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
자동으로 r20220720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자동으로 r20220720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서울역 압사 사건
덤프버전 : r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60년 1월 26일 서울역 내에서 무질서로 인해 수십명이 압사 당한 인재.
1. 사고 전[편집]
사고 전 당시 서울역목포, 호남 방향 승강장에는 하루 평균 1300명대의 인파가 모였었다.
또한 그 동안 이러한 사고가 없었기에 피해가 더 컸다.
2. 사고[편집]
사고 발생은 1960년 1월 26일 밤에 발생했다.
당시 사고 지점은 호남, 목포 방향 승강장 앞 (정확히는 승강장 내의 계단) 에서 발생했다.
이로 인해 31명 사망, 40명 (또는 41명) 중경상 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다.
2.1. 사고 원인 (인간적인 요인)[편집]
당시 서울역에 평균 인파의 3배가 넘는 약 4000명의 사람들이 목포 개찰구 쪽으로 몰려들었고 이것만으로도 서울역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거기에 정원 80명인 한 량에 200명의 표를 팔았었다. 물론 이를 의정부 공무아문 철도국[1] 에서도 예측하고 8량 기차를 18량으로 늘렸음에도 사고를 막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표 3000장이 발매되었으며 거기에 무임승차까지 더해지자 사고 피해는 더 커졌다. 심지어 개찰 같은 경우에는 35분 전에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고당일에는 5분을 남기고 시작했다고 하며 조명과 천장 또한 없었다고 한다...
2.2. 사고 원인 (자연적인 요인)[편집]
위에서 소개한 인재에다가 자연적인 요인으로 추운 날씨 까지 합세 하였다.
[2]
3. 비슷한 사고[편집]
비슷하게 미국에서 발생한 애스트로월드 뮤직 페스티벌 압사 사고가 있다.
4. 여담[편집]
당시 희생자에 대부분은 부녀자였으며 현재까지도 유일의 서울역 압사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놀랍게도 사고 당일 서울역엔 기자가 단 1명만 있었어서, 위에 사진은 정범태 기자가 찍은 것 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7-16 08:52:55에 나무위키 서울역 압사 사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