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안/러시아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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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2011-12 시즌
3. 2012-13 시즌
4. 2013-14 시즌
5. 2014-15 시즌
6. 2015-16 시즌
7. 2016-17 시즌
8. 2017-18 시즌
9. 2018-19 시즌
10. 2019-20 시즌
10.1. 2019 콜롬나 러시아 스케이팅 유니온 러시안 컵
10.2. 월드컵 시리즈
11. 은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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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빅토르 안으로 귀화한 이후의 러시아 선수 시절을 서술한다.

빅토르 안은 한국 국가대표로 마지막 대표선발전에서 종합 5위를 하였으나 500m 1위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의 첫 반년 간의 생활에서는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2012년 12월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 (이영미의 헤럴드 칼럼)

처음에는 체력보다는 마음을 치료하는 게 급선무였다.

훈련량을 적게 가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넌 이미 많은 걸 해봤고 해왔던 길을 다시 가기 때문에 그 길을 처음 가는 선수보다 더 나을 것' 이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대화를 나누면서 현수한테 상처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러시아 귀화 후 러시아대표팀을 이끌던 당시 한국인 감독, 코치들과 묘한 신경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같은 한국인들이고 빙상계 사제지간이라 러시아대표팀에 한국인 지도자가 있는 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러시아연맹에서 그들을 퇴출시킨 후에도 현수는 한동안 그 상처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2014년 2월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 (이영미의 헤럴드 칼럼)

현수는 러시아로 가기 전에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00미터 1등을 차지했었다. 즉 몸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러시아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거라 믿었지만, 6개월 만에 만난 현수는 최악의 슬럼프 상태에 빠져 있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그때 서로 붙들고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한국인 감독이 있을 때, 현수는 '조교' 로 분해 열심히 앞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선수들을 이끌었다고 하더라. 나 같았으면 '못하겠다'고 반항했을 지도 모른다....다른 사람도 아닌 한국인 선생님이었고, 시키는 건 다하겠다는 낮은 자세로 임했기 때문에 불평불만 없이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자신의 무릎이 망가지는 것도 방치한 채 말이다.


당시 러시아 대표팀은 한국인 코치진이 맡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들과 마찰이 심했다. 한국인 코치진들이 더 마이너스 작용을 했던 것이다. 2011년 10월 러시아 빙상연맹은 안현수를 남겨놓고 장권옥(지미장) 감독과 최광복 코치 등 한국인 코치들과 스태프들를 해고한다.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인 코치들은 안현수에게 선수들을 이끄는 조교 역할과 계속되는 고된 훈련을 시켰다. 이것은 안현수에게 회복되고 있던 무릎을 최악의 상태까지 망가뜨렸고, 한국에서 떠났을 때보다 더 악화되었다. 체중은 60kg까지 떨어졌고 초등학생 수준의 몸상태였다. 한국 코칭 스태프들이 모두 해고된 이후에도 안현수는 한동안 상처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심리적인 상처가 너무 컸던 것이었다.

체력은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트랙 한두 바퀴 도는 것도 힘들 정도였으며 심지어 여자 선수들까지도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새로운 경쟁자가 온다는 불안감은 둘째치고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길 잔뜩 기대했던 러시아 선수들도 빅토르 안의 상태를 보고 처음엔 실망하는 눈초리였다고 한다. 처음으로 러시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을 때[1] 성적은 꼴찌였다.

이런 안현수를 러시아에 와서 보게된 우나리는 황익환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현수가 고장났다" 황 감독은 바로 러시아로 달려가 재활과 훈련을 도왔다. 러시아빙상연맹은 안현수의 심리적인 안정을 돕기 위해 황 감독의 합류를 적극 반겼고, 그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면서 안현수의 부활을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러시아 빙상연맹의 꾸준한 지원으로 점차 체력과 속도를 되찾아 갔으며 국제 무대에 다시 서게 될 수 있는 기량을 되찾아갔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으며 러시아 적응을 잘 해나갔다. 빅토르 안은 만약 한국의 빙상연맹이 이 정도만 해줬어도 한국 선수들이 훨씬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을 것이고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기도 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때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따자, 마침 여자대표팀 코치였던 최광복과 러시아에서의 안현수와의 관계와 그가 괴롭혔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2004년 여자 쇼트트랙 구타 사건'이 10년만에 재조명 되면서, 당시 MBC 해설을 맡고 있던 김소희 해설위원도 끌려나와 비난을 받았다.[2]

단, 당시 러시아 한국 코치들이 의도적으로 빅토르 안의 상태를 나쁘게 만들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3]

저는 2002년부터 안현수를 알고 있었고 어떤 코치에게 물어봐도 저와 같은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장 높은 평가를 내릴 것입니다. 그가 러시아 팀과 보낸 첫 달에 이미 우리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그의 기술, 그의 태도를 모방하려고합니다.

나는 안현수를 러시아 팀의 진정한 "롤 모델"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2011년 8월 장권옥(지미장)의 러시아 매체 인터뷰


러시아가 당시 한국인 코치들을 해고한 이유는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한국 코치들의 강압적 훈련으로 능력있는 선수 안현수 등 선수들을 잃을 수 있는 위험.
2.러시아 지도부와의 갈등 조장 = 파벌 조장[4]
3.마지막으로 한국 전문가들을 통해 스케이트 장비 기법과 쇼트트랙 훈련 스킬을 원했으나 그들은 그것을 공유하지 않았던점.

러시아 로서는 공들여 데려온 안현수는 더 망가졌고, 한국 코치진들에게 훈련 스킬과 장비 기법을 바랬으나 그렇지 않았고 갈등조장 까지 하는것에 해고를 한것이었다. 이와 관련한 2014년 한국 언론 보도는 다음과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2011년 초 러시아로 넘어온 안현수가 한국식 강훈련을 다시 받는 것을 꺼린 탓에 코치진이 물갈이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 2014년 2월 문화일보


이때문에 2012년 당시 김동성이 러시아는 안현수의 기술을 뽑아먹을 뿐이며, 올림픽에 내보내지 않을수도 있다는 발언은 안현수가 러시아에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질수도 있다는 기우에서 나온 발언일 수도 있다.

어쨋든 러시아는 모두 다 내보내도 빅토르 안만 있으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원하는 훈련기법과 장비기법은 이후 빅토르 안에 의해 실제로 모두 전수된듯 하다.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 세묜 옐리스트라토프의 기량상승, 콘스탄틴 이블리예프 등이 등장한 것을 보면 그것은 정확히 적중했다. 빅토르 안이 사실상 선수 겸 코치이자 러시아 팀에게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한 것은 팀메이트였던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 루슬란 자카로프,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러시아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이자, 국회의원인 스베틀라나 추로바, 한국 코칭 스태프들이 해고된 이후 러시아 감독으로 부임한 Sebastien Cros 등 여러 러시아 체육계 관계자들 말들에서 확인된다.

