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사건 및 사고/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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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그라갤 린든 사건 - 그라나도 에스파다 갤러리
3. 역갤 철퇴사화 - 역사 갤러리
4. 역갤 한양대 사칭사건 - 역사 갤러리
5. 역갤 랄라라 블로그(이하 랄블)사건 - 역사 갤러리
7. 막장 갤러리 영쿠사건 - 막장 갤러리
8. 지오 모나코 구라사건 - 패션 갤러리
10. 해충갤 500만낚시 - 해외축구 갤러리
11. 패갤 껌팔이 vs 의정부고딩 현피사건 - 패션 갤러리
12. 아나운서갤 노현정 X파일 - 아나운서 갤러리
13. 수능갤 원서접수 사이트 다운사건 - 수능 갤러리
16. 막장갤 원양어선 괴담 - 막장갤러리



1. 그라갤 린든 사건 - 그라나도 에스파다 갤러리[편집]




2. 와갤 원양어선 사건 - 와우 갤러리[편집]


DC 정모관련 괴담 참조.
와갤 1기 시절 지럴마이게세끼야라는 와갤러가 부산 정모를 추진하였고 곧 부산정모에는 수많은 와갤러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모가 끝난뒤 대부분의 와갤러들은 와갤로 귀환했으나 일부 와갤러들의 소식이 끊어지고 고정닉들도 몇명그 이후로 다시는 와갤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모나갔던 와갤러들이 납치당해서 모두 원양어선을 탔느니. 장기적출을 당했느니. 후장이 따였느니 소문이 무성했다. 이러한 상황에 당시 정모에 참여했던 와갤러들은 웰치스를 마신 이후로 기억이 없다., 그들은 원양어선에 잡혀갔다. 라고 주장했으며 이후 와갤의 정모는 웰치스 마신후 원양어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굳어졌다.


3. 역갤 철퇴사화 - 역사 갤러리[편집]


네임드 유저였던 송태조조광윤이라는 닉네임의 역갤러의 과거사가 폭로되어 한방에 훅간 사건.

원래 밀리터리 내무반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디씨 갤러로 도검이나 갑주에 관한 글을 쓰고 전쟁사에 관심을 가지던 진성 밀덕이었다. 그러다 2004년 무렵 역갤의 개설을 지지하고, 8월 디씨에 역사 갤러리가 만들어지자 스스로 태조임을 자처하며 이후 역갤의 주요 멤버로 활동하게 되었다. 특히 송태조는 갑옷과 무기 관련 개념글을 쓰면서 성균관대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던 고람거사와 함께 환빠퇴치에 앞장서고, 나중에는 일빠들을 통쾌하게 논파하면서 역갤러들의 큰 지지를 받게 된다. 그렇지만 일빠들을 조롱하고 짓뭉개는 버릇 때문에 일빠들의 원한을 사고 있었고, 자경단 행세 때문에 반감을 가지는 유저도 있었다. 대다수의 지지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러나 송태조의 과거사를 아는 오구라 유코라는 유저가 역갤에서 말을 잘못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된다. 과거 디펜스 코리아라는 사이트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2년에 철퇴와 양손검으로 토끼와 개를 때려죽였다는 실험결과를 작성하여 게재하고 논란을 일으켰다가[1][2] 어영부영 얼버무리고 도망갔던 과거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오구라 유코는 본의 아니게 사설로 이이야기를 댓글로 남겼다가 정보를 흘렸고 2006년 1월 23일부터 관련 정보를 접한 유동닉들이 문제의 글을 역사 갤러리에 올리면서 갤러리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3]

