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드라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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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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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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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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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빈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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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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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선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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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의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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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빈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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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의 시대적 재현성 및 실제 역사와의 비교에 대해 탐구하는 문서.


2. 상세[편집]



  • 드라마 전체적으로 의빈 성씨, 즉 성덕임이 어릴 적부터 정조의 곁에서 정조를 보호하고 무사히 즉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여러 공적을 세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는 있으나 당연히 드라마 상의 창작으로, 덕분에 기존 정조 관련 사극에서 맹활약하던 홍국영의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 홍국영이 정조의 신임을 얻게 된 일화로 자주 소개되는 '이모비야(爾母婢也)' 사건을 성덕임이 해결한 것으로 바꿨다. 다만 극중에서는 누가 자신을 도왔냐는 정조의 질문에 홍국영이 성덕임의 행동임을 알면서도 자신이 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어렸을 때부터 정조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겸사겸사 전해지는 일화에서 존재하는 오류 또한 수정했다. 흔히 문제 구절이 '자치통감강목(自治通鑑綱目)'에 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저 책에는 그 문구 자체가 없고 '이모비야(爾母婢也)'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서적은 사기(史記)이며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부분에 실려있다. 극중에서 소동이 일어나는 책은 '사기'로, 문제가 되는 부분 역시 '노중련전'이라고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 후궁의 최고위격인 정1품 빈의 호칭인 자가[1], 세자빈인 혜경궁 홍씨의 경칭인 마노라(마누라)[2], 세손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하는 영빈 이씨[3]와 마찬가지로 영빈 이씨보다는 아니지만 예의를 각추는 혜경궁 홍씨[4] 등, 기존 사극에선 잘 지켜지지 않던 궁중 법도[5][6]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특히 임오화변 당시 세손이 할머니인 영빈 이씨를 매섭게 질타[7]하고, 영빈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쩔쩔매는 장면[8]은 어린 아이인 세손이 노인이라 할 수 있는 영빈보다 윗사람이라는 걸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묘사하고 있다.

  • 노론 음모론의 영향이 거의 없거나 약하다. 화완옹주, 정후겸, 홍인한이 세손의 적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이들이 정조의 승계를 방해하다가 몰락한 것은 엄연히 사실이고[9], 이것이 노론 전체의 조직적 음모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정순왕후이산과 달리, 음모를 꾸미는 노론의 수장이 아닌 중립적인 성격으로 나온다. 후반부인 14회에 가서 왕대비가 된 후 정조와 바둑을 두며 처음으로 노론을 언급하긴 하는데, 이 장면이 정순왕후와 정조의 연대가 깨지며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되는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김귀주 유배에서 비롯된 것이지 노론를 대표해 대립하는 건 아니다. 후반에 등장한 심환지가 정조에게 반기를 들곤 하지만 생각의 차이지 음모를 꾸미는 건 아니며, 최종회에서는 정조가 백성을 아끼는 성군이라고 인정한다.

  • 정조가 처음 성덕임에게 승은을 내리려던 때는 영조 42년인 1766년으로 정조가 15세, 성덕임이 14세이던 해다. 이에 반해 극중에선 4화 기준으로 성덕임이 18세이지만 아직 정조는 이제야 연애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 첫 승은을 거절한 시점이 뒤로 몇 년 미뤄진 셈인데, 아무래도 아무리 실제 역사라지만 미성년자가 미성년자에게 승은을 내리려는 장면[10]을 묘사하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실제 의빈 성씨는 혜경궁 홍씨의 집안과 연이 있어 어릴 때부터 입궁하여 혜경궁 홍씨가 수양딸처럼 키운 궁녀다. 당연히 정조와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보고 지낸 사이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극중에서는 성덕임을 키운 건 서 상궁이라는 가상인물이고 정조가 제대로 성덕임을 만나는 것 역시 십대 후반이나 돼서야 이뤄진다. 대신 혜경궁 홍씨가 성덕임과 오빠를 살려준 은혜가 있고, 덕임이를 친정집 청지기의 수양딸로 입적시킨다. 성덕임이 어릴적에 정조와 인연을 쌓았고 위기에서도 구해줬으나 정조 쪽은 그 어린 궁녀가 성덕임이라는 걸 모른다는 설정이 붙었다. 의빈 성씨가 궁녀가 된 사연과 정조와의 인연이라는 상당히 중요한 배경을 바꾼 셈인데 아마 이야기 구성을 위한 의도로 보인다.

