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원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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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완원대군은 조선 도조의 셋째 아들이다. 봉호는 왕조의 본관인 전주(완산)에서 따왔다.
2. 생애[편집]
1331년, 도조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고려에서 완산백(完山伯)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27살 때 죽었다.
조선 건국 후 태조가 대광보국(大匡輔國)에 추증했다.
1872년 12월 3일, 고종 9년에 의해 숙부들, 동생들과 같이 대군 및 영종정경부사로 추봉되고 4세에게도 군으로 습봉되었다.
전주 이씨 완원대군파의 파시조이다.
3. 가족 관계[편집]
- 개성 왕씨(王氏) : 봉양대군(鳳陽大君) 왕부(王浮)의 딸
- 개흥군 이원(李元)
- 동양군 이춘 (李春)
- 개령군 이지(李枝) (1348~1428)
- 동선군 이상흥 (李尙興)
- 동계군 이상항 (李尙恒)
- 개원군 이매(李枚)
- 동하군 이억천 (李億千)
- 개흥군 이원(李元)
완원대군은 3남을 두었는데, 세 아들 모두 자식이 많은 편이 아니다.
차남인 개령군은 8세에 부모를 잃었는데, 외가인 개성왕씨 댁에 가서 있던 중 태조의 잠저로 데려왔다. 성장한 이 후 태조 휘하에서 장수로서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였고 태조 즉위 후 개국원종공신에 봉해짐과 동시에 영의정과 영돈녕에 올랐다.
대군의 3남인 개원군은 1419년(세종 1)에 충청도우도 수군도만호(忠淸道右道 水軍都萬戶)를 지냈으며 1872년(고종 9)에 군(君)에 봉해졌다. 배위는 청주한씨이고 묘소는 함경남도 함흥 동면 마전동에 있다.
4. 묘소[편집]
묘소는 경기도 삭녕군 마장면 남일원리 간촌에 있으며 배우자 역시 대군묘에 합장하였다.
5. 후손[편집]
원래 이북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일부가 이남으로 남하하여 서울 · 경기 일원에 터전을 잡고 생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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