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상(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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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인물은 태종 이방원(드라마)/등장인물 참고




이화상
李和尙


파일:1638498544092_351540.jpg

캐릭터
등장회차
1회 ~ 27회, 32회
배우
태항호

1. 개요
2. 인물 관련
3. 인물 묘사
4. 작중 행적
5. 인간 관계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1 이지란의 아들. 이성계의 아들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친형제처럼 지낸다.
권력과 재물을 탐내기보다는 사람을 좋아하고 신의와 의리를 앞세워 행동한다.
특히 방원을 잘 따르며 방원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해결하려고
한다. 가끔 눈치 없이 내뱉는 말들이 폐부를 찌른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로 이지란의 아들이다.


2. 인물 관련[편집]


이름을 통해서 보면, 실존 인물인 이지란의 장남인 이화상(?~1398년)으로 그동안 동 시대를 배경으로 다룬 사극에서는 반영이 되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화상은 위화도 회군이 벌어질 당시 이성계의 아들들 중 이방우, 이방과와 함께 인질로 잡혀있다가 같이 탈출했고, 이후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1]에 봉해졌고, 1398년(태조 7)에 공조전서(工曹典書, 공조판서)에 있었던 사람이다.

다만, 본 작품에서의 이화상은 동명의 실존 인물+이지란의 다른 아들들 모두[2]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소개에서도 '이지란의 아들'이라고만 썼지, '이지란의 장남'이라고 쓰지 않았으며, 작중에서는 1차 왕자의 난이 벌어진 16회와 17회 이후에도 생존해 태종의 즉위는 물론 승하할 때까지 등장했기 때문으로 실제 여기에 부합하는 사람은 이화상의 동생인 이화영(李和英, ?~1424년)이다. 이화영과 행적이 합쳐지면서 원래 역사에서 죽은 이후에도 등장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는 개입하지 않고[3] 이방원과의 개인적 친분만 다뤄지면서 역사 왜곡 논란은 피했다.

여담으로 이와 관련해서 이지란 역의 선동혁이 다른 출연작과 관련해서 한 언론사와 한 인터뷰를 통해 〈태종 이방원〉 관련 답변과 더불어 태항호와 분장한 모습으로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출연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선동혁은 아들이라고만 언급하고, 기사에도 그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사료에 나온 이지란의 네 아들 중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었다. 본 드라마의 다른 출연자인 이원발의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의 5:33초 경을 보면 대사에서 "화상이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지란의 아들들은 실제로 언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으나 작중 이화상은 1회 시점인 위화도 회군이 일어났던 1388년에 17살로 이방원보다 5살 어리다는 설정이다. 이지란의 나이는 이성계보다 4살 많은데도 이지란의 장남이 이성계의 장남인 이방우보다 18살 어리다면 꽤 늦둥이라는 소리다. 이 때문인지 작중에서 이지란이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3. 인물 묘사[편집]


아버지가 만주 지역과 함경도에 살았던 여진족 출신인 점을 반영하여 옛 함경도 방언을 구사하는데, 말투를 자세히 보면 표준어 속에서 "아바이"(이지란을 부를 때), "야(예)↗?"를 많이 하는 편이고 이지란과 함께 개그 캐릭터이자 귀요미 캐릭터로 등장한다. 초반에는 아버지처럼 댕기머리를 하고 다니는데, 작중 내내 댕기머리로 다니는 아버지와는 달리 13회부터는 상투를 튼 조선시대 사대부의 스타일로 바뀌었다.[4]

