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 원권 지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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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대한민국지폐
권종
천 원권
오천 원권
만 원권
오만 원권
도안
전면
이황, 명륜당, 매화
이이, 오죽헌(몽룡실)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후면
정선의 계상정거도
신사임당의 초충도 2점
혼천의¹,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체 망원경²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크기
136mm * 68mm
142mm * 68mm
148mm * 68mm
154mm * 68mm
¹혼천시계가 너무 커서 혼천의만 분리해서 그려 놓았다. 실물은 고려대 박물관에 있다.
²보현산 천문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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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오천 원권 (1972~1977)[1]
(나) 오천 원권 (1977~19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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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오천 원권 (1983~2002)
(라) 오천 원권 (2002~2006)[3]
파일:external/file1.jobkorea.co.kr/5000.jpg.jpg
(마) 오천 원권 (2006-현재)[4]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5,000원권 지폐. 앞면에는 율곡 이이와 함께 그의 생가인 오죽헌을 삽화하였고, 뒷면에 있는 문화재는 〈신사임당초충도병(申師任堂草蟲圖屛) 〉이다. 이 지폐의 율곡 이이를 그린 사람은 일랑 이종상 화백으로 서울대학교 미대 명예교수다. 참고로 오만 원권 지폐의 신사임당도 이종상 화백이 그렸다.


2. 상세[편집]


현재 발행되는 신권 중 가장 먼저 나온 지폐이다(06년 1월, 그다음 1,000원권+10,000원권(2007년 1월 22일), 50,000원권 순으로 발행). 신권의 경우 크기가 작아지고 디자인에 이런저런 수정이 가해졌다. 가장 먼저 나온 이유가 신권 발행 직전에 5,000원권 위조지폐가 대량 나돌았기 때문. 5,000원권 위조지폐가 급증했던 이유는, 1,000원권보다 남는 이익이 많고, 10,000원권보다 위조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특히 2002년 이전에 발행되었던 (다)오천 원권은 1,000원 구권과 위조방지장치가 전혀 차이가 없어 (다)권으로 위조한 오천 원권이 위조지폐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후술할 77246 위조지폐 사건도 (다)권을 타깃으로 삼았다.[5] 사실 10,000원권도 그런 지폐가 있었지만 1994년에 위조방지장치를 강화했고, 위조의 표적이 될만한 뻣뻣한 구권은 전부 회수 조치 해서 소각해 버렸다고...

색이 현재 발행된 오만 원권 지폐와 매우 비슷하고 값도 오만 원이 뒤에 단 0이 하나가 더 붙어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5,000원 내려다 50,000원 내는 대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유의 바람. 일부 시골에서는 어르신들이 이것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진다고 한다.[6]

지폐의 모델이 된 율곡 이이의 자세한 정보는 이이(조선)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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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5,000원권 지폐를 처음으로 발행했을 당시에는 국내에 원판 제작기술이 없었던지라 영국 De La Rue 사에 원판 제작을 맡겼는데, 막상 찍어내고 보니 율곡의 초상이 서양인의 콧대와 얼굴형을 가지고 있었다.[7] 결국 1977년에 지금의 율곡 초상화로 새로 찍게 되었다.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에서는 '어머니보다 더 늙어 보이는 아들'이라면서 깠다.

거스름돈으로는 많이 나가지만 손님이 지불하는 5,000원은 적으므로 상점에서 500원과 함께 가장 많이 떨어지는 지폐다. 한 그릇에 5천 원씩 하는 국밥집에 가보면 5천 원 지폐를 손님에게 거슬러 주는 경우가 꽤 있다..