러시아에서 1년 6개월을 보내며 현수에 대해 나쁜 말, 싫은 소리하는 선수들을 본 적이 없다. 모두가 현수를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같은 선수임에도 현수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 찍기를 청한다. 만약 현수가 불평 불만을 늘어놓고, 잘난 척 하면서 불성실하게 생활했다면 그들도 현수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의 말 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러시아가 안현수의 기술만 빼먹고 버릴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 물론 현수의 기술을 알려준 부분이 있지만, 그 기술들이 특별히 비밀스런, 현수만 하는 기술이 아니다. 현수가 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보일 뿐이다.

- 2014년 2월 황익환 감독의 인터뷰 (이영미의 헤럴드 칼럼)


빅토르 안은 실제로 ' 선수 겸 코치' 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자신의 전술을 그들과 공유했습니다. 우리 쇼트트랙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 2018년 9월 스베틀라나 추로바 Svetlana Zhurova 러시아 국영매체 리아 노보스티



2. 2011-12 시즌[편집]


2012 러시아선수권에서 500m 14위, 1000m 11위, 1500m 9위에 그쳤으나 그 후 3월 22일에 열린 2012 러시아선수권 남자 1000m와 3000m에서 우승, 1500m에서 준우승하였다. 오랫동안 부상과 재활, 스케이트, 국적 문제 등으로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었으나 본인이 바란 대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이 이루어지자 자기 기량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라는 평가이다.


3. 2012-13 시즌[편집]



3.1. 월드컵 시리즈[편집]


  • 1차
1000m 결승에서 1분 24초 519를 기록하며 마이클 길데이, 곽윤기, 노진규를 차례로 제치고 우승했다. 5000m 계주 결승에서는 두 번째 주자, 즉 마지막 주자로 나섰는데 동료들의 약간의 실수로 팀은 후반까지 맨 뒤에서 레이스를 해야 했으나[5] 마지막 터치 과정에서 중국 선수를 앞질러 반 바퀴 정도나 차이가 났던 한국(곽윤기)과의 거리를 반이나 줄이기도 했다. 곽윤기를 맹추격하는 모습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계주 결승 때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 2차
메달을 한 개도 따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쳤다.

  • 3차
1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500m에서는 준결승까지는 승승장구했으나 결승에선 역시 나이 때문인지 체력의 한계가 보였다. 더군다나 이 종목에선 노진규라는 체력 괴물이 버티고 있어 1위를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참고로 노진규는 월드컵에서 1500m 종목만 11연승 중이었다.

  • 4차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신다운이 마지막 코너에서 빅토르 안을 추월해 역전승을 거두는가 했더니 두 바퀴 남기고 코너를 돌 때 러시아 선수와의 충돌 때문에 실격을 줬다.[6] 빅토르 안 이외에 러시아 선수들이 2명이나 올라왔고 캐나다 선수들도 2명이 올라왔는데 저 4명의 선수들이 중간에서 뭉쳐서 레이스가 진행되는 바람에 신다운과 노진규가 앞으로 나갈 타이밍을 빨리 잡지 못했다. 빅토르 안은 초반부터 선두를 지키며 레이스를 펼쳤는데 후반에 가서는 역시나 체력이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지막에 신다운에게 추월을 허용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1500m에서 1위를 한 건 본인에겐 굉장히 좋은 일이었다. 본인도 신다운이 실격당할 거라는 걸 전혀 눈치 못 챘는지 순위가 결정되고 나서 굉장히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000m에선 컨디션이 좀 안 좋았는지 1000m 준결승에선 결승 진입권 밖에서 거의 포기하다시피 레이스를 했는데 다른 선수들의 실책으로 그야말로 운으로 결승에 올라갔고 결승에서는 곽윤기에게 1위를 내주고 은메달을 딴다.

  • 5차
1500m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대활약에 밀려 5위에 머물렀고 1000m에서는 준준결승에서 곽윤기와 같이 실격을 당했다. 하지만 5000m 계주 결승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대역전극을 펼쳐내 러시아에게 첫 계주 금메달을 안겼다.


3.2. 2013 유럽선수권[편집]


1500m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500m에서 동메달, 1000m에서 은메달을 딴 후 5000m 계주에서는 마지막 주자로 활약하며 역전승을 만들어내 금메달을 따냈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기량 회복을 하는 모습을 눈에 띄게 보여주고 있다. 신체 능력은 당연히 20대 초반 때보다 현저히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7] 기술이 워낙 탄탄하고 오랜 세계 무대 경험에서 얻은 노련함 덕분에 아직까지도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선수들과도 경쟁하는 것이다. 역시 레전드는 레전드.

3.3. 2013 세계선수권[편집]


500m와 계주[8]에서 은메달을 따내 마크 가뇽의 메달 수 기록을 넘게되어 남자부 쇼트트랙 역사상 메달을 가장 많이 따낸 남자 쇼트트랙 선수가 되었다.[9]


4. 2013-14 시즌[편집]



4.1. 월드컵 시리즈[편집]


  • 1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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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일, 안현수 선수는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을 걸고서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빙판에 섰다. 경기를 하루 앞둔 2일, 한국 대표팀 코치 윤재명은 빅토르 안을 일컬어 "안현수도 이제 잘 타는 외국 선수에 불과할 뿐" 이라는 코멘트로 갖은 공분을 샀다. 본경기에서는 1500m와 500m 예선 경기에서 8강에 진출했고, 1000m 예선에서 그 사건은 일어났다. 임페딩 반칙은 고의로 상대방을 넘어뜨리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한 반칙으로 빅토르 안은 서울시청팀 소속 한국 선수 신다운에게 밀쳐져 넘어지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1분 25초 264로 조 1위를 달성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 2차
1500m 결승에서 동메달, 500m 금메달을 따냈다. 기술은 거의 전성기 수준이나 나이로 인해 약해진 순발력과 힘 그리고 들쑥날쑥한 체력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10]

  • 3차
3차 월드컵에서는 1500m에서는 준결승에 그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으나 반대로 1000m와 500m에선 은메달을 따내며 단거리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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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 월드컵이 끝난 후 500m 랭킹 1위, 1000m 랭킹 2위, 1500m 랭킹 3위를 기록해 세계 종합랭킹 2위. 1위는 요즘 물 오를 대로 오른 샤를 아믈랭이였다.


