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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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KCC 이지스가 부산광역시로 연고를 이전하면서 2023-24 시즌부터 소멸.




1. 개요
2. 상세
2.1. 2023-24 시즌
3. 여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주에서 부산으로 연고이전을 한 부산 KCC 이지스와 부산을 연고지로 했던 수원 kt 소닉붐의 라이벌전. KCC가 부산으로 연고이전을 하게 되면서, kt는 지역 팬들의 민심에 따라 KCC의 메인 라이벌로 승격되었다.[1] kt 역시 삼성과 수원 더비로 엮을 수 있지만 서로 홈 경기장이 다르고[2] 삼성이 수원시와 결별했을 당시에는 모기업 방침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3] kt와의 악감정은 크지는 않다.

2. 상세[편집]


이 더비의 당초 시작은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울산 모비스/현대모비스 피버스와 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이 원조였다.

당시 올드 팬들에게는 기아 엔터프라이즈라는 향수가 매우 짙었으며 프로농구 챔피언보다 부산의 챔피언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기아는 연고와 모기업이 더 이상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IMF로 인한 기업부도로 인해 부산의 농구 팬들은 첫번째 프로팀을 떠나보내게 된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모기업이었던 기아자동차가 IMF 부도로 인해 현대기아차 자동차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에 인수하게 된다. 현대모비스의 주요 기업 사업이 부산에서 1시간 거리인 울산이 있었다. 2000-2001 시즌 중 울산동천체육관이 개장되면서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제2의 홈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결국 울산으로 연고이전을 하게된다. 당시 기아는 2000-2001 시즌 홈 최종전에서 레전드 김유택의 은퇴식과 함께 사인볼을 부산 사직 농구팬들에게 보내면서 이별을 하게 된다. 기아는 5년간 부산 사직의 추억을 끝내고 모비스라는 이름으로 울산으로 떠나게 된다.

2년간 부산에 프로농구팀이 없었으며 그 사이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농구대표팀이 20년만에 금메달을 따게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당시 예선전과 8강전을 치렀던 부산 금정체육관과 4강전과 결승전을 치렀던 부산 사직체육관은 부산 농구 팬들의 추억을 넘어 한국농구의 성지로 알리게 되었다.

여수 연고였던 코리아텐더 맥스텐이 모기업 경영난으로 인해 2002-2003 시즌에는 코칭스테프와 선수단이 급여를 받지 못하면서도 정규리그 4위와 플레이오프 4강 기적을 낸 이후 2003-2004 시즌 부산으로 연고이전을 하면서 부산의 두번째 프로팀이 되었다. 그 시기 국내 통신업계인 KTF가 2003-2004 시즌 중 인수를 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기업을 만나면서 팀 이름도 부산 KTF 매직윙스로 부산에 두번째 프로농구팀의 탄생을 알렸다. 당시 홈은 부산 사직체육관이 아닌 부산 금정체육관이었다. 부산 KTF 매직윙스는 2004-2005 시즌과 2005-2006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부산 농구팬들의 꿈과 희망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2006-2007 시즌을 앞두고 당시 접근성과 교통성이 최악이었던 부산 금정체육관을 뒤로하고 부산 지하철역 3호선 개통과 함께 부산 사직야구장 인근인 부산 사직체육관으로 홈경기장을 변경하게 된다. 이해 KTF는 2006-2007 시즌 정규리그 3위의 돌풍을 넘어 당시 우승후보였던 LG를 4강 플레이오프에서 격침시키면서 창단 첫 KBL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상대가 부산 연고 첫번째 팀이었던 울산 모비스 피버스였으며 당초 전력열세를 딛고 3승 4패로 아쉬운 준우승과 함께 선전을 하게 된다. 그 당시 주역은 추일승 감독을 중심으로 송영진신기성이었다.

이후 2년간 성적부진이 겹치더니 모기업인 KTF는 자회사인 kt와 합병이 되었으며 팀 이름도 부산 kt 소닉붐으로 바뀌게 된다. 팀 명칭 변경과 함께 팀의 두번째 감독이었던 전창진 감독이 부임한 이후 기존의 송영진의 회춘과 조성민의 성장과 함께 3년간 호성적을 내게 된다. 특히 2010-2011 시즌 kt는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사직체육관에서 부산갈매기를 부르게 된다. 2009-2010 시즌부터 2011-2012 시즌까지 3년 연속 4강과 2013-2014 시즌 정규리그 5위였으나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모기업인 kt는 전신 KTF 시절에 없었던 연습체육관을 공교롭게도 경기수원에 건립하게 된다. 이후 형제 야구팀으로 KBO 10구단인 kt wiz를 창단했는데 그 연고도 공교롭게 경기 수원이었다. 당시 명칭은 올레 빅토리움이었으며 현재는 kt빅토리움이다. 이로인해 부산 농구 팬들은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 추가로 kt 농구단 또한 돈을 그렇게 쓰는팀이 아닌지 부산시 체육과와 함께 지속적인 대관료 문제로 다툰게 부산지역 언론에 공개되면서 부산 농구 팬들은 또 충격을 받게 된다.

