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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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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권각은 1923년 3월 3일 경상북도 안동군 풍서면(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경기도 경성부 내수정(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수동)에 거주했다.
그는 1940년 9월 초순 경성부 조선문화학원(朝鮮文化學院)[3] 중등과 1학년에 재학 중 동급생 손용우·안병구(安秉九)·이동찬(李東燦) 등과 함께 학생들에게, 구주대전(歐洲大戰)에서 독일이 승리한다면 일본을 공격할 터이므로 이 기회를 조선독립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은 사실 무근이며, 동아일보, 조선일보 페간은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1940년 9월 28일, 그는 손용우·전태현·박래수(朴來洙) 등과 함께 사직공원 정문 앞 국세조사선전 입간판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써 붙였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1942년 2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200일 통산)을 선고받고 같은 달 17일 서대문형무소에 입소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그해 7월 31일 출옥했으나# 1943년 3월 23일 경성에서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권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