4.2. 2014 유럽선수권[편집]


500m 결승에서 40초 644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20일에 열린 1000m, 3000m에서 우승하고 이어서 열린 5000m 계주에서도 역전하면서 우승, 유럽선수권 4관왕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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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5000m 계주에서 빅토르 안에게 역전패 당한 싱키 크네흐트는 경기 종료 후 빅토르 안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결국 이에 대한 처벌로 크네흐트는 이번 대회 500m에서 은메달을 따면서 거둔 개인 종합 3위 기록은 삭제됐으며 네덜란드 팀 5000m 계주 은메달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크네흐트는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나중에 빅토르 안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시 한국인과 엮였다.

푸틴이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TV로 저 장면을 보고는 바로 주최 측에 전화로 강하게 항의했다. 사실 러시아는 원래부터 스포츠 산업에 관심이 지대한 국가이며 빅토르 안 선수에게도 개인 사택과 수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공적인 자리에서 모욕을 퍼부은 셈이니 말그대로 국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항의 차원에서 끝난게 용하다고 봐도 될 정도다.


4.3. 2014 소치 동계올림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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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m 결승전에서 8년 만에 동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한 올림픽 복귀에 성공했다. 이 메달이 러시아가 쇼트트랙에서 딴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라고 한다.[11] 대한민국 대표팀은 해당 결승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

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과의 경쟁 구도 형성이 불편하게 비쳐진 것에 대해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현재 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즐겁게 올림픽에 출전할 것" 이라고 했으며 "선수들이 경기에서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한국 선수들과 불편한 점도 없는데 언론에서 괜히 경쟁 구도를 형성하여 양측을 불편하게 한다" 며 일침을 가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1500m 경기가 끝난 후 다음 날 벌어진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결선에서 우리나라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과 함께 한국 여자 선수단을 응원했다.

메달을 획득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블라디미르 푸틴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축하 전문이 있었다.[12] 대통령총리의 축하가 바로 나온 것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도 국방부 발표를 통해 자랑스런 러시아인이라고 축하하는 등, 러시아에서는 레전드로서의 대우를 톡톡히 해주고 있음을 보여준 일화다. 빅토르 안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영원히 러시아에서 살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러시아 측의 보도다. 2014년 2월 24일 한국 JTBC 뉴스 9에서 빅토르 안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인터뷰를 했을 때 올림픽 이후의 계획을 물어봤다. 그래서 선수로서 길을 열어두고 있어 앞으로 러시아에서 선수 생활을 할 계획이라는 의도로 러시아에서 길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와전돼 마치 러시아에서 평생 살 것이라는 기사가 났다" 고 해명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교육부·문화체육관광부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 '안현수 선수가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서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와 줄세우기, 심판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고 지적했다.[13]

그리고 2014년 2월 13일에 열린 5000m 계주 예선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서 1위로 달리던 중국을 따돌리고 여유롭게 러시아를 결승에 진출시켰다. 원래 러시아는 3위로 달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차례에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러시아를 2위로 끌어올린 뒤에 다시 마지막 주자로 나서서 1위인 중국을 제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 계주에서 러시아 팀은 올림픽 신기록(6분 42.1초)도 취득했다.

경기를 중계하던 SBS 캐스터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라고 평가했으며 해설위원은 중국 선수가 안현수에게 일부러 자리를 내주는 느낌이 들 정도라는 말로 극찬하였다. 이때 중국 선수의 바깥쪽에서 타다가 인코스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면서 중국 선수를 제치는 모습은 해설자의 칭찬이 과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이호석이 넘어지는 바람에 실격해서 12년 만에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러시아는 빅토르 안이 현역에서 은퇴하면 코치로서 극진한 대우를 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사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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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 빙판에 엎드려 입을 맞추는 모습
은메달리스트인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와 함께 환호하는 모습
1000m 결승 중반부터 선두를 지키며 블라디미르와 함께 인코스는 물론 아웃코스에 틈을 전혀 내주지 않았다. 결국 빅토르 안은 러시아에게 사상 첫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겨주었다.[14] 덤으로 이 경기에서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가 은메달도 추가하였다. 참고로 동메달은 다름 아닌 싱키 크네흐트였다.

게다가 이 날이 화제의 세계에서 단 10개 뿐인 운석 금메달을 수여하는 날[15]이었기 때문에 빅토르 안 본인에게는 단순한 금메달 이상의 대박이며 그동안 한국에서 파벌 문제로 받았던 설움을 한 번에 보상 받을 수준의 메달이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의 팬 사이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빅토르 안이 금메달을 딴 순간을 페이스북 커버 사진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결승에 진출한 신다운은 결승전에서 싱키 크네흐트를 미는 반칙으로 실격되었다. 또한 이 금메달로 빅토르 안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국적으로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선수라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경기 후 SBS배기완 아나운서는 "빅토르 안, 안현수 선수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라는 코멘트를 했다. 곱씹어 보면 많은 뜻이 숨은 표현이다. 배 아나운서로서는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며 꺼낸 축하일지도 모른다.

한편 빅토르 안의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는 마비된 줄 알았는데 도메인만 남겨두고 내용을 싹 지워버린 것으로 크롬이나 IE의 개발자 로그를 살펴보면 완전히 텅 비었다고 나왔다. 게다가 2014년 2월 21일 KBS에서 방영한 취재파일 프로그램이 인터넷에 접속자가 폭주해서 서버가 다운되었다. 다만 이는 애꿎은 마녀사냥이었을 뿐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500m 1차 예선에서도 이번 대회 내내 보여준 명품 인코스 추월 기술을 선보이며 1위로 준준결승에 진출했다. 같은 조에는 한국의 이한빈이 속해 있는데 빅토르 안, 올리비에 쟝과 같은 조에 모여있는 이한빈으로서는 힘겨운 준준결승전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3위로 탈락하였다. 한편 같은 날 벌어진 1차 예선에서 샤를 아믈랭이 지난 1000m 경기에 이어서 또 한 번 빙판에 걸려 넘어지며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였다. 500m 우승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아믈랭이 탈락하며 빅토르 안은 어렵지 않게 5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결승전에서 해설자들조차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정도로 늦은 스타트를 보였음에도 마지막에 가서는 앞의 세 주자 모두를 추월하며 1위로 골인. 스타트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쇼트트랙 500m의 통념조차 부숴버리는 경지의 스케이팅을 보였다.[16] 이를 통해 올림픽 쇼트트랙 전 종목(500m, 1000m, 1500m, 5000m 계주) 제패라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사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중장거리가 주 종목이었으나 복귀 후 체력적인 문제로 오히려 단거리와 중거리를 타겟으로 잡은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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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자랑이 된 빅토르 안[17]
5000m 계주에서도 러시아 팀을 우승시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이어 8년 만에 올림픽 3관왕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시작과 동시에 중국, 네덜란드가 첫 ¼ 바퀴 이내에서 넘어져[18] 경기가 러시아vs미국의 2파전으로 판가름났으니 운도 따랐다고 볼 수 있을 듯. 어쨌거나 빅토르 안은 역대 쇼트트랙 선수들 중 제일 많은 금메달(6개)을 따내었고 오노의 최다 메달 기록(8개)과도 타이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다.

