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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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Busan is good
부산이라 좋다
부산 먼저 미래로 그린스마트 도시 부산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
대한민국 동남쪽에 위치한 광역시. 북쪽으로는 경상남도 양산시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쪽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김해시와 접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특별시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제2의 도시이자 최초의 광역시(직할시)로, 6개의 광역시 중 가장 인구가 많으며, 경상남도, 인천광역시와 더불어 300만대 인구가 거주하는 셋뿐인 광역자치단체이기도 하다. 광역자치단체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경기도, 서울특별시 다음으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광역자치단체다.
부산·울산권과 경상남도의 중추도시이기도 하며, 국내 최대 무역항이자 환적량이 세계 5위권 규모인 부산항을 보유하고 있어, 바로 위에 존재하는 국내 최대 공업도시인 울산광역시와 함께 대한민국 수출입 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2. 상징[편집]
2.1. 2023년 상징 변경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2023년 부산광역시 상징 변경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23년 2월 28일부터 3월 8일까지 새로운 로고와 브랜드를 선정하기 위한 선호도 조사가 실시됐고, # 3월 10일 위의 최종 디자인을 확정해 공개했다. #, 3월 21일 오후 3시 브랜드 선포식을 개최했고, # 같은날, 상징물 조례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다. # 이후 5월 2일 조례가 개정됐다. 이 조례는 5월 17일 공포되었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문서 참고.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부산(釜山)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 성종 초기이며, 이와 관련된 설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소재한 증산(甑山)에서 유래했다는 증산설[15] 과, 다른 하나는 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소재한 자성대에서 유래했다는 자성대설이다.
부산(釜山)이라는 말을 풀이하자면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인 산이라는 뜻인데, 이 산이 당시 둘 중 어떤 산을 가리키는 말이었는지가 주된 논점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PC)나 여기(모바일)로. 부산이란 이름이 등장하기 전에는 동래, 독로국, 거칠산국, 갑화양곡 등의 여러 지명으로 불렸는데 몇몇 지명은 부산 안의 세부 지명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부산의 다른 이름은 가마뫼이다.[16]
6·25전쟁 당시에는 수원시,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에 이은 부산이 임시수도였으며[17] 전후에도 경상남도 부산시였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이어 정부 직할시[18] 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81년 4월 4일 부산시에서 부산직할시로 개편되었다.[19] 이후 1995년 1월 1일 광역시 제도 도입으로 지방자치제와 함께 종전의 다른 직할시들과 함께 부산광역시로 변경되었다.
1925년 진주에 있었던 경상남도청이 부산으로 이전한 이후, 1983년 창원으로 이전하기까지 경상남도청 소재지였던 경남의 중심이기도 했다. 경상도 안에 있는 대구의 경상북도청도 늦게 이전했다.20년 가량 부산 내에 부산광역시청과 경상남도청이 함께 존재했다. 그래도 2000년대 이전에 경남에 도청이 환원되었으니 다른 지역보다는 도청 환원이 빨리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서울과 부산이 일찌감치 도에서 독립하여 생긴 착시 현상일 뿐이다. 사실 도청이 있던 다른 광역시도 광역시 분리 이후 비슷한 기간동안 도청 소재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대구가 1981년, 광주가 1986년, 대전이 1989년에 직할시가 되었는데, 경상북도청은 2016년에 안동으로 이전했고, 전라남도청은 2005년에 무안군으로 이전했고, 충청남도청은 2013년에 홍성군으로 이전했으니 다른 광역시들도 20년 이상 도청 소재지 지위를 유지했던 것. 경기도청 역시 1969년까지 서울특별시청과 함께 서울 광화문 지역에 20년 이상 있었고 수원으로 이전했다.
4. 지리[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지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지형[편집]
산악지대가 곳곳에 많아서 평지는 물론 산자락까지도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이 많은 편이다. 도시 이름이 釜山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로 인해 산자락에도 고층 건물이 세워져 있는 모습은 홍콩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20]
4.2. 기후[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기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쾨펜의 기후 구분상 온난 습윤 기후(Cfa)에 속한다.
4.3. 도시구조[편집]
도심으로는 서면과 광복동&남포동이 있고, 부도심으로는 동래, 금정, 연제, 해운대, 구포[21] , 사상, 하단, 강서[22][23] 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이나 언론에서 부산을 크게 동서로 구분할 경우 보통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 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기장군을 동부산으로, 부산진구, 동구, 중구, 서구, 북구, 영도구, 사하구, 사상구, 강서구를 서부산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동부산지역은 모두 예전에 동래구에서 분구된 지역. 지금의 남구와 수영구는 원래 동래구에서 남구로 1975년에 분구되고, 거기서 다시 1995년 남구에서 수영구가 분구, 해운대구는 1980년 동래구에서 분구, 금정구는 1988년 동래구에서 분구, 연제구는 1995년 동래구에서 분구되어서, 동래구,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 금정구 연제구의 6개구의 동부산 지역은 모두 이전에 동래구였던 지역이다.
