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숭의문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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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름
3. 역사
4. 구조


1. 개요


慶熙宮 崇義門
경희궁의 서쪽 궁문이다. 한양도성 돈의문 ~ 인왕산 구간 성벽과 가까이 있었다. 높은 지대에 있어 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2. 이름


'숭의(崇義)' 뜻은 직역하면 '의(義)를 숭상(崇)한다'이다. 여기서 '의(義)'는 유학에서 말하는, 인간이 늘 지켜야 할 5가지 도리인 '인예지신(仁義禮智信)'에서 따온 것이다. 전통적으로 '의(義)'는 서쪽을 가리키는 글자였기에[1] 서문의 이름으로 쓴 듯 하다.

3. 역사


1617년(광해군 9년)에서 1620년(광해군 12년)에 경희궁을 창건할 때[2] 지었다.
1860년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대부분 경희궁 건물들을 공사 자재로 쓰려고 없앴다. 그러나 영역만은 살아남았고, 숭의문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890년대에 그린 서울 지도 《수선전도[3]를 보면 경희궁 궁장과 궁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일제경희궁 터에 경성중학교[4]를 짓고, 그나마 남아있던 경희궁 건물과 영역을 매각하면서 숭의문도 같이 헐렸다.

4. 구조


  • 《서궐도안》에 모습이 나와있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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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仁)'은 동쪽, '예(禮)'는 남쪽, '지(智)'는 북쪽, '신(信)'은 중앙을 가리켰다. 한양도성 대문 이름을 지을 때에도 저 법칙을 적용했다. 서대문은 '문(敦門)', 동대문은 '지문(興之門)', 남대문은 '문(崇門)', 북대문은 '문(肅門)'인데 '정(靖)'은 '지(智)'와 뜻이 통한다. '신(信)'은 종로에 있는 각(普閣) 이름에 들어갔다.[2] 당시에는 경덕궁(慶德宮). 1760년(영조 36년)에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3] 북장로교 의료선교사였던 헤론(J. W. Heron) 박사의 유품으로, 김정호의 《수선전도》를 으로 새로 필사한 후 한글영어로 지명을 수록한 것이다. 제작 연대의 경우 1890년(고종 27년)에 지은 러시아공사관인 아라사공사관이, 1896년(건양 원년)에 헐리는 서대문 밖의 모화관이 적혀 있어 그 사이에 필사한 듯 하다.[4] 현재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경성중학교와는 전혀 다르다. 그 곳은 1967년 개교하였으며 한자가 '景'城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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