1,000원짜리가 상당히 험하게 쓰이면서 더러워진다면, 5,000원은 많이 만들지도 않아 교체를 잘 안 해줘서 더러워진다. 그래도 1,000원권은 발행량이라도 많아 깨끗한 돈이 좀 있기라도 하지, 시중의 5,000원권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970년대 당시 5천원권 지폐가 처음 나올 때는 값어치가 상당했었고[8], 1980년대에도 값어치가 꽤 있어서 세뱃돈을 1천원권 또는 5천원권으로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1990년대에는 소득수준이 상승하여 세뱃돈을 만 원권으로 받는 것이 대세가 되었지만 5000원 지폐의 가치는 상징적이었기 때문에 5천원권 지폐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당시 5천원권 지폐로는 짜장면 시키고 서비스로 군만두를 시키거나 싼 탕수육을 함께 사먹을 수 있었고 그 외에도 과자를 6~7개 정도 사먹을 수 있었으며 그 외에도 생필품들을 많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효용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김밥에 라면, 만두, 떡볶이 같은 세트를 많이 시켜먹을 수도 있었으며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피자, 치킨을 시켜먹을 수도 있었다. 담배 역시 여러 갑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IMF가 터진 이후 5천원권의 가치도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대까지만 해도 5천원권은 1천원권과 달리 어느정도 가치가 꽤 있었는데 이 때만 해도 햄버거세트를 시켜먹는 게 가능했고 김밥에 라면 같은 메뉴를 같이 먹을 수도 있었으며 그 외에도 토스트와 미니피자에 사이드메뉴를 추가해서 먹을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PC방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시간을 연장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짜장면이나 짬뽕을 단품으로 먹는 것도 가능했다. 과자를 3~4개 정도 사거나 생필품을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기도 했다. 담배는 3~4갑 정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로 들어오면서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면서 5천원권의 가치도 더욱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때만 하더라도 김밥에 라면 같은 메뉴를 추가해서 먹는 것이 가능했으며 몇몇 햄버거세트를 먹는 것도 가능했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햄버거, 김밥을 같이 사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짜장면이나 짬뽕을 단품으로 먹는 것도 어느정도 가능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나 순대를 먹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과자를 2~3개 정도 사거나 생필품을 2~3개 정도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도 여전히 되었다. 그 시절에는 5000원으로 담배 2갑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로 들어서면서 5천원권의 가치는 더 하락하였다. 다만 여전히 김밥 한 줄이나 토스트, 미니피자 한 개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되고 과자 1개나 생필품 1개를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도 되며 또한 편의점에서 싼 도시락이나 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등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은 된다. 담배는 1갑밖에 사지 못한다.

요즘 전반적으로 물가가 많이 오른 관계로 가끔 자판기나 버스 요금통 등에 오천 원짜리 지폐를 넣는 경우가 있다.[9] 자판기는 대부분 먹지 않으며 아직까진 버스에서도 잔돈 거슬러주는 문제 때문에 기사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시외버스 혹은 시내버스/농어촌버스지만 시계외요금창렬인 경우는 예외[10]) 이런 현상을 보면 캐나다 달러와 비슷하게 천 원권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자동판매기의 갱신비용 문제+동전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한국은행의 굳은 의지 때문에 힘들 것이다.

2006년 1월 2일에 신권으로 교체하면서 일련번호 글자가 한글에서 라틴 문자로 변경되었는데,[11] 2005년 11월 초 신권 도안 첫 공개 당시 '이제 지폐에조차 영어 우월주의가 팽배했느냐?'는 식의 반발이 컸었다. 하지만 이는 위폐 검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크다. 구권이 처음 발행되던 때(1983년)에 비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 지폐의 외국 통용량이 급증하였다. 그에 따라 해외에서 발행된 위조지폐도 급증하였다. 그렇다 보니 외국 경찰과 함께 수사를 해야 하는데, 정작 외국에서는 일련번호가 한글로 되어 있어 읽지 못했었던 것. 결국 어쩔 수 없이 라틴 문자로 바꾸게 되었다. 구권이던 시절에는 한글 일련번호다 보니 3글자가 합쳐져서 오묘하게 뜻이 있는 글자가 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가아라, 나가자, 사바나 , 바나나 등... 참고로 세 기호 모두 "ㅏ"로 끝나는 지폐는 양성지폐라고 한다 카더라. 추가로 신권으로 교체하면서 율곡 이이의 초상화도 변경되었는데 얼굴이 못생겨졌다.