동부산의 경우 전통적으로 조선시대부터 양반이 살던 동네였으며 부산의 전통적 부유층 주거 지역인 동래구, 1980년대부터 동래구와 전통적 부유층 주거지역을 양분해 온 투탑이었던 수영구, 센텀시티와 마린시티가 들어서면서 신흥 부유층 주거지역으로 떠오른 해운대구의 부유층 주거지역 3개구를 함께 해수동이라고 부른다. 해수동으로 불리는 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의 3개구가 예전 동래구에서 나누어진 지역들이고, 나란히 붙어 있지만, 지역적 차이는 있다. 대체로,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 동래구나 수영구와 달리 마린시티와 센텀시티같은 상류층 거주지, 해운대신시가지같은 중산층 거주지와 함께 재송동, 반여동같은 서민층 거주지도 많은 해운대구의 경우는 빈부 격차가 부산에서 가장 심하고, 부산의 대표적 상류층과 중산층 거주지역 중 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 외 상당수의 거주지는 서민층이 사는 산동네에 형성된 거주지역이라는 점이 특성이다.
시민들이나 언론에서 사용하는 일상적인 광역적 구분이 아닌 세분화된 구분으로 따지면 이렇게 된다.
- 동래권: 원래 동래부로써 바다에 접해있지 않고 동래의 영향력이 큰 권역으로 연제구/동래구/금정구
- 서부산권: 낙동강변이므로 본래 공단이 가득했던 곳으로 사상구/북구/강서구/사하구
- 동부산권: 비교적 최근 개발이 시작되어 동부산의 한 축으로 떠오른 해운대구를 거점으로 하는 곳으로 남구/수영구/해운대구/기장군
- 중부산권: 20세기 중반부터 개발되기 시작해 지금은 즉 금융, 상업, 유흥의 중심지인 서면을 두고 있는 곳으로 부산진구로 나눌 수 있다.
단지 지리적으로만 따지자면 부산진구/동구의 중부산권, 해운대구/남구/수영구의 동부산권(해운대권)과 중구/서구/영도구/사하구의 남부산권, 강서구/사상구/북구의 서부산권, 동래구/금정구/연제구의 동래권, 위성도시인 김해시/양산시/거제시[24] 로 구분된다.[25][26]
방위에 따른 구분이 실제 사용되는 예로는 부산 시내버스 정류장 화면에 표시되는 '대기질 정보 전송시스템'을 들 수 있는데, 아래 사진처럼 서부/중부/동부/남부권으로 나뉜다. 각각의 권역을 살펴보면 서부권은 강서구, 북구, 사상구, 사하구이며 중부권은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부산진구이고 남부권은 해운대구, 수영구, 남구, 동구, 중구, 서구, 영도구이며 동부권은 기장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부산이 동래부이던 시절, 동래 일대는 당연하게도 동래부의 중심지였는데, 지금은 부산광역시 안에 동래구가 있지만 과거에는 동래부 안에 부산포가 있었다. 이 부산포는 현재의 중구, 동구[27] 일대를 일컫는 것으로, 구한말 이후 일본과 가깝다는 지리적인 요인 덕분에 남포동-중앙동을 비롯한 중구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커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부산시라는 명칭을 달게 되었고, 이후에도 독립적인 군으로 남아 있던 동래부를 역으로 흡수하게 되면서 부산에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1980년대까지 부산의 중심으로 활약하던 중구, 동구에서 초점이 움직인 건 1990년대 중후반의 일인데, 특히 동래군과의 사이에 있는 서면 부근은 지역적으로 부산의 중심이라는 특성 덕분에 급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때보다도 훨씬 커진 부산이 강서구, 기장군 등을 편입하면서 1998년도에 중구에 있던 부산광역시청[28] 이 지리적으로 부산의 중심에 가까운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게 되고, 1999년도에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서면역이 개통되면서 환승역까지 도맡아 현재의 부산진구 서면은 전 부산을 폭넓게 아우르는 최대 도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4.3.1. 지역 특징[편집]
산, 강, 바다, 해수욕장, 마천루와 신도시, 공업지대를 모두 끼고 있는 단일 행정구역 인구 300만이 넘고, 광역권은 최대 700만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다. 국내 최대의 해안도시이자 항구도시임에도 이름에서 느껴지듯 산이 많은 도시며 심지어 해발고도 800m짜리 산 중턱에도 건물이 들어설 정도다. 이러한 다양하고 역동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상당히 개성 있고 특징이 뚜렷한 도시며, 한국의 다른 대도시와 풍경과 느낌도 사뭇 다르다.[29] 아마 한국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도시라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이다.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때문에 스카이라인과 오래된 건물이 공존하고 있기에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심지어 동부산 최고의 부촌인 해운대구, 수영구, 남구에도 오래된 건물들이 있다. 하지만 꼭 동부산권이 아니어도 번화하거나 개발이 잘 되어 있는 남포동/광복동, 서면 일대와 주거지 밀집 지역인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와 북구 화명동, 사하구 다대동 등이 있다. 비수도권 최대 도시지역 답게, 문화, 교육, 교통 등 생활 인프라가 수도권 다음으로 많이 갖추어져 있다. 특히 주변의 김해시, 양산시 등의 위성도시에는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목포가 서남쪽 끝이라면, 부산은 동남쪽 끝이란 인식이 있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30] , 경부선[31] 의 종점이 부산이다. 한편 같은 해안도시이자 대도시인 인천광역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과 풍경을 가지고 있다. 서해안인 인천과는 바다 색깔부터 다르고 무엇보다 부산엔 산이 많다. 그리고 인천에 화교가 많다면 부산광역시는 일본인이 비교적 많고 러시아인도 종종 눈에 띈다. 화교도 인천만큼 규모나 인지도 면에서는 크지는 않지만 부산역 맞은 편 한 블럭 안쪽에 국내 기준으로는 작지 않은 규모 역사를 가진[32] 차이나타운이 있다. 이 지역에 부산의 화교가 밀집해 있으며 러시아인들도 주변에 많다.[33] 그 외에는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해상도시 건설 계획도 있지만# 이미 예전에 환경오염, 비용 문제로 인해 백지화된 바 있고 2021년에 새로 나타난 계획 역시 이런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에서 높이가 200m 이상인 마천루가 가장 많은 도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 10채 중 4채[34] 를 제외한 나머지 마천루는 전부 부산에 있다. 현재 부산에 높이 200m 이상의 마천루는 총 14개에 달하며, 공사가 진행 중인 마천루는 10곳이나 되고, 이들 모두가 완성된다면 부산에만 총 24개의 200m 이상의 마천루가 생긴다.