사실 철퇴사화 자체는 처음이 아니었다. 밀리터리 내무반에서 2003년에 활동하던 때에도 한번 폭로되었고, 어영부영 도망갔던 점을 문제삼으며 비판하던 갤러들에게 비로소 제대로 사과를 한 다음부터는 굳이 내무반 겔러들이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에 묻혀 있었던 것뿐이었다. 정치-사회 갤러리에서도 과거사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유독 역사 갤러리에서의 후폭풍이 엄청났는데 그만큼 역사갤러리에서의 송태조의 지지율이 높고 위치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으면서 "좋게 봤는데 그따위 인간 말종인줄 몰랐다" "개과천선했고 그동안 열심히 활동했으니 지금을 봐서 봐주자"등 비난론과 옹호론이 들끓었고, 너무 나대는 행동을 못마땅하게 보던 사람들도 이때 들고 일어나게 된다. 마침내 송태조는 1월 30일 사과문을 올리면서 역사갤러리를 비롯한 활동의 중지를 선언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봐주자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송태조의 위치를 끌어내린 다음 결정타는 거의 동시에 터진 KCC그라스울 사건이었다. 05년 11월 당시 KCC그라스울이라는 유저가 역갤의 고정닉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해서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 철퇴사화를 전후하여 KCC그라스울이 사실은 송태조라는 의견이 나왔다. 제시자는 역갤에서 배척받던 유저로 송태조와 사이가 나쁜 Aineas. 평소대로라면 무시당했겠지만 한참 역갤이 들끓던 시점이라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명색이 네임드 유저이면서 다른 닉을 이용해 남을 평가하는 글을 썼다는 점 때문에 이중으로 실망하는 갤러들이 많았다. 송태조는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자신이 KCC그라스울로 글을 썼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활동 중지를 선언했음에도 유동닉으로 자꾸 출몰하고 사고를 터트리면서 사람들의 지지를 스스로 깎아먹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송태조는 칭송받던 네임드 유저에서 찌질이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철퇴사화라는 이름의 유래는 훗날 역갤러들이 이 사건을 조선시대의 당쟁의 결과로 발생한 유혈 숙청사태인 사화에 견주어 부른 것이 기원. 철퇴사화에 대한 오해로 송태조가 철퇴로 동물을 죽인 사건 그 자체를 철퇴사화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철퇴사화는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공개되어 찌질이로 추락한 사건을 의미한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는 더욱더 그를 따라다니는 주홍 글씨가 되고 말았다.

철퇴사화 이후 역갤은 오랫동안 혼란에 빠지고 특히 일빠와 환빠들의 파상공세가 이어져 결국 지금의 판타지나 다름없는 역갤이 되는 시발점이 된다. 긍정-부정론자를 막론하고 송태조가 일빠 막는 방파제였음은 대체적으로 인정하던 편. 당시만 하더라도 역갤이 인터넷 역사 커뮤니티의 중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관련 커뮤니티에도 상당한 파급을 미쳤다. 이후 역갤 부흥운동이 여러차례 벌어졌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 역갤러들은 다음이나 네이버 등에 관련 까페를 차려 피난했다. 사실 고작 역덕후 한명 사라졌다고 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본다면 그만큼 역갤의 기반이 취약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유저들끼리 서로를 제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는 디씨 특유의 시스템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당장 일뽕, 환빠들이 대거 몰려오는데 아몰랑으로 일관해서 글 싸대도 역갤을 못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4. 역갤 한양대 사칭사건 - 역사 갤러리[편집]


앞서 언급된 aineas라는 유저가 철퇴사화를 빙자하여, 송태조조광윤의 신상정보와 게시글에 대해서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역갤러들은 aineas를 무개념하다고 비난하였으나, 자신이 한양대 86년생 05학번의 법대생 오민호라 하여 그것을 빙자해 자신을 과시하였고, 이를 증명해보인답시고 정모를 주선하자며 역갤러들을 도발하였다. 이에 강희대제라는 유명 역갤러가 자신의 집에서 한양대까지는 걸음으로 20분 밖에 안되는 거리라며 한양대 정문에서 독대를 주선하였다. 이에 aineas는 시간문제로 거부하였다. 다음날 와트슨이라는 역갤러가 한양대 학생회 까페에 문의해 본 결과 "한양대 법대 86년생 05학번 오민호"라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강희대제'라는 유저는 자기에게 전화온 aineas의 전번이 그의 것이 아니라 그의 모친의 것이라 증언하였고 결국 aineas는 잠적하고 말았다. 강희대제는 그날부터 현피대제 or 강희짜장 등의 별명을 얻었다. 이후 강희대제는 먼 훗날 모 여성 격투기 선수를 협박하는 글을 남기다가 결국 인실좆을 당하고 말핬다.