  • 여러 사극에서 숱하게 지적받은 환도의 휴대 방법에 대한 연출적인 오류가 이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정조의 최측근 호위 무사인 강태호가 늘 한손에 칼을 들고 다니는 걸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극중에서 등장하는 모든 칼을 찬 군관들이 하나같이 한손에 칼을 드는 휴대법을 보여준다. 환도 항목에서도 지적하듯이 환도를 차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극중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손에 칼을 들고 다니는 방식은 없다.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사극에서 이를 지키지 않아 많은 지적이 있어왔고 최근엔 킹덤처럼 잘 재현한 사극도 나왔지만 아쉽게도 본 드라마에선 아예 지켜지지 않는다. 다만 활쏘기의 경우 그 동안 다른 사극에서 검지와 중지로 시위를 당기는 양궁식 노킹이 많이 나왔던 데 반해[11], 작중에서는 엄지로 시위를 틀어쥐는 조선 전통 사법을 반영한 듯한 모습은 보인다.

  • 반면 의상은 제법 잘 재현한 편인데, 영조-정조 대의 왕과 신료들의 복식은 그 시대 특징을 잘 살려 재현되었다. 대표적으로 그 시기에 와서 거의 가슴께를 다 덮을 정도로 커진 흉배라든가, 꽃모양 테두리가 없는 용보, 다른 시기보다 훨씬 더 커진 익선관의 끝자락 등[12]이 잘 재현되었다. 다만 세자의 용보는 은색이 아닌 금색이어야 했다. 어여머리와 떠구지머리, 상궁과 궁녀들이 입는 녹원삼 등도 정말 잘 재현했다. 그런데 6화의 친잠례 때 중전이 적의를 입는데, 국의(鞠衣)를 입는 것이 맞다. 또, 대수머리에 끈이 달려있는 고질적인 연출 오류가 일어났다. 덧붙여 사극 고질병으로 당의를 입을시 족두리를 같이 쓰는 것이 예법이나 무시하고 첩지머리로 다니며, 특히 화완옹주의 첩지[13]의 경우 원래 족두리를 고정시키는 용도와 맞지 않게 배씨댕기 수준으로 아주 크고 화려하다.

  • 아직 세워지지 않은 건물이 나온다. 창덕궁 주합루는 정조 1년에 규장각 건물로 처음 지었으므로, 작중 시점상 정조가 세손일 때에는 등장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부용지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뒤쪽에 주합루가 보인다. 다만 멀쩡한 건물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부용지에서 배경으로 주합루가 살짝 보이는 모습이 워낙 예쁜 촬영장소인만큼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조가 부용지에서 낚시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조와 영조가 같이 낚시를 하는 장면은 거기에서 착안한 듯하다.

  • 원빈 홍씨는 정조가 27세이던 해에 13세의 나이로 후궁이 되었으니 정조와 14살 차이가 난다. 극 중 이산의 나이가 19세이면 원빈 홍씨의 나이는 5세여야 하는데 6화[14]에서 등장한 홍덕로의 누이는 어떻게 보더라도 5세로는 볼 수가 없고 도리어 실제 역사에서 후궁으로 입궁하던 시점과 비슷한 십대 초반 무렵으로 보인다. 이처럼 원빈 홍씨의 나이가 몇 살 올라간 이유는 아무래도 위에서 언급한 첫번째 승은 요구 시점이 늦어진 이유와 비슷해 보인다. 아무리 실제로 있었던 역사이고 이를 묘사하는 사극이라지만, 요즘 시절에 십대 초반의 소녀를 후궁으로 들이는 장면을 연출하기엔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 원작에서는 합궁일에 정조가 와서 그냥 아무런 손을 대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있다 가는 것으로 묘사했다.

  • 5~6화의 메인 에피소드인 정조의 금족령 사건은 실제 있었던 소위 '기축별감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건은 사건이라 하기도 애매한 일로, 정조가 18살 때 처남인 청선공주의 남편 흥은위 정재화와 별감들과 기생집을 드나든 일을 말한다. 이 사실을 들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깊은 걱정을 했었다는 게 한중록에 실려있고 이게 사실상 사건의 전부로 단순한 일화 정도의 일이다. 극중에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정조가 몰래 기생집에서 자신의 세력들 즉 동덕회[15]와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졌었는데 이 사실을 밝힐 순 없기에 단순히 놀기 위해 기생집을 드나든 것처럼 되어 이에 크게 실망한 영조가 정조의 뺨을 때리고 금족령을 내리는 걸로 각색했다. 이 과정에서 영조의 행동이 손자에 대한 애정과는 상관없이 정상적이지 않으며 정조가 이를 트라우마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함께 묘사했다.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영조의 가족들에 대한 편애나 차별, 애정과 증오는 일반적이지 않고 매우 변덕스러웠던 편이었던 건 맞다.