한국에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도시이기도 하다.
매년 태풍때마다 상습적으로 피해를 입는 지역이 부산 송도이다. 그래서 부산 송도 일대에 파도를 막는 테트라포드 2000개를 추가하여 착공한다고 한다. #
4.3.2. 난개발[편집]
부산, 특히 서부산 원도심지역은 국내의 가장 대표적인 난개발 지역으로, 고양시, 용인시, 경기도 광주시와 더불어 국내에서 난개발의 대명사로 꼽히는 도시 중 하나다. 특히 부산의 도로가 악명 높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농담이 아니라 부산에서 운전을 마스터하면 눈 내린 도로를 제외[35] 하고 세계 어디를 가도 운전할 수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부산 택시 기사들의 운전 문화를 몸소 느끼고 싶거든 아무 택시나 잡아서 서울 말씨로 급하니 빨리 가달라고 해 보자. 요상한 지름길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 차선 2개를 동시에 끼고 간다든가(차선 밟기), 차선을 한 번에 2~3개씩 넘나들기도 한다. 심지어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가 들어와서 사람이 건너는 와중에도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KBS부산 9시뉴스에 운전하기 힘든 도시 부산 비슷한 컨셉으로 1주일 정도 하루에 2편씩 보도한 적도 있다. 심지어 서병수 전 시장도 방송 시사 안드로메다에 나와서 이에 대해 알고 있으며 부산의 운전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 링크의 사진들을 보면 정말 도로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수준으로 이상하게 꼬여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부산의 도로가 반듯하지 못하고 운전 난이도가 거칠고 힘드냐면, 부산 자체가 계획도시와는 거리가 멀고 피난민들의 유입으로 무분별하게 성장을 한데다가 도시 입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인구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 거주지 구역은 그래도 나름 계획적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36] 대부분의 부산 시가지는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와 집이 먼저 생기고 집과 집 사이로 도로가 거미줄처럼 세워진 곳이다. 서울은 군사독재 시대에 김현옥 시장이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답게 과감히 밀고 판을 다시 만들었지만 부산은 거의 현상 유지된 채로 지금까지 이어왔다. 그나마 김현옥 시장이 서울시장 부임 직전 부산시장을 할 때 정도가 많이 변한 때였다.
서울이나 평양 같은 도시들은 애초부터 오랜 역사 동안 천천히 개발이 이루어진 도시이고 오히려 6·25전쟁을 거치면서 쑥대밭이 되어버려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도시계획을 거칠 수 있었다.[37] 그러나 부산은 산지가 많아 개화기 이전까지 큰 개발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고 근대화 과정에서는 수탈을 위한 항구도시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 곳에 전쟁으로 인해 순식간에 수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고, 거기에 부산은 전쟁 내내 북한에 점령된 적이 없어 도시 전체가 통째로 초기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난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제2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인구수가 많은 것도 난점. 인구유출이 많았다곤 하나 여전히 3백만 명이 넘는 광역시 최고 인구수를 자랑하는 곳이 부산이다. 또한 항구도시인 만큼 물동량도 많아 화물차량 등의 이동도 많을 수 밖에 없고 체감교통량은 더 많다. 사실 부산은 이름에서부터 '산(山)'이 들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렇게 많은 인구수를 수용하기에 적합한 지리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항구도시로 발전하고 많은 인프라가 갖춰져 인문환경으로 인구수를 지탱하는 것에 가깝다. 만약 부산이 이정도의 인구수를 보유한 광역시가 아니고 적당한 수준이었다면 도로 교통 문제가 이정도로 악명높진 않았을 것이다.
