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피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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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 관련 인물(MLB)

이름
데즈먼드 드숀 피긴스
(Desmond DeChone Figgins)
생년월일
1978년 1월 22일 (46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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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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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조지아주 리어리
포지션
유틸리티 플레이어[1]
투타
우투양타
신체
173cm, 81kg
프로입단
1997년 드래프트 4라운드(전체 132번, COL)
소속팀
애너하임-LA 에인절스(2002~2009)
시애틀 매리너스(2010~2012)
LA 다저스(2014)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2002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영광의 에인절스 시절
2.2. 악몽의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2.3. 방출 이후
3. 기타


1. 개요[편집]


전직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 한 때는 리그를 대표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각광받았으나, FA 이적 이후 급격하게 몰락해버린 선수다.


2. 선수 생활[편집]



2.1. 영광의 에인절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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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했으나, 2001년 중순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에인절스로 이적 후 타격에 눈을 뜬 피긴스는 2002년 AAA에서 프로입단 후 처음으로 3할의 타율을 기록했고, 시즌 후반에 빅리그로 콜업되어 대주자 등으로 15경기를 뛰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71경기를 뛰면서 .296의 타율과 13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서서히 빅리그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2004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어 .296 5홈런 60타점 34도루의 성적을 기록했다. 부상에 신음하던 트로이 글로스 대신 주로 3루를 보았지만, 그 외에도 외야수, 2루수, 유격수까지 소화하면서 유틸리티로서의 진가를 발휘했다. 스몰볼로 대표되는 마이크 소시아 감독의 운영철학의 선봉에 있던 선수가 바로 준수한 컨택능력과 수비력, 그리고 빠른 발을 가진 피긴스였다.

2005년에도 피긴스는 팀의 리드오프로 나서 .290 8홈런 57타점에 리그 1위인 6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타선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바톨로 콜론과 함께 에인절스 공동 MVP로 선정되었다. 특히 그가 기록한 62도루는 1975년 미키 리버스가 기록한 70도루에 이은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2006년에도 내야와 외야를 오가며 .267 9홈런 52타점 52도루를 기록했다.

2007년에는 시범경기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며 시즌 초 한 달을 날려먹었지만 복귀한 뒤 불방망이를 휘둘렀는데, 6월에만 에인절스 월간 신기록인 53개의 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시즌 성적은 .330 3홈런 58타점 41도루.

이듬해인 2008년에는 .276 1홈런 22타점 34도루로 다소 주춤했으나, 2009년에는 생애 첫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등 .298 5홈런 54타점 42도루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101개의 볼넷은 아메리칸리그 1위였다.

그리고 시즌 후 FA자격을 얻게 되었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4년 3,6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게 된다.[2]


2.2. 악몽의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편집]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Chone+Figgins+Boston+Red+Sox+v+Seattle+Mariners+HEijL_FauaPl.jpg

이미 스즈키 이치로라는 최고의 리드오프를 보유하고 있었던 시애틀은 피긴스까지 영입하면서 리그 최강의 테이블세터진을 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유틸리티로서 다양한 포지션을 볼 수 있는 피긴스의 합류로 팀의 수비는 더욱 탄탄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야말로 수비만으로 일을 낼 기세였다.

그러나 2010시즌, 피긴스는 주전 2루수이자 2번 타자로 뛰었으나 초반부터 죽을 쑤면서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안타도 못치는 주제에 진루타는 커녕 병살이나 적립하는 막장 타격을 보면서 시애틀 팬들은 분통을 터뜨렸고, 제이슨 스탁은 그를 전반기 아메리칸리그 LVP(Least Valuable Player)에 선정하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다소 살아날 조짐을 보이긴 했으나 .259 1홈런 35타점 42도루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호세 로페즈가 콜로라도로 이적한 2011년에는 주 포지션인 3루로 돌아갔는데, 개막전부터 홈런을 때려내며 부활... 은 개뿔. 이후 가차없이 삽을 들며 아담 케네디에게 3루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이후 더스틴 애클리카일 시거 등 젊은 내야수들의 콜업으로 팀 내 입지도 많이 줄어들게 된다. 시즌 성적은 .188 1홈런 15타점 11도루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먹튀로 낙인찍히게 된다.

2012년에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부상 등으로 66경기 출장에 그치며 .181 2홈런 11타점이라는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시즌 후 피긴스는 시애틀을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는데, 팀의 선택은 트레이드가 아닌 지명할당이었다.


2.3. 방출 이후[편집]


2013시즌을 앞두고 마이애미 말린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방출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렇게 1년을 쉬게 되었고, 2014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시범경기에서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내외야를 볼수있는 유틸리티이기도 하고 대주자로 활용가능하기 때문에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시즌 중에 간간히 대주자와 대수비로 출전하고 있으며, 부상으로 이탈한 유리베의 빈자리를 저스틴 터너와 함께 지켜주고 있다.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아니지만 특유의 선구안과 노장으로서의 경험을 살려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디 고든에게 도루스킬과 주루센스에 대해서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됐는데 이후 재활에 매진하던 도중에 미구엘 로하스 등 신예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결국 지명할당되었다.

2016년 3월 21일, LA 에인절스와 1일 계약을 맺고 은퇴식을 치렀다.


3. 기타[편집]


  • 표본이 적긴 하지만 한국인 투수들과의 전적이 좋았다. 박찬호를 상대로 홈런 1개를 포함해 15타수 5안타를 기록하며 강한 모습을 보였고 그 외에 서재응을 상대로 6타수 2안타, 김선우를 상대로 1타수 1안타(3루타)를 기록했다.
  • 2020년도 명예의 전당에 첫해 후보로 입성했고, 한표도 얻지 못하고 광탈했다.
  • 특이한 이름 철자를 쓰는 선수로, Chone이라고 쓰고 숀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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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루수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한 바 있다.[2] 에인절스가 제시한 금액은 3년 2,400만달러였다고 한다. 사실 당시 에인절스에서는 피긴스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워줄 자원이 제법 많았고, 유망주 브랜든 우드의 자리를 만들어줄 필요도 있었기에 피긴스와의 재계약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