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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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줄거리
3. 평가



1. 개요[편집]


김동인이 192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독실한 크리스찬인 전 주사란 인물을 통해 크리스찬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김동인의 선친인 김대윤은 개신교 장로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라는 것이다.[1]

2. 줄거리[편집]


명문가 전성철 대과[2]의 맏아들이었던 전 주사는 일찍이 18세 때 개신교를 접한 이후 독실한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식이란 인간 평등 사상을 접한 그는, 바로 그 날부터 아내를 "여보", "당신"이라 부르고 아내에게 존댓말을 썼다.

이 좋은 개신교 정신을 집안에도 널리 전파하려 했지만 완고한 유림이었던 아버지 전성철과 어머니는 "너나 많이 믿어라."며 기독교를 배척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아들이 믿는 예수와 내 인복 대감을 싸움 붙여야겠다"며 매일 요란하게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했다.

하루는 전 주사가 하나님에게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올렸는데, 그만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아버지 전성철은 전 주사에게 "얘, 고맙다. 하나님께 내 죄를 용서해 달라고?"하고 비꼬더니 아버지가 도대체 뭔 죄를 지었는지 밝히라고 하자 전 주사는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버지의 죄"라고 밝혔다. 그러자 아버지는 "너희 신도 참 질투가 센 걸 보니, 여인네인 모양이구나."하고 비꼬면서 전 주사를 집에서 내쫓아버렸다.[3] 20살 쯤에 집에서 쫓겨난 전 주사는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전성철의 평판은 매우 좋지 않았다. 집에 재산도 많으면서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전 주사의 가게는 장사가 무지 잘 됐는데, 이문이 남자 그는 틈틈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신문에 전성철 대감이 예배당 건립에 1,000원을 기부했다는 기사가 났다. 물론 전 주사가 아버지 이름으로 기부한 것이다. 이 일이 신문에 나자 동네 사람들은 전성철 대감을 칭송했지만, 얼마 후 전 주사에게 돈 1,000원과 편지 한 통이 왔다. 아버지 전성철이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사칭해 예배당 건립에 기부했다는 소식을 듣고 알아본 뒤, 돈을 찾아 돌려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나의 이름을 팔아먹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한다.[4] 전 주사는 신문에 내지 않기로 하고 다시 돈 1,000원을 기부했다. 그 후로도 전 주사는 계속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거액의 돈을 기부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전 주사가 30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 전성철 대감이 위독해졌다. 전 주사는 아버지를 뵈러 갔지만 거기서 또 개신교식으로 예배를 올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정 니가 기도하고 싶으면 하거라."라고 하고 내버려두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전 주사가 전씨 가문당주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검소질박하게 살아온 그에게 양반 가문의 생활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50만원의 거금을 들여 아버지의 유지라는 명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딴 성철관이란 큰 공회당을 세웠고, 계속해서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 집안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전 주사의 아내가 이제 40줄로 접어드는데 아이가 없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70살이 넘은 전 주사의 노모에게 치매 증세가 왔다. 시어머니는 매일 같이 며느리에게 "계집년이 방정맞아서 아들 하나도 못 낳고 맨날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이 지 서방이야?"하고 욕을 퍼부었다.[5]

전 주사의 노모는 애를 낳지 않는 며느리를 향해 "전 씨 가문의 대를 끊어먹는 년"이라고 매일마다 욕을 퍼부었고, 이따금씩 얼굴 좀 반반한 계집종을 전 주사 내외의 방에다 들이기도 했다.[6] 그러더니 차라리 자신이 그 늙은 나이에 아들을 낳아 전 씨 가문의 대를 잇겠다고 전 주사더러 "참한 영감 하나 소개시켜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노모의 치매 증세는 날로 심해져, 있지도 않은 손자를 용손이란 이름까지 붙여가며 "용손이 데려와 달라."고 하질 않나, 또 "며느리가 전 씨 가문의 대를 끊어먹고 있다"고 계속 욕을 해댔다. 노모의 치매가 계속되자 이제는 종놈, 종년들까지 노모를 업신여겼다. 이에 전 주사는 큰 결심을 했다.

자신이 보건대 어머니에게 여명이란 고작 1년뿐이고, 이미 깊이 병 들어서 이미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분이었다. 그러니 어머니를 빨리 저승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어머니에게 더 이득이며 어머니를 고통 속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송장이니, 내가 하는 것은 살인이 아니고 송장에 어떤 손질을 조금 더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마침내 전 주사는 노모를 살해했고, 존속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전 주사는 법정에서 자신은 "어머니를 편히 주무시게 했을 뿐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법정에서 그딴 개소리가 먹힐 리 없었고, 전 주사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전 주사는 사형 집행 전 유언에서 "하늘은 내 마음을 안다."는 식의 말을 남기고 처형되었다.