  • 보통 생각시들은 궁에 들어온지 약 15년 정도가 지나면 성인식인 계례를 치르고 정식 나인이 된다. 일반적인 계례와 달리 궁궐 내명부의 계례는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입궁한 시점으로 기준[16]을 삼기 때문에 늦게 입궁한 생각시의 경우 서른이 넘어 계례를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의빈 성씨는 10살의 나이에 입궁했으나 극 중에선 7살의 나이에 입궁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7살의 나이에 입궁했다 해도 정식 나인이 되려면 약 15년은 있어야 하는데 덕임은 18세에 계례식을 올렸다. 다만 구한말의 궁궐에선 이 계례식까지의 기간이 10년 정도로 줄어들었고 이 줄어든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기에 영조 말기에 이미 기간이 줄어들었다고 주장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아마도 극중에서 본격적으로 정조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할 성덕임이 여전히 생각시라면 활동 반경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나인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실제 역사보다 입궁 기간을 앞당기는 것으로 절충을 한 듯하다.

  • 정조의 정비(正妃)인 효의왕후가 등장하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는 정조가 11세, 효의왕후가 10세이던 1762년에 벌써 혼인을 했고, 영빈이 사망한 것은 1764년이므로 1회 시작부터 이미 효의왕후는 세손빈의 신분이었다. 성인역으로 전환된 정조가 19세이던 시절엔 이미 혼인한 지 8년이 지난 시점인 것이다. 극이 끝날 때 까지 효의왕후는 등장하지 않으며 대사로만 한 두번 언급된다. 이는 아무래도 극의 전개상, 정조와 성덕임의 서로간의 로맨스를 쌓아올려야 하는데 효의왕후의 존재는 사실상 방해물[17]이다.[18]

  • 6화에서 정조가 활쏘기를 하던 중에 성덕임을 언급하는 홍국영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정조가 마지막 화살을 명중시키자 홍국영이 '이번에도 일부러 안 맞히실 줄 알았는데 맞히셔서 놀랐다.'라는 말을 하고 정조가 이를 얼버무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정조가 활쏘기를 할 때 늘 마지막 1~2발을 일부러 빗나가게 쏜 일화에서 따온 장면이다. 정조는 당시 기준에서도 빼어난 명궁이어서 50발을 쏘든 100발을 쏘든 원한다면 모두 명중시킬 수 있었지만 한 나라의 군주가 자기 재주를 뽐내는 게 좋은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부러 만발을 피했다.

  • 공식 홈페이지 소개에서 말하는 산과 덕임의 서고에서의 첫 만남은 계사년(1773년)[19][20]이다. 서고에서의 만남이 있은 후 혜빈 홍씨가 덕임에게 벌써 18살이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왔으니 시간을 거슬러 간 것이 아닌 이상 나이 오류이다.

