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카디르 위조요아트모조

덤프버전 :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출처


1. 개요[편집]


압둘카디르 위조요아트모조(Raden Abdulkadir Widjojoatmodjo, 1904~1992)는 자바인으로 식민지 시대(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네덜란드 외무부 관료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대 인도네시아 협상 대표로 식민 정부에 부역한 대표적 부역자였으며, 이 때문에 현대 인도네시아에서 그에 대한 평은 매우 좋지 않다. 비록 식민지인이었지만, 위조요아트모조는 수카르노식의 민족주의자가 아니었고 평등한 관계로 동인도가 네덜란드에 합류하길 바란 자치론자였다.


2. 생애[편집]


위조요아트모조는 자바인 출신으로 중부자바 살라티가에서 태어났다. 동인도에서 네덜란드식 교육을 받고 레이던 대학교에서 동인도학과 이슬람학의 대가였던 휘르흐로녀(Christiaan Snouck Hurgronje)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휘르흐로녀의 추천을 받아 동인도가 아닌 네덜란드 본토의 외무부 관료로 임용되어 헤자즈 왕국의 네덜란드 영사관 서기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1933년 5월 1일 부영사(영사대리)까지 올랐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에는 서뉴기니에 네덜란드 고위 관료로 파견되었다. 전쟁 발발 후에는 네덜란드 망명 정부 소속으로 공무를 수행하며 미국영국을 여행했다. 그러나 1944년 3월 네덜란드령 동인도 총독 공무 고문이 된 그는(이때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명목상 대령 계급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이 터지면서 네덜란드 식민 정부를 위해 일하는 대표적인 부역자가 되었다. 위조요아트모조는 동인도 정부의 서부자바 주지사가 되었다가 네덜란드의 괴뢰국인 파순단의 성립에 깊게 관여했다. 또한 외무부에서 네덜란드 정부의 대 인도네시아 공화국 협상 대표로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일하면서, 독립전쟁의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인 렌빌 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위조요아트모조는 네덜란드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인도네시아 독립 후에는 17년 동안 고국 인도네시아에 머물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비국민 취급을 받으며 어렵게 살았다. 그러다 아프고 지친 그는 네덜란드로 옮겨 네덜란드에서 죽었다.


3. 여담[편집]


위조요아트모조의 아들 사르조노(Sardjono), 애칭 조니(Djony)는 반대로 인도네시아 독립을 지지한 민족주의자였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과정에서는 인도네시아 공화국군의 정보 장교로 참전했다.


4. 출처[편집]


  • "압둘카디르 위조요아트모조가 네덜란드 여왕을 변호하다(Abdulkadir Widjojoatmodjo Membela Ratu Belanda)", tirto.id, 2017년 12월 24일, https://tirto.id/abdulkadir-widjojoatmodjo-membela-ratu-belanda-cBUn.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05:32:22에 나무위키 압둘카디르 위조요아트모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