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슈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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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국왕

파일:슈룹 등장인물 이호.jpg

배우 최원영
조선의 국왕
드라마
파일:tvN 로고.svg 토일 드라마 파일:슈룹 로고.png
신분
조선파일:조선 어기.svg 국왕파일:조선 전기 국왕 용보.svg
가족
정비 임화령
모후 대비 조씨
후궁 귀인 황씨, 귀인 고씨, 소의 김씨, 숙의 최씨, 소용 태씨, 소원 문씨, 숙원 옥씨, 상궁 박씨
아들 세자 (사망), 성남대군, 이문, 이환, 이율, 그 외 여러 왕자들
며느리 휘빈 민씨, 윤청하, 초월, 심소군의 부인[1]
손자 원손 이한
손녀 군주[2] 이율희, 아라향주[3]
사돈 병조판서 윤수광,고씨부인[4]

1. 개요
2. 작중 행적
3. 평가
4. 여담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1 '''평판 : 성군. 지덕체를 모두 갖춘 애민 군주.'''
'''소문 : 있어도 못 적는다. 절대권력 왕이니까.'''



조선의 국왕, 임화령의 지아비. 14화에서 밝혀진 군 시절의 군호는 금영군


2. 작중 행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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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등장부터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역병으로 고통 중인 백성들을 어떻게든 챙기려고 하는 성군의 모습을 보여준 것에 이어 서자 출신이었던 본인의 과거 때문인지 세자 이외의 왕자들이 공부를 하는 종학수업에 참석해서 직접 왕자들에게 문제를 낸 뒤 그에 답을 한 왕자들에게 칭찬을 하는 동시에 모든 왕자들이 틀에 박힌 학문을 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힘을 키웠으면 한다는 조언과 함께 그들을 격려하였고, 왕자들 중에서 세자의 배동을 선발할 것을 명하는 등 자신의 자녀들을 두루 챙기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5] 다만 여색을 밝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승은후궁이 꽤 있는 편으로 중궁전이나 동궁전 궁녀 출신도 있는 상황이다.[6]

이후 배동선발의 초시와 복시에 본래 내기로 한 문제들만이 아니라 본인이 만든 문제까지 즉석으로 덧붙여 출제하여 왕자들과 시관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다만 그의 그런 행동으로 이미 영의정과 그를 따르는 시관들로부터 문제를 입수한 의성군이나 총명한 보검군 만이 아닌 다른 왕자들도 복시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고, 성남대군은 틀을 깬 답변으로 그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그리 시험을 거쳐 선발된 보검군과 세자와의 첫 공부 자리에서 세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서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이 혈허궐이라는 병에 걸려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고, 대노하여 이를 감췄던 중전 화령과 담당 의관을 각각 중궁전과 옥에 각각 가두었고, 특히 화령은 세자만이 아니라 대군들까지도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도덕경을 비롯한 경전들을 필사하라는 명을 내린 것은 물론이고, 필사본을 받는 역할을 맡은 상선에게는 화령에게 세자의 상태에 대해 함구할 것을 명한다.

그러던 중 그럴 생각이 없던 자신과는 달리 택현을 노린 영의정과 대비의 밀명을 받은 병조판서를 비롯한 대신들이 상소부터 시작하여 궐 밖에서 시위까지 하며 폐세자를 할 것을 주청하자 이에 반발하지만, 자신이 그 대신들에 의해 세워진 서자 출신 왕이라는 약한 정통성을 모친인 대비로부터 지적받자, 그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쉽게 나서지 못하던 중 화령이 나타나서 대신들을 향해 일갈을 하자, 근신 중이었던 화령의 입장을 근거로 그녀의 행동을 지적하는 영의정에게 자신이 그녀를 풀어줬다는 말을 하며 페세자에 반대하는 자신의 뜻을 확실히 밝힌다. 하지만 그 명을 내린 직후 동궁전 내관으로부터 세자가 위태롭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결국 동궁전에서 사망한 아들의 모습을 화령의 뒤를 이어 보게 된다.

