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성우)/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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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사 관련
2. 활동 관련
3. 배역 관련
4. 기타


1. 개인사 관련[편집]


  •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1] 사실 연극에 관심이 많았고,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3학년 즈음엔 MBC 성우 아카데미에 등록해 수료할 만큼 열의가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MBC 성우극회가 파업을 해서 방송에 투입될 인원이 모자르게 되자 MBC 아카데미 출신 수강생들이 어쩔 수 없이 대타로 들어가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 덕분에 본격적으로 성우를 지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MBC 방송국 관계자의 귀뜸을 받고 1994년 대교방송 1기 성우 공채시험을 치러서 합격했으나, 대학동기들이 전공쪽 관련 분야로 취직하는 것을 보고는 졸업과 동시에 기아자동차 소하동 연구소에 취직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대교 성우일은 쉬게 된다. 이후 프로성우로 전업해 본격적으로 활동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고 기아자동차를 퇴사하고 MBC 성우극회 공채시험에 통과해 13기로 재입사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테니스가 취미라고 한다. 엄상현의 언급에 의하면, 굉장히 오랫동안 해온 취미이고 동료 성우들 사이에서도 테니스광으로 알려져 있는 듯.

  • 다양한 작품에서 함께 합을 맞춘 엄상현과는 절친인 것으로 유명하다. 유튜브 채널 홍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잘 맞는 것은 물론 심지어 안 맞는 점 또한 없다고 한다. 엄상현이 한때 트위터 활동이 활발했던 시절 김영선과 함께 있다는 트윗을 자주 올리기도 했고, 홍쇼에 출연하여 "저랑 아주 친한 형"이라고만 언급해서 썰을 풀자 홍시호가 바로 누구인지 알아차린 적도 있다.


  • 후배 성우들도 잘 챙겨주는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으며 MBC 성우극회 후배인 정재헌이나 류승곤이 신인 시절부터 김영선을 동경하고 많이 따랐다고 한다.

  • 한때 장신이라는 루머도 나돌았지만 본인이 밝힌 신장은 170cm라고 한다.

  • 선배 성우인 최원형과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고 최원형이 1년 선배다. 본인은 성우가 되고 나서 우연한 기회로 같은 학교 선배란 것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MBC 성우 재입사 과정에서 이철용과 만나서 친해졌다고 한다.

  • 후르츠 바스켓 DVD에 수록된 인터뷰에 의하면 더빙에 임할 땐 초기에만 원판을 감상해서 연기의 감을 잡고 나면 그 다음부턴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원판 성우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 인터뷰에서는 "일본 성우, 누군지도 모르고요." 라는 말도 한다.

  • 녹음 대본은 종이에 인쇄하지 않고 아이패드에 다운로드 받아서 읽는다고 한다.

  • 트위터를 보면 후배 권창욱처럼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2. 활동 관련[편집]


  • 영화 벼랑 위의 포뇨의 포뇨 역을 딸인 김정인이 맡은 바가 있는데,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듯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사생활 측면에서는 매우 유명한 애처가이며,[2] 손원일과 더불어 알아주는 주당이다.[3][4] 탈모가 30대 때부터 와서 2000년대 중반에 뉴타입 등지에 실린 사진을 보면 모자를 자주 쓰고 나왔으며 2010년대부터는 아예 맨머리로 다니는 중. 동기 최석필블로그를 보면 '김스님'이라고 부른다.


  • 안경 캐릭터들을 여럿 맡게 되면서 연기 성향이 과거에 비해 부드러워진 편이다.

  • 2022년 제13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을 수상, 2006 MBC 연기대상 TV 성우 특별상을 수상했다.