  • 이전까지 비교적 실제 역사의 진행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분위기였지만, 8화부터는 꽤 큰 규모의 가상 스토리 라인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이미 주요 악역 중 하나로 소개됐던 제조상궁 조씨가 사실상 극중 모든 비극의 시발점인 임오화변의 숨겨진 배후라는 설정을 공개했다. 극중에서 조 상궁은 영조가 즉위하기 전인 경종 시절부터 영조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쓸 수 있는 궁궐의 실력자였고, 영조가 자신을 배신[24]하자 사도세자의 광증을 유발시켜 임오화변의 비극을 일어나게 만들어 영조와 영빈에게 복수를 하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악당으로 묘사된다. 거기다 극중의 현재 시점에선 최소 수십명의 궁녀들[25]을 모아 조직한 '광한궁'이란 일종의 비밀결사를 이끌고 있으며, 이 조직을 궁궐 내 궁녀들 대부분을 통제하에 두고 궁녀를 동원해 암살을 비롯한 각종 음모와 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엄청난 조직으로 만들어냈다. 역사적 허구를 둘째 치고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설정은, 기존까지는 상상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더라도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묘사하던 것과는 크게 결이 다르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암암리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던 내명부에 존재하기엔 이 '광한궁'이란 조직은 현실성이 너무 부족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결의 이야기를 전개한 드라마라면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되는 설정이 갑자기 등장한 셈이라 향후의 이야기 전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이런 조직을 생각해낸 배경을 추측하자면, 경종과 영조, 그리고 정조로 이어지는 이 시기엔 삼수의 변과 의심스러운 효장세자의 사망[21] 등, 궁녀나 상궁들이 관여하거나 혹은 관여됐다고 의심되는 사건들이 여럿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사극에서 자주 묘사하는 후궁들 사이의 저주 행위[22] 수준을 넘어, 세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왕까지 목표로 하는 초대형 암살 사건에 궁인들이 여럿 개입된 걸 바탕으로 아예 궁궐 전체에 암약하는 비밀결사에 대한 상상까지 발전시킨 걸로 추측된다.
    • 이미 등장인물 문단에서도 설명하고 있지만, 극중 설정대로라면 제조상궁 조씨의 나이가 대단히 애매해진다. 이는 단순히 배역을 맡은 배우 박지영의 젊은 외모가 문제인 게 아니라, 나이로 인해 설정의 설득력이 약해진다는 것이 문제. 영조를 왕위에 올리는 걸 도와 후궁이 되는 걸 꿈꿨으나 자기 대신 친구인 영빈이 후궁이 됐다고 하면, 조 상궁은 영조와 영빈과 비슷한 연배인데 극중 시점에서 영조가 70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조씨 역시 아무리 젊어 봐야 60대 후반이다. 조선 시대엔 나이 차이가 많아도 친구로 지냈다는 걸 감안해서 영빈보다 10살 어리다고 쳐도[23] 그 정도 나이인데, 내일모레 칠순을 바라볼 만큼 나이를 많이 먹은 상궁들은 대부분 은퇴해서 궁을 나가거나 그게 아니라도 실무에서 물러나 은퇴만을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다. 즉 설정 상으로는 극중에서 걷는 것도 힘들 만큼 나이가 많은 걸로 나오는 박 상궁이 조 상궁과 같은 세대인 것이다. 한데 이 나이에도 모든 궁녀들의 수장인 제조상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뒤로는 대형 비밀 결사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유지하고, 겉으로는 조정 대신과 화완옹주의 책략가로 활동하고 있으니 설정의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 사실 광한궁은 본작이 촬영되는 용인대장금파크 세트장에 딸려 있는 건물이라 '어차피 대여한 세트장인데 여기에다 활용하자'라며 끼어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이 세트는 다른 MBC 사극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던 곳이다. 대표적으로 옥중화의 메인포스터 속 장소가 이곳이다. 또한 성덕임 역을 맡은 이세영이 중전으로 출연했던 왕이 된 남자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 화완옹주가 혜빈에게 물을 뿌리며 "세손이 왕이 되어도 대비가 되지 못한다"고 악담을 퍼붓는데 이는 사실이다. 당시 세손이였던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큰아버지인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었고, 이에 따라 효장세자의 빈이자 큰어머니인 현빈(賢嬪) 조씨가 법적인 어머니가 되었다. 따라서 혜빈 홍씨는 세손 정조의 사친이되 법적인 어머니 대접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정조의 즉위 이후에도 '혜경궁'이라는 궁호를 받고, '자궁(慈宮)'이라는 칭호로[26] 불리며 왕대비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신분은 세자빈이었기에 정조 이후 서열에서 중전 효의왕후보다 밀려 내명부의 문안 순서도 대비 정순왕후, 중전 효의왕후, 혜경궁 순서로 정리되었다. 사실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효장세자를 진종(眞宗)으로 추존했기에 똑같이 효순왕후로 추존된 현빈 조씨가 왕대비가 되는 것이 맞았으나, 그녀는 정조가 태어나기 전인 1751년에 시아버지 영조보다도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복잡한 서열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27][28].

