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큰 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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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가사
4. 울산광역시 중구의 마스코트



1. 개요[편집]



울산광역시를 배경으로 하는 탁소연 작사, 나화랑 작곡하고 김상희가 부른 노래이다.


2. 배경[편집]


이 노래는 1969년 발표되었는데 작사가 탁소연 씨 친척 아주머니의 맏며느리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960년대 당시에는 한국전쟁이 휴전된 직후라 산업화와 재건사업으로 지방의 청년들이 여건이 닿는대로 모두 서울로 상경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남편 또한 서울로 돈을 벌러 떠났는데 그 남편을 기다리며 착실하게 가정을 지켜오는데

서울을 방문한 친척 아주머니가 “결혼을 한 뒤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혼자 가 있는 큰아들이 큰애기 (맏며느리) 에게 ‘서울에 와보니 예쁜 여자들이 많지만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돈 벌어 성공해서 갈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편지를 자주 보내온다.”는 사연을 전했다고 한다. 그 사연을 전달받은 탁 씨는 사연을 가사에 풀어적었고, 남편인 나화랑 작곡가와 맞추어 노래를 완성하였다.

나 씨는 어떤 가수에게 곡을 줄지 고민하다가 고려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머리 총각'으로 인기스타로 맹활약하고 있던 신인가수 김상희가 '울산 큰애기' 이미지와 잘 매치된다는 판단이 들어 노래를 주기로 결정했고, 예상 외로 큰 히트가 되어 가수 김상희의 대표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노래가 발표될 즈음의 경상남도 울산시는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에 따라 공업단지 조성이 추진되고 당시 인구도 약 27만 명이 거주하는 나름대로 인구가 많았지만 시내에는 비포장도로가 많고 우마차가 다니고 초가집, 적산가옥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한 외진 중소도시가 세월이 흘러 경상남도 울산시1995년 경상남도 울산군과 통합, 1997년 인구 100만명의 거대 산업도시로 발전되어 울산광역시로 승격되었고 현재는 대한민국 최대의 산업도시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고향을 떠난 전국의 울산 출신 국민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울산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로 2000년 울산광역시와 지역 기업체, 유지들이 뜻을 모아 간절곶에 노래비를 건립하였고 이 노래로 가수 김상희는 울산광역시 명예 시민증을 받으며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또한, 울산광역시 중구의 마스코트, 울산 현대의 치어리더팀의 이름으로 지정될 만큼 울산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잡았다.


3. 가사[편집]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

다정하고 순직한 울산 큰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도 많지만

울산이라 큰애기 제일 좋데나

나도야 삼돌이가 제일 좋더라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성공할 날 손꼽아 기다리어 준다면

좋은 선물 한아름 안고 온데나

그래서 삼돌이가 제일 좋더라



4. 울산광역시 중구의 마스코트[편집]


이 노래에서 파생된 캐릭터이다. 울산 중구에서는 이 캐릭터 그림을 버스정류장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뜻은 '울산의 젊은 여성' 내지는 '울산의 예쁜 아가씨'이다.
과거 중구가 울산의 원도심이었기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밀집돼있었기 때문에 '울산'과 젊은 여성을 뜻하는 '큰 애기'를 합쳤다고 공식 인스타그램에 설명돼있다.

무려 구청 소속 8급 공무원이다.
2022년 7급 공무원으로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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