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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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말기 ~ 대한제국의 군인 겸 정치인이다. 윤취동의 아들이자 윤웅렬의 동생이며 윤치호의 숙부, 윤치영 전(前) 서울시장의 아버지, 윤치소의 아들인 윤보선 전(前) 대통령의 조부이다.
2. 생애[편집]
조카 윤치호의 일기에 따르면 학식이 모잘라서 글을 못 읽지만 수완력과 판단력은 좋았다고 평가된다. 1938년 조카 윤치창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치창에게 "집이 돈에 비해 너무 큰 것 같지 않냐?"고 말한 것이 그 증거. 1867년[1] 한진숙[2] 과 결혼해서 6남 2녀[3] 를 두었다. 16세 때인 1869년 장남 윤치오를 낳았다. 자식도 많이 낳고 장수[4] 해서 1927년 회혼례도 올렸다.
3. 여담[편집]
여성 편력이 대단히 심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색마였다고 할 정도였다. 이 때문인지 여러 부인을 거쳤으며 자녀가 무지하게 많다. 총 20명이 넘는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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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는 나이로 14세. 다만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 일찍 결혼한 편이지 아주 이른 편은 아니다.[2] 1851년생으로 남편 윤영렬보다 3살 연상이다.[3] 첩이 낳은 자식까지 합치면 9남 5녀.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을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남아 있다. 그의 회고록에서 자식이 너무 많아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4] 2개월만 더 살았다면 50년대부터 40년대까지 모든 연대를 살 수 있었다. 조카 윤치호가 윤영렬의 자식들이 늙은 윤영렬을 잘 돌보지 않아 윤영렬이 말년을 빈곤하게 살았다고 자기 일기에 적은 바 있으니 자식들이 정성껏 돌보았다면 1940년대까지 살았을 수도 있었다.[5] 의친왕, 육종관(육영수의 아버지)와 더불어 자녀를 가장 많이 둔 인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