3. 관련 문서[편집]



[1] 비단 후궁뿐만 아니라 공주옹주, 군주, 현주, 대군, 에게도 붙는 존칭이다. 결혼하지 않은 아이 시절에도 자가라 부른 기록이 있다.[2] 다만 정조 즉위전 혜경궁을 '혜빈(惠嬪) 자가'라고 부르는데, 혜빈이라고 불릴 때도 세자빈이기에 자가 호칭은 잘못되었다. 세자빈은 남편인 세자가 사망했다 해도 여전히 세자빈으로 무품 상계이다. 또한 정조 즉위 후 궁호를 받으며 '저하' 라는 경칭을 함께 받은 것으로 묘사되는데, 애초에 즉위 전 혜빈 시절의 경칭도 '저하'이다.[3] 영빈 이씨는 신하인 정1품 빈으로 무품이자 앞으로 대통을 이을 세손에게 신하의 예를 해야한다.[4] 사도세자 생전에는 당연히 세자빈이니 정조의 친모이자 공식적 어머니로서 대우받았지만, 임오화변 이후로 정조가 효장세자의 자식으로 입적되는 바람에 더 이상 정조의 공식적인 어머니 대우를 받지 못했다. 공식적인 아버지가 효장세자가 되었으니 공식적인 어머니 역시 정조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효장세자의 부인인 효순왕후가 된 것. 하지만 혜경궁도 무품인 세자빈으로서 세손과 동등한 반열이며 세손의 사친으로서 하대와 존대말을 번갈아가며 사용한다.[5] 왕의 자식들은 친모가 누구든 간에 법도상 전부 중전의 자식들로 간주한다. 거기다 왕의 자식들은 품계상으로도 후궁들보다 높다. 따라서 후궁들은 설사 친모라고 해도 자기 자식에게 존댓말을 하고 윗사람으로 존대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효종의 후궁인 안빈 이씨. 자기가 낳은 딸인 숙녕옹주에게 너라고 했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다.[6] 흔히 사극에서는 '마마'라는 경칭이 후하게 쓰이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조선 후기에나 가야 남녀 공통으로 쓰였다. 최소한 영조대까진 궁중에서 마마는 '손위여성'에게 주로 썼다. 마마 항목 참고. 실제로는 왕, 상왕, 대비, 왕비, 세자, 세자빈에게 '마노라' 경칭을 더 자주 썼다. 대군, 군, 공주, 옹주, 군주, 현주, 빈에게는 '자가', 그 외 왕의 후궁들에게는 '마님' 또는 상궁과 동일한 '마마님'의 경칭을 썼다.[7] 임오화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건의 공개적인 명분 중 하나가, 바로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사도세자를 죽이라고 주청했기 때문이다.[8]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듯 드라마에서도 자기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세손이 이걸 직접적으로 힐난한 것.[9] 각자 이유가 다른데 화완옹주정조와 그의 정비인 효의왕후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아버지를 잃은 정조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억지로 올케 혜경궁 홍씨에게서 떼어놓을려고 하거나, 정조가 읽던 서책까지 질투할 정도로 정조에게 조카바보 수준을 넘어서 과도하게 집착했다가 되려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후겸은 몰라도 정조의 외종조부 홍인한사도세자가 죽어가는 와중에 그를 적극적으로 구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조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그가 즉위하여 자신들에게 숙청의 칼끝을 돌릴 것을 미리 걱정해 최후의 발악으로 정조의 왕위 승계를 훼방하고 그의 암살까지 모의한 것이다. 사실 이것도 임오화변의 진짜 원인제공자는 영조노론을 포함한 신하들은 아무것도 못하고 상황을 관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정조가 차마 자기 할아버지를 탓할 수 없어서 신하들 핑계를 대면서 비롯된 일이며 화완옹주는 순전히 정후겸의 양어머니라서 아들이 벌인 일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들어간 것에 더 가깝다. 이들도 어찌보면 피해자에 가까운 셈이다.[10] 물론 굳이 묘사하려면 청혼이나 고백 정도로 분위기를 만들 수야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승은이 동침을 요구하는 행위라는 걸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잘 알고 있다.[11] 다만 정조 이산은 간혹가다 양궁식 노킹으로 활을 쏘는 모습도 보이기는 한다.[12] 영화 사도에서는 흡사 세종대왕 시절의 작은 익선관을 서서 연출상의 오류라고 지적받은 바 있다.