5. 역갤 랄라라 블로그(이하 랄블)사건 - 역사 갤러리[편집]


철퇴사화 이후 역갤은 그야말로 붕괴 후 혼란기가 아닐수 없었다. 갤러리 내부에는 환빠가 득세하였고 외부에는 인조이재팬 네이버 총독부와의 영원히 끝날것 같지않은 성전이 계속되면서 역갤은 점차 황폐해져만 갔다. 이에 2006년 4월 17일 랄라라라는 고정닉은 구글블로거로 역갤 연합블로그 라는 신천지를 창설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랄라라는 원래 대표적인 역갤의 일빠로 기존 역갤러들로부터 네이버 총독부와의 전쟁에서 연합군의 선봉을 자처하던 고람거사를 암살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던 자였다.) 이후 역갤의 카오스화를 견디다 못한 구 고정닉들이 대거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랄라라는 연합블로그의 글을 온갖 개념글로 채워넣어 "멋진블로그"로 거듭나게 되었다. 곧이어 nhn과 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블로그 대회에서 역갤 블로그가 네티즌 컨텐츠상을 받게 되었으나, 해당사이트 추천인 중 몇명이 프록시(즉 조작)였다는 설이 제기 되었다. 이에 운영진중 하나인 aofspdes는 최고운영자인 랄라라의 허락없이 컨텐츠상을 반환하였으며 이 사건은 역갤에서 가시화되었다. 이후 nhn과 정보통신부측에서 입을 막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6. 스갤 김창선 고소사건 - 스타크래프트 갤러리[편집]


2006년 2월 28일 스타크래프트의 유명 해설자인 김창선은 그날도 경기중계 후 평소처럼 스갤에 접속하여 자신의 중계에 대한 사람들의 평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스갤러가 자신의 딸을 강간하고 죽여버리겠다는 댓글을 올린 것을 보고 말았다. 분노한 김창선은 곧바로 경찰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신고했고, 경찰은 악플을 단 스갤러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접속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후 결국 그 스갤러가 잡혀가는 것으로 사건 자체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김창선은 스갤 눈팅을 그만두고 말았는데 그후로 김창선의 중계는 소위 재미없는 중계의 대명사가 되어 다른 해설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지는 결과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스갤러들에게나 당사자에게나 그야말로 흑역사가 아닐수 없다.


7. 막장 갤러리 영쿠사건 - 막장 갤러리[편집]


막갤러 영쿠는 2006년 당시 김성모 갤러리(이하 근성갤)의 근성가이들과 더불어 유일하게 스갤을 위협했던 막갤의 대표적 고정닉이었으며, 또한 당시 막장갤의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막갤, 패갤, 해충갤, 수갤을 넘나들며 전 갤러리를 떠들석하게 하는등 막갤 최고 부흥시기의 주역이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또한 막갤을 친목갤로 추락시킨 주역이기도 했다. 영쿠는 자기 스펙이 180/70 재벌 2세에 뉴요커라고 허세를 떨고 다녔는데 막갤에서는 대표 찌질이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를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영쿠를 처음에는 무시하였으나, 이내 영쿠가 몇 차례 아프리카를 급습하여 미친 행동으로 빅웃음을 주자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영쿠의 세력은 날로 거대해져만 간다. 그런 영쿠는 자신의 얼굴을 그림판으로 모자이크처리한 사진을 막갤에 올리게 되는데 이는 치명적인 보안상 문제가 있는 파일이었다. 적당히 그림판으로 색칠 처리를 하였으나 미리보기를 하면 얼굴을 볼수 있는 파일이었던 것이다. 스스로를 간지남 조인성급이라 말하던 영쿠의 얼굴이 공개되었고, 역시 예상대로 영쿠는 평균 이하의 추남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를 대통령으로 받들고 실제 뉴요커라고 믿었던 막갤러들을 분노로 이끌었다. 이후 당황한 영쿠는 자신이 잘나왔다고 생각하는 몇 장의 사진을 더 뿌리는데 이는 더한 굴욕을 불러일으킨다. 사진을 안올리는 것만도 못한 최악의 후폭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결국 영쿠를 이용한 합성사진까지 나돌게 되었다. 이러한 영쿠의 굴욕을 텔레양이라는 유저가 동영상으로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림#으로써 텔레양의 입지는 급상승하게 되었다.