대한민국의 지폐 중에서는 가장 손에 넣기 어렵다. 오만 원권과 만 원권은 현금인출기에서 나오며 천 원권은 각종 화폐교환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오천 원권만 유일하게 무인 현금 지급기에서 나오지 않는 권종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오천 원권부터 고액권으로 보는 추세이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은행이나 사설환전소에서는 현행권만 환전만 가능하다.

다른 해외 은행이나 사설환전소에서는 구권도 무제한으로 환전이 가능하다.[12]


3. 여담[편집]


드렁큰 타이거의 "오천 원"이라는 노래도 있다. 꽤나 애절한 노래.

친 겐사이의 명대사이기도 하다 5,000원~ 물론 몬더그린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오천 원권 지폐의 이이의 얼굴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소개되었다.# 다행히 (마)형 지폐는 문제가 없었다는 뒷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도 사람이야 사람에서 아들이 "오천원 달라고 그냥"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낚시용 짤방으로 종종 쓰인다. 게임을 정가보다 10000원 싸게 구입하는 법이라면서 이 짤방을 2개 올린다던가.


4. 77246 위조지폐 다량유통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구권 오천 원권 77246 위조지폐 유통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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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에서 수입한 원판으로 제작한 지폐. 율곡 이이의 초상화 문제로 논란이 많았는데 이는 아랫글 참조.[2] 이때는 일본에서 원판을 수입하여 율곡 이이의 초상화가 동양인으로 되돌아왔다.[3] 5000원권이 위조지폐 방지가 상대적으로 허술하면서도 액면가가 높아 위조지폐로 많이 사용됨에 따라 다 형태에서 여백의 투과 이이 그림 확대, 홀로그램 은선, 1979년부터 사용되었던 (나)만 원권 지폐와 동일한 일련번호 등 여러 위조지폐 방지책이 들어갔다. 그래서 다른 지폐들에 비해 발행 기간이 무척 짧은 4년밖에 되지 않는다.[4] 2005년 11월 2일에 도안이 처음 공개되었고, 2006년 1월 2일부터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다.[5] 사실상 77246 위조지폐 때문에 (마)권을 조기도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6] 같은 계열의 색상이라서 혼동이 되는건 사실이긴 하다. 두 권종을 유심히 살펴본다면 색깔이 그래도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5,000원권이 오렌지색에 가깝다면 50,000원권은 금색에 가까운 황색이다. 색맹이라서 초록색과 빨간색을 구분하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지폐의 색이 많이 다르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금으로서의 50,000원권을 만질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빚어진 일이 아닌가하고 추측해본다.[7] 이 부분은 스펀지에서도 방영했는데, 스펀지에 의하면 율곡 이이의 표준영정을 그린 김은호 화백이 당시 투병 중이라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이쪽에서 대신 측면 초상화를 직접 그려서 그렇게 나온 것이라고 한다.[8] 그 시절에는 5000원으로 담배를 10갑 이상 살 수 있었고, 중장거리 여행 정도는 가능했었다. 요즘은 5000원으로 여행은 사실상 갈 수 없다.[9] 이론적으로 다인요금을 현금으로 낼 목적이므로 3인분의 요금이면 5000원 지폐를 내고도 동전으로 거슬러 받는 것은 가능하다.[10]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진 않지만 인천광역시 시내버스에 설치한 자동요금수납기처럼 오천 원권을 받는 경우도 있다.[11] 이는 천 원권 지폐, 만 원권 지폐도 마찬가지다.[12] 일부 해외 은행에서 구권은 제한적으로 환전해 주는 국가들도 있다. 예: 폴란드,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