러시아는 빅토르 안 덕분에 금메달 9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7개로 노르웨이에 이어 2위에 랭크가 되어있으니 빅토르 안이 6위에 랭크될 러시아를 2위로 올려줘버린 것이다. 이쯤 되면 빅토르 안은 거의 러시아를 구원한 영웅이 되었다.[19] 그리고 메달 최종 집계로 러시아는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9개로 노르웨이를 제치고 금메달 수나 전체 메달 수나 모두 종합 1위에 올랐다. 이는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이후로 20년 만이다.[20] 빅토르 안은 이번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러시아 메달리스트들로 구성된 러시아 기수단으로 참여해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입장해 게양하는 의식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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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조국공헌 훈장을 받는 빅토르 안
그리고 2월 24일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의 문화, 예술, 스포츠 발전에 앞장선 사람에게 주어지는 ‘대조국공훈훈장(Орден «За заслуги перед Отечеством»)[21]' 4급을 받았다. 메달별메달, 그리고 훈장[22]까지 자신의 실력으로 획득한 것이다. 아직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조금씩 준비해 나가면서 4년 후에도 몸이 따라준다면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IOC가 러시아 도핑 파동으로 참가 불허를 내렸다. 본래는 개인 자격으로는 참가가 가능했으나. IOC의 결정에 격노한 푸틴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도 출전을 거부하게 되면서. 안현수의 올림픽 메달 행진은 멈추게 될 뻔했으나,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는 것이 허락되어 빅토르 안의 출전은 성사될 것으로 보여졌다.



4.4. 2014 세계선수권[편집]


대회 2일차까지는 1500m와 500m에서 4위를 기록하며 8점을 얻는데 그쳐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승 경쟁에서 사실상 멀어졌다고 보고 있었다. 샤를 아믈랭우다징이 각각 1500m와 500m에서 우승하며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미국의 J.R. 셀스키는 시즌 내내 이어졌던 부진을 서서히 털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세 선수 모두 남은 종목인 1000m를 잘 하는 선수들이기도 했다. 반면 빅토르 안은 세계선수권 대회의 빡빡한 일정과 기나긴 시즌을 치르면서 온 피로감이 레이스에서도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경기력이 올림픽 때만 못했기에 6번째 세계선수권 우승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였다.[23] 그런데 1000m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샤를 아믈랭이 준결승에서 실격을 당하면서 빅토르 안은 결승전을 수월하게 풀어나가며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아믈랭과 우다징이 각각 1500m와 500m를 우승했지만 빅토르는 전 종목에서 결선 포인트를 획득한 덕분에 그 둘보다 포인트가 앞서게 되었고 중간 합계 선두로 치고 나오게 된다.

결국 최종 순위를 결정짓게 될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이 세 명의 눈치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셀스키는 종합 3위라도 건져보기 위해 한 바퀴를 앞서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마지막 3바퀴를 남기고 한톈위우다징이 체력이 바닥이 나버렸고 결국 빅토르 안과 아믈랭이 종합 우승을 걸고 마지막 두 바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빅토르 안은 중국 선수 둘을 추월함과 동시에 아믈랭을 인코스로 추월하며 앞서나갔고 마음이 급해진 아믈랭이 속도를 계속해서 올리며 빅토르 안을 맹추격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이 노련하게 아믈랭의 추월 경로를 선점하여 차단했고 마지막 바퀴 코너에서 아믈랭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빅토르 안의 종합 우승이 확정되었다.[24]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선수권 5연속 제패를 이룬 후 무려 7년 만에 다시 되찾은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타이틀이었다.

샤를 아믈랭이 2013-14 시즌 월드컵에서 빅토르 안을 상대로 인코스 추월을 성공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자신의 최근 기량만 믿고 빅토르 안을 얕봤다는 평도 있다. 사실 아믈랭은 추월 기술이나 스케이팅 기술 자체가 정상급에 속하는 선수는 아니며 그의 그냥 평범한 인코스 추월 시도는 인코스만 잘 견제하면 빅토르 안처럼 노련한 스케이터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빅토르 안은 코너링의 귀재다. 코너를 돌면서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인코스에 붙어있을 수 있는 선수다. 마지막 코너에서도 이미 빅토르 안이 인코스의 각도를 좁혀놨기 때문에 추월을 실패하거나 충돌해 실격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25]


5. 2014-15 시즌[편집]



5.1. 월드컵 시리즈[편집]


  • 1차
10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으나 500m에서는 우다징과의 충돌로 실격되었다. 하지만 샤를 아믈랭이 부진한 가운데 빅토르 안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의 폼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빅토르 안이 대한민국 남자 선수들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거라 예상했었다.

  • 2차
개인전에서 부진을 겪고 계주에도 출전하지 못했다.후에 열릴 러시아 국대선발전과 5,6차 월드컵 그리고 2015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기 위해 체력 안배를 위해서 러시아 국가대표 감독이 빅토르 안과 다른 몇 선수들을 3차, 4차 월드컵에서 제외를 시킨다고 밝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빅토르 안에게는 좋은 결정이라 할 수 있겠다.

  • 5차 및 6차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계주조차도 참가하지 않아 2번 주자를 세묜 옐리스트라토프가 대신 맡았다.


5.2. 2015 유럽선수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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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유럽선수권에서 싱키 크네흐트와 우승을 놓고 대회내내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네덜란드 홈버프 + 싱키 크네흐트와 다른 네덜란드 선수들의 기량 향상 + 노쇠화가 빅토르 안에게 더 버거운 대회가 되는데도 한몫했다. 특히 대회우승에 가장 중요했던 1000미터 결승에서 체력적인 문제를 보이며 경기막판에는 인코스 추월시도중 속도가 잘 붙지 않자 선두로 달리던 크네흐트를 제치는데 실패하고 4위로 떨어졌다. 최종결과는 싱키 크네흐트의 두 번째 종합우승[26], 빅토르 안의 준우승이다. 물론 나이를 감안한다면 (비록 유럽선수권이지만) 준우승도 감지덕지라는 의견들도 많다. 사실 나이 30줄에 서면서 최고의 기량을 유지한다는거 자체가 상당히 힘든일이며 지난 세계선수권과 유럽선수권은 물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세운 업적은 빅토르 안의 신체적 능력보다는 그의 노련한 경기운영과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기술이 제대로 빛을 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5.3. 2015 세계선수권[편집]


