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케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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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佐治敬三
(1919년 11월 1일~1999년 11월 3일)
일본기업인. 산토리의 2대 CEO였다. 후술한 지역비하 사건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2.1. 도호쿠 지역비하 사건[편집]



발단은 1988년 2월 TBS 테레비 계열의 보도 프로그램 'JNN 보도특집'에서 도쿄의 수도 기능 이전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이 방송에서 사지 케이조(佐治敬三) 회장이 오사카 상공회의소장 자격으로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것이다.

"센다이시 천도니 뭐니 하는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중략) 도호쿠구마소의 산지다. 문화적으로도 엄청나게 수준이 낮은 동네다."

원래 구마소고대 일본에서 규슈 남부 지방의 이민족, 즉 하야토을 일컫는 말로 당시 야마토 조정에서 붙인 멸칭이다. 북부 지방의 이민족은 에미시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현재의 아이누 족이다. 이러한 이민족을 가리키는 멸칭들이 이후 문명 수준이 낮은 미개인, 야만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런 멸칭을 도호쿠 사람들에게 썼으니 명백하게 도호쿠 지방을 비하하는 표현이 된 것이다. 더구나 사석에서 한 발언도 아니고 방송으로 나갔으니 후술하듯 일파만파 난리가 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도호쿠 지방은 매체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며 시골동네 이미지로 통하는 등의 편견이 있었던 곳이라 '쿠마소'가 아니라도 이미 '문화적 수준이 낮은 동네'라고 말한 것부터 상당한 지역 비하성 발언이다. 그런데 상기했다시피 북부는 차라리 에미시라고 불렸으면 불렸지 구마소라고 불리진 않았다. 물론 구마소의 의미가 확장적으로 야만인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긴 하지만 애초에 위치부터가 틀린 것이다(…). 이거 규슈 사람들도 화내야 할 일 아닌가?[1]

3. 여파[편집]


이 사건 때문에 산토리는 도호쿠 지방에서는 단단히 찍혀서 시장 점유율이 꼴찌로 전락했다. 게다가 사지 케이조가 직접적으로 언급했던 지역이 하필이면 센다이였는데 이게 대상을 정말로 단단히 잘못 잡은 것이, 도호쿠에서도 최대 시장인 센다이 시민들은 센다이를 세운 다테 마사무네를 닮아서 일본에서 가장 프라이드가 강한 데다 일본의 1인당 위스키 소비 1위 지역이 미야기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도호쿠 전역에서는 산토리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으며 도호쿠의 모든 가게, 특히 센다이시에서 산토리 제품이 아예 증발되었다. 이 때 산토리가 CM을 내리고 AC 재팬(당시 공공광고기구) CM이 방영되기도 하였으나 AC도 산토리가 설립에 관여했기 때문에 대체된 AC 재팬의 광고도 자체 프로그램 선전으로 다시 대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가 국회까지 갈 지경에 이르고 산토리가 도호쿠 시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결국 장본인이었던 사지 케이조 자신이 무릎을 꿇고 도호쿠 6개 현청에까지 직접 가서 사과해야 했는데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처음에는 부사장을 대리로 내세워서 대응하려고 했으나 당시 이와테현 지사가 "이게 고개 좀 숙인다고 끝날 일이냐"며 사죄를 거부했고 아오모리현 지사도 "도호쿠 사람들은 (이 발언 때문에) 극심한 컴플렉스를 느끼고 있다"며 쓴소리를 하는 등 차가운 반응만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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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웃기게도 규슈 쪽에서는 되려 산토리 공장 유치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시 오이타는 아오모리와 공장 유치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오이타의 지역 경제인 연합회에서는 사지를 응원하는 강연회까지 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