8. 지오 모나코 구라사건 - 패션 갤러리[편집]


2006년 당시는 "빈센트 앤 코"를 필두로 한 명품시계 사기극이 전국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을 때였다. 이당시 일루소라는 회사가 나타나 자신들이 스타 스포츠 마케팅으로 유명한 지오 모나코(Gio Monaco) 시계를 수입하였으며 이는 '180년 전통의 이탈리아 명품시계'라며 광고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광고를 본 디시 시계갤에서 몇몇 갤러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조선일보의 기자들과 디씨 갤러들은 이 시계를
1)180년 전통을 내세웠지만 알고 보니 5년밖에 안됐다.
2)G사가 내세운 '달레시오'란 창업인물은 허구로 드러났다.
3)G사의 브랜드는 스위스 시계협회에도 등록돼 있지 않다.
4)G사의 제네바 본사는 컨설팅 회사와 공동으로 사무실을 쓰고 있다.
등을 근거로 지오 모나코를 사실상 '가짜 명품시계'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일루소에서는 이러한 당시 디씨 패갤러들의 반응에 대하여 사이버수사대 운운하며 고소드립으로 일관하였다. 결국 잠시동안은 조용해졌으나 곧 피시방이나 프록시로 더 벌떼같이 일어나 성토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조선일보를 주축으로 하여 KBS, SBS, MBC 등등의 제도권 언론기관에 의해 모든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9. 고갤 도더리 프리게이트 사건 - 고전게임 갤러리[편집]


프리게이트 사건 참조.


10. 해충갤 500만낚시 - 해외축구 갤러리[편집]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한국은 최종전을 앞두고 1승 1무로 선전하고 있었으나, 16강행을 확정짓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스위스와의 최종전에서 석연찮은 판정논란을 일으키며[4] 2:0으로 패배, 조별예선 탈락을 하고 만다. 이 때 누군가가 해충갤 채팅방에서 국민 500만명이 서명하여 FIFA에 제소를 하면 재경기를 한다는 루머를 조직적으로 유포하였다.

황당한 사실은 500만 낚시를 최초로 행한 글에서 서명글을 올리라고 링크한 사이트가 FIFA가 아닌, 온라인게임 피파온라인 사이트였던 점이다. 한편, 장난으로 시작된 낚시였지만 예상외로 일이 커져 빨리 FIFA 홈페이지에 가서 서명을 하라는 문자를 받은 사람이 속출하고 결국 지상파 메인뉴스에도 입갤하게 된다.

뒤늦게 해충갤러들은 최초 강태공유포자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낚시글을 처음 올린 IP가 서강대학교 전산실 IP로 밝혀졌다. 해충갤러들은 월드컵 조별예선과 기간이 겹치는 대학 기말고사 기간에 이런 치밀한 뻘짓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했다.
사실 이외에도 해충갤러들은 소소한 가짜 뉴스 유포로 재미를 보던 편. 주로 연예관련 기사에 축구인 이름을 넣는 식으로 날조한 기사를 연예인 팬클럽등에 유포하는 식이었다.


11. 패갤 껌팔이 vs 의정부고딩 현피사건 - 패션 갤러리[편집]


안그래도 당시 병신력이 높기로 악명 높았던 패갤의 병신력이 절정에 이른 사건. 어느날 패갤러 의정부고딩이 남방 파는 글을 패갤에 올렸다. 이에 껌팔이가 직거래로 사겠다며 나섰지만 흥정 도중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계속 투덜대는 등 특유의 까칠함으로 의정부고딩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의정부고딩은 현피를 제의했다. 이들은 2006.8.14 오후 9시 강남역에서 만나 싸움을 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디씨 갤러들은 자신들도 현장에 따라나가겠다고 환호했다. 특히 한 패갤러는 아예 온라인 전단을 제작해 배포했다. 결국 이 두 명의 고교생은[5] 이 날 약속 장소에 나타나 디씨 갤러 2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주먹을 휘둘렀고 5분 가량 난투극을 벌였다. 이때 싸움을 잘 못하는 껌팔이(舊 닉 중국인)는 의정부고딩에게 2분 간 터졌다. 주위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껌팔이는 그 날 그 자리에서 묻혔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어느 디씨인이 말려서 현피는 종결되었다. 싸움이 끝난 후 현장에 있던 갤러들은 자신들이 찍은 현피 사진을 곧바로 인터넷에 올렸으며, 이게 빵 터져서 싸움 장면 짤방을 새긴 티셔츠까지 등장해서 판매까지 되었으며 이 두 사람은 지상파 방송을 타게 되었다.