디펜딩 챔피언으로써 7회 우승을 노리던 빅토르 안이었지만 다른 경쟁자들의 실력이 오른 것은 물론 유럽선수권 때보다도 노쇠화가 더 진행되어 기량과 컨디션이 더욱 더 떨어진 상태를 보였다. 현재 대부분의 쇼트트랙 팬들은 빅토르 안의 전 조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상당히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대회를 끝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올해 컨디션이 상당히 나빴고 세계선수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했다. 우선 현재 자신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신이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세계선수권 500미터 종목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27]


6. 2015-16 시즌[편집]


ISU 프로필에 따르면, 무릎 통증이 심각해져서 시즌을 쉰것으로 확인된다. 2016년 3월 한국체대인상 시상식에서 2015년 쉬는 동안 독일 등 여러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수술을 하면 선수커리어가 위험할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통증을 참고 근육을 만드는데 재활에 힘써야 겠다는 인터뷰 를 하였다.
아내 우나리 씨가 첫 아이 출산[28]을 앞두고 있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전명규 前 빙상연맹 부회장과 함께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훈련했다.[29]

이렇게 되면 월드컵 후반기에 복귀하거나 유럽선수권 혹은 세계선수권 때까지 복귀를 미룰 수도 있다. 지난 시즌에서 봤듯이 빅토르 안에게 모든 대회를 출전하는 건 체력적으로 많이 부담이 된다. 2006-07 시즌때도 월드컵은 잔부상으로 출전을 자주하지는 않았고 세계선수권 때 맞춰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세계선수권 5연패에 성공한 전적이 있다. 본인에게 세계선수권 500m 종목 금메달이 가장 우선순위인만큼 종합우승을 포기하더라도 이 종목 하나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금 우다징, 샤를 아믈랭, 드미트리 미구노프 같은 500m 강자들 이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500m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소치 올림픽 시즌 때보다도 기량이 떨어진 지금 상당한 난관이 기다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후 남은 대회에 불참하게 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2014-15 시즌부터 제대로 물 오르는 폼을 보여준 세묜 옐리스트라토프가 에이스 역할을 잘 수행했다.


7. 2016-17 시즌[편집]



7.1. 월드컵 시리즈[편집]


  • 1차
1000m와 500m(1)에 출전했는데, 1000m 예선은 중계를 해주지 않았지만 DNF로 나온걸 보면 넘어져서 경기를 끝마치지 못한걸로 보인다. 500m(1)는 준준결승에서 '부정출발'에 한번 걸리고 두번째 출발때 가장 마지막 순위로 출발을 해 다음 라운드 진출이 어려워 보였지만 앞에 선수들이 부딪히며 속도를 잃은 덕에 2위로 올라서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선 1위로 잘 출발했으나 캐나다의 신성 사뮈엘 지라르에게 1위를 내줬고, 무리하지 않고 2위로 순위를 유지해 결승진출했다. 결승에서는 사무엘 지라르, 우다징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계주에서는 두 번째 주자로 출전했으나, 3번 주자 아이라페디안이 계속해서 공간을 연달아 열어주는 실수를 했고 나중에는 러시아가 실격당하는데 공헌까지 하여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2차 월드컵은 불참했다.

  • 3차
500m 1차에 출전해 동메달을 따냈다. 결승에 우다징리우 샤오린 샨도르 같은 강적들이 올라와 쉽지 않아 보였고, 실제로 저 둘에게 뒤쳐진채 계속해서 추월을 시도하는 카자흐스탄 선수를 견제하며 3위를 지키는데 그쳤다.

  • 5차
월드컵은 계주만 출전했고 2번 주자로 뛰어 금메달을 따냈다.

  • 6차
계주만 출전해 2번 주자로 나섰지만, 반 바퀴 남은 순간 삐끗하여 네덜란드를 추월하는데 실패해 은메달을 따냈다.

7.2. 유럽 선수권[편집]


  • 500m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노쇠화로 인해 기량은 많이 떨어졌지만, 특유의 경기 운영력으로 유럽 선수권에선 메달을 계속 가져가는 듯한, 계주에선 은메달을 가져갔다.


7.3. 2017 세계선수권[편집]


1500m에서는 4위, 500m 1000m는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3000m 슈퍼파이널에선 3위로 들어와, 최종 종합 순위는 7위

계주에서는 팀을 캐리하며 막판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켜 2위로 골인했으나 팀원 세묜 옐리스트라토프의 파울이 인정되어 실격을 당했다. 만약 은메달이 인정되었다면 양양(A)와의 타이 기록을 갱신시킬 수도 있었지만 실패하였다.


8. 2017-18 시즌[편집]



8.1. 월드컵 시리즈[편집]


출전을 하고 있기는 하나 기량은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도 더 떨어진 모습이다. ISU가 라이브 스트리밍을 해주지 않는 예선전에서 탈락하는 모습도 몇번 보여주기도 하는 등 지난 올림픽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정도이다. 더군다나 러시아 대표팀 전체가 부진중이라 상황이 좋지 않다. 3차 월드컵 계주 파이널 B에서 헝가리의 마지막 주자인 리우 샤오앙을 상대로 자신의 전매특허 인코스추월을 선보이며 역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긴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훨씬 덜한 계주에서는 팀원들이 받쳐준다면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30]


8.2. 2018 유럽선수권[편집]


2018년 500m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월드컵에서의 계속되는 부진과 달리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국제 경쟁력이 있다는것을 보여준 메달이다. 그러나 당시 우다징이 넘사적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보이고 있었으며, 임효준과 황대헌의 폼이 올라와 있던 때라 평창 올림픽에 출전 했다 하더라도 결승 진출은 몰라도 개인전 메달 획득은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단 쇼트트랙 경기 특히 결승전에서는 예측불허의 일들이 자주발생된다.[31] 평창 올림픽 출전 불발로 빅토르 안이 19-20 시즌 복귀 후, 월드컵 시리즈 메달 말고 선수권에서 얻은 마지막 메달이라 할수 있겠으며,[32] IOC 홈페이지 빅토르 안 기사에는 그의 마지막 메달로 기록 하고 있기도 하다.[33] 계주에서도 은메달을 얻었다.


8.3.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불발[편집]


러시아 국가대표팀 도핑 스캔들로 인해 러시아의 출전 금지가 결정된 가운데 러시아가 개인자격으로 출전을 원하는 선수들을 막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렸다. IOC 결정 다음날인 12월 7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개인 자격의 출전은 막지 않겠다고 공언함으로써 빅토르 안을 비롯한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23일, 러시아의 조직적 도핑 실태를 폭로한 캐나다 법학자 리처드 맥라렌의 보고서에 빅토르 안의 이름이 포함된 것이 확인되어 다른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들과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작성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허용 선수 명단에 빠졌다. 시간상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통한 구제도 바랄 수 없어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해졌다.