이 때문에 건물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 도로를 추가로 신설하지 못하는 바람에 우회도로가 없는 곳이 많아 차량정체가 하루종일 발생하는 지역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곳은 원도심 일대 중앙대로, 대연동~수영 일대 수영로/광남로, 해운대 일대 해운대로/해운대해변로, 주례동~서면 일대 가야대로, 낙동대로 하단교차로~대티터널, 낙동강 일대이며 특히 원도심은 모든 도로가 중앙대로로 반드시 합류하도록 설계되어 있고[38] 우회도로[39] 조차 없는 최악의 도로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도로명주소가 도입되던 당시, 가장 난항을 겪었던 지역이 바로 부산이었다.[40] . 부산의 도로는 다른 도시의 도로처럼 구분하기 편하게 쭉 뻗은 게 아니라 산과 집집 사이로 굽이굽이 휜 골목과 커브가 난무하는 난코스라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기에 매우 복잡하기 때문. 덕분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도로명은 같고, 도로명이 바뀌긴 바뀌었는데 주변 건물 사이로 난 좁은 길은 갈라지기 전 도로명에 xx번길만 붙어서 지금 지나고 있는 도로를 교차, 심지어 도로명이 없는 골목길[41] 도 있는 등 아주 난리도 아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부산은 건물이 도로를 피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도로가 건물을 피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부산의 도로들은 차로 폭 자체가 비교적 좁을 뿐만 아니라[42] 도로 체계가 복잡해서, 수시로 차선이 많아졌다 적어졌다하거나 1차로로 달리다가 좌회전 차로가 갑툭튀하는 등 심지어 전국에 몇 없는 우회전 신호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 #
난개발 및 도로신설, 확장이 우선이 되고 부산시와 각 구군에서 미온적인 반응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근현대사 건축물이 철거되는 일이 수 차례 발생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첫 번째, 중앙동 구.부산세관 건물이며 1970년대에 문화제로 지정되었고 반드시 보존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산대교 접속도로 신설이 우선시 되는 바람에 철거가 강행되었다. 두 번째, 중앙동 구.부산시청 건물이며 과거 부산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등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롯데가 부지를 매입하고 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되자마자 철거되었다. 세 번째, 초량동 구.조흥은행 부산역 지점은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이였지만 영주고가도로 건설 및 도로 확장이 우선시 되는 바람에 철거가 강행되었다. 네 번째, 부산 최초의 창고인 구.남선창고는 가장 최근에 발생한 일이며 그 동안 근현대 건축물이 모조리 다 사라지는 까닭에 그나마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이 건물만이라도 보존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동구청에서 미온적으로 대처를 하는 바람에 건물 매입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여 민간업체가 건물을 매입해 철거되었다. 다섯번째, 아미동 구.은천교회는 1950년 시절 부산에서 유일하게 하나 남은 석조건축물이며 6.25 피란민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구청 측에서는 피란민들의 역사를 보존한다는 말과 무색하게 도로 확장이 중요하다며 이 건물을 철거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외에도 여러 동일한 사례가 워낙에 많다보니 부산의 근현대 건축물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이러한 도로사정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주요 간선도로에 BRT를 도입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킨 적 있었다. 현재 동래~안락교차로~재송동~해운대, 교대~연산교차로~시청~서면~부산진시장~부산진역~부산역~자갈치 구간으로 BRT가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차로가 2차선으로 대폭 축소되어 교통정체가 더욱 더 심각해졌다. 도로 자체가 좁다 보니 막히면 헬게이트가 된다. 깜빡이 없이 끼어들기, 불법주차, 신호 무시가 잦으며 심지어 시내버스와 택시가 그 좁은 길에서 노련하게 차선을 변경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렇다 보니 부산 사람들이 서울 버스를 타면 이렇게 편안한 버스가 있었냐고 감탄할 지경. 나아가 부산 산복도로 거주자라면 평지가 많은 서울 도로가 어색해서 내가 지금 버스를 타고 있는지 지하철을 타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라고 한다. 반대로 서울 사람이 부산 버스를 타면 그 특유의 난폭운전에 더해 굽이 몰아치는 산복도로 코스 때문에 당황스러워하며 뒷자리에 앉으면 멀미가 날 수 있다. 이런 고난도의 도로를 하루종일 운전하는 시내버스를 보면 때로는 경외심마저 들 정도인데, 실제로 부산 시내버스 출신 기사들은 저절로 운전 실력이 좋아져서 시외, 고속버스 회사로 이직할 때 타 지역 출신에 비해 이직이 제법 잘 된다고 한다.