작중에서 정몽주 척살 이후 갈등을 빚는 이성계와 이방원 쪽과는 달리 아버지 이지란과는 사이가 좋은 부자 관계로 그려졌다. 물론 1차 왕자의 난 당시 한번 갈등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후 이지란이 고향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찾아와 애틋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비슷한 시점에서 아들인 이방원을 죽이기 위해서 군사를 모아 난을 일으킨 이성계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아버지 이지란이 의형인 이성계를 따르듯이 본인도 이방원을 잘 따르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면서 가족 구성원 중에서는 사실상 막내에 해당되는데, 실제 이방원의 동복동생인 이방연은 작중에서는 이미 요절하였고, 이복동생인 이방번과 이방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데다가 이후 왕위를 두고 싸웠던 관계이기 때문에 이화상이 작중에서 막내이자 이방원의 개인적인 심복 역할로 많이 활약한다.[5] 물론 이방우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과도 친하는데, 유독 이방원과 대화를 자주하는 걸 보면 다른 형제보다 이방원과의 친분이 두터운 걸로 본다.[6]

그리고 그 대화도 보면, 매우 편하다고 볼 수 있는데,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이방원이 조사의의 난을 진압한 후 이화상을 불러서 역모를 고변한 상을 줄 때다. 임금과 신하 간의 근엄한 말투가 아니라 마치 저잣거리에서 허물없이 대화를 하는 형제간의 모습이다. 심지어 이화상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면서 인사할 때 너무 어색하게 말할 정도였다. 이처럼 순박하고 욕심 없는 이화상을 아끼는지 드라마에서 늘 굳은 얼굴인 이방원이 밝아지거나 웃는 경우가 많은 장면이 바로 이화상과 얽히는 장면이다. [7]

4. 작중 행적[편집]


1회에서 방우, 방과와 더불어 인질로 잡혀 있었음에도 태평하게 방과에게 코가 잡히고도 코를 골면서 자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러다 방과의 계책에 따라 방우와 방과가 자결했다고 소리쳐서 자신들을 감시하던 병사들을 처소로 유인하는 역할을 하고, 결국 방우, 방과와 함께 병사들로부터 제압한 뒤 탈출한다. 무장한 병사들을 맨손으로 들어메치는 것을 보면 완력은 상당한 수준. 이후 회군 중인 요동 정벌군 진영에 도착하는데 아버지 이지란과 상봉하게 되자 그와 얼싸안으며 기뻐한다.

2회에서는 전주 이씨 형제들과 더불어 개성 공방전에서 맹활약하는데, 아버지와 창을 쓰면서 전장을 휘젓는 활약을 보인다. 전쟁이 끝난 뒤 군막에서 아버지 이지란과 함께 그가 지은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게 되는데, 그것이 이지란이 잡은 들개고기라는 것을 알게 되자 다른 병사들은 보리밥만 먹는 상황에서 우리만 웬 고기냐면서 화를 내고, 알고 보니 그 개가 주인이 있는 개여서 주인이 찾으러 다니자 모른 척하고 그를 도와주듯 개를 찾는 시늉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한심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회에서 이방원을 제외한 다른 이씨 형제들이 모인 자리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서 간식을 먹다가 말을 함부로 하고 떠난 방간에 분노하여 한탄하는 방의를 위로하는데 눈치 없이 "형님이 작고 만만해서 그렇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방의의 눈총을 받고 말이 헛나왔다며 얼른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다. 이후 가별초를 훈련시키던 아버지에게 회합에 대해 보고하고,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말에 화가 난 이지란이 그냥 상왕의 목을 베어버리면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하자, 그래도 상왕인데 그게 말이 되냐고 답한다.

4회에서는 급히 말을 타고 이방우와 이방원에게 이성계가 동북면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린다.[8]

6회에서는 민씨에게 "나한테도 할 일 좀 줘라."라면서 간청을 해 저자 거리의 소문을 이방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이후 한씨의 장례식에서 아버지 이지란과 다른 이들과 함께 애도한다.

