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군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왕족. 성종의 3남이자 서차남으로, 어머니는 귀인 정씨이다. 친남매로는 남동생 봉안군과 여동생 정혜옹주가 있으며 전주이씨 안양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편집]
1504년(연산군 10년) 4월 4일[2] 밤,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의 원인이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생모)와 귀인 엄씨의 참소에 있다고 생각한 연산군이 분노하여 두 후궁을 끌고와 모진 고문을 가하다가 안양군과 봉안군을 데려와 생모인 정씨를 때리게 했다.[3]
그러나 눈치가 빨랐던 봉안군은 자신의 생모인 줄 알고 있어서 차마 때리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울었다. 하지만 안양군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때렸다. 연산군의 매질로 결국 귀인 정씨는 사망했고 시신은 젓갈로 담궈져 내버려졌다.
이후 제천에 안치되고 가재는 적몰(籍沒) 된 다음 이듬해인 1505년(연산군 11년) 동생 봉안군과 함께 사사되었다.
3. 가족 관계[편집]
- 정부인 : 면천군부인 능성 구씨(沔川郡夫人 綾城 具氏, 1480~1556) - 길안현주(吉安縣主)의 딸
- 적장녀 : 참봉 이사제(參奉 李思齊)에게 출가
- 첩부인 : 노비 주이(朱伊)
- 서장남 : 종남도정 이억수(從南都正 李億壽)
- 며느리 : 순흥 안씨(順興 安氏) - 판서 안우하(判書 安友夏)의 딸
- 며느리 : 연일 정씨(延日 鄭氏) - 호군 정서량(護軍 鄭恕良)의 딸
- 손녀 : 이춘복(李春福, 1531 ~ ?) - 류복(柳馥)에게 출가
- 손자 : 덕성부수 이귀인(德城副守 李貴仁, 1534 ~ ?)
- 손자 : 덕풍부수 이귀의(德豊副守 李貴義, 1536 ~ ?)
- 손자 : 덕녕부수 이귀례(德寧副守 李貴禮, 1538 ~ ?)
- 며느리(첩) : 노비 복향(禮香)
- 손자 : 화랑부령 이귀남(火郞副令 李貴南, 1520 ~ ?)
- 며느리(첩) : 성씨 미상
- 손녀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류탕(柳宕)에게 출가
- 며느리(첩) : 성씨 미상
- 손녀 : 이칭복(李稱福) - 정사충(鄭思忠)에게 출가
- 며느리(첩) : 성씨 미상
- 손녀 : 이복지(李福只) - 신숭복(辛崇福)에게 출가
- 첩부인 : 성씨 미상
3.1. 후손[편집]
옥담 이응희는 안양군의 현손이며 생전에 저술이 많았는데, 병자호란 때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저서로는 17세기 조선의 향촌 생활을 생생하게 담은 『옥담유고(玉潭遺稿)』, 『옥담사집(玉潭私集)』 등이 있다.
몇 명 없는 알려진 후손 중에는 신화 멤버 이민우와 독립운동가 이영선(李英善)이 있다. 이민우는 전주 이씨 안양군파 17세손이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연산군 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갑자사화 시기 쯤에 동생인 봉안군과 세트로 등장한다. 관복을 입고 끌려온 왕과 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흰 옷만 입은 채로 끌려오는 씬이 대부분이다.
[1] 경기도 기념물 122호[2] 음력 3월 20일.[3] 사극에서는 푸댓자루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는 식으로 등장 하기 때문에, 모를 수도 있었다. 알았다고 한들 왕명을 거역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내용은 연산군일기에 나온 것으로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과장된 글인지는 알 수 없다. 연산군일기는 반정공신들에 의해 쓰여져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7 22:36:53에 나무위키 안양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