이후 밤마다 중궁전 앞에 와서 불을 꺼진 것, 즉 화령이 잠에 든 것을 확인한 뒤 돌아가는 모습을 중궁전의 궁인들이 알 정도로 보여줬고, 불안에 빠진 세자빈의 문제로 찾아온 화령에게 자신에게도 세자빈이 찾아와서 알고 있으니 염려말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세자가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믿느냐는 자신의 말에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며 혹시 자신을 원망하냐는 화령의 말에는 이미 큰 벌을 받고 있지 않냐는 답을 하며 그녀에 대한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동안 세자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싶었던 자신과는 달리 세손이 아직 어린 점과 더불어 같은 방식으로 왕위에 오른 그를 예로 들어 택현을 통한 세자 책봉을 주장하는 영의정 일파와 자신이 원하는 아들을 세울 수 있으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실리를 챙기자는 명분으로 택현을 주장하는 대비 사이에서 분노를 느끼거나 지치게 되고, 독살 의혹을 제기하다가 화령이 외부 약재를 들여온 것을 알게 된 영의정이 이를 이유로 국문장에서 화령을 압박하고, 화령 또한 태인세자의 죽음을 꺼내어 맞붙자 국문을 다음날에 다시 하겠다며 중지시킨다.

결국 국문이 중지된데다 태인세자의 죽음을 꺼낸 화령에게 분노한 대비가 그에게 무엇이 두렵냐며 따지자, 대비를 포함해서 자기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들과 관련자들로 인해 더럽혀진 용상에서 끌어내려질까봐 두렵다는 말을 하고, 그 중 더럽혀진 용상이라는 말에 분노한 대비와 다투면서 그의 과거가 잠깐 드러나는데, 사실 이호 또한 자신의 서자들인 의성군이나 보검군처럼 혈통에 대한 열등감과 왕위에 대한 열망이 강한 인물이었고, 그 야심을 자신의 어머니였던 당시 귀인이었던 대비에게 드러내어 결국 아들의 야심을 안 대비가 역모를 꾸며 태인세자를 죽이게 된 것, 즉 이호 또한 태인세자의 죽음에 완전히 무관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다만 상술했듯 더럽혀진 용상이라 표현한 점, 대비가 원해서 벌인 일이 아니냐고 지적한 점, 그리고 후술된 성남대군과의 대화 중 '형을 죽게 한 동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굳은 얼굴로 그 말을 중얼거린 점으로 봐선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지는 않은 듯 하고, 대비나 다른 관련자들과는 달리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어머니의 위기를 알게 된 성남대군이 그를 찾아와 외부 약재는 자신이 들여온 것이라고 고백하였고, 자신이 책임지고 의원과 약재상을 데려와 약의 이상없음을 증명하겠다고 하자, 이를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아버지로서 걱정하는 마음에 아들의 행동을 막으려했다가 상술된 말을 듣고 그 의지를 확인하자 국문날까지 증인들을 데려오라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토지 선생과 약재상 모두가 갑자기 행적을 감춘지라 성남대군이 그들을 데려올 수 없었고, 화령은 아들 대신 외부 약재를 건낸 인물로 세자빈을 지목하였고, 그녀의 처소에서 그 약재까지 발견되면서[7] 영의정 일파가 중전 폐위에 이어 세자빈과 원손을 사사하라는 주장까지 펼쳐 더욱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영의정에게 어린 원손까지 죽여야겠냐는 말을 남기며 그 자리를 떠난다.

