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헝가리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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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전근대
2.2. 19세기
2.3. 20세기
2.4. 21세기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대사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국헝가리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전근대[편집]


한 때 영국에서 유행했던 기독교 교파 중 하나인 유니테리언오스만 헝가리트란실바니아 일대의 헝가리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해당 교파는 오늘날 영국에서는 사실상 사멸한 상태이지만 오늘날에도 트란실바니아 내 헝가리인들 사이에서 일부 교파가 남아있다.

헝가리인들의 옥스포드 대학교 등 영국 내 대학교 유학은 서기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


2.2. 19세기[편집]


헝가리가 영국 측 문헌에 자주 등장하게 된 계기는 1848년 헝가리 혁명이었다. 영국과 적대적인 사이였던 러시아 제국 군대가 오스트리아 제국 측을 원조하여 헝가리 독립군을 공격하자 영국인들은 러시아 제국을 규탄하면서 헝가리인들에 대한 동정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하지만 영국의 의견은 단순한 동정 수준에 그쳤고, 영국의 파머스턴 장관은 헝가리의 완전 독립이 유럽의 세력 균형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바 있다.

대타협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성립하면서 영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사이의 관계는 영국-헝가리 왕국 관계로 연장되었다.

2.3.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영국과 헝가리 왕국(1920년~1946년)는 오스트리아와 연계되지 않은 독자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 영국은 헝가리에 선전포고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과정에서 일부 헝가리인 반공 난민들이 당시 영국의 자치령이었던 캐나다나 호주 등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전후 냉전 시대가 되면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제2세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이 되면서 영국과 헝가리 사이에는 제한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20세기 말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해체되고 헝가리가 민주화되면서 영국과 헝가리 사이의 교류도 활성화 되었다.


2.4. 21세기[편집]


2004년 헝가리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면서 양국은 모두 유럽 연합의 일원이 되었으나 영국이 브렉시트로 유럽 연합을 탈퇴하면서 오늘날에는 양국 중 헝가리만 유럽 연합의 멤버로 남아있게 되었다. 영국과 헝가리 양국이 모두 유럽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동안 상당수의 헝가리인들이 영국에서 이주노동자가 되어 일하기도 했다.

영국의 유대인 단체에서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조지 소로스 관련한 발언에 반유대주의 어휘 사용 문제를 비판하였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공공의료 시스템이 타격을 입자 일부 영국인들이 헝가리에서 수술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3. 문화 교류[편집]


20세기 초반부터 2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헝가리 내 반유대주의가 고조되자 상당수의 헝가리 유대인들이 영국으로 망명했던 바 있다. 이렇게 영국에 정착한 헝가리 유대인 중에서는 영화배우 레이첼 와이즈 같은 경우도 있고, 네투라이 카르타 같은 경우도 있다.


4. 교통 교류[편집]


라이언 에어위즈에어 같은 저가항공사나 LOT 폴란드 항공[1]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영국의 여러 도시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5. 대사관[편집]


런던에는 주영 헝가리 대사관이, 맨체스터에는 주영 헝가리 영사관이 위치해 있다. 부다페스트에는 주헝가리 영국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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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란드 국적사이지만, 폴란드-헝가리 관계 특성상 내수 시장이 협소한 헝가리 사정도 있고 해서 사실상 헝가리 국적사 역할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