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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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高麗大學校
Korea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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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자유 · 정의 · 진리
LIBERTAS · JUSTITIA · VERITAS
상징
동물
호랑이
교목
잣나무
교색

Crimson
[1]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분류
사립대학, 4년제 종합대학
지역
서울특별시
개교
1905년 5월 5일 (118주년)
보성전문학교[2]
설립자
이용익
총장
제21대 김동원 (경영학과 교수)
법인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대학병원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서울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5가 1-2),
세종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세종로 2511



서울
19,597명(2022년)[3]

세종
6,406명(2022년)[4]
서울
9,847명(2022년)[5]

세종
903명(2022년)[6]
교원

서울
4,440명(2022년)

세종
751명(2022년)
직원

서울
1,150명(2022년)

세종
219명(2022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서울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2022년)

세종
일반재정지원 선정대학(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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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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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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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대학교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7] 위치한 사립 종합대학이다.

1905년 대한제국의 내장원경 충숙공 이용익고종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근대적 사립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 1932년 인촌 김성수[8]가 학교를 인수했고 해방 후 1946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며 고려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약칭은 고대(高大)이며, 영문명 Korea University의 약칭은 KU이고, FM 구호민족고대(民族高大)이다.

2.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고려대학교/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특징[편집]



3.1. 교명[편집]


언어별 명칭
국어
고려대학교
영어
Korea University[9]
독일어
Korea University[10]
프랑스어
Université de Corée
중국어
高丽大学(gāolìdàxué, 高麗大學(gāolìdàxué
러시아어
Университет Корё
일본어
高麗大学(コリョだいがく[11]
스페인어
Universidad de Corea
한문
高麗大學校

대학의 이름을 '고려(高麗)'로 정한 것은 인촌 김성수[12]의 발상이었는데, 이에 대한 그의 지론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만드는 대학은 반드시 우리나라나 민족을 대표하는 대학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는 만큼 교명도 반드시 그러한 뜻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하겠는데, 「조선」이나 「한국[13]

은 역사상 이민족에게 수모를 당한 일이 있어서 싫고, 「고려」도 실은 여진, 몽고 등의 시달림을 받은 일은 있지만 「고구려」의 영광을 계승하여 좋다. 우리나라의 외국어 명칭인 Korea,[14] Corea,[15] Corée[16]도 「고려」의 음을 표기한 것이 아니겠는가."

-

유진오, 『양호기(養虎記)』, 231~232쪽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보성.조선.고려 등 세 대의 명칭을 가지고 논하되 보성은 전문학교 때의 이름이니 대학이 되면 갈아야 하고, 조선은 개국 당초부터 끝까지 국토 내에서만 우물쭈물 하였고 세력이 밖에까지 미쳐보지 못했으나, 고구려는 한때 요동에까지 세력이 팽창하였던 것이니 그 웅대 활달한 기상과 자주 불패의 정신이 취할 만하나, 다만 삼자명은 불편하니 <句>자를 약하여 <고려>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

李殷相, 「아 仁村은 가시다」, 『新生公論』, 1955.6.

한편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고려대학교'라고 적힌 문패가 없다. 그 이유가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굳이 대학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누구나 이곳이 고려대학교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를 소재로 오탁번 시인이 쓴 시(詩)도 존재한다.

3.2. 학풍[편집]


[집단연구] 고려대 106년의 자화상 : 월간조선 2011년 2월호

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국내에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던 고려대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1. 야성적, 저돌적, 정열적
고려대학교의 교풍은 야성, 저돌성, 정열 등으로 대표된다. 무섭고 사나운 호랑이, 강렬하게 검붉은 크림슨색 등 고대를 대표하거나 '고대' 하면 떠오르는 상징들은 대부분 위의 특징들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려대학교가 그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시절 사실상 유일한 민족·민립의 지도자 양성기구였기 때문에, 민족정신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교수와 학생들에게 특별히 더 부하됐고, 그것이 학생들의 지사적 또는 투사적 저항기질을 배태시켰던 데 기인한다는 견해가 있다.[17]

2. 협동적, 끈끈함
고려대에서는 졸업생을 '동문', '동창' 등의 단어 대신 '교우(校友)'라고 부른다. 이는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라는 의미이다. 사회에서 고려대 출신 간에는 유대가 매우 강한 편이며 이러한 문화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현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건강하게 이어지고 있다.