26일, 안현수가 IOC에 결백을 호소했다는 기사가 떴다. 부당하게 도핑과 연루된 선수로 낙인찍혀 자신의 노력과 경력이 부정당하게 되었다며 억울하다는 주장이다.[34]

2018년 2월 9일, 평창 MPC 기자회견을 통해 CAS는 빅토르 안을 비롯한 러시아 선수들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제소를 아예 기각했다.

이후 빅토르 안은 2019년 2022년 인터뷰에서 자신이 도핑문제를 일으켰다면, 입상기록들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일은 평창 올림픽 출전 금지로만 끝났으나, 커리어에 계속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남겼다.

빅토르 안은 역대 최고의 선수로서 업계에서 인정 받고 소개되고 있다. 그의 커리어는 부정되고 있지 않으며, 많은 쇼트트랙 선수들은 이후로도 그를 자신의 멘토, 영웅이라 칭하였다.[35] 그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였던 선수들, 그리고 경쟁자였던 선수 들은 그를 계속 응원하거나 인정하였다. 하지만, IOC 결정에 의한 모국에서의 평창 올림픽 출전 금지도 그의 기묘하고 특이한 이력에 빅토르 안을 설명할 때마다 따라다니게 되었다.

IOC 는 4년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트위터 공식계정에서

As a six-time gold medallist, Victor An is the most decorated short track speed skater of all time!


2006년 토리노, 2014년 소치 개인 경기 영상을 편집해서 올리면서 그의 업적을 기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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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IOC 트위터 공식계정

8.4. 2018 세계선수권[편집]


1500m에서는 준결승에서 전체 6위로 들어와 결승 진출에 실패했으며, 500m 준준결승에서도 전체 4위로 들어와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계주 주자로 나왔지만 러시아는 한국, 일본에 밀려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서 결승 진출이 무산되었으며 Final B에는 불참했다. 마지막 개인 종목인 1000m 역시 준준결승에서 마무리지었으며 최종 15위를 기록했다.

올림픽 3관왕을 2번이나 이뤘던 빅토르 안이지만, 그도 갈수록 늙는 판국이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부터 기량이 갈수록 떨어져서 사실상 이번 년도 안에는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500m 예선전에선 후배인 임효준과 붙게되었는데 선두를 달리던 임효준이 넘어질 뻔하자 넘어지기 전 붙잡아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줬다.[36][37]


9. 2018-19 시즌[편집]


2018년 9월, 은퇴를 선언하고 한국에 입국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코치직 제안을 받았지만 선수로서의 생활을 원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히며 선수 복귀를 희망한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진짜 사나이 300에 출연 하는 등, 예능인으로서 활동하는것처럼 보였으나, 18-19 시즌에 모교인 한체대에서 플레잉 코치를 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들이 나온다. 빅토르 안이 후배들의 날을 관리 하면서, 같이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전명규 교수와의 재결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단, 한체대 플레잉 코치는 빅토르 안이 직접 인터뷰로 훈련을 위해 빙상장을 아예 대관을 해서 후배들과 어린 선수들과 훈련하면서, 날을 좀 관리해준게 큰 문제냐고 하면서 2019년 2월 빅토르 안의 인터뷰 (경향신문)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체대 코치였음을 부정했는데, 이 당시 전명규 교수가 조재범 사건에 휘말리고 한체대와 빙상장이 정부조사에 들어가던 때였기에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지난해 12월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19 크라스노야르스크 동계 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안 선수가 선수들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사진을 근거로 플레잉코치로 부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던데요.

빅토르 안>빙상 종목에는 스케이트 날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장비 담당 코치가 따로 있고, 없으면 코치가 갈아줘요. 그만큼 스케이트 날 관리는 중요한 일인데 개인에 따라 신체 특징도, 벤딩(스케이트 날의 미세한 구부러짐 조정 과정)도 원하는 스타일이 달라 아주 예민한 작업이죠. 담당 코치에 의한 관리가 시스템화되어 있다보니 요즘 어린 선수들은 스스로 날을 갈지 못해요.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 가느라 코치가 빙상장을 비운 날, 남은 경기도권 아이들의 스케이트 날을 갈아준 일을 계기로 아이들이 좋아해 종종 갈아줬어요. 저로서는 왜 그게 문제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자>고등부 선수들과 훈련하는 것은 재미있었습니까.

빅토르 안>서로에게 배우며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빅토르 안은 2019-20 시즌에 1년만 더 뛰어 보고, 베이징도 욕심난다면서 다시 선수로 복귀 한다.[38]

그러나 결론은 '1년 더'였다. 한 시즌 정도는 미련없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젠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다. 베이징을 보고 준비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올 시즌 목표는 1년을 잘 마무리 하고 결정을 짓는 것이었다. 너무 멀리 보지 않았다. 내년 3월 시즌이 끝났을 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시도해보려고 한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 2019년 11월 20일 인터뷰 (스포츠서울)


이때 빅토르 안의 복귀를 러시아는 정말로 기뻐하면서 환대하였으나, 당시 인터뷰를 보면 빅토르 안으로서는 2020년 세계선수권 까지 목표로 하고 있었고, 자신의 몸상태를 체크하면서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이냐 은퇴이후의 길 지도자로서의 삶이냐를 고민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10. 2019-20 시즌[편집]



10.1. 2019 콜롬나 러시아 스케이팅 유니온 러시안 컵[편집]


월드컵 시리즈전 기량 체크를 위해 2019년 9월 콜롬나에서 열린, 러시아 스케이팅 유니온 주최 친선대회에 나와 1000m 금메달, 2000m 혼성계주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종합 3위에 오른다. 원래 계획은 계주에만 출전 하는것이었으나, 러시아 코치진들과 의논한 뒤 1000m 한경기를 더 추가로 뛴것이었는데, 결과가 좋았다.[39]


10.2. 월드컵 시리즈[편집]


  • 1차
남자 계주와 혼성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500m와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은퇴 번복 후 첫 대회인데도 전성기 시절을 방불케 하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경기 운영감각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2차와 3차 월드컵은 선수시절 겪어온 무릎부상후유증으로 인해 재활을 하기로 결정해 불참했다.

  • 4차
개인전에선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으나, 계주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흭득했다. 특히 남자 계주 결승에서는 마지막 바퀴를 앞두고 박지원이 속도를 크게 내기 위해 인코스를 비우자마자 잽싸게 인으로 파고들어 크로스 추월에 성공했고, 그대로 1위로 들어와 ~한국이 지길 바라는 중국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40] 혼성 계주 결승에서도 세묜 옐리스트라토프와의 강한 푸쉬를 받고, 1위로 올라서나 했지만 끝내 이츠하크 더라트가 재추월을 다시했고 마지막코너에서 인코스로 파고들어 날내밀기에서 승부를 봤지만, 더라트의 날이 먼저 들어와 은메달을 받았다. 2020 유럽선수권은 불참했다.