12. 아나운서갤 노현정 X파일 - 아나운서 갤러리[편집]


2003년에 KBS 29기 공채 아나운서로 시작해 이후 수많은 인기를 누리던 노현정 아나운서는 2006년 갑작스레 현대 회장의 셋째 아들인 정대선 씨와의 결혼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2006년 8월 디씨 아나운서 갤러리에 갑자기 노현정 X파일이라는 이미지가 올라오기 시작하였고, 이후 이 사진들은 DC 전 갤러리로 퍼져 소문은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X파일엔 노현정이 찍은 셀카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 대부분이 전 남친의 얼굴 혹은 그와의 애정 행각이 담겨있거나 전 남친이 직접 찍어준 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결국 아나운서 갤러리를 중심으로 디씨에서는 재벌집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과거의 남자를 찬 게 아니냐는 비난이 생기며 그당시 유행이던 된장녀 논쟁과 맞물려 노현정의 이미지는 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직까지 노현정의 별다른 해명은 없으며 X파일을 올린 사람이 사실 노현정의 전 남친이 아닐까 하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13. 수능갤 원서접수 사이트 다운사건 - 수능 갤러리[편집]


2006년도 수능은 이전의 수능 시험과는 달리 수능 문제들이 유래없이 쉽게 나와 이로 인해 소위 중위권의 성적이 대폭 상승하여 학생들의 대학 지원에 엄청난 혼선이 초래되었다. 이러한 틈을 노린 수능 갤러리의 질 나쁜 유저들은 다른 학생들이 대학 원서를 접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디씨의 방법2002 프로그램으로[6] 원서 접수 사이트를 계속 테러하여 서버를 죽임으로써 다른 일반 원서 접수자들을 방해하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집에서 한 갤러들뿐 아니라 피시방에서 테러에 가담한 사람들까지 피시방 로그 기록 때문에 모조리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어 대학 합격이 취소당했다. 이 사건은 9시 뉴스에도 방영되었다.

야갤의 '태그갑'이 이때부터 활동했다는 말도 있다.


14. 웃대 곤갤 테러 사건 - 곤충 갤러리 2006[편집]




15. 민지왔쪄염 뿌우~ 'ㅅ'의 탄생과정 - 수능 갤러리[편집]


한 근성이 대단히 강한 수능갤의 갤러 '상큼발랄민지'(이하 민지)가 새로운 떡밥을 가지고 나타났다. 처음에 수능갤에선 이런 근성갤러가 왜 여기까지 왔냐며 좇볍진 취급에 그쳤으나 한달내내 떡밥을 투척하는 그 칼같은 근성을 인정하며 급기야 모든 갤의 관광버스주행을 감행하였고 네이버에 이르기까지 했다. 결국 많은 떡밥을 가지고 있는 낚시인들을 뒤로 제치고 유행어를 먹어버렸다고


16. 막장갤 원양어선 괴담 - 막장갤러리[편집]


2024-05-04 05:12:00까지도 확실하게 검증이 안 되는 전설/괴담에 가까운 사건. 2006년 12월 9일 막장갤은 정모를 주최하게 된다. 일부의 막장갤러는 과거 와갤의 원양어선 사건 때문에 네이버 검색어에 막장갤원양어선을 치기로 작정. 막장갤 원양어선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하게 된다. 이 사건의 의문점은 진짜로 정모에 나간 막갤러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점. 막장갤을 만든 막장의정석이 정모를 명동에서 주최하자고 했으나 사람이 다모여 지들이 정모를 시작한다는 말 이후 연락이 끊기고 고정닉들이 점점 사라졌다. 그러다가 고정닉 중 한명이 며칠만에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자기는 지금 중국이고 배에서 탈출했다고 살려달라고 했다. 이후 이 일이 막갤러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 중국으로 떠난 새우잡이 배라고 사람들이 (돌이) 추측, 디시의 정모는 위험하다며 막갤러들이 보복이 두려워 은폐한사건 이후 새우잡이 배가 납치한다며 조심하라는 뉴스가 떴다.

