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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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1. 개요[편집]


북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편집]


국내에서는 1940년생으로 한참 어리게 파악하고 있었으나 사실 1928년 1월 12일,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면에서 가난한 어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후 철도경비대에 입대하였으며 1955년 2월까지 까칠봉 중대장으로 근무하였다.

1981년 8월, 소장 계급으로 부총참모장에 임명되었다가 1985년 다시 상장 계급으로 5군단장으로 이동했다. 1986년 2월, 조선로동당 6기 1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으며,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92년 4월 2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24호에 따라 태병렬, 조명선, 김룡연, 리종산, 리하일, 리병욱, 리봉원, 리동춘, 장성우, 조명록, 김일철, 김영춘, 김봉을, 박기서, 김리창과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1994년 2월 14일, 인민무력부 부총참모장에서 해임, 동부전선의 1군단장으로 이동하였다. 1994년 4월, 김일성 82세 생일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5년 10월 6일, 김정일로부터 모범적인 인민군 군인으로 꼽혀 표창장을 받았으며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군단장으로 재임하면서 발전소 건설을 감독하는 등 고난의 행군 극복을 위한 똥꼬쇼를 많이 했는데 이때 허리병이 도져서 크게 고생했다 카더라. 김정일이 완공된 발전소를 보고 크게 흡족해하며 전재선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내릴 것을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1996년 11월 5일, '당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우리 당의 혁명적무장력인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오늘까지 50여년간 인민군대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면서 혁명무력강화와 부대의 싸움준비를 완성하는데서 특출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공화국영웅 칭호 및 금별메달,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1997년 4월 1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88호에 따라 김일철, 박기서, 리종산과 함께 조선인민군 차수로 진급하였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이후 대단한 직책은 없었으나 군의 원로로 각종 행사에 참가하였으며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3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참석,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을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그러다가 조용하게 사망, 부고 발표 없이 2012년 2월 13일에 애국렬사릉에 시신이 안장되었다. 조선중앙통신은 "렬사들가운데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유능한 군사지휘관으로 성장한 조선인민군 장령이였던 전재선이 있다. 그는 60여년간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대원수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부대의 싸움준비와 전투력강화에 이바지하였다."라고 치사했다.

조용하게 죽은 것 치고는 의외로 2016년 5월, 7차 당대회 개회사에서 김정은은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운 귀중한 선군혁명전우'로 조명록, 김광진, 김두남, 윤치호, 리동춘, 김하규, 리진수, 심창완과 함께 전재선을 언급하였다. 이후 조선중앙텔레비죤은 그의 생애를 기리는 2부작 소개편집물을 방영하였으며 이후로도 2021년 5월 10일자 로동신문에 ' 준엄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령도를 받드는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 열혈충신'으로 