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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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권각.jpg[1]
성명
권각(權慤)
일본식 성명
澤田慤
본관
안동 권씨
생몰
1923년 3월 3일 ~ 1943년 3월 23일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 가곡리 가일마을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2]
사망지
경성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권각은 1923년 3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내수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수동)에 거주했다.

그는 1940년 9월 초순 경성부 조선문화학원(朝鮮文化學院)[3] 중등과 1학년에 재학 중 동급생 손용우·안병구(安秉九)·이동찬(李東燦)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구주대전(歐洲大戰)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일본을 공격할 터이므로 이 기회를 조선독립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은 사실 무근이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페간은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1940년 9월 28일, 그는 손용우·전태현·박래수(朴來洙) 등과 함께 사직공원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 입간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써 붙였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200일 통산)을 선고받고 같은 달 17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그해 7월 31일 출옥했으나# 1943년 3월 23일 경성에서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권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1940년 12월 1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2] 인근의 갈전리·구호리와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권오돈·권오설·권준희·권혁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이 학교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1939년 12월 7일 동아일보 기사경기도 경성부 연지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에 있던 교사(校舍)가 비좁아서 피어선성경학원 교사로 이전했다는 말이 있다. 또 대한민국인물연감에 의하면, 한양대학교 설립자 김연준이 조선문화학원을 설립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