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타케

덤프버전 :

일본국 제35-39대 중의원 의원
기시다 후미타케
岸田文武 | Kishida Fumitake


파일:기시다후미타케.jpg

출생
1926년 8월 19일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사망
1992년 8월 4일 (향년 65세)
학력
도쿄고등학교 (졸업)[1]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 학사)[2]
부모
아버지 기시다 마사키[3]
형제남매
남동생 기시다 슌스케[4]
여동생 기시다 레이코[5]
자녀
장남 기시다 후미오
차남 기시다 다케오[6]
장녀 기시다 준코
차녀 기시다 노리코
친척
조카 미야자와 요이치
손자 기시다 쇼타로
손자 기시다 고시로
막내손자
정당


의원 선수
5 (중)
의원 대수
35, 36, 37, 38, 39
지역구
히로시마 1구
악력
통상산업성 관료
중소기업청 장관
중의원 의원 (제35-39대 / 舊 히로시마현 제1구)
총무 정무차관 (제2차 나카소네 내각)
문부 정무차관 (제3차 나카소네 내각)
자유민주당 도시국장
자유민주당 경리국장
중의원 내각위원장

1. 개요
2. 생애
3. 저서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총무정무차관, 문부정무차관, 5선 중의원 의원 등을 역임했다. 기시다 후미오 제100·101대 내각총리대신의 부친이다.


2. 생애[편집]


1926년 8월 19일,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에서 태어났다. 부친 마사키는 만주에서 백화점 경영, 부동산 사업 등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아[7] 이를 바탕으로 7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었고, 조부도 메이지 시대의 유능한 사업가였다.

1945년,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해 7월에 학도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한달 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자신의 집을 잃었고, 여러 지인들도 떠내보냈다.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했고, 1948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49년, 상공성(현 경제산업성)에 입성해 관료가 되었다. 이후 통상산업성의 요직인 대신관방 회계과장, 자원에너지청 공익사업부장, 무역국장을 거쳐 중소기업청 장관[8]을 역임했다. 이후 1978년 퇴성했다.

1979년, 제3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히로시마 1구에 자유민주당 당적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사망할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제2차 나카소네 내각에서 총무정무차관을, 제3차 나카소네 내각에서 문부정무차관을 역임하며 대신들을 보좌했고, 자민당 내에선 도시국장, 자원·에너지 대책조사회 부회장, 중소기업 조사회 부회장, 조사국 차장, 행·재정 조사회 부회장, 경리국장 등을 역임했다.

1992년 8월 4일 사망했다. 향년 65세.

고위 관료 출신이지만 정계 입문이 늦었고 일찍 사망하여 대신직을 역임하지 못했고, 아버지 기시다 마사키 역시 정무차관직만 지냈고 입각하지 못했다. 이처럼 기시다 가문은 아베 신조고노 다로와 같이 3대 세습 의원이지만 이들에 비해 가문의 후광이 달리는 편이다.[9]

3. 저서[편집]


  • 에너지와 기술 여행(지요다 나가타 서방, 1982년 집필)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1979 - 1992
정계 입문
사망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79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히로시마 1구


91,380 (23.4%)
당선 (3위)
초선
1980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7,125 (24.7%)
당선 (2위)
재선
1983
제3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9,223 (21.2%)
당선 (3위)
3선
1986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9,949 (22.9%)
당선 (2위)
4선
1990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54,494 (25.1%)
당선 (2위)
5선[10]


6. 둘러보기[편집]


기시다 가문

[ 펼치기 · 접기 ]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5 16:46:46에 나무위키 기시다 후미타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구제고등학교 중 제2차 고등학교령에 따라 설립된 7년제 관립고교의 일각이었다. 이 학교의 고등과는 도쿄대학 교양학부에 흡수되었고, 심상과는 현재의 도쿄대학 교육학부 부속 중등교육학교로, 한국의 서울사대부고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면 된다.[2] 입학 당시에는 도쿄제국대학이었다.[3] 7선 중의원 의원 역임.[4] 대장성 증권국장, 히로시마은행 회장 역임.[5] 미야자와 기이치 전 내각총리대신의 동생 미야자와 히로시 전 참의원 의원의 아내이자 미야자와 요이치의 어머니.[6] 미쓰비시 상사 근무. 보면 알겠지만 본인의 이름의 구성 글자인 후미(文)와 타케(武)를 두 아들에게 하나씩 나눠 붙였다.[7] 만주에서 고액납세자 1,2위를 다툴 정도였다고 한다.[8] 대개 마지막의 마지막에 통산성 사무차관이 되지 못하고 밀려난 2인자가 가는 직위다. 재무성 관료의 승진 레이스의 최종 승자가 사무차관이 되고 마지막에 아깝게 패한 관료가 국세청 장관으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9] 아베 가문은 조부 대에만 총리대신이 2명 있고(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고노 가문은 가나가와의 명주 가문의 후예로 고노 다로의 조부 고노 이치로와 부친 고노 요헤이 모두 부총리를 역임한 거물이다.[10] 1992.08.04.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