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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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만의 기업인으로 TSMC의 설립자이자 초대 회장이다.
2. 생애[편집]
1931년 7월 10일 저장성 닝보시에서 그는 중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은행 업무를 위해 난징, 광저우로 이사를 갔으며,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을 피해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으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1941년 일본이 홍콩 구룡반도를 점령하자 당시 중국의 전시 수도 였던 충칭으로 갔다. 그는 자신이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될 것이라 꿈을 꿨으며[1] 충칭의 난카이 중학에 입학해 공부를 했다.[2] 이후, 일본이 폐퇴하자 상하이로 옮겼다. 하지만, 국공내전으로 그는 다시 홍콩으로 향했다.[3]
1941년, 18살이 된 장중머우(Morris Chang)는 보스턴에 있는 삼촌의 도움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버드에서 유일한 중국인으로 그는 입학한 당시, 그는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를 공부하며 1년을 보낸다. 하버드에서 1년을 보낸 후 그는 자신의 직업 전망을 고민하기 시작하며 그는 어릴적 작가라는 꿈을 접고 MIT로 편입해 '기계공학'을 전공했다.[4] MIT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박사 자격시험에서 떨어진 뒤 그는 일자리를 찾으러 갔다.[5][6]
일자리를 찾던 그는 포드 자동차와 잘 알려지지 않은 실바니아(Sylvania)에서 제안이 왔다. 포드 자동차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연구개발센터에서 일하는데 월 $479를 제안했고, 실바니아에서는 월 $480를 제안했다. 그는 포드자동차 채용담당자에 전화를 해 실바니아보다 더 많은 임금을 요청했지만 거절을 당하게 된다. 이후, 그는 실바니아에 채용되었다.[7] 그것이 반도체 경력의 시작이였으며 돌이켜보면 그것은 좋은 선택이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실바니아에서 맡은 임무는 게르마늄 트랜지스터[8] 를 연구하며 실바니아의 제조 수율을 올리는 일과 장치를 만드는 일이였다. 그는 트랜지스터의 본딩[9] 을 살펴보며 수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10] 낮에는 실비니아의 생산 공정을 살피고 윌리엄 쇼클리[11] 의 '반도체 내의 전자와 정공(Electrons and Holes in Semiconductors with Applications to Transistor Electronics, 1950)'을 읽으며[12][13] 트랜지스터에 대해 배워갔다.
1958년 실바니아에서 3년동안 일한 장중머우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 일자리 제안을 받고 이직했다. 그는 IBM 컴퓨터에 사용될 트랜지스터 생산 라인을 운영하는 임무를 맡았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IBM이 제조한 트랜지스터는 생산하기 어려운 트랜지스터 중 하나였다. IBM에서는 파일럿 라인[14] 에서 생산된 트랜지스터는 최대 10% 작동한 반면, 그가 맡은 생산라인에서는 수율이 거의 0에 가까웠다.[15][16] 그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결합할 때의 온도와 압력을 조직적으로 변경해 가며 어느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4달이 지나자 그가 맡은 생산 라인의 수율이 20% 이상 올라갔다.
3. 참고 자료[편집]
- 크리스 밀러 저. 노정태 역.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부키. 초판 19쇄. 2023년 8월 22일.
- SEMI. Oral History interview (Morris Chang)
- TEKLA S. PERRY. MORRIS CHANG: FOUNDRY FATHER, IEEE Spectrum. 2011년 4월 19일.
- 서유진. [미래100년기업]이 기업 없으면 아이폰8도 못만든다는데..., 2017년 4월 28일.
- Josh Horwitz. After spawning a $100 billion industry, the “godfather” of computer chips is retiring, 2018년 6월 5일.
- Paul Mozur, John Liu. The Chip Titan Whose Life’s Work Is at the Center of a Tech Cold War, 2023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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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spectrum.ieee.org/morris-chang-foundry-father[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1524149[3]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p.50[4] "1950년대 중국계 미국인은 세탁소를 하고, 식당 종업원, 기술자, 교수 등을 하고 있었으며 변호사, 회계사 등이 중국에서 인기많은 직업이다."라고 장중머우는 회상했다.[5] 박사 자격시험에서 떨어진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라고 한다.[6] https://www.semi.org/en/Oral-History-Interview-Morris-Chang[7] https://www.nytimes.com/2023/08/04/technology/the-chip-titan-whose-lifes-work-is-at-the-center-of-a-tech-cold-war.html[8] 초기에 게르마늄은 트랜지스터 재료로 많이 사용됐었다.[9] 칩과 기판을 '접착'하는 것을 의미.[10] 당시 조립라인의 기술자들은 전산에 납땜을 하여 전극들을 연결했는데, 그 열로 트랜지스터가 손상되는 경우 많았다. 그래서 장주머우는 간접열로 전선을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11]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의 아버지라 일컫는 인물.[12] 장중머우는 반도체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13]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p.82[14] 실제 양산용 라인을 구축하기 전 시험 생산을 위해 마련하는 라인.[15]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p.82[16] https://spectrum.ieee.org/morris-chang-foundry-fa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