개인전에선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으나, 계주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흭득했다. 특히 남자 계주 결승에서는 마지막 바퀴를 앞두고 박지원이 속도를 크게 내기 위해 인코스를 비우자마자 잽싸게 인으로 파고들어 크로스 추월에 성공했고, 그대로 1위로 들어와 ~한국이 지길 바라는 중국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41] 혼성 계주 결승에서도 세묜 옐리스트라토프와의 강한 푸쉬를 받고, 1위로 올라서나 했지만 끝내 이츠하크 더라트가 재추월을 다시했고 마지막코너에서 인코스로 파고들어 날내밀기에서 승부를 봤지만, 더라트의 날이 먼저 들어와 은메달을 받았다.

2022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인터뷰에서는 1차 월드컵이 끝나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유럽 선수권은 불참하고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참여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코로나로 대회가 불발되면서, 최종적으로 19-20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이시기 중국에서는 계속 러브콜을 보냈던 것으로 보여진다.


11. 은퇴[편집]


2020년 4월 27일 무릎통증과 기타 다른 부상으로 더이상 선수생활을 할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밝히고 은퇴를 선언했다. 안현수도 빅토르 안도 쇼트트랙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앞으로 언제나 쇼트트랙 발전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할것입니다. 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것을 밝혔고, 중국 국가 대표 쇼트트랙 코치로 부임하였다.

저는 2019-20시즌이 오랜 선수 생활의 끝임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은퇴한다는 실감이 나지 않네요. 지금까지 쇼트트랙 선수로서 저를 지지하고 사랑해준 모든 팬에게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시다시피 무릎 통증은 고질이 됐습니다. 언제부턴가 한번 대회에 출전하고 나면 회복과 치료, 재활에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훈련과 경기 준비에 전념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무릎뿐 아니라 다른 부상도 하나둘 생기면서 국제대회에 출전할 몸을 만들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동기부여만 가지고 경쟁력 있는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 대표팀에서, 최연소로 국가대표로 뛰기 시작했고, 지금은 러시아 대표팀에서 뛰면서 세계 쇼트트랙 최고령 선수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많이 했고, 제 자신도 이렇게 오랫동안 스포츠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현수도 빅토르 안도 쇼트트랙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쇼트트랙은 저에게 많은 팬들의 사랑을 주었습니다. 쇼트트랙 스케이팅 덕분에 제 인생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에 나는 러시아 시민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어려운시기에 러시아는 나를 지원했고 나는 다시 큰 스포츠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쇼트트랙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러시아에서 나의 임무는 우리 스포츠를 홍보하는 것이었다.

저는 쇼트트랙 선수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언제나 쇼트트랙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든 제 영혼의 일부는 러시아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고마웠습니다.

저는 이제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합니다.

- 2020년 4월 27일 빅토르 안 은퇴성명 일부내용, 전문은 러시아 국영 매체 리아 노보스티, (한국어 은퇴성명 MK 스포츠 )


