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송식

덤프버전 : r20210301


파일:신송식.jpg
성명
신송식(申松植)
이명
진경성(陳敬誠)
본관
평산 신씨
생몰
1914년 3월 4일 ~ 1973년 2월 29일
출생지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입석리#
(현 평안남도 문덕군 입석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독립유공자 오희영은 그의 부인이다.

2. 생애[편집]


신송식은 1914년 3월 4일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입석리(현 문덕군 입석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했고, 1936년에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당을 재건하기 위해서 활동하였으며, 이듬해 4월부터 국민혁명군 중앙포병 51단 소위로 임명 배속되어 항일전쟁에 참전하였다.

1941년에는 민족혁명당원으로서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여 제1지대에 편성되었다가 한국 광복군 제3지대에 전입되어 시안에서 활동하였다. 1942년 초에는 광복군 제3지대 지대장인 김학규의 인솔로 일군의 점령지구를 돌파하여 중국군 유격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부양에 도착해 그곳에서 첩보활동을 수행했다.

1944년에는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반에 병설로 설치된 한광반(韓光班)의 교관으로서 광복군 양성에 주력하였고, 같은 해 임시정부 주석 비서 겸 선전부 선전원으로 활동하던 오희영과 혼인했다. 1945년 6월에는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 참령 및 임시정부 주석비서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8.15 광복을 맞이하자, 그는 교포의 귀국에 노력하다가 1946년 임시정부 주화대표단전원위원(駐華代表團專員委員)이 되었고 1947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광복청년회 전위대장을 지내다 다시 대만으로 가서 국민당정부 국방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50년 2월 귀국하였다. 이후에는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3년 2월 2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신선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74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