고대에는 자기 이익만 앞세우려 하기보다는,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의 장점을 살려 일을 분담함으로써 시너지를 내는 문화가 발달돼 있다. 또한 일대일 간의 관계보다는 폭넓은 집단 내에서의 관계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18] 구성원들의 애교심이 워낙 커서 그런지, 정치적 이념 및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같은 고대 동문 사이에는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고 인간적 신뢰에 입각하여 갈등을 풀어가려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고려대에는 동아리 조직이 발달해 그 구성원이 인간관계를 다지고 팀플레이를 하는 풍조가 강하다. 공부도 물론 중요시하지만, 개인의 성적만을 챙기는 능력보다는 인간관계를 충실히 하는 능력, 남을 이끄는 지도력이나 상급자, 동료와 화합하는 친화력 등을 더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대인관계와 신뢰감을 중시하는 습관, 조직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오욕 뒤집어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질이 이런 문화 속에서 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19]

21세기 들어서 오프라인 커넥션만이 아니라 온라인 커넥션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는데, 이에 발맞춰 고대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에브리타임도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지만, 특히 고대의 자랑 중 하나인 고파스의 경우 각종 게시판에서 유통되고 누적되는 정보가 매우 방대할 뿐 아니라 영양가도 높다.[20]

3. 개방적, 포용적
고대생의 끈끈한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일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고려대 교수들 가운데 자교 출신 비율이 60% 정도에 불과한 것,[21][22] 고려대 외국인 교우는 물론 타대 학부 출신 고려대학교 석사, 박사 대학원생과 같이 꼭 고대 학부 출신이 아니더라도 맡은 바 최선을 다한다면 선뜻 주류 교우로 받아들이는 문화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는 오히려 외부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학교다. 이는 고대생들의 인간관계가 소규모 그룹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대규모 커뮤니티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데 기인하는데, 꼭 고대 학부 출신이 아니더라도 고대 공동체 내에 잘 적응해 맡은 바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고대 석박사 출신이어도 해외처럼 당연히 모교 학사 출신 못지 않게 교우로서 인정해 준다. 고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 교수 및 학생의 특기와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 역시, 그들이 개인의 소소한 친밀감이나 친목의식보다 큰 조직 내에서의 역할 분담과 성취 의식을 더 지향한다는 데 기인한다. 교수들도 이런 학교의 문화에 큰 자긍심을 느끼며, 어느 학생이든 '고대'와의 인연이 있다면 언제나 그들을 반갑게 맞이 하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4. 불굴의 기질, 집념
연구에 있어서 특유의 집념과 저력을 발휘하는데, 그로 인해 지구력, 참을성, 우직함으로 장기간의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법학은 오랜 시간의 공부를 참아내야 하는 분야이고, 한학, 철학이나 역사학도 어마어마한 양의 독서를 요하는 분야이다. 이에 대해서는 캠퍼스 곳곳에 서 있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 고대생의 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말이 있다.

5. 비판적, 저항적
학문적 기조는, 기성 학문에 수긍하기보다 독자적 대안을 제시하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데이터 분석을 통한 수리논증이 대세가 될 때에 그에 맞서 이론분석의 방법론을 동등하게 강조하기도 했고, 미국/일본 유학파가 주류를 이룰 때에는 그에 맞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사조가 들어와 학계의 주류가 되었을 때도 거기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전통적, 기본적, 원칙적인 입장을 같이 강조해왔다.

일제 시절에는 일본 문화가 워낙 주류를 차지하다 보니 학문에 있어서도 민족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했다.[23] 다만 민족주의의 병폐가 드러나 문제가 된 이후로 현재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차차 희석시키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또한, 해방 이후 한글 쓰기 운동이 대두되고 대한민국 교육이 한문을 점점 소홀히 하기 시작할 때에는 한문 해석 능력의 저하를 우려해 학생들의 한문 실력을 대단히 중시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일부 학과의 교내 졸업 요건에 한자 급수를 포함시킴으로써 이어 오고 있다.

