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현(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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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金剛)
본관
광산 김씨[1]
출생
1903년 1월 6일
경상남도 진해군 서면 곡안리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2][3]
사망
1933년 2월 19일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규현은 1903년 1월 6일 경상남도 진해군 서면 곡안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곡안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남도 마산부 표정(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으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다.[4]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창원군 진전면에서는 앞서 3월 28일 오후 1시경 인근 오서리에 사는 권영대 등의 주도로 400여 명의 군중이 진전면과 진동면 고현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된 바 있는데, 이어 4월 3일에도 창원군 진전면·진북면·진동면의 3개 면에서 연합 만세운동이 전개되었으니 이를 '삼진(三鎭) 의거'라고 하는데, 진전면 곡안리에 살던 김규현도 이 의거에 참가했다가 곧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그해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그해 10월 3일 출옥하였다.

그후 1921년 11월 중앙학교 재학 중 학우들이 만세운동을 위한 깃발과 탄원서를 제작할 때 장소를 제공하였다가 체포되었으나 그해 12월 석방되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가 옥고의 여독으로 1933년 2월 19일 30살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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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5세 현(鉉) 항렬.[2] 광산 김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호현도 이 마을 출신이다.[3] #[4] 독립유공자 공적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