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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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보헤미아와 헝가리-크로아티아의 왕이었던 울라슬로 2세와 그의 세 번째 아내 푸아캉달의 안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아내이다. 남동생 러요시 2세가 모하치 전투에서 사망한 이후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의 상속녀가 되었다.[1] 남편이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 사망했기에 공식적으로 황후는 아니였고, 독일왕비이자 보헤미아 왕국의 왕비, 헝가리 왕국의 왕비, 크로아티아 왕국의 왕비였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1503년 7월 23일 헝가리 왕국 부더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언너는 울라슬로 2세의 늦은 외동딸이었고, 그녀의 탄생은 상속자가 될 수 있는 남자아이를 기대하였던 이들을 실망시키긴 했으나 그럼에도 기쁜 소식이었다. 어머니 푸아캉달의 안은 미숙아로 태어난 남동생 러요시 2세를 낳다가 사망하였고, 아버지인 울라슬로 2세 역시 언너가 13살일 때 사망하게 되자 이후 막시밀리안 1세의 손녀 마리아와 함께 막시밀리안 1세의 보살핌 아래 인스브루크에서 성장하였다.
2.2. 결혼[편집]
언너의 약혼에 대한 논의는 1506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약혼이 성사된 것은 1515년이었다. 빈 이중 결혼식에서 남동생인 러요시는 막시밀리안 1세의 손녀인 마리아와 약혼했고, 언너는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 중 한 명과 약혼하게 되었지만 이때까지 카를 5세와 페르디난트 1세 중 어느 쪽과 결혼하게 될 것인지는 확정되지 않았기에 막시밀리안 1세가 대리 결혼을 맡았다.[2]
이후 무효가 된 잉글랜드와의 혼사와는 별개로, 스페인에 정착할 생각이었던 카를이 언너와의 약혼을 오스트리아를 다스리게 될 남동생 페르디난트와 성사시키면서 결과적으로 페르디난트와 린츠에서 결혼했다. 언너는 유망한 상속자인 카를과 결혼하지 못하자 실망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가장 행복했던 결혼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행복했다. 부부는 서로에게 충실했으며 언너는 대부분의 여정에서 페르디난트와 동행했을 정도로 신임받았다.
언너는 라틴어, 체코어, 헝가리어,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자수와 사냥 실력 역시 뛰어났으며, 신앙심과 자선 활동, 지혜로 명망이 높았다.[3] 결혼 4년차까지 자녀가 없어 주변의 우려를 받기도 했지만, 장녀 엘리자베트를 시작으로 언너는 무려 4남 11녀에 달하는 많은 자식을 낳았다. 자녀들 또한 유아 사망율이 높았던 당시에 드물게도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아기를 지나서까지 성장했다. 또한 당시로는 이례적이게도 부부가 개인적으로 자녀를 돌보았다.
2.3. 사망[편집]
마지막 자녀인 요하나를 낳고 나서 며칠 되지 않아 산욕열로 사망하였다. 페르디난트 1세는 그녀의 죽음 이후 재혼을 거부했고, 수염을 깎지 않았으며, 애도를 표하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로 지냈다.[4] 이후 사망한 페르디난트 1세의 시신은 언너의 시신과 함께 프라하 성 비타 대성당에 묻혔다.[5]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4. 기타[편집]
- 아버지 울라슬로 2세와 할머니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를 통해 알브레히트 2세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즉 알브레히트계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손이기도 한 셈인데, 남편인 페르디난트 1세는 손위의 레오폴트계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손이므로 둘의 결혼은 알브레히트계 합스부르크 가문과 레오폴트계 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합이기도 했다. 실제로 둘의 결혼을 통해서 과거 알브레히트계 합스부르크 가문이 일시적으로 계승했었던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이 다시 합스부르크 가문의 산하로 들어왔다. 알브레히트계 합스부르크 가문과 레오폴트계 합스부르크 가문이 갈라진 것이 알브레히트 2세의 아들들 대인데, 알브레히트 1세의 아들인 알브레히트 2세를 기준으로 촌수를 따지면 12촌이다.[17]
- 프라하에 있는 언너 왕비의 여름 궁전은 남편 페르디난트 1세가 지었고, 그녀의 이름을 따 명명된 건축물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세웠다는 설도 있고, 그녀를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정작 본인은 완공되기 이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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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밀히 따지면 페르디난트 1세는 귀족 선거에 따라 각각의 왕으로 추대된 것이나, 혈연관계가 강력한 근거로 제시되었기에 상속녀라고 할 수 있다.[2] 당시 카를은 잉글랜드 왕국과 혼담이 오가고 있었고, 페르디난트는 외할아버지인 아라곤 왕국 국왕 페르난도 2세와 함께 스페인에서 양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3] 특히 체코인에게 인기가 좋았다.[4] 페르디난트 1세는 언너의 사후 언너의 사촌이자 폴란드의 상속녀인 안나 야기엘론카와 혼담이 오가기도 했지만 본인이 재혼을 거절했다.[5] 나중에는 장남 막시밀리안 2세의 시신도 함께 묻혔다.[6] 지기스문트의 딸이다.[7] 추안 2세와 수리아 1세의 딸이다.[8] 카를 5세의 장녀로 막시밀리안과는 친사촌간이다.[9] 스페인의 왕비 안나, 루돌프 2세, 프랑스의 왕비 엘리자베트, 마티아스 등[10] 귀천상혼[11] 페르디난트 1세의 외손녀다.[12] 신성 로마 제국의 황후 안나 등[13] 클레페의 앤의 남동생이다.[14] 페르디난트 1세의 외손녀다.[15] 폴란드와 스웨덴의 왕비 안나, 페르디난트 2세, 스페인의 왕비 마르가리타, 폴란드의 왕비 콘스탄챠 등[16]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비 마리 등[17] 가장 가까운 촌수로 따지면 추안 2세를 기준으로 이복 7촌인데, 언너는 추안 2세의 첫 번째 부인 수리아 1세의 후손이고 페르디난트 1세는 두 번째 부인 후아나 엔리케스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