  • 2014년 3월 스튜디오 호락의 웹라디오 정재헌의 호락호락에 출연했다. 언급된 바에 따르면 매우 뻥을 잘 치고[5][6][7] 집에서나 밖에서나 말이 매우 많고 위에 언급된 우치하 사스케는 자기는 '가끔 가다 회상신에서나 한두 마디 하고 온다, 1년에 한두 번 부를까 말까 하다'며 애정이 안 간다고 밝혔다.[8][9] 정재헌이 라이토의 소름돋는 웃음연기를 칭찬하자 "제가 원래 그렇게 웃어요흐하핳ㅎ"이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 나루토 녹음현장 인터뷰(한국판 뉴타입 2005.11) 당시 "나루토는 그림체가 예쁘고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라는 말과 함께 "닌자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렇게까지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들의 뇌가 부럽다. 우리도 역사 속 소재가 참 많은데 왜 우리는 이러한 시나리오를 못 만들까?"라며 인터뷰를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 2018년 8월 수상한 메신저[10]의 성우로서 강수진, 심규혁, 이호산과 함께 미국의 오타콘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또한 동년 해외의 수상한 메신저 팬에게 합성 이미지를 선물받아 그걸 2021년 기준으로도 트위터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

  • 소년만화 출연이 많은 축에 들어가는 성우인데 이누야샤, 나루토, 원펀맨 등 쟁쟁한 소년만화에 출연을 했다. 거대로봇물과 같은 로봇물 출연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으로 보이지만 용자 시리즈는 출연한 적이 없고[11] 출연작에서 보다시피 건담 시리즈는 그래도 꽤 출연했다.

  • MBC에서 더빙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서 주판돌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물론 MBC에서 방영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은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 2023년 기준으로 나이가 50대를 훌쩍 넘겼지만 지금도 성우 활동이 다른 동년배 성우들에 비하면 활발한 편이다. 보통 한국이나 일본 성우는 50대가 넘어가면 어린 성우나 신예들이 역할을 이어받으면서 입지가 좁아지는 편인데 김영선은 그런 케이스는 아니다. 쉽게 말해서 성우 중에서는 에이징 커브에 대한 염려가 없는 편이다. 다만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성우 활동이 좀 줄어든 편이다. 물론 이것도 애니 쪽 활동에서 그런 것이고 게임이나 광고같은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활동이 많다.


3. 배역 관련[편집]


  • 파일:external/pbs.twimg.com/CI-pkSFUAAAetap.jpg
대원방송 성우 5기 공채 남자부문 1차 녹음대본에 그가 연기한 캐릭터 타카기 아키토야가미 라이토가 예시 대본으로 나왔다. (각각 위 사진의 1번과 4번. 우연의 일치인지 두 대사 모두 오바타 타케시의 작품에서 나온 대사다.)[12]

  • 열혈파와 냉혈파 양방면의 연기를 모두 잘 소화해내는데, 과거에는 활발한 캐릭터 연기를 좋아했으나 나이를 먹으며 냉정한 캐릭터 연기를 더 좋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후반 투니랜드의 가정교사 히트맨 REBORN! 성우 인터뷰에서는 평소 자신의 성격은 최유기의 손오공과 거의 흡사하며[13] 본인의 성격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활달한 열혈파 캐릭터에 더 애착이 간다는 뜻의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히바리 같은 정적이면서 카리스마있는 역할을 소화해내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말수 적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만큼 평소 까불거릴 때의 에너지를 비축해 두었다가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싣는 것이라고. 반면 2013년 9월호 뉴타입 한글판에 나와 인터뷰한 글에 의하면 자신은 우치하 사스케 같은 배역을 좋아한다면서 더 사스케 비중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했다.[14] 야가미 라이토 같이 냉혹한 배역이 더 마음에 드는데 들어오는 배역이 밝고 활기찬 배역이나 부드러운 성격의 배역이 많아 좀 아쉽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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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경
2000년경
2017년
  • 꽃미남 미소년/미청년 캐릭터들을 많이 맡을 만큼 미성이고, 본인의 외모도 꽤나 훈남이지만 탈모로 인해 2000년대까지와 비교하면 팬들의 눈가에 습기를 자아낸다. 문서 상단의 젊은 시절 사진을 봐도 이마가 넓어진 게 잘 보일 정도.