전창진 감독이 물러나고 송영진이 은퇴한 2014-2015 시즌 이후 팀은 암흑기에 빠지게 되었고 그 사이 전창진 감독이 직접 키웠던 조성민이재도는 각각 2016-2017 시즌과 2017-2018 시즌 중 성적부진과 함께 트레이드를 당하게 된다. 이로인해 김영환을 중심으로 허훈양홍석과 함께 서동철 감독을 선임하면서 새 팀으로 리빌딩 자원을 모았으나 부산 사직 농구 팬들은 당시 조동현 감독보다 구단에 성토를 토해냈다.

그 시기 KCC 이지스도 수원 연고이전을 추진했는데 전주시에서 신축체육관을 이유로 남게 된다.

하지만, 연고이전 루머가 있었던 2017년 이후 4년뒤 kt 소닉붐은 끝내 부산을 떠나게 된다. 당시 조성민과 김영환이 맞트레이드 되었는데 kt의 수원이전 루머가 또 수면위에 오른 시기였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원래부터 수원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고 부산시 체육과의 비협조를 이용해 10년전 오리온 오리온스가 고양으로 이전할 때 처럼 치밀한 야반도주를 계획하더니 마침내 이루게 된다.

2021년 6월 9일, 결국 kt는 부산을 떠나 수원으로 연고이전에 성공하게 된다. kt는 원래부터 북수원전화국 근처에 있는 클럽하우스이자 연습체육관인 kt빅토리움과 KBO 10번째 야구팀인 kt wiz 야구로 인해 연고를 수원으로 바꿀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2015년과 2017년에 연고이전 루머가 있었는데 2021년 마침내 성공하게 된다. 부산시와 연습체육관 문제까지 겹치면서 경기 수원으로 연고이전을 단행하게 된다. kt 구단은 돈을 아낄려 했고 부산시 또한 kt보고 연습체육관을 지으라는 등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kt의 연고이전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4] 농구계에서도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부산 사직 농구 팬들은 큰 충격을 받은 뒤 배신감을 느끼면서 한동안 농구를 보지 않았다. 그래도, 농구를 좋아했던 부산 농구 팬은 창원과 울산 그리고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가 창단된 대구로 홈 같지 않은 농구경기를 보러 다니는 팬들이 있었다. 대신 부산에서 농구를 보아도 자기 연고의 금융사팀이자 여농팀으로[5] 부산 경남 사상 첫 여자농구팀인 부산 BNK 썸만을 응원할 정도였다.[6]

부산 지역 언론사인 KNN에서도 한동안 농구를 다루지 않았으나 이 소식은 뉴스 1순위였으며 당시 청소년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추가로 오죽했으면 부산 출신 유명 치어리더 한분 또한 그 소식에 자신의 치어리딩 영상을 SNS로 올릴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농구팬들 대다수가 kt의 연고이전은 매각이 목표였던 오리온과는 다른 경우라며 kt 구단 SNS에 성토를 보냈으며 부산 농구 팬들은 kt 구단 SNS를 끊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2년 뒤, 새로운 인연이 부산에 농구팀으로 오게 된다.

전주시와 신축체육관 건립문제와 당초 전북대 전주체육관을 홈으로 쓰던 KCC 이지스는 끝내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다. KCC 또한 20여년전부터 연고인 전주에 새 체육관 건립문제로 수원 포함 연고이전 계획을 세웠으나 KCC 팬클럽과 전주 팬들의 간곡한 부탁속에 참고 남았다. 특히 2017년에는 kt가 조성민을 트레이드할 때도 KCC는 수원 이전 후보였으나 의리를 지켰다. 하지만, 6년뒤 더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KCC 이지스는 전북대 전주체육관을 2022-2023 시즌 종료 이후 2023년 4월에 전주시에서 충격적인 요구를 받게 된다. 2024-2025 시즌 이후 전북대 신축캠퍼스 건립을 이유로 철거령이 떨어진 상황에 사용을 비워라는 요구를 받았고 그 시기 전북 현대 모터스의 홈인 전주성이라 불리우는 전주월드컵경기장 근처 전주종합체육관전주월드컵경기장 야구장 건립까지 터지면서 끝내 연고이전을 결심하게 된다. 새 체육관 또한 4월에 삽도 뜨지 않았으며 풀만 자라고 있었다. 전주시 또한 농구보다 야구를 우선시했는지 전주 새 야구장 건립으로 계획변경을 하게 된다. KCC 최형길 단장 또한 전주시에 유감을 표시했다.