화령의 행동이 계획이었다는 것을 몰랐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증인들을 찾아오겠다는 성남대군과 이미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한 그는 세자빈 일가 문제로 갈등하게 되고, 그가 임금이라고 해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자 아들이 임금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느냐. 정말 바꿀 수 없느냐는 말을 하고 떠나자, 자신의 처지 때문인지 분노하여 옆에 있던 대나무에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중 화령이 대비와 영의정을 만나 택현에 동의한 것과 동시에 중전 자리를 걸고 현재의 갈등을 끝낸 것을 안 그는 그들이 만든 왕은 자신 하나로 족하다며 그녀의 결정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화령이 과거 그가 화령에게 '내 비록 신하들이 세운 왕이지만 신하가 아닌 백성을 두려워하는 임금이 되고 싶다'는 화령 왈. 이 남자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말을 했던 일을 언급하며 자신은 대군들을 믿고 있고, 어차피 다른 왕자가 세자가 된다면 배알이 꼴려서 그 꼴은 못 볼 것 같았기에 여러모로 각오하고 벌인 일이라고 답하는 동시에 택현의 의미 그대로 정말 실력대로 능력있는 왕자를 세자로 책봉해달라는 부탁을 하자 결국 영의정 일파의 요구대로 택현을 받아들인다. 단, 자신이 만든 선발 과정으로 세자를 뽑겠다는 의견을 밝혀 영의정 일파나 간택 후궁들을 당황하게 하였고, 왕자들 전원을 보쌈하는 식으로 한 산으로 데려온 뒤, 미리 준비한 평복을 입게 하고 정해진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달려오라는 명을 내린다.

성군이라는 평가와는 별개로 자신을 왕으로 세운 대비나 영의정 일파에게 끌려만 다닐 것이라고 추측되던 것과 달리, 폐세자 논쟁이나[8] 중전 폐위 등과 같은 사건들에서 기회나 명분이 있으면 1회에서의 역병 문제 논쟁 때처럼 단호한 모습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8화에서 성남대군이 경합 도중 산 속에서 도적떼에게 습격을 당할 것을 대비해 정찰대를 보냈고, 정찰대가 도적떼를 소탕한 뒤 증거들을 모두 수집하게 한다. 이후, 도적떼가 썼던 화살촉 하나를 가지고 황원형을 부르나 되려 태인세자가 대비에게 죽던 당시, 이호가 그 당시 상황을 목격하고도 방관한 사실로 협박당하게 된다. 이후, 황원형의 협박을 당한 이호는 성남대군을 습격한 사건에 대한 조사를 포기하게 된다.

9화에서 화령에게 대비가 산적을 사주해 성남대군을 죽이려 한 사실을 전해 들으나, 대비를 심문하러 대비전에 방문했을 땐 대비가 화령에게 받은 천남성을 명분으로 몸져 누운 연기를 하는 통에 심문에 실패하고 물러난다.

10화에서 택현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 왕재를 가리려는 의지를 화령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드러낸다. 도성 내에 성남대군의 출생에 관한 소문이 돌자 이를 저지하려 시도한다. 황 귀인에게 계성대군의 비밀을 말로 들으나, 그 증좌인 여장한 계성대군의 초상이 고 귀인과 화령의 계략으로 바꿔치기되어 있던 탓에 이를 모함으로 받아들여 분노하고, 황귀인의 처분을 중전 화령에게 넘긴다.


이후 박경우가 보검군과 성남대군의 조서를 모두 받아들여 입궁한 관계로 두 왕자를 모두 통과시키고, 의성군이 서함덕을 입궁시켜 문안시킨 직후에 역모죄를 밝히자 의성군을 통과시키되, 자신의 앞에 역적을 데려와선 안됐었다며 의성군을 타박한다.

3. 평가[편집]


7화에서 대비 조씨의 역모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 준 것도 모자라 대비 조씨의 역모를 알고도 방관한 인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이호 또한 대비 조씨와 함께 만악의 근원이었음이 드러나게 되는데, 다만 그 과거가 드러난 대비와의 대화에서 더렵혀진 용상이란 말을 한 점이라든지 성남대군과의 대화 중 '형을 죽인 동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말에 반응하는 모습 등으로 봐선 대비나 다른 관련자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비와 대신들에게 계속 끌려다니지 않고, 화령을 도와주는 모습은 호평받는다.