그나마 현재 부산의 도로망은 반 세기 동안 조금씩 정비한 결과다. 6·25전쟁 이후 정말 답이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차로 다닐 만한 도로가 된 것은 바로 오랜 세월 동안 도시를 다듬어 준 사람들의 노고 덕분이다. 비교적 근래에 조성된 해운대신시가지, 명지오션시티, 명지국제신도시, 정관신도시 같은 부산시 외곽 신도시는 나름대로 도시계획을 잘 갖추어 개발한 편이라 도로망 경우에는 간선도로망이 잘 되어 있어 운전하기에 매우 수월하다. 위성사진으로 부산의 이런 신도시와 원도심 산복도로 쪽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같은 도시의 도로망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외곽 교통망의 경우, 공격적인 물량 개발로 외곽 신도시 교통체계는 배드타운, 교통지옥이라는 꼬릿말이 물고가는 정도이다.[43]
물론 부산시에서도 부산 교통체계에 대해 악평이 자자한 데다가 지자체 중 교통 질서 꼴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이런 불명예를 타파하고자 직접 나서서 경찰 단속을 강화하고 캠페인을 펼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고 그나마 요즘은 도로교통이 예전보다는 쾌적해졌다는 평도 더러 있다. 또한 부산시 내 아파트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1·2호선 연선 구간의 주택지역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재개발이 된 곳의 도로망을 보면 이전과 비해 상당히 개선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산복도로 일대를 재개발 한 아파트는 정문과 후문의 고저차는 과거와 그대로다.
4.4. 일본과의 관계[편집]
쓰시마섬(대마도) 최북단 우니 섬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보이는 부산불꽃축제와 광안대교 및 야경 스카이라인.[44][45] 날씨가 좋은 날 서부산과 동해바다 일부에서는 쓰시마섬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부산이 대도시라서 밝기 때문에 쓰시마섬에서는 오히려 밤에 부산이 더 잘 보인다.
부산은 한반도에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도시답게,[46] 예나 지금이나 일본과 연결되는 교통이 상당히 발달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때 왜관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맨 첫 번째로 함락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부로 승격된 대표적인 도시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과 인적, 물적 교류가 상당히 많다. 부산, 일본의 규슈 지역 간의 활발한 경제적인 교류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초광역경제권'의 일례라고 보는 도시-경제학계의 의견도 있다.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데, 주로 남포동이나 서면 일대에 많으며 코믹월드나 G-STAR가 열릴 때에는 해운대 인근에도 많다. 때문에 일본과 관련된 업무 처리를 위해 영사관이 동구 고관로에 있다. 영사관에서는 한국에 사는 일본인의 비자 등의 업무를 한다. 금련산역에서 조금 들어가면 일본총영사공관이 있다. 일본대사관이 서울에 있지만 부산과 일본의 교역량이 많고 관광 주재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영사관을 부산에도 설치했다.
또한 영사관 직원 및 주재원의 자녀 교육을 위해, 1975년에 개교한 일본인 학교가 민락동에 있다. 일본인 학교는 한국에 딱 두 개가 있는데 하나가 서울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산에 사는 일본인이 꽤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인 학교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정하는 학습 지도 요령에 준거하여 각 교과와 도덕, 특별 활동, 한국어, 영어 등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47] , 일본 영주권이나 정주권을 소지한 한국인이거나 부모의 어느 한쪽이 일본인인 한국인, 또는 부모의 어느 한쪽이 일본 영주권이나 정주권을 소지한 한국인 등이 학교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교육받을 수 있다.[48][49]
일본 규슈에서 비행기로 50분, 쾌속선 비틀호로 3시간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실제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일본과 배편이 연결되어 있다. 이 점 때문에 한때 후쿠오카에서는 부산으로 쇼핑 다녀오는 사람을 일컬어서 비틀족이라고 부른 적도 있으며 일본과 너무 가까워서 그냥 해외여행이 아니라 일본 국내를 여행한 느낌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2010년대 들어서는 중국인 방문객이 늘어났으며 신세계 센텀시티점 등에 방문한 해외 쇼핑객 국적 중 1위는 일본이 아닌 중국이다.
간혹 부산역 같은 곳에서 일본인 관광객인 척하고 기차 탈 돈이 떨어졌다면서 돈을 달라는 사기 행위가 종종 있다고 한다.[50] 실제 일본 관광객들은 해외여행 중 무슨 일이 생기면 보통 대사관 등에 문의하니 속지 말자.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일본행 노선
- 오사카
- 후쿠오카 - 밤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야간페리와 상기한 3시간 40분 소요되는 쾌속선이 모두 다닌다.
- 시모노세키 - 1905년에 운항 개시한 부관연락선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노선.
- 대마도 (이즈하라항, 히타카츠항)
기타큐슈 노선도 있었으나 2010년 12월 17일 폐선되었다.
