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만노 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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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각본가.
사회적 불평등이나 종교적 테마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
2. 생애 및 작품 활동[편집]
1931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에 있는 가톨릭교 집안에서 태어난 후 3살 때 부모님을 따라 밀라노로 이주해 성장했다. 16살 때 우편부로 일하면서 처음에는 건축에 흥미를 느끼기도 하였으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되었다.
이후 예술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부모님이 일하고 있는 회사 에디슨-볼타에게 다큐멘터리 부문을 신설하도록 건의했고, 이후 해당 부문의 책임자가 되어 약 40여 편의 기업 다큐멘터리를 감독하며 첫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59년, 올미는 계속해서 기업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도중 수력발전 댐에 대한 기업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하게 되고, 이 기획에 드라마를 넣고 살을 추가하면서 첫 장편 <멈춰 선 시간>을 완성해 장편 극영화 연출을 시작한다.
1961년에는 산업사회의 순응주의적 요구와 자기실현 욕구의 충돌을 그린 두번째 장편 <직업>으로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영화상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약혼녀>로 칸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비평가들로부터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며 커리어가 순항하기 시작한다.
북부 이탈리아 시실리의 공장으로 가는 한 노동자와 남겨진 그의 약혼녀와의 관계를 담은 1963년작 <약혼녀>부터 밀라노에서의 삶을 찍은 1975년작 <환경>까지 고루 호평받은 올미는, 고향 베르가모에서 촬영하며 1900년경 농촌 가족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포착해낸 1977년작 <나막신 나무>를 완성하고 이 작품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80년대부터는 국영위성방송인 RAI의 지원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하면서 1982년에 바사노델그라파에 영화학교 이포테시 시네마(Ipotesi Cinema)를 설립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거룩한 술꾼의 전설>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본인의 확고한 위치를 증명해내었다.
2008년 제6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18년 이탈리아 베네토주 비첸차 아시아고에서 향년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3. 작품 스타일[편집]
느릿한 롱테이크가 주요 특징 중 하나로, 다큐멘터리로 경력을 시작하면서도 로베르토 로셀리니에게 영향을 받아 네오 리얼리즘 사조의 요소들인 '실제 장소에서 자연광으로 촬영', '비전문배우 기용', '카메라 기교의 절제' 등이 작품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와 함께 후기 네오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로 불리기도 했다.
노동자라는 계층과 이탈리아 농촌과 농민들의 목가적이고 생생한 풍경에도 관심이 있어, 해당 소재를 자주 다룬 타비아니 형제와도 조금씩 겹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교도 집안에서 자라 성장한만큼 가톨릭적인 색채가 매우 짙으며[1] , 휴머니즘 가득한 작풍을 선보이는 감독이다. 때문에 이탈리아의 동세대 주요 감독들 중에서 작품 속 교회와의 갈등이 가장 적은 편에 속한다.
1970년대에 들어선 이후로는 마르코 벨로키오나 마르코 페레리, 에토레 스콜라 등 동세대 이탈리아 영화 감독들이 그렇듯 좌익 성향을 띈 사회적 논평이 영화속에 두드러지고, 다루는 인물들의 계급도 노동자층에서 중산층으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으나 기본적으로는 휴머니즘을 느릿한 롱테이크로 담아낸 기조를 이어나가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 편이다.
4. 필모그래피[편집]
5. 기타[편집]
- 가족들도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영화인 집안이며 아들 파비오 올미는 촬영감독, 딸 엘리자베타 올미는 영화 제작자로서 활약하고 있다.
- 자크 리베트의 도끼에 손대지 마라, 타비아니 형제의 레인보우: 나의 사랑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 현대 이탈리아 감독 중에선 알리체 로르바케르가 에르만노 올미에게 영향을 받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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