▮ 일개 종학에서 왕이 배출 되었다.

후궁이었던 조귀인【대비】의 소생. 어릴 적부터 워낙 총명하고 육예에 뛰어났다. 모든 책을 섭렵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글은 상소문. 그것이 읽고 싶어 늘 편전을 기웃대는 바람에 선왕은 어린 이호를 무릎에 앉히고 못 이기는 척 업무를 보기도 했다.

▮ 군약신강【君弱臣強】 왕권을 반석 위에 올리고 싶었던 선왕의 선택!

태인세자가 죽음으로 내몰리고, 윤왕후와 대군들이 쫓겨나는 순간에도 선왕이 이를 방관했던 건 대의를 위해서다. 이 나라를 위해서는 왕권을 뒤흔드는 외척을 누르고 이호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맞다고 암묵적 동의를 한 것.

▮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와 굴레를 심연에 숨기고 있다.

이호는 자신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나라에 불어닥친 피바람을 모르지 않았지만, 나서지 않았다. 괴로워하기보단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한다. 그 결과 20년이 흐른 지금, 태평성대를 열었고, 성군이라 불리게 됐다. 허수아비 왕을 원했던 공신들은 이호의 성장을 두려워하고 그들에게서 완전한 독립을 원하는 이호는 왕권을 강화하려 애쓰고 있다.


정리해보면 이호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신분때문에 계승에서 밀린 것에 대해 억울하고 자신이 세자가 되고 싶었던것은 맞지만 형을 죽이면서까지 될 생각은 없었던 듯하다.[9] 그러나 대비는 자신이 한 하소연때문에 거침없이 자신의 이복형을 죽여버렸고 그로 인해 갈등했지만 대의를 생각해서 왕위에는 올랐고 그것을 속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자신의 이복형을 살해한 어머니를 방관했다는 점으로 20년간 마음고생을 한 복잡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복형을 죽인 어머니를 방관했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이호의 입장에서는 어머니를 발고하기도 뭐한 입장이긴 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어머니는 세자를 죽인 역모죄로 죽을 것이며, 역적의 가족은 삼족을 멸하는 원칙을 생각해보면 본인 역시 어찌저찌해서 살아남긴 하겠지만 폐서인 강등 등의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10] 또한 역모죄는 피할지라도 부모를 고발하는 꼴이기에 그 당시 죄로 여겨지는 패륜으로도 정적들에게 찍힐 수 있게 된다. 단순히 형의 억울한 죽음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몰아가기에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4. 여담[편집]


  • 백성을 아끼는 성군이자 모든 자녀들을 두루 챙기며 세자 이외의 왕자들에게도 가르침과 기회를 주는 모습에서는 세종대왕의 모습이, 어머니가 수많은 역경을 딛고 보위에 올린 모습, 피바람 이후 태평성대를 열었다는 묘사, 마지막으로 후궁이 하룻밤 사이에 수가 늘 만큼 여색을 밝히는 모습[11] 등에서는 성종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 인종이나 효종의 이름과 같다. 다만 정통성[12]을 비롯한 세부사항은 완전히 달라 단순 우연인 듯하다.

  •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승은후궁만 여럿일 정도로[13] 바람둥이지만 세자가 죽은 후 매일같이 중궁전으로 와서 화령이 잠에 들었는지 확인하고, 화령이 잠에 들기 전까지 중궁전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과 화령에게 평생의 벗이라고 직접 말하는 모습 등을 보아 누구보다 조강지처인 중전 임화령을 사랑한다.[14][15]

