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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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만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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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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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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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8대, 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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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FC
5대





이차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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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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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1997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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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 · 1972







대한민국의 前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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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차만
李次滿 | Lee Cha-Man
출생
1950년 9월 30일 (73세)
경상남도 김해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1cm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포항제철 축구단(1974~1980)
육군 축구단(1976~1978 / 군 복무)
감독
고려대학교(1980~1983)
대우 로얄즈(1987~1989)
대한민국 대표팀(1990)
부산 대우 로얄즈(1992)
부산 대우 로얄즈(1996~1999)
부경고등학교(2004~2008)
경남 FC(2014)
코치
대우 로얄즈(1983~1986)
대한민국 대표팀(1988~1989)
국가대표
50경기 6골(대한민국 / 1971~1975)

1. 개요
2.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및 지도자.


2. 경력[편집]


포항제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30대 초반이던 1980년, 고려대학교의 코치로 취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 출범한 슈퍼리그 클럽 대우 로얄즈에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1987시즌을 앞두고 장운수 총감독이 사임하며 감독 자리에 오른다. 그가 37세일 때로,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그는 감독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1989년에는 3위를 기록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대우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국가 대표팀 코치 겸임을 거쳐 1990 FIFA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던 그는 1992년 잠시 대우로 돌아왔다가 사임했고, 1997년 세번째로 대우 감독을 맡아 1997년 K리그 우승과 아디다스컵 및 프로스펙스컵 석권으로 트레블을 달성하였고, 1998년 필립모리스컵 우승, 1999년 리그 준우승과 대한화재컵 준우승을 거두었다.

1999 시즌을 끝으로 사임한 이차만은 2004년 부경고등학교의 감독으로 부임, 윤빛가람 등을 키워내며 부경고를 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05년 1월 18일에는 정규풍, 김주성 등과 대한축구협회 50대 집행부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편, 2008년 심판 판정에 대한 극심한 항의로 2009년 1월에 3년의 자격정지를 당했고, 같은 해 4월 사면되었다.

야인 생활을 하던 그는 2014년을 앞두고 고향팀인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즌 개막전이 성남 FC와의 개막전이었고 성남 FC 감독의 박종환 감독이 선임 되어 이 때 할배 더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경남의 이차만 선임은 현장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공백[1]과 현대 축구의 흐름과 지도방식에 둔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명성과 화제성과 높으신 분들과의 코드[2]에만 기댄 무리한 시도였으며, 이차만 부임 후 경남은 오히려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였고, 결국 2014년 8월에 자진사퇴하였다. 그리고 그 해 경남은 결국 K리그 챌린지강등 당하고 만다.

하지만 애초에 전반기 동안은 이흥실 수석 코치가, 후반기부터는 브란코 바비치 기술고문이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맡으면서 이차만은 사실상 바지감독이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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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석에서 포항 스틸러스포철, FC 서울LG라고 호명했다고 한다(...).[2] 홍준표 당시 경상남도지사안종복 당시 사장은 이차만의 고려대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