동래구에 있는 동래온천도 온천 자체는 경주시와 가까워서 신라 시대부터 알려진 곳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온천욕을 특히 좋아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 개발되었다. 지금의 중구, 동구, 서구 일대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부산 도심이었는데 지금이야 부산이 커지면서 모두 시가지로 이어졌지만 옛날에는 부산과 동래가 한동안 별개의 도시였다. 이 구도심에서 역 인근까지 온천여행객을 수송하기 위한 온천 셔틀로서의 부산전차가 1915년 개통되었을 정도였다. 전차는 1968년 직할시 시절에 이미 폐선된 지 오래지만 지금도 일본인 온천 관광객은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부산 해안가 지역에서는 안테나만 잘 설치하면 일본 방송 시청이 가능했다. 가까운 대마도의 이즈하라(厳原) TV중계소의 전파가 부산, 울산, 거제 등 인근 지역의 해안가까지 거의 일년 내내 도달하고, 날씨가 따뜻한 봄~가을철에는 덕팅현상[51][52] 으로 인해 대한해협 건너의 후쿠오카, 야마구치 현등의 방송까지 수신되기도 한다. KBS와 부산MBC가 TV방송을 시작하기도 이전인 1961년에 NHK나가사키방송국과 나가사키방송이 이즈하라 중계국을 설치하면서부터 전파가 들어왔고 일본 방송이 시청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일본 방송 수신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부산 영도송신소의 아날로그 TV 방송 채널 일부는 대마도 이즈하라 중계국의 채널과 동일하게 지정하여 송출했으나, 한국 TV방송이 일본 TV방송보다 방송시간이 짧아 한국 TV방송이 정파했을 때 시청이 가능했고 지역이나 날씨 등의 요인에 따라 두 나라 방송이 겹치거나 했다고 한다.[53] 또한 대마도에서 송출하는 채널 이외에도 앞서 언급했듯이 날씨가 따뜻해지면 덕팅 현상으로 인해 후쿠오카, 야마구치 등의 지역 전파들이 부산까지 도달하여 나가사키 지역 방송 이외에도 많은 채널이 잡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1990년대까지 부산 시민들이 일본 방송을 시청하는 일이 잦았고[54][55] , 일본 문화의 수입 또한 빨랐다. 방송사 PD들도 부산으로 출장와서 일본 방송을 그대로 베껴서 내보냈으며, 일본 패션이 제일 먼저 넘어오는 곳도 부산이었으며, 1970~80년대에 타 지역에서는 금기시되던 일본 음악도 부산에서는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한 예로, 펑크 룩이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던 것은 1990년대 중반이었는데, 부산에서는 이미 1980년대 초반에 펑크 룩을 시장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방송을 유심히 지켜보던 중소 의류업자들이 소량으로 제작해서 판매했던 것이다. 그래서 타지인들은 예전부터 부산과 부산사람에게 묘하게 왜색이 느껴진다고 하기도 했다.
노래방이 가장 처음 들어선 곳도 부산이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부산은 예전부터 왜색 문화의 범람을 고발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취재를 오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방송 시청은 우리의 미풍양속과 정서를 해칩니다'라는 문구 등으로 '일본 방송 시청 금지 캠페인'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당대 국내 TV 방송사의 행태이다. 이들은 일본 TV 방송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는데, 애니메이션의 경우 자체적으로 제작하기보다 일본 만화영화를 그대로 수입하여 틀어주었고[56] 다른 장르도 방송사 PD 개편철이 되었거나 아이디어가 떨어지면 일본 포맷이나 아이템을 은근히 모방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물론 당대 일본 TV 방송에서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이 어린이 시간대나 황금시간대에도 대놓고 나오고, 새벽에는 에로영화가 나오는 등 일본 내 방송 심의가 당대 한국의 방송 심의와는 다른 의미로 막장스러웠던 시기라 나름대로 건전하게 만들어 내보냈지만 당시에는 '왜 일본 TV 방송을 베끼냐', '왜 일본 만화영화를 수입해서 틀어주냐'식의 항의도 많이 들어오곤 했다. 이러한 행태는 21세기가 되고 한국 방송 수준이 올라간 다음에서야 잠잠해졌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로는 이러한 방송 행태의 고발성 취재나 캠페인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국내 일본원서전문 수입점 중 네임드라고 볼 수 있는 네픽도 부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이 종료된 2011년 7월 24일 이후로는 일본의 ISDB방식 지상파 디지털 TV방송 수신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과거에는 한국과 일본의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은 NTSC 방식으로 동일했으나, 디지털 TV방송은 한국은 ATSC, 일본은 ISDB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 한편, 일본 내수용 TV를 이삿짐으로 챙겨오거나 ISDB 수상기를 들여와서 수신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증언이 있다. 황령산에서 꽤나 고출력으로 전파를 송신하므로 일본 측의 전파가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기사). 이즈하라 중계소에서 송출하는 방송은 이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 일본 라디오는 아직까지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므로 AM은 기존의 수신기로도 잘 잡힌다. NHK후쿠오카 가스가(春日) 방송소에서 송신하는 제1방송(AM 612㎑)은 낮에도 해안가에서 수신이 가능하며 밤에는 부산 전역에서 수신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야간에는 후쿠오카 민영방송도 수신이 가능하다. FM은 한일 양국은 주파수 대역이 다르므로 76~108㎒를 모두 지원하는 수신기가 아니면 수신이 어렵다.[57] 반대로 부산이나 울산의 전파가 앞서 언급했던 ‘덕팅 현상’으로 일본 나가사키, 후쿠오카, 야마구치현 등으로 도달하기도 한다. 이들 지역에서는 과거부터 날씨가 따뜻해지면 부산, 울산, 창원 등지의 방송이 갑자기 수신되거나 한국의 채널이 해당 지역들의 채널과 겹칠 경우 방송이 겹쳐보이는 경우가 있다. 아예 심하면 일본 방송 수신이 어려워지는 현상도 있다.[58] 그 예로 2003년 울산문화방송이 2.5kW 출력의 디지털TV 실험 전파를 발사한 이후 일본 후쿠오카 지역에서 아날로그 TV를 시청할 때 화면이 겹쳐 보이거나 소음이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했었다.[59]
4.5. 인구[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인구 추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선시대 초기 작은 마을로 동래부 인구 7,000명, 후기로 갈수록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4-5만 명의 도시로 변하였다.# 개화기에는 이미 서울 다음으로 인구 5만에 달성하여 한반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급격한 도시화를 겪어 1930년 약 14만 명, 1940년 약 24만 명, 44년 32만 명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40년대에 평양에 인구가 따라잡혀 한반도 세 번째 도시가 되는등 엎치락 뒷치락 하였다.[63]
그러다 6·25전쟁 때 임시수도가 된 것과 피란으로 인해 40-50만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하였다. 전쟁 이후로는 베이비붐과 이촌향도 현상 등으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전반적인 문제인 고령화 ꞏ 저출산 문제와 더불어 양질의 일자리 부족과 그로 인한 인프라 차이로 인해 현재 인구가 심각하게 감소 중이다. 고점에서 비교해 60만 가량 인구가 감소하였다.