  • 머리가 굉장히 비상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회상을 통해서 학문이 굉장히 뛰어났음과 조선의 국정을 20년간 잘 운영해 성군이라는 평가를 듣고있는 것과 동시에 자식인 세자, 그리고 대군들의 머리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16] 보검군을 보면 확실한게 보검군의 모친인 태소용은 단순무식의 표본이다(...). 그런데도 독학으로 공부한 보검군이 의성군, 성남대군을 앞서간걸 보면 보검군의 두뇌는 부계쪽임을 알 수 있다.
[1] 16회를 기준으로 심소군이 출합하여 결혼과 임신에 성공한 듯 하다.[2] 4-5화 기준 세자빈 민씨가 둘째인 딸을 낳았으며, 왕세자의 적통 딸, 즉 세자빈이 낳은 딸을 군주라고 한다. 또한 왕세자의 후궁이 낳은 딸은 현주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사도세자와 세자빈인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낳은 두 딸들이자 정조의 여동생들인 청연군주, 청선군주가 있다.[3] 작중에서 화령이 아라현주라고 언급하는데 세자가 아닌 대군의 딸은 현주가 아닌 향주라 부르는것이 맞다.[4] 배역을 맡은 김선화 배우의 소속사 인스타그램에서 성씨가 공개되었다.[5] 다만 종학관인 도승지와의 대화에 의하면 세자의 배동을 선발하는 이유는 너무 올곧기만 한 세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왕자를 옆에 두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6] 다만 당대 기준으로 국왕이 극 중 이호처럼 후궁이 많은건 득이면 득이었지 결코 실책은 아니었다. 본래 국왕의 의무 중 하나는 최대한 많은 왕손들을 보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후궁들을 많이 두는 것 또한 의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조선 최고의 명군으로 평가받는 태종 이방원세종대왕 모두 후궁들을 많이 보아 그만큼 자녀들을 많이 본 국왕이기도 했다. 다만 태종은 정실 원경왕후와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부부싸움을 많이 했지만[7] 물론 이는 단순히 회피하고자 벌인 일이 아니라 화령의 작전 중 하나로, 위험에 빠진 자신과 세자빈 일가를 구하기 위해 낸 결정이었다.[8] 심지어 이건 대비가 마지막에 나타나 최후의 한방을 때리었으나 이를 뿌리쳤다.[9] 즉, 어찌보면 그냥 어머니에게 신세한탄을 했을 뿐인데도, 의도치 않게 나비효과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10] 이호는 사실 자신의 형을 죽인것은 아님으로 상당히 억울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11] 다만 이쪽은 세종대왕도 못지 않았다. 한국사 최고의 성군이라는 이미지에서 가려져서 그렇지 세종 역시 10명의 후궁을 들였고 그들 소생의 서자녀들만 무려 10남 2녀에 달한다.[12] 인종은 중종의 적장자로 이복형 복성군을 비롯한 중종의 서자들을 제치고 세자가 될 정도로 막강한 정통성을 자랑했지만, 이호는 아무리 간택 후궁이라지만 엄연히 후궁 소생의 서자였고 어머니인 조씨가 태인세자 암살부터 수많은 죄를 저지른 끝에 겨우 왕위에 올랐다.[13] 다만 태소용같은 뒷배가 없는 궁녀 출신들은 정말 마음에서 들어서 승은을 내릴 것일테지만 황귀인같은 간택 후궁들은 조정의 세력 균형을 위해 들인 정략결혼 상대라고 할 수 있다.[14] 정실을 냅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점에서 황후의 품격이혁도 비슷하지만, 이쪽은 처음에는 오써니를 냉대하다가 후반부에서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차이점이 있다.[15] 사실 현대 시점에서야 바람둥이 소리를 듣는 것이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왕손을 많이 낳아서 왕실을 다복하게 한 것은 왕으로서 당연한 책무를 다한 것이다. 수많은 후궁을 두고 있으면서도 중전인 화령을 제일로 여기며 대우하는 것 역시 지극히 군주다운 사랑법.[16] 물론 무안대군같은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 다섯 자식중 세 자식이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며 막내 일영대군 역시 천문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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