6. 교풍의 변화
이렇듯 고려대의 학풍은 특유의 굳건함, 저력과 함께 정(情)이 합쳐진 모습으로 대표되어 왔고 이는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이점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측면이 과다해 학내에 수직적, 강압적 악폐습이 존재했으며, 실제 동문 모임이나 학교 생활에서 일명 '고대인다운 모습'을 지나치게 강요하여 개인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도 일부 존재하였다. 고려대학교가 지켜 왔던 ‘굳건한 기질’ 역시 다르게 말하면 보수적, 즉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인터넷&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법학과 의학 분야에 전문대학원 체제가 도입되며, 이공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고려대학교의 구성원은 이러한 변화를 따르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고려대학교의 공동체 문화 역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졌으며, 학사행정에 있어서도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오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몇 가지 존재하는데, 첫째는 총학생회의 장기간 계속되는 부재이다. 1990년대경까지 지속되었던 사회운동의 시대에 고려대는 그 중심에 서 있었고, 이러한 학생운동의 흐름은 대개 사회주의 또는 PC주의 성향의 학생회 및 회장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리가 장기간 공석이 된 것은, 출마한 후보의 자질 문제도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과거와 같이 전체주의, 집단주의적 사상으로 똘똘 뭉쳐 정치 투쟁 방식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 자체를 학생들이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은 과거와 같은 민중혁명 방식보다 학문지식 또는 과학기술에 의한 진보 방식을 더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집단 행사의 약화이다. 본교에는 4.18 구국 대장정, 사발식과 같은 단체 행사들이 많이 존재했으며, 이는 한때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고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는 인권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그로 인해 이러한 행사 속에 묻혀 왔던 다양한 폐해가 드러나게 되자, 이에 맞춰 재학생들 사이에서는 강제 참여에 대한 비판론이 대두되었고 결국 이러한 행사는 옛날과 같은 일방적 강요가 아니라 선택적 참여로 바뀌는 수순을 밟게 됐다. 이에 더하여 새로운 교육을 중시하는 자율형 고등학교 및 국제고 출신 학생들, 그리고 해외 유학생들이 늘면서 학과 내의 가부장적 색채나 시대착오적 위계질서, 또는 파시즘스러운 문화 행태 또한 학과를 가리지 않고 사라지게 되었다.[24]

그리고 셋째로 학사행정의 혁신이다. 그간 보수적이라 평가받았던 학교 운영이 2015년부터는 성적장학금 폐지, 절대평가제 도입 등으로 변화를 선도하게 되었으며, 2020년부터는 15년 가까이 사용되었던 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을 개편했고, '전과' 제도를 신규 도입하거나, 블록체인 기반의 모바일 학생증을 신설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종합하면, 고려대학교는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특유의 끈끈한 공동체 정신 및 정의감 등으로 주목받았으나 이제는 변화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게 과거의 공동체문화에서 부정적인 부분은 보완하고 그와 동시에 자유주의적 면모를 더하여 새롭게 발전해 나가는, 신구의 조화를 이루어낸 대학교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이는 긍정적인 변화이나, 자칫 너무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하여 그간 유지된 고유의 기질까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4. 국제 평가[편집]


2023년 국제 대학 평가기관이 측정한 고려대학교의 세계 대학 순위는 다음과 같다. 고려대학교는 영국 QS 세계 대학 랭킹 기준 2024년 세계 79위, THE 대학 순위로 세계 201~250위에 랭크되었다. 미국 US News 대학 순위 평가로는 세계 290위에 랭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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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QS
THE
ARWU
CWUR
USN & WR
CWTS P(10%)
Nature Index
2019
83위
198위
201-300위
178위
274위
223위
248위
2020
83위
179위
201-300위
174위
271위
225위
210위
2021
69위
166위
201-300위
163위
264위
212위
194위
2022
74위
201-250위
201-300위
164위
272위
213위
189위
2023
74위
201-250위
-
159위
290위
210위
193위
2024
79위
201-250위
-
-
-
-
-




5. 법인[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상징[편집]





7. 학생운동[편집]





8. 교우회[편집]





9. 학사제도[편집]





10. 강의[편집]





11. 학부[편집]





12. 대학원[편집]





13. 입학[편집]





14. 총학생회[편집]





15. 동아리[편집]





16. 운동부[편집]





17. 시설[편집]





17.1. 식당 및 매점[편집]





18. 고려대학교의료원[편집]





19. 교통[편집]





20. 각종 행사[편집]




21. 사건·사고[편집]





22. 여담[편집]