7회에서는 민씨의 부탁으로 3년상 치르는 이방원에게 서신을 전하는데,[9] 곱게 심부름만 하고 가면 좋겠지만 코 골면서 자거나, 이방원이 힘들게 장작을 패는데 옆에서 곶감을 쩝쩝거리며 구경하는 개그씬을 찍는다. 왜 안가고 있냐면 방원이 심심할까봐 자기가 있어준다고(...).이걸 한대 팰까 말까하는 방원의 딥빡은 덤[10] 그러나 이성계가 낙마 사고를 접한 후로는 이방원의 결정에 따라다니며 진지해진다. 정몽주를 제거하자는 의견에 다른 이들과 동의하지만 아버지 이지란의 일침에 입을 다문다.

8회에서 이방원의 부탁을 받고 정몽주의 사망 사실을 이성계에게 알려주었다.[11]

9회에서는 아버지와 통닭을 구워서 먹으며[12] 수컷이나 사람이나 자기 새끼가 자신보다 넘어서는 위협이 될 때가 호감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를 거의 듣는 둥 마는 둥 통닭을 맛깔나게 쩝쩝거리다가 이지란이 칼을 들고 자신의 말 거역하면 자살할 거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알았다고 하고 백발이 될 때까지 모시고 살 거라고 한다. 그러고 술잔을 흔들어본 이지란이 술 가져오라고 호통치자 적당히 드시라는 얘기 꺼내다가 오히려 한 대 맞을 뻔하고 깨갱하며 다녀온다.[13] 이후 정도전과 사대부들이 국새를 가져왔을 때는 같이 따라와서 방원과 형제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또 형제들과 술 한잔 할 때는 혼자서 닭고기 먹방을 찍다가 방간이 자신이 왕자가 되었다니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며 좋아하자,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당장 꼬집으려는 듯 반쯤 일어나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그럼 한번 꼬집어 주냐고 물어보았다가 이방간이 정색하자 자신이 너무 나섰음을 알고 당황해서 재빨리 죄송하다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이방간이 얼른 음식이나 마저 먹으라며 화내는 척 장난을 치자 쫄아서 눈 안 마주치고 냉큼 집어 먹는 개그도 찍는다. 이후 술상을 푸짐하게 준비하는 민씨 부인에게 상다리 부러진다면서 닭다리 뜯어 먹으려다 한 대 맞지만, 결국 민씨가 한눈 판 사이 기어이 전 한점 집어먹는다. 여담으로 해당 회차에서 먹은 음식이 전부 닭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을 알게 된 민씨가 방원에게 기대어 오열하자 멀찌감치 떨어져서 울먹거린다.

10회에서 방석이 세자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방원에게 전해준다. 동복 형제들을 설득하려는 방원을 따라 수행하고 신덕왕후와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고 망연자실한 이방원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11회에서는 아버지 이지란이 개국공신으로 책봉되면서 하사받은 땅으로 가 노비도 받을 거고 이 넓은 땅이 다 우리 거니까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거라는 얘기를 듣지만 귓구녕 청소를 하면서 대충 듣다가 그까이거 거절할 줄도 알아야지 왜 받았냐고 지적하지만 어명은 받들라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누릴 건 누려야 한다는 한 마디에 한숨을 쉬면서 차라리 소처럼 누워서 쉬겠다고 한다. 이에 소가 아니라 곰이라고 핀잔을 듣는다. 더 둘러보자는 제안을 거절하며 정안군이 걱정되어 가봐야겠다고 말한다. 이후 이방원이 가별초 500호를 하사받자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12회에서 민씨와 함께 명나라에서 귀국하는 방원을 마중나가 부부가 상봉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방원에게 민씨가 보름 전부터 매일 나와 기다렸다고 말해준다. 그러고 나서 셀프 허그 그리고 귀엽다

13회에서 1397년으로 시간이 흐르자 수염이 생겼다. 더불어 여진족스러운 복식도 조선 상류층다운 복식으로 바뀌었다. 친어머니 한씨의 무덤에 와서 결심을 다지는 이방원을 따라오는 걸로 등장하는데, 이미 이방원의 결심을 들었는지 정말 그렇게 할 거냐고 재차 묻고, 넌 어떻게 하겠냐는 이방원의 물음에 당연히 형님을 따를 거라고 답하고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14] 이후 민씨와 함께 전라도에서 상경한 이방원의 사병들에게 음식을 나눠준다.