전 주사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갔다. 전 주사는 당연히 자신은 천국에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아 한다. 재판관은 판결을 내리기 전에 전 주사에게 "네가 살아 생전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일을 말하라"고 하자, 전 주사는 없다고 말했다. "그럼 가장 뿌듯했던 일이 무엇이냐"고 하자, 첫 번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큰 공회당을 세운 것으로, 그로 인해 세간에 인색하다는 혹평을 듣던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은 것이라고 했다. 2번째는 어머니를 주무시게 한 것으로, 그로 인해 어머니의 명예를 보전하고 집안 사람들의 근심을 덜었으며, 아울러 어머니가 저절로 선행했기 때문에 뿌듯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재판관은 "전 주사를 지옥으로 보내라"고 판결하였다. 당황한 전 주사는 재판관에게 "당신은 누구냐, 또 왜 나를 지옥으로 데려가라 하느냐;고 항의했다. 재판관은 바로 여호와였다. 전 주사는 여호와에게 "나는 아무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항의했지만 여호와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첫째, 전 주사가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아버지 이름으로 기부를 했다 하나, 천당에서는 명예니 뭐니 이딴 거 하나도 안 본다. 오직 전 주사가 거짓 이름을 팔아 세상을 속인 것만을 사실로 본다. 십계명의 9번째에 거짓말을 하지 말라 했는데, 전성철의 이름을 팔아 거짓으로 기부를 했으니 십계명 중 제 9조를 어긴 것으로 지옥에 가야 한다.
둘째, 전 주사가 어머니를 고통 속에서 구원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였기에 효도한 것이라 하나, 부모를 죽이는 행위는 마음이 어떠하든 그것은 효도가 아니다. 더구나 전 주사의 노모는 아무런 고통을 못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십계명 제 5조의 내용과 살인하지 말라는 제 6조를 어긴 것으로 지옥에 가야 한다.

그러자 전 주사는 "마음은 효도하는 것이었다"고 항의했고 여호와는 "아무리 마음이 좋았다고 해서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질타했다. 전 주사는 "그건 세상 일에나 그렇지, 천국에서는 명문이나 규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고 하자 여호와는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여기도 법정이다."

3. 평가[편집]


이 작품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서술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인 전 주사의 편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 주사의 왜곡된 신념과 이중잣대를 조롱하는 효과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주인공 전 주사는 왜곡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 인물로 선행하는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정당화 된다고 믿는 인물이다. 비록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고자 했다 하나, 아버지의 이름을 팔아서 사회에 기부를 하는 것은 그 마음이 어쨌든 빼도박도 못할 사기죄이다. 또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제하고자 했다 하나, 그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살인죄다. 이 전 주사란 인물을 통해 작가는 정말로 기독교적 신념에 따라 살고 싶거든 목적과 수단이 모두 정당한 방법을 따르며 살라고 말하고 있다. 여호와의 마지막 대사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또 한편으로 작가는 전 주사 부모의 입을 빌려 하나님이란 존재까지 조롱하고 있다. 분명 이 소설의 여호와 또한 긍정적인 인물은 아니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편협한 모습, 인간 세상을 심판한다면서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오로지 십계명이란 원리원칙대로 고지식하게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여호와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개신교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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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김동인의 고향인 평양의 별명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부를 정도로 개신교 신자가 많았던 곳이었다. 광복 직후에는 개신교인의 2/3 가량이 현재 북한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종교를 무지막지하게 탄압했기에 지금과는 다르다. 한편 오늘날엔 보수 우파 성향이 강한 도시인 대구광역시일제강점기 때엔 조선의 모스크바라 부를 정도로 본래는 좌파의 성지였다.[2] 대과 시험에 급제한 이를 부르는 말이다.[3] 아버지 전성철은 일찍이 여인들의 질투를 미워해서 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4] 뿐만 아니라 "예배당 건립에 기부할 돈이 있으면 차라리 전답을 더 사겠다"고 비꼬기까지 한다.[5] 한마디로 "아들놈이나 며늘년이나 죄다 교회에 빠져 가지고 예배만 쳐올리고 있으니 집안에 애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6] 즉, 계집종이랑 관계를 해서라도 애를 낳으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