  • 파일:external/file2.instiz.net/e2d8c6fb644773317db0e5bb39ca5719.jpg
일단 본인은 여기에 초연했는지 사이타마 실사판[15]이라면서 개그로 써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 2018년 11월 선배 김일의 타계로 그의 대표작이었이던 상디의 배역을 이어받았다. 이후 AGF 2019에서 원피스 신극장판 더빙판 개봉 소식이 공개되었을 때, 자신이 선배인 김일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상디를 연기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일과의 인연을 홍쇼에 재출연해 언급하기도 했는데, 엄상현사석에서 셋이 자주 만나는 사이였으며 살아생전의 김일을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비보에 깜짝 놀랐다며 당시 심정을 밝혔다. 비록 김일의 업적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상디를 연기하겠다며 시청자들의 격려를 부탁했다. 다만 김영선이 생전의 김일과 비슷하게 주당이다 보니 김영선이 상디 역을 이어받은 후 김영선의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4. 기타[편집]


  • 다른 회사 출신 후배(CJ E&M 9기) 김신우 성우가 한때 김영선 목소리로 동기이자 누나인 김가령 성우를 많이 낚았던 모양이다. 어느 날 진짜 김영선이 투니버스 쪽 성우실로 전화를 걸었는데 당시 전화 담당은 김가령 성우였고 유선전화기엔 발신지 번호가 뜨지 않았다. 김가령 성우는 전화를 받자마자 “야, 김신우, 장난치지 마라”고 들이받았고(둘의 차이는 21년…) 결국 국악방송국 건물에서 서로 만난 김신우 성우가 김영선 성우에게 사과했다고. 정작 김영선 성우는 후배가 자신을 어떻게 따라하는지 궁금해서 한번 성대모사를 해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호쾌하게 넘어갔다고 한다. 김신우 성우는 최승훈 성우와 함께한 유구장창에서, 김가령 성우는 본인 유튜브에서 밝힌 내용이다.

[1] 해당 인터뷰를 비롯해 여러 인터뷰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고 밝혔다.[2] 정재헌의 호락호락에 출연했을 때도 자연스럽게 아내를 소라라고 불렀다. 같은 방송에서 김영선이 집에서도 시끄럽다고 한다. 한탄하는 한편 엄청 사랑한다고 하기도 했으니 잉꼬부부인 듯하다. 또 이용신의 띵소리에서도 아내랑 매일 썸타고 있다라며 본인이 애처가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3]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성우 엄상현이 위궤양에 걸렸을 때 "나도 위궤양에 걸려봤는데 소주가 약이야."라며 농담삼아 술을 권했다고 한다. 그 외에 성우 관련 방송에 출연하면 술 얘기가 빠지지 않으며, 그가 없는 자리에서 동료 성우들에 의해 관련 에피소드가 언급될 때도 술 얘기는 꼭 나온다.[4] 김일 사후 상디 역할을 이어받게 되자 한국의 원피스 팬들은 후임 성우인 김영선이 생전의 김일처럼 주당인 것 때문에 김영선의 건강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5] 친한 후배의 결혼 소식을 미리 접하고 주변에 알렸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온 반응은 대개 '이젠 뻥칠 게 없어서 후배를 파는구나'.[6] MBC 성우극회 막내인 17기 류승곤은 김영선을 가장 유머러스한 성우로 꼽았는데, 이유는 일상이 죄다 거짓말이어서.[7] 정재헌의 말에 의하면 숨쉬는 것 빼고 다 뻥(...)이라고 한다.[8] 사스케의 일본 성우인 스기야마 노리아키도 사스케가 무슨 캐릭터인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9] 홍쇼에서는 사스케가 이름만 걸어놓고 나오질 않는다고 드립을 쳤다.[10] 해외에서 인기가 많다.[11] 애초에 용자 시리즈가 한창 방영할 시기에는 김영선은 신인 성우였고 용자경찰 제이데커용자지령 다그온 정도를 제외하면 용자 시리즈 대부분 KBS에서 방영했다. 당연히 김영선은 그 시절에는 갓 성우로 데뷔를 해서 프리랜서가 되기도 전이라 MBC 외에는 외부 방송사 출연을 하지 못했었다.[12] 여자는 양정화가 연기한 캐릭터 호시조라 미유키다마고치가 나왔다.[13] 일명 까불거리는 성격. 은근히 본인은 이 점을 항상 강조하는 듯하다.[14] 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조차도 미운 정 때문으로 추측된다.[15] 사이타마 소개 자막에서 한술 더 떠 '이미지 캐스팅 아님'이라고 뜬다. 녹음 현장에서는 대머리 관련 대사를 하다가 NG가 난 적이 있다. 일본 니코니코 동화에 이 녹음 현장 영상이 올라왔는데 거기서도 "사이타마가 사이타마."란 코멘트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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