[13] 아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소용 조씨 첩지, 비녀를 그대로 가져다 쓴 듯 하다. 실제로 두 드라마 모두 나스첸카라는 동일한 장신구 업체에서 협찬을 담당하였다.[14] 4화 이후 특별히 큰 시간의 흐름은 없었으므로 이산의 극 중 나이는 4화와 동일하다.[15] 여담으로 정조의 측근들이 정식으로 모임을 만들어 동덕회란 이름을 붙인 건 정조가 즉위한 이후이다.[16] 일반적으로 계례를 빨리 올리면 15세 정도에 올리기도 하는데 입궁 15년이 됐으니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에 가깝다.[17] 현대인인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아무리 사극이라지만 본처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순정 어린 로맨스를 펼친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실제로 13년전 MBC 드라마 이산이 방영할 때 효의왕후가 선역으로 등장하는 상태에서 성송연과 이산의 로맨스가 펼쳐지자 시청자들이 주인공 커플의 러브라인에 대한 반감을 보이며 불륜 논란이 일기도 했다.(다만 이는 여주인공 성송연이 민폐여주 속성을 보여 시청자에게 밉상으로 찍힌 탓이기도 했다.)[18] 여담으로 실제 조선시대였다면 왕실의 일원이 19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하는 건 정말 예외적인 일이었다. 광해군의 탄압으로 21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못했던 선조의 딸 정명공주 정도가 그 극히 드문 사례인데, 이 21세라는 나이가 얼마나 부담이 됐는지 인조반정을 주도한 세력들은 반정 3일만에 정명공주의 부마 간택을 시작했다. 그나마도 공주의 나이가 너무 많아 비슷한 연배의 사대부 남성들은 모두가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약속하고 식만 못 올린 상태였다. 그때까지 아예 결혼을 못한 경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결혼이 불가능할 만큼의 심각한 하자가 존재했다. 따라서 반정세력들은 별 수 없이 미혼인 남자는 물론 약혼을 하고 식을 치르지 않은 남자들까지 강제로 사주단자를 내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 약혼은 했지만 조모의 3년상 때문에 식을 미뤄뒀던 홍주원을 선택하고 약혼을 깬 다음 공주와 혼인시켰는데 그렇게 했음에도 홍주원은 정명공주보다 3살 어렸다. 참고로 이 홍주원은 혜경궁 홍씨의 5대조 조상이기도 하다.[19] 정조 22세, 의빈 성씨 21세[20] 실제로 극 중 내용처럼 이 연도에 의빈 성씨가 곽장양문록을 필사했다.[21] 이 사건의 최종 배후는 경종의 왕비인 선의왕후가 있었다는 설도 존재하며, 이 설에선 선의왕후의 의심스러운 사망 정황에 비춰 영조의 보복 또한 있었다고 보는 편.[22] 물론 이것만으로도 궁인들은 물론 후궁까지 죽을 수 있는 중죄다.[23] 나이차를 10살보다 높게 잡기는 어렵다. 영조가 즉위할 때가 영조 31살 영빈 29살인데, 영조의 즉위를 도울 정도라면 그 때 조상궁은 낮게 잡아도 10대 후반이어야 한다. 그보다 어리면 나인계례도 못받았을 것이다.[24] 승은을 내려 후궁을 만들어주겠다 약속했으나 이를 어기고 조 상궁의 친구인 영빈을 후궁으로 삼았다.[25] 백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9화에서 이산이 직접 백 명 이상의 사병이라는 언급을 하였다.[26] 전통적으로 조선 왕실에서 국왕의 적모를 일컫는 칭호는 '자전(慈殿)'이었는데, 정조는 궁여지책으로 혜경궁에게 1단계 낮은 '자궁(慈宮)'이라는 칭호를 내리며 실질적인 대비로 대우했다.[27] 이는 대비 자리에 오를 사람이 없어서이다. 대비는 기본적으로 다음 왕이 즉위하여 기존의 중전이 대비가 되며 왕비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지 왕의 어머니가 대비, 할머니가 대왕대비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연산군 폐위 이후 중종이 즉위하였으나 연산군 당시 대비였던 자순대비도 그대로 대비로 남았다. 추가로 다음 왕이 된 인종은 즉위 이후 1년만에 사망하여 명종이 즉위할 때에는 인성왕후가 있었기에 인성왕후는 왕대비, 문정왕후는 대왕대비가 되었다.[28] 예외적으로 인수대비의 경우 의경세자가 왕으로 추증되며 왕비가 아니었지만 대비가 되긴 했다. 따라서 기존에 대비인 안순왕후와 함께 대비로 있어 서열 관련 논란이 발생했지만 대왕대비인 정희왕후가 맏며느리인 인수대비가 더 높다고 공표하여 문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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