14회에서 민씨와 무예를 겨루다가 무기를 놓쳐서 지고, 웃으면서 언제 그렇게 많이 배웠냐고 묻고 어려서 동생들이 배울 때 같이 배웠다는 답을 듣는다. 그러자 이화상이 농담이랍시고 이러니까 방원이 첩을 안 들이고 민씨를 떠받드는 거라고 말했다가 민씨의 눈총을 받고 몇 대 더 맞는다. 집안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들 웃자 그냥 같이 웃어 버리는데, 후일 방원과 민씨에게 닥칠 파란을 생각하면 묘한 발언. 그때 어두워질 때까지 훈련을 하기로 했던 사병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훈련을 나갔던 부하 장수에게 방원이 이성계를 마주쳐 방석이 나서지 않았다면 목이 베일 수도 있었다는 얘기를 민씨와 함께 듣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민씨에게 일단 집에 가고 연락할 때까지는 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 집에서 걱정이 되어 그 와중에 또 뭘 먹으면서 방 안을 서성거리다가 밖으로 나가 우물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이지란의 얼굴에 물을 뿜는다. 이후 장작불 앞에서 이지란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지란은 무언가 눈치챘는지 아들에게 정안군 집에 가지 말라, 딴 생각 품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15회, 16회에서는 궁궐에 갇힌 이방원을 데리고 오기 위한 민씨의 꾀병을 궁궐에 알리는 역을 맡으며, 이후 운명을 이겨내고 1차 왕자의 난에 참가한다. 조영무가 궁문을 열고 나와 투항하는 장면에서, 갑옷을 입고 이방원 오른편에 서있다. 왼편에 서있는 사람은 민씨. 이때 이방원 뒤에는 이숙번-하륜-민무구-민무질 순으로 서있다.

17회에서는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 부부에게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린 아버지를 향해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아버지도 백부님 믿고 큰일 벌인게 아니냐. 자신도 정안군 형님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큰일 벌인거다. 나도 내 인생 살아야 할 거 아니냐'라고 항변하자 이지란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회에서는 2차 왕자의 난이 발발했지만 "양쪽 다 나한테는 형"이라며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음으로서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에서의 생존 사실을 절충한다.

21회에서는 과거를 속죄할 생각으로 도성을 떠나 부처님을 섬기며 초야에 묻혀 살겠다고 하는 이지란에게 나랑 사냥이나 하며 살자고 붙잡지만, 아버지로부터 역적들과 잘 지내라며 배웅도 나오지 말라는 말만 듣는다. 결국 말을 타고 떠나는 이지란을 향해 연락은 꼭 해달라 외치며 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23회에서는 아버지를 찾아와서 오랜만에 같이 잠을 자며 평온한 부자생활을 즐기는듯 했으나[15], 한밤중에 아버지가 사망하였고 뒤늦게 일어나서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자 "마파리(Mafari)!!! 우리 아바이 좀 살려주시오!!! 우리 아바이 좀 살려주시오!!! 아바이!!!!"라 외치며 절규한다.[16] 이후 장례를 치르던 중 길가에서 우연히 반란군이 집결하는 모습을 목격한다.[17]

24회에서 "아바이 미안하구만, 아바이 곁에서 3년상 치르라 캤는데 안되겠다"며 도성으로 돌아와 반란군이 동북면은 물론 서북면의 군사도 규합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동북면에 정세를 알아보러 관리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죽을 것이라며 경악한다. 진압군이 출정하는 중에 자신도 나가겠다고 방원에게 청하지만, 방원은 이화상이 아직 상중이고, 이지란이 마지막까지 태상왕의 신하였음을 들어 만류하고는 집으로 돌려 보낸다.