부산에서 빠져나간 인구가 주로 어디로 갔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데 1995년부터 2019년까지 부산 인구감소의 주 원인은 김해, 양산과 같은 위성도시 지역으로의 이주다.부산지역 인구이동에 대한 분석, 청년층을 중심으로(한국은행, 2019)
부산의 경우에는 고령화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며, 대도시 중에서는 처음으로 인구 자연 감소가 시작되었다. 이런 고령화의 가장 큰 이유는 청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해 청년층이 이탈한 게 이유이다.
2020년 이후로는 양질의 일자리의 부재로 인한 청년층 유출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타 지방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집중 문제의 심화로 인한 것도 있으며, 창원 울산 등 인근도시와 달리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여 인구가 유출되는것도 있다. 이 현상은 특히나 20대 연령대에서 가장 심하다.
이를 통해 부산 인구가 감소하는 주 요인이 대학 진학 및 취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청년층이 계속해서 빠져나갈 경우 부산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청년층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부산시에서도 문현금융단지와 연계한 금융산업을 육성하고 수도권 기업을 유치하는 등의 시도를 하거나, 심지어 청년층에 주거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거대한 도시권을 형성한 수도권처럼 부울경도 뭉쳐서 대도시권을 형성하자는 부울경 메가시티가 제안되었으나 이것도 경남, 울산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 최종 무산되었다.#
2021년에는 특·광역시 가운데 처음으로 초고령사회가 되었다.[64] 2015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6년 만이다. 2023년 5월, 331만명 선이 무너졌다. 340만이 무너진지 2년여만에 점점 330만명 선의 붕괴가 가시화 되었다가, 결국 2023년 10월경 330만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러한 추세로는 2020년대 후반기 혹은 2030년대 초반기에 인천한테 인구가 역전되는게 확정적인데 더 큰 문제는 역전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게 문제다. 당장 10년 전만 하더라도 80만명 차이였는데 10년만에 20만명 차이가 되버렸다.
5. 교통[편집]
자세한 내용은 부산광역시/교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경제[편집]
6.1. 산업[편집]
공업, 특히 경공업이 과거에 상당히 발달했고 전 세계 최대 신발 생산기지로 유명했다.[65] 부산진구 당감동 소재 화승은 1970~80년대에 나이키 운동화 OEM 생산업체로 있었는데, 산하 브랜드로도 월드컵/프로월드컵, 르까프[66] 를 두었을 만큼 부산을 대표하는 신발 제조사였다. 그외에도 국제그룹의 국제상사 스펙스/프로스펙스, 대양고무의 슈퍼카미트, 태화고무의 까발로, 삼화고무의 타이거 등 다른 신발 제조사도 매우 많아서 우스갯소리로 부산에서 만든 신발을 전 세계인들이 신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신발 산업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올버즈의 위탁생산공장도 부산에 위치해 있다.
신발산업 외에도 섬유산업도 상당히 발달했는데[67] 섬유산업에서 유명한 태광산업도 원래는 부산에서 창업한 '향토기업'이었다. 의류업체인 세정과 태화섬유[68] 는 부산광역시에 본사가 있고 현재는 본사를 서울로 이전한 '더 베이직 하우스'도 부산에서 출발했다. 페인트산업도 상당히 성했다. 지금은 조광페인트만이 부산에 남았지만 삼화페인트, 노루페인트, 조광페인트, 건설화학(제비표 페인트) 등이 모두 부산에서 창업하고 성장했다.
또한 비누제조 회사로 부산에서 설립한 회사로는 동산유지, 천광유지[69] , 평화유지 등이 있다.
