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츠케이 베르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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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털런 비츠케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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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털런 비츠케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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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K리그1 로고.svg







헝가리의 축구감독


파일:20100910bicskei64.jpg

이름
비츠케이 베르털런
Bicskei Bertalan
출생
1944년 9월 17일 (79세)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망
2011년 7월 17일 (향년 67세)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적
[[헝가리|

헝가리
display: none; display: 헝가리"
행정구
]]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버스프레미 헐라다시 페퇴피 (1962~1964)
부더페슈티 혼베드 SE (1964~1974)
MTK 헝가리아 FC (1974~1976)
감독
부더페슈티 혼베드 SE (1987~1988)
헝가리 대표틴 (1989)
대우 로얄즈 (1991)
FC 루체른 (1993)
알마스리 클럽 (1994)
MTK 헝가리아 FC (1995)
알 라에드 FC (1995~1996)
키슈페슈트혼베드 FC (1996~1997)
헝가리 대표팀 (1998~2001)
센장 (2002)
비데오톤 FC 페헤르바르 (2003)
알마스리 클럽 (2003~2004)
말레이시아 대표팀 (2004~2005)
우이페슈트 FC (2006)
알마스리 클럽 (2009)
라이베리아 대표팀 (2010~2011)
국가대표
파일: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경기 (헝가리 / 1973)
1. 개요
2. 축구인 경력
2.1. 선수 경력
2.2. 지도자 경력
3. 사망
4. 여담



1. 개요[편집]


헝가리축구감독.

K리그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외국인 감독이다.


2. 축구인 경력[편집]



2.1. 선수 경력[편집]


청소년시절 헝가리 MTK팀에서 골키퍼로 활약했고 청소년대표로 15차례, 국가대표로 7차례 국제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커리어에서 골을 넣은 적도 있다.


2.2.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1977년부터 1982년까지 그는 MTK 부다페스트의 청소년 프로그램의 코칭 디렉터로 일했고, 1982년까지 1986년까지 헝가리 청소년 대표팀 지도자를 맡았다.

이 당시 헝가리 U-18 대표팀을 이끌고 1984년 러시아에서 열린 유럽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1987년에 부더페슈티 혼베드 SE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2시즌 만에 우승을 이끌었다.

1989년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으며, 대통령배국제축구대회에 헝가리 대표팀을 이끌고 내한한 바 있다.

하지만 헝가리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91년 프랑크 엥겔의 후임으로 월봉 5천 달러 조건으로 대우 로얄즈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1]

유럽식 조직력과 한국특유의 기동력을 살리는 훈련에 중점을 두었으며, 1991시즌 17승 18무 5패를 기록하며 2위 울산과 승점 10 차이로 여유 있게 대우의 K리그 3번째 우승을 안겼고, 시즌 중 세운 리그 21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대단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2]

이듬해 K리그 감독상 까지 수상하면서, 외국인 감독으로는 최초로 K리그 우승과 감독상을 거머쥐었지만 수비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며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재계약에 실패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7월 4년 계약으로 라이베리아 국가대표 감독직을 맡게 되었지만 2011년 2월 라이베리아에서 독극물 중독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 사망[편집]


2011년 7월 16일, 오랜 병 투병 끝에 부다페스트에서 향년 67세에 사망했다.

4. 여담[편집]


  • 대우 감독 재직 당시 김치찌개와 생선 매운탕 등 한국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같은 인터뷰에서 한국축구의 수준이 유럽 중위권 국가들과 비슷하다며 한국 축구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 타계 후 비츠케이의 아들이 부산 아이파크 구단에 과거 대우 로얄즈 시절 비츠케이 감독의 영상을 부탁하기도 하였다.#[3]

[1] 원래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8강에 올려놓은 요제프 벵글로시 감독을 선임하려고 하였으나 높아진 몸값으로 데려오지 못해 비츠케이가 선임된 것이라고 한다.[2] 1997시즌 전남 드래곤즈가 타이기록은 세웠다.[3] 비츠케이 감독은 한국에 머물 때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와서 부산에서 살았으며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을 포함한 가족 모두 한국 생활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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