당초 KCC는 이사회에서 KBL을 통해 수도권을 노렸으나 KBL은 연고불균형을 문제로 KCC 구단과의 설득 끝에 kt가 쓰고 버린 부산 사직체육관을 홈으로 연고이전을 단행하게 된다. 부산시 또한 kt 소닉붐의 야반도주 이후 KBL팀 재유치까지 나섰다. 고양 캐롯 점퍼스의 자금난을 틈타 연고유치를 했으나 모기업인 데이원스포츠가 소노인터내셔널에 매각되면서 모기업 호텔로 인해 고양에 잔류하면서 무산이 되었다.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로 팀 이름을 유치하게 된다.

부산시는 캐롯(데이원)을 놓쳤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2년만에 닭 쫓던 개에서 다시 떡을 놓치지 않았다. 전주시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KCC 이지스를 마침내 연고이전에 성공하면서 부산 프로농구의 부활과 흥행을 꿈꾸게 된다. kt 구단이 구단 SNS만 아니라 수원 이전 할때 최진광을 제외한 선수, 구단, 프런트 그 누구도 부산 팬들에게 미안함을 보이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KCC 구단은 전주 팬들의 성원에 죄송함을 밝히면서 부산에서의 성공을 다짐했다.

KCC 이지스와는 관련이 없지만 kt 출신인 조성민이재도는 상처받은 부산 농구 팬들의 안부까지 물어보기도 했다. 조선의 슈터라 불렸던 조성민은 부산 사직 농구 팬들에게 그 충격적인 소식으로 인해 안부까지 물어보았고 이재도 또한 연고이전 이후 KGC 인삼공사를 떠나 LG 세이커스로 이적하면서 상처받은 부산 사직 농구 팬들을 창원으로 부를려고 했다.

KCC 이지스는 전주에서 부산 입성과 함께 BNK 썸과의 협력강화에도 나서게 된다. 당초 유니폼 하단 스폰서에 모기업 광고 대신 BNK 썸의 메인스폰서이기도 한 BNK금융그룹을 하단 스폰서에 새기게 된다. kt 소닉붐이 BNK 썸과 협력이 없었는데 대조적인 모습까지 나오게 된다. kt 소닉붐은 수원 이전 이후 겨우 형제야구로 메우는 등 스폰서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치어리더도 부산 kt 소닉붐 치어리더 출신들이 대거 부산 KCC 이지스에 복귀하면서 새로운 흥행열풍을 부르고 있다. 추가로 kt의 전임 감독이었던 전창진 감독과 허재 전 감독의 장남인 허웅 선수도 새로 오게 된다.


2.1. 2023-24 시즌[편집]


2023년 10월 14일 KCC의 옛 제2홈구장이었던 군산월명체육관에서 KBL 컵대회 4강전을 통해서 첫 대결을 펼쳤다. 경기 결과는 KCC가 101-91로 승리했다.

이 여세를 몰아 KCC는 2023년 10월 22일 첫 부산 입성 경기에서 kt 시절과 다르게 유료관중 8700여명이 입장하며 4년전 kt가 한시즌 최다로 기록했던 농구영신의 7800여명을 훨씬 앞지르며 부산의 새 주인이 될 준비를 예고했다.

정규시즌에서는 2023년 11월 30일, kt가 부산에서 원정경기를 하게 된 것이 확정이 되자 부산의 농구 팬들은 11월 30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날 경기는 생각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교롭게도 허웅의 동생인 허훈은 상무에서 전역복귀 이후 부산 사직에서 첫 원정팀으로 방문하게 되며 또 다시 허가네 형제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운명의 11월 30일, 이날 펼쳐진 첫 경기는 kt의 외국인인 패리스 배스의 대활약으로 kt가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수원에는 연말인 12월 30일에 첫 게임이며 이틀 뒤 신년인 1월 1일, 그리고 3월 7일에 경기를 치르게 된다. KCC의 kt전 홈은 3월 2일과 17일 두 경기가 남아있다. 특히 KCC는 전국구 인기구단으로 인해 kt가 받는 압박감은 수원 홈에서도 더할 전망이다.

