜딩챔피언 자동진출을 했다. 따라서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 진출을 위해 FIFA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른 개최국으로 남게 되었다.
원래 홈-어웨이로 싸우나 한 경기만 치르고 그리스가 기권하여 이탈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2.4. 4조(유럽)[편집]
불가리아가 중도에 기권하여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본선에 진출했다.
2.5. 5조(유럽)[편집]
폴란드가 한 경기만 치르고 기권하여 체코슬로바키아가 진출했다.
2.6. 6조(유럽)[편집]
루마니아와 스위스가 진출했다.[10]
2.7. 7조(유럽)[편집]
벨기에가 아일랜드 자유 주를 골득실 차이로 힘겹게 물리치고 네덜란드와 함께 이탈리아행 티켓을 차지했다.
2.8. 8조(유럽)[편집]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룩셈부르크를 잡았고, 룩셈부르크가 2패로 탈락이 확정되면서 본선행이 확정된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는 생략되었다.
2.9. 9조(아메리카)[편집]
페루가 기권하여 브라질이 무혈입성하였다.
2.10. 10조(아메리카)[편집]
칠레가 기권하여 아르헨티나가 무혈입성하였다.
2.11. 11조(아메리카)[편집]
2.11.1. 1라운드[편집]
쿠바가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
2.11.2. 2라운드[편집]
멕시코가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2.11.3. 최종 라운드[편집]
11조 예선은 여러 라운드를 거쳐서 다른 조들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게다가 미국이 최종 엔트리를 늦게 내는 바람에 더욱 늦어졌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상업 항공편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미국과 멕시코가 월드컵 개막 사흘 전에 개최국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최종 예선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알도 도넬리의 원맨쇼에 힙입어 미국이 멕시코를 4대2로 꺾고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다.
2.12. 12조(아시아 + 아프리카)[편집]
- 제1경기: 이집트 7 vs 1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 제2경기: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1 vs 4 이집트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16] 과 이집트는 각각 아시아와 아프리카 최초의 월드컵 지역예선 참가 및 이집트는 아프리카 최초의 최초의 16개국 본선 진출국이다.[17] 당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팀은 아랍계 선수들보다는 영국과 유태계 선수들이 많았던 팀[18] 이라 이들의 데이터는 현재 이스라엘이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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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7년에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개장되기 이전의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2] 패널티킥[3] 1956년에 스포르팅 CP의 홈구장인 이스타디우 주제 알발라드가 개장되기 이전의 홈구장. 현재의 주제 알발라즈는 2003년에 다시 지어진 구장이다[4]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 두 집 살림을 하는 경기장. 1980년에 주세페 메아차의 이름이 헌정되어 인터 밀란에서는 주세페 메아차, AC 밀란에서는 거리가 있는 이름 그대로 산 시로라고 부르고 있다. 두 이름 다 맞는 이름[5] 참고로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는 불참했다.[6]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축구 경기장으로 현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감독 에른스트 하펠의 이름이 헌정되어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으로 불린다[7] 레기아 바르샤바의 홈구장. 현재는 펩시의 스폰서 계약으로 펩시 아레나로도 불리고 있다[8] FIFA의 홈페이지에는 1934년 4월 15일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2 경기에서 체코슬로바키아가 2대0으로 이겼다고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FIFA 홈페이지를 제외하면 경기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고 기록되어 있다하더라도 폴란드의 내부사정에 의해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언급만 존재한다. FIFA 홈페이지에서는 2010년 월드컵 이전의 예선 경기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있고 위키백과에서는 폴란드의 기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른 몰수 추정 경기인 6조의 루마니아와 스위스 경기에서도 RSSSF에는 스코어가 2대0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경기는 몰수 혹은 부전승으로 기록되는 것이 옳다.[9] RSSSF나 위키백과 등의 기록에 따르면 루마니아 대표팀에서 부적격 선수가 뛰는 것이 발각되어 루마니아가 기록한 2골은 전부 무효처리 되었고, 그로 인한 스위스의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피파 공식 홈페이지에는 무승부로 기록되어 있다. 진출팀 자체가 바뀔 정도로 순위표에 큰 변화는 없고 대조 자료가 없으면 피파 공식자료가 가장 신뢰도가 높으므로 피파 기록에 맞춰 수정하였다.[10] 지난 대회 4강팀이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였다.[11] 현 아일랜드. 당시 영국과 독립전쟁중[12] 영어로는 앤트워프. 이쪽이 더 유명한 이름일듯[13] 패널티킥[14] 현재의 이름은 스타드 실비오 카토르.[15] 예선을 치르지 않고 불참.[16] 진출에는 실패했지만..[17] 그 후 이스라엘이 1970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여 12위를 기록한다.[18] 선수 구성을 보면 영국계 9명, 유대인 6명, 아랍인 1명이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