  • 90년대에 이공대 산학관(1996년 준공) 6층 126-16을 게임회사가 사용했다. '코마'라는 이름의 게임회사인데, 고전게임 칸 바람의 신화를 만들었다.
  • 상술하였듯이 인촌 김성수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출신이고 고려대학교 초대총장 현상윤은 와세다대학 역사학부를 졸업하였다. 와세다와 고려대는 1930년부터 스포츠 교류를 하고, 1973년부터 학술 교류를 할 만큼 연관이 깊다. 정치경제학부를 중심으로, 한중일에서도 보기 드문 학부 학사 복수학위도 제공 중이다.
  • 동아일보 신문 지면에 고려대학교 소식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가령 누가 고려대학교에 기부를 했다던지, 고려대학교 새 총장이 누구라던지 같은 이런저런 내용이 '피플&투데이' 지면에 실린다. 이는 김성수동아일보의 창업주이기도 하고, 현재 동아일보 사장인 김재호가 고려대학교를 운영하는 법인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3. 노동조합 현황[편집]




24. 출신 인물[편집]





25. 관련 문서[편집]




[1] 고려대학교 엠블럼에 쓰인 색의 컬러 코드는 각각
#8b0029
,
#d6cabc
다.
[2] 1946년 8월 15일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로 승격[3] 휴학생, 학사학위취득유예학생 미포함[4] 휴학생, 학사학위취득유예학생 미포함[5] 휴학생 미포함[6] 휴학생 미포함[7]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메디사이언스파크 등 일부는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다.[8] 김성수를 비롯한 고려대 초대 총장 등 다수 임직원, 교수진이 와세다대학을 졸업했으며,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초창기 고려대도 와세다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9] 일본 도쿄에 있는 조총련 계통의 조선대학교의 영문 명칭도 Korea University이다.[10] 직역할 시 Universität Korea지만 현지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11] 대학까지 살린 고료다이각코우(高麗大学校: コリョだいがっこう), 그리고 고려를 일본식 음독으로 읽은 고우라이다이가쿠(こうらいだいがく)로도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코리아다이가쿠(コリア大学)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12] 인촌 김성수는 1932년 재정난에 처해 있던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해 1934년 안암동의 신축 교사(校舍)로 이전하고, 선진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보성전문의 교육 여건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광복 후 1946년에는 보성전문학교를 기초로 종합대학 고려대학교를 발족시켰다.[13] 여기서의 '한국'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의미한다.[14] 영어, 독일어 표기.[15] 라틴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표기.[16] 프랑스어 표기.[17] 기사 참고[18] 전통적으로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걸 좋아하고 사발식, 4.18, 응원오티, 입실렌티, 고연전 등 인원 채우는 게 중요한 행사가 워낙 많다보니 사교성 없는 구성원도 거리낌 없이 다 불러서 끼워주고 함께 어울리는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그로 인해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 없이 외톨이, 히키코모리로 지내던 사람도 고대에 입학한 뒤부터 사회성을 기르는 경우가 많고, 직장생활에서 인간관계 등도 어렵지 않게 잘 풀어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19] 아무래도 대학 재학 중에 집단 체험을 많이 하는 만큼,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의 눈치도 생기고 분위기 맞출 줄도 알게 되며 갑분싸 발언도 안 하게 되고 겸손함이나 소탈함이나 배려심이나 기타 기본적인 매너 또는 인간미도 갖추게 된다.[20] 다른 대학교 같으면 처음부터 깜깜이 상태로 각개격파를 해야 했을 신입생들이 고대에서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선배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어 훨씬 더 편안히 새학기를 준비할 수 있다.[21] 고려대를 거쳐간 수많은 교수들 가운데 다수, 예를 들어 김병로, 현상윤, 안호상, 오천석, 유진오, 손진태, 이상은, 김상협, 김준엽, 현승종, 윤천주, 김충렬, 김우창, 문국진, 이필상, 김화영 등이 타교 출신이다.[22] 최근 들어 많이 낮아지고 있지만 서울대의 경우 자교 출신 교수 비율이 77% 이상이다.[23] 일례로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일공동역사연구회의 주축은 고려대 출신과 고려대 교수들인 조광, 김현구, 조법종 등이었고, 식민사관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비판하는 이희진 교수, 임나일본부설에 가장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이재석 교수 역시 고대 학부 출신이다.[24] 옛날에는 막걸리를 강제로 먹어야만, 4.18에 억지로 마라톤을 달려야만 공동체 정신이 심어진다고 다들 믿었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공동체 정신을 체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각종 온오프 커뮤니티에 활발히 참여하고, 조직 내 궂은 일을 묵묵히 처리하며, 동아리 내 인간관계의 갈등을 원만히 잘 풀어가는 방식으로 공동체 정신을 증명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