예매열기 또한 수원은 흥행이 비수도권에서 울산과 대구만큼 어려운 연고인데 허가네 매치만 아니라 부산 매치라는 성격까지 더해지며 KCC 전 연고였던 전주 농구 팬들까지 가세했는지 예매율도 평소보다 높다. 수원칠보체육관의 매진이 3300여석인데 순식간에 예매매진으로 농구영신의 성격까지 더해지고 있다.

3. 여담[편집]


  • KCC가 부산으로 연고 이전을 하게 되면서, 코삼부자라 불리우는 허부자 3명이 부산에서 홈팀으로서 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허재의 경우,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선수로 2 시즌을 부산 사직에서 활약했다. 허훈의 경우, kt가 수원으로 연고 이전을 하기 전 부산에서 4시즌 동안 뛰었다. 그리고, 허웅이 KCC 소속으로 전주에서 1년을 뛴 이후 공교롭게도 부친과 차남이 활약했던 부산 사직에서 뛰게 된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다.[7]
  • 전창진 감독 더비로도 유명하다. 전창진 감독은 kt 소닉붐과 KCC 이지스 감독으로 모두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홈으로 경기를 치르게 된다. 전현 연고 더비 사상 처음으로 감독으로의 더비도 성사되었다.
  • 송영진 더비로도 추가된다. 송영진은 선수 겸 주장으로 06-07 시즌 파이널과 10-11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다. 당시 부산 사직에서 추억이 많았다. 그러나, 팀의 연고이전 이전과 이후의 수석코치와 수원 이전 이후 첫 감독이 된 얄궂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 부산 출신 치어리더들의 더비로도 이야기거리가 된다. 김연정 치어리더만 해도 두 팀 사이다. 09-10 시즌 부산 kt 소닉붐의 치어리더로 활약하면서 10-11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함께하면서 중간에 창원 LG 세이커스를 거쳤으나 6년뒤 복귀하면서 부산 kt 응원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20-21 시즌 이후 kt의 연고이전 충격속에 2년간의 공백이 있었다. 2년뒤 전주 KCC 이지스가 부산으로 연고이전을 하면서 복귀하게 되며 함께했던 대다수 멤버들 모두 복귀하게 된다. 추가로 kt는 아니었지만 김연정 치어리더와 함께 창원 LG 세이커스 치어리더 출신으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서 우승을 했던 김수현 치어리더도 KCC 이지스로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kt의 연고이전 충격 이후 2년뒤 전주 연고였던 KCC 이지스가 부산에 새로 이전하면서 농구판 부산 더비를 치르게 된다. 여기에 포함된 게 서울 삼성 썬더스의 치어리더였으나 형제 야구인 kt wiz 야구와 함께 응원하면서 수원 연고이전 이후 수원 kt 소닉붐의 새 치어리더가 된 부산 출신인 김진아 치어리더가 해당된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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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하면 현대모비스도 연관성이 있지만,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역사를 부산의 젊은 농구팬들은 이를 대부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kt의 경우 연고이전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기억하는 젊은 팬들은 kt를 정말 싫어한다. 올드 팬들의 경우 현대모비스와 kt 둘 다 싫어하는 편이다.[2] 삼성의 수원 연고 시절에는 지금은 배구장으로 쓰이는 수원체육관을 사용했고, kt는 현재 서수원칠보체육관을 사용중이다.[3] 삼성그룹 측에서 한 지역에 한 구단만 두기로 하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만 남겨두고 삼성 썬더스가 서울로 옮겼다.[4] 2009 시즌 직전 kt빅토리움을 부산 외곽에다 지었어도 됐던 걸 굳이 수원에다가 지었다. 이는, 이후 연고이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부산시의 안일한 행정도 있었지만, 사실상 쌍방과실이다.[5] WKBL의 경우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를 제외하면 국내 시중 4대 은행(신한 & 우리 & KB & 하나)이 여농구팀인 여자농구단을 운영했고 BNK의 경우 해당연고은행사다. 모기업인 BNK금융지주는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 지역연고 은행사다. 연고가 각각 부산과 창원(마산)에 본점이 있다.[6] KCC의 연고이전 과정은 이에 비하면 양호하다. KCC의 이전 과정은 전주시로부터 새 체육관 약속을 계속 받았다가 15년이 지나도록 짓지 않아 참다 못한 KCC가 연고이전을 결정한 것이다. 자세한 이유는 부산 KCC 이지스/사건사고 및 논란에서 부산광역시 연고 이전 참고.[7] 실제로 허웅은 소속팀 KCC가 부산으로 이전했을 때 아버지와 동생이 부산 연고 팀에서 뛰었던 것을 언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