그러나 동명목재와 국제그룹이 해체되고 1980년대 이후로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이 많이 올라가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저가공세에 밀리게 돼 부산의 경공업은 쇠퇴했다. 1990년대 이후로 이들 산업의 생산시설이 부산을 뜨기 시작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많이 빠져나갔다.[70]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조업 기반이 아예 없지는 않다.
지금은 사하구와 사상구, 강서구, 남구, 영도구 쪽에 어느 정도 제조업 기반이 남아 있으며 사하구와 강서구에 걸쳐 녹산국가산업단지도 있다. 그외에도 지역 내 유명 대기업, 중견기업의 사업장은 동국씨엠(계열사 인터지스 포함), 삼성전기, 대한항공 테크센터, LS일렉트릭, 농심, 르노코리아, HJ중공업, 풍산그룹, 태광산업, CJ제일제당, 대한제강, 태웅, 동일고무벨트, 리노공업, 오스템임플란트 등이 있다.
그리고 경공업 못지 않게 부산 경제에 중요한 산업이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물류산업이다. 부산항은 한 때 세계 3위의 물동량을 차지하였으며, 순위가 떨어진 지금도 세계 10위권 안에서 노는 항구이다. 거기다 단순히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환적항으로써의 기능도 굉장히 크다. 시내에 위치한 부산항이 포화에 이른 지금은 창원시 진해구와의 경계에 부산신항을 조성하여 투자하고 있다.
제조업, 특히 경공업 위주로 서술돼 부산이 2차 산업 중심인 도시가 아닌가 할 수 있지만, 2015년 기준으로 부산의 3차 산업이 GR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국 시·도 단위에서 서울, 대전에 이은 3위이다. 즉 부산은 3차 산업 중심인 도시다.[71] 다만 부산은 3차 산업 가운데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관광업 등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서비스업이 발달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나마 주변의 울산광역시, 창원시, 김해시, 거제시, 양산시, 함안군 등 소비력은 좋지만 소비 인프라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역의 소비를 부산에 유입시킴으로써 서비스업이 부산 경제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기는 했지만[72] 앞으로 해당 지역의 경제가 침체되거나 쇼핑 인프라가 점점 발전한다면[73] 그 역할도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영화, (해사)금융, IT, 콘텐츠 등 부산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육성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2021년 현재 기준으로 부산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가 되긴 했지만 부산 관광업 특유의 낮은 부가가치와 고용 창출력 탓에 유일하게 제대로 키워낸 관광업만으로는 과거 시절만큼 부산 경제를 돌려놓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남아 있는 제조업 기반에 신경쓰지 못해 서부산의 제조업은 확장을 겸해서 김해나 양산, 멀리는 충청이나 수도권으로 이전한 것은 덤. 사실 부산 경제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대기업이 모조리 수도권으로 가버렸다는 점으로 인터넷에서 이미 조롱거리가 됐을 정도로 일자리 풀이 처참하다는게 문제다. 부산 청년들은 선택지가 그나마 발달한 금융업을 제외하면 서비스업 일자리밖에 없어 반강제로 수도권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대구 경북 못지 않게 보수적이고 열악한 노동환경 역시 문제점으로 강서구의 녹산단지의 악명이 자자한 편이다. 최저임금을 안 챙겨주는 곳도 매우 많고 주 6일은 기본 장착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이미 엄청난 수의 청년 인구가 수도권으로 가버렸고 더욱 악화되면서 노인들의 도시라는 별칭이 생겨버렸다.
이제서라도 인구 감소와 산업 쇠퇴를 막고 서비스업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 부산은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산업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센텀시티는 부산에서 첨단산업이 발달한 곳인데 IT 및 영화 관련 기업이 집적해 있다. 또한 동삼혁신지구, 문현금융단지, 센텀시티 등 혁신도시 사업, 북항재개발 사업,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사상 스마트 도시 등의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아래는 부산혁신도시의 특화 기능군인 해양수산, 금융산업, 영화진흥 등 분야와 관련된 공공기관이다.
- 해양수산 관련기관(4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립해양조사원,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 금융산업 관련기관(4개)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주택도시보증공사
- 영화진흥 관련기관(3개)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관리위원회
- 기타 기관(2개) 한국남부발전(주),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2021년 이후 지방으로 추가 이전할 '혁신도시 시즌2' 사업에 맞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서울에 있는 금융 관련 공공기관(금융공기업) 9곳을 이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업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현금융단지가 부산 금융업의 중심지이다.
제조업에도 여전히 신경 쓰고 있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에도 울산, 창원, 김해와 같은 주변의 산업도시와 연계한, 강서구나 장안 쪽의 산업단지 개발에도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다.
가장 급한 건 사상하단선으로 시작해서 하단에서 강서구로 가는 5호선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산업의 기반이 사상구, 사하구, 강서구 등에 있는 서부산 지역이다. 그런데 30년 넘게 지하철을 못 지어서 사상~하단 그 짧은 구간을 매번 학장, 엄궁에서 막혀서 출퇴근 극심한 정체로 시민들이 고생하고 있다. 2021년 현재도 공사 중인데 이 노선은 서부산권의 입장에서는 정말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