25회에서 방원과의 독대에서 방원이 숙부님처럼 너도 노루를 잡아다 맛있는 음식을 좀 만들어서 이성계에게 바칠 수 있겠느냐고 하자 아버지 옆에서 보고 배워서 할 수 있다고 답한다. 그렇게 물러날려던 중 방원이 "너도 어엿한 공신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선공감 주부라는 종6품 관직을 내려주자 질색하며 사양하였지만 어명이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받든다.[18] 25화에 몇 없던 태종의 웃음이 나오는 씬(다른 한 번은 유정현과 대면할 때)으로[19], 상술된 관직에 대한 대답부터 "야(예)↗?" 하고 새된 소리를 내며 맞질문을 하질 않나, 물러가면서도 다리가 저려서 비틀거리는 등 온갖 킬링포인트를 주었다.

27회에 태조가 1408년 승하할 때 궐에서 통곡하는 신료들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이후론 계속 등장하지 않고 있어서 하차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1420년을 다룬 마지막화인 32화에서 상왕이 된 태종이 원경왕후를 찾으러 가는 장면에서 재등장해서 같이 동행했다. 태종이 원경왕후를 두고 돌아가자고 하자, 절의 주지에게 듣기를, 대비께서 학질에 걸려 밤마다 혼절하실 정도로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국 태종과 함께 원경왕후를 모시고 급히 궁으로 달려가지만, 원경왕후는 얼마 안 가 숨졌다.

이후 2년이 지난 1422년에는 태종도 쓰러졌고, 바깥에서 태종을 기다리는데, 어의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이를 걱정하고, 태종이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승하하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20]


5. 인간 관계[편집]



5.1. 이지란[편집]


사이가 너무 좋은 부자 관계로 묘사된다. 정몽주 척살 이후로 파탄났던 이성계-이방원 부자 관계와 달리 이지란은 아들 이화상을 매우 아끼고 화상도 아버지를 잘 따랐다. 다만 1차 왕자의 난에 이화상이 가담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잠시 관계가 서먹해졌지만, 이지란이 세상을 떠나기 전 다시 화해한다.


5.2. 이방원[편집]


이방원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수 많은 사람들과 대립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원과 대립하지 않고 항상 이방원 편에 선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상기 설명했듯이 본격적으로 야심을 드러낸 이후부턴 거의 웃지 않는 방원이 이전처럼 편하게 대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태조 승하 후에 하차한 듯 싶었으나 맨 마지막 회에 등장해서 여전히 이방원과 함께 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이방원과 가장 친했던 정종[21]을 비롯해 이방원의 동복형제들[22]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이방원에게 가족으로 남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게다가 이방원이 즉위 이후 정치적 문제로 자신의 가족들과 계속해서 대립을 해야 했기에[23] 더욱 더 고립된 입장이라서 이런 이방원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셈이었다.[24]


5.3. 민씨[편집]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 민씨와 이방원의 관계가 돈독했을 때는 형수인 민씨와 개그 장면도 자주 찍으며 좋은 케미를 보여주었으나 민씨와 이방원이 대립하게 된 후로는 일절 그런 묘사가 사라진다.