7시에 명동에서 만나서 술 한잔 하자고 했죠. 그런데 같은 커뮤니티 동호회 멤버 형님이라는 분이 찾아와서 '영종도 쪽에 괜찮은 횟집에 가자'라는 말을 했고 봉고차를 타고 영종도로 가서 소주를 먹은 다음 정신을 차려보니 남중국해였습니다. 봉고차엔 강아지 그림이 그려져있었구요.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커뮤니티 단체 납치사건의 피해자 윤모씨의 증언이다. 사건의 개요는 12월 9일 어느 한 커뮤니티 정기 모임에 참석한 여러 사람이 화학약품이 들어간 소주를 마시고 단체로 정신을 잃었으며 다랑어 선망과 오징어 채뽑기 배에 각각 나뉘어 태워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총 10여명의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그 중 두 명은 남중국 연안에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어 각각 한국 주민등록증을 휴대하고 있어 인근 주민의 신고로 대사관에 시체이전 협의와 중국 공안의 수사가 급작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6명은 대만해협 근처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여 구조를 받은 상태이다. 하지만 나머지 한명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커뮤니티 멤버들 중 한명인 조모씨가 원양어선에 일인당 3천만원씩을 받고 직접 인신매매 행위에 참가하였으며 이 사건은 디씨인사이드 막장갤러리에 구조를 요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글을 발견한 같은 커뮤니티 멤버가 이를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하여 그간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춘 줄만 알았던 인신매매 사건이 백일하에 공개된 것이다. 중국 공안당국과 한국경찰 당국은 이 사건을 집중수사하여 신변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1] 잔혹하고 사실적인 표현 때문에 사람들의 공분을 일으켰고 거짓이라고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의 논란도 이 실험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무기 위력 측정이라는 목적에 객관적으로 합당한 방법론인가였고 진짜냐 가짜냐는 없었다. 다만 내용 자체는 벽을 한번에 뛰어넘었다던가 미성년자가 소지 불가능한 양손검을 소지했다던가, 주민들이 자신에게 개 퇴치를 의뢰했다고 주장하고, 몸이 상당히 뚱뚱한데도 몰이꾼없이는 잡기 어려운 토끼를 26마리나 추적해서 잡았다고 주장한 것 등, 고등학생 특유의 허세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리고 언급도 계속 말이 바뀌는데 언제는 다 사실이었다고 했다가 허세로 글만 그렇게 썼다고 했다가 실은 몇마리 안되는데 허세로 부풀려서 썼다고 하는 등 증언이 일정하지 않고 불분명하다. 우연히 몇마리 잡고 허세를 가미해서 썼다는 추정이 지금은 가장 설득력이 있다.[2] 철퇴사화가 동물보호협회에 알려졌다는 것은 2006년 역사갤러리가 아니라 이 2002년 논란 당시의 일이었다. 당시 개를 키우던 한 유저가 글 내용에 분개하여 디시인사이드와 동물보호협회에 이 내용을 올렸던 일이 와전된 것이다.[3] 정작 오구라 유코는 나중에 송태조가 밀갤내무반에서 정식으로 사과한 사실을 몰라서 그랬고,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사과하게 된다.[4] 판정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한국 선수들이 착각한 것.[5] 껌팔이는 당시 고1, 의정부고딩은 당시 고2.[6] 사이트 트래픽을 계속 발생시켜 서버를 다운시켜버리는 프로그램. 햏자 시절부터 무슨 사건이 일어날때 갤러들이 특정 사이트를 다운시킬때 쓰던 도구였으며, 사이버 갑신왜란때도 많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