[1] 기량 체크를 하기 위해 출전했던 것이다.[2] 김소희 해설위원으로서는 억울할 수가 있는데, 정작 올림픽 전 빅토르 안을 응원해줬고, 빅토르 안과 악연이 있는 것은 최광복 코치였다.[3] 그들은 한국에서 하던대로 했을 뿐인데, 외국에 나가면 훈련방식, 선수 인권문제, 폭행문제, 상대 팀 날 망가뜨리기, 선수들과 스태프들의 갈등조장 등 꼭 여러 문제가 생긴 것 이었을 수도 있다.[4] 당시 SBS 기사에는 러시아 쇼트트랙 연맹과의 갈등설과 장 감독을 영입한 세력과 반대파 사이의 알력 다툼이라고 하고 있다.[5] 선두로 달리던 캐나다 선수가 넘어진다.[6] 실격을 준 심판이 제임스 휴이시였다.[7] 그래서 그런지 현재는 아웃코스 패스가 거의 없고 인코스 패스 시도가 훨씬 더 많다.[8] 한국이 실격을 당해서 3위에서 2위로 올라왔다.[9] 현재는 여자부 최고기록 보유자 양양(A)와 타이를 이뤘다.[10] 그런데 안현수보다 19개월이나 연상인 샤를 아믈랭이 강철체력을 탑재하고 나와 1500m 결승에서 초반부터 선두를 유지해 금메달을 따내어 쇼트트랙 팬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11]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하나 따기는 했지만 이때는 독립국가연합으로 출전했다.[12] 이와 동시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페이스북 팬 페이지에서도 커버 이미지가 빅토르 안으로 변경되었다![13] 빙상연맹 무능의 근본적 원인은 쇼트트랙 계열의 한체대 vs. 비한체대 파벌과 그로 인해 쇼트트랙을 제외한 다른 종목에 대한 무관심이다. 1970년대 독재 정권은 각 재벌들에게 스포츠 협회를 강제로 할당해서 운영을 맡겼다. 현재 재벌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스포츠 협회들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빙상연맹처럼 파벌 싸움 때문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외국인으로 돌아설 만한 막장은 아니다. 그리고 부패하는 까닭도 대개는 체육계 특유의 폐쇄성, 한국 사회 전체에 만연한 지연, 학연에서 비롯된다. 빙상연맹은 한국에서 기반이 미약하고 인원이 적은 동계스포츠, 거기서도 쇼트트랙이 유일한 메달 밭으로 주도권을 독점한 탓에 그런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 일례로 똑같이 삼성이 지원하는 레슬링 협회는 무난하게 굴러가며, 또 다른 재벌인 현대차그룹이 지원하는 대한양궁협회는 대한민국 스포츠 협회 최종보스로 알려진 개념 협회다.[14] 귀화 선수로서 빅토르 안이 러시아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반대로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대표였다가 스위스로 국적을 바꾼 유리 포드라드치코프가 이번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받은 바 있다. 러시아도 귀화 선수들이 오고가는 셈이다.[15] 다만 시상식에서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일반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별메달은 올림픽 위원회가 따로 전달받아 나중에 선수들에게 증정한다고 한다.[16] 중간에 2위였던 중국의 단거리 스페셜리스트 량원하오가 넘어지는 운이 따르긴 했다. 아무래도 3명을 따라잡는 것보단 2명을 따라잡는 게 더 쉽기 때문. 그렇다 하더라도 바깥쪽, 안쪽을 넘나들며 추월하거나 특히 마지막 반 바퀴가 남았을 때 바깥쪽으로 흐른 듯한 액션을 해 뒤의 중국의 우다징이 추월을 시도하자 바로 안쪽으로 들어와 막아버리는데 허탈해 하는 듯한 우다징의 반응이 압권이었다.[17] 사진에 적힌 글은, Here's a Russian guy. 즉, '얘 러시아인이야.'정도의 의미이다.[18] 한국에선 이때 재스타트를 하지 않은 게 오심이 아니냐는 논란이 잠깐 있었다. 안상미 SBS 해설위원이 재스타트해야 하는데 안 했다고 해설했지만 김동성 KBS 해설위원은 두 번째 블록을 지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중계한 거 때문에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이런 일이 생긴 건 ISU 규정에 4번째 마커가 재스타트의 기준이라고 나오기 때문인데 사실 남자 계주는 첫 번째 마커가 기준이라고 한다. 당시 경기를 보던 한국 남자 대표팀도 이 사실을 잘 몰랐는지 재스타트를 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었다고. 후에 안상미 해설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잘못 안 것이었다고 말했다.[19] 당시 러시아 언론, 네티즌 모두 빅토르 안을 영웅으로 추대했다.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도, 러시아 시민들도, 빅토르 안 자신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러시아에서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20] 이때는 독립국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했기에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걸로는 첫 1위다.[21] 경제·사회·과학·기술·스포츠 등 특정 분야에서 러시아에 탁월한 기여를 한 사람에게만 수여하는 훈장이다.[22] 이 외에도 러시아 메달리스트들은 메르세데스-벤츠의 GL, ML, GLK 클래스를 선물로 지급받았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다.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 오메가에서 씨마스터 플래닛오션 소치 올림픽 에디션도 선물받고 모스크바 시내의 최고급 아파트를 받는 등, 한편 한국은 킹콩을 들다, 페이스메이커, 국가대표 같은 스포츠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선수 앞날에 대한 배려가 쇼트트랙 뿐만 아니라 전무하다.[23] 특히 최종전인 슈퍼파이널까지 가게 되면 지구력에서 아믈랭이 빅토르 안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설령 1000m에서 빅토르 안이 격차를 줄인다 해도 결국은 슈퍼파이널에서 아믈랭을 넘지 못할 거란 예상이 많았다.[24] 아믈랭은 넘어지면서 슈퍼파이널 포인트를 크게 잃으며 결국 종합 3위까지 순위가 하락하고 만다. 덕분에 셀스키가 종합 준우승을 했다.[25] 마지막 코너에서 일부러 속도를 줄여 전속력으로 추격하던 아믈랭이 코너에서 급격히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미끄러지도록 유도했다는 직관 평도 있다.[26] 2012년에 본 대회 첫 종합우승을 거머쥔 적이 있다.[27] 한국 선수 시절 2005, 2007 세계선수권에서 500m 동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으며 러시아 귀화 이후 2013 세계선수권에서 500m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28] 12월 29일 한국에서 득녀했다.[29]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도 전 전 부회장 때문에 불이익을 봤다고 방송에서 이야기까지 함은 물론 빅토르 안이 소치 3관왕을 달성하고 모든 비난이 빙상연맹 및 전명규에게 돌아갔기 때문에 결국 사퇴까지 하게 됐던 인물인데 최근 안현수 다큐에 모습을 드러내 칭찬을 하는가 하면 이렇게 같이 훈련까지 하게 됐으니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나, 현재 빅토르 안과 전명규는 좋은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19년 인터뷰에서 성남 시청 소속일때 전명규 교수와 연락을 하지 않았던것을 빅토르 안 본인의 발언으로 확인되며, 러시아로 귀화한 이후, 2013년 3월 헝가리에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명규 교수와 재회했고, 전명규 교수와 완전히 관계 회복이 된것은 2015-2016 시즌 이때쯤으로 추정된다.[30] 빅토르 안 본인도 몇 년 전부터 평창 올림픽 출전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개인전보다도 계주에서 메달을 따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하기도 했다. [31] 원래, 한국이 500m에서 약하고 유럽과 북미 선수들이 강한 편인데 올림픽 직전 이 시즌은 우다징, 임효준, 황대헌 다 아시아권이 압도적이었다.[32] 유럽선수들만 뛰는 한정된 선수권이지만,ISU가 유럽이다보니 유럽 선수권을 높이 평가해주는 편이다. ISU 표기에도 세계선수권 다음 선수권 목록에 표기되어 있다. 4대륙은 월드컵 목록에 아시안게임은 아예 표기되어 있지 않다.[33] 단, 이 기사는 2018년 9월 6일 작성된 것이다.[34] 그뿐만 아니라 팀 동료인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에프, 데니스 아이라페티안 또한 출전이 불가능하게 되어 계주 출전권이 있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차순위인 카자흐스탄이 출전했다.[35] ISU 선수프로필에서 Hero / Idol에서 압도적으로 빅토르 안이 언급된다.[36] 임효준은 경기 직후엔 그가 넘어질 뻔한 자신을 잡아줬다는 사실을 몰랐으나 뒤늦게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37] 훈훈한 경기 였지만, 임효준이 중국으로 귀화하게 되면서 빅토르 안은 몇수를 내다본거냐는 반응이 나오게되었다. 임효준은 평창 올림픽 당시에 빅토르 안이 출전금지가 되어 못나오게된 상황에서도 그가 올림픽에 없는 것이 아쉽다면서, 자신의 멘토였고 우상이었다는 것을 밝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임효준도 중국으로 국적을 바꾸면서, 외신에서조차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하다.라는 반응이 보일정도고, 이때문에 중국 코치로 간 빅토르 안이 임효준을 끌어들였다는 논란들도 일부에서 제기되었으나, 국내 빙상계 언론보도에서 임효준의 귀화는 빅토르 안 코치나 김선태 감독이 관여하지 않았으며, 김선태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올림픽까지만 계약이 돼 있는데 어떻게 선수의 미래를 책임지고 귀화하라고 얘기할 수 있었냐고 말 하였다.[38] 이때 빅토르 안의 러시아 선수 복귀에 일부 빙상인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 당시 이미 빅토르 안의 중국 코치설이 나오고 있던 때였기도 하다.[39]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벨기에, 라트비아, 대한민국 선수들이 참여하였다. 남자부 종합 우승은 대한민국의 홍경환, 여자부 종합 우승은 네덜란드의 수잔 슐팅이 차지했다. 1000m 결과, 혼성계주 결과, 종합순위[40] 빅토르 안이 추월하자 중국 깃발을 올리며 환호했다. 빅토르 안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환호하는 관중석에 집게 손가락을 들어올려 답한 뒤 팀원들과 우승 기쁨을 나눴다.[41] 빅토르 안이 추월하자 중국 깃발을 올리며 환호했다. 빅토르 안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환호하는 관중석에 집게 손가락을 들어올려 답한 뒤 팀원들과 우승 기쁨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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