[1]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이화상의 개국원종공신녹권소장되어있다.[2] 자세한 내용은 이지란의 가족관계를 참고.[3] 실제 역사에 연관된 게 조사의의 난의 조짐을 알린 정도인데 이것도 그 정도는 크지 않고, 아버지의 상을 치르라는 명분으로 태종의 명으로 물러나 반란 진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4] 조선 시대에 상투를 튼다는 것은 기혼 남성이라는 것을 의미했는데, 아마 13화에서는 이미 결혼한 상태로 추정된다.[5] 이런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이 이지란 부자는 본관이 청해 이씨이지만, 이성계와 이지란이 의형제를 맺어 서로 형제로 대하는 것처럼 이방원 및 그 형제들도 이지란을 숙부로 대하며, 이화상의 사이도 사촌처럼 가까워 한 집안이나 다름없이 지내기 때문이다.[6] 위의 설명대로 설정집에 따르면 이방원보다도 5살이 어린데 이방간도 이방원보다 3살이나 많다. 그러니 가장 나이 터울이 가까운 이방원과 더 친하게 될 수밖에 없다.[7] 이는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와 닮은 또 다른 부분인게 이성계 또한 이화상의 아버지인 이지란에게 많이 의지하고 편한 동생으로 여기며 함꼐 대화를 많이 나눴다. 이성계 또한 욕심이 크게 없는 이지란에게 편히 대하며 항상 함께 있었다.[8] 이방원의 집에만 들린 듯한 연출을 보였지만, 방과와 방의의 대화를 통해 방우에게도 연락했다는 것이 드러났다.[9] 직접 장면이 나오진 않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 방원에게 소식을 전한다", "집안 사람이다"라는 민씨의 대사가 나온 다음에 이화상이 등장하는 걸 봐서는 확실하다. 그런데 그게 바로 뒤에 언급하는 코골며 자는 장면.[10] 자기가 귀찮냐는 말을 한 화상에게 방원이 "솔직히 말해도 되겠느냐?"라고 하자 무슨 말을 할지 짐작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듣기 싫다고 한다.[11] 직접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부분이 등장한 건 아니고, 이방원이 이화상에게 전해 달라고 말을 했다.[12] 이 때 손가락에 묻은 기름이 술잔에 묻지 않게 양 손바닥으로 들어 보이는 디테일을 보인다.[13] 이때 이지란이 "똑똑한 것보다는 저게 낫다."라는 걸 보면 안 똑똑한 건 아버지 인증이다.[14] 다만 이화상은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1398년에 사망하며, 정사공신에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왕자의 난에 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허나 이화상의 비중이 커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오류를 내버려 수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15] 사실 이화상이 이지란을 찾아온 진짜 이유는 노쇠한 몸으로 초야에서 고생하며 홀로 사는 아버지를 보다못해 강제로라도 한양으로 데려가 모시고 살기 위해서였다.[16] 이 때 구도를 보면 7회에서 의식을 잃은 이성계 옆에서 하늘을 향해 통곡하던 이지란과 비슷하다. 마파리(만주어로 조상님)를 외치는 것도 똑같다.[17] 조영무가 이방원에게 보고하는 걸 보아 이지란의 부고와 함께 동북면의 반란 조짐을 도성에 알린 것으로 추정된다.[18] 묘사상 겸양의 뜻으로 형식적으로 거절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기 싫어서 거절했다.[19] 다른 정치적 술수와 목적을 노리는 다른 이들과 달리 고려 시절부터 한결같이 형으로 존중을 하며 이리저리 얽히는 것을 싫어하는 예전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하다.[20] 이때 이화상이 슬퍼할 때 즉위한 이후로 한동안 부르지 못했던 "형님"이라는 호칭을 내뱉는다.[21] 1419년(세종 1) 10월에 승하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워낙 빠른 전개로 인해 보여주지 못했다.[22] 2차 왕자의 난에서 패해 지역을 옮기면서 귀양생활을 하던 회안대군도 이방원보다 1년 앞서 홍주목(현 홍성군)에서 세상을 떠나 이방원이 승하할 당시 동복 혈육은 두 여동생 뿐이었다.[23] 양녕은 상왕으로 물러난 시점에서는 더 고생 시키지는 않았지만 내쳐진 자식이라 왕래가 없었다.[24] 아버지들 끼리 의형제라 거의 사촌에 가까운 위치이면서 직접적인 혈연은 아니라 더더욱 이방원의 왕권에 위협도 안되는 위치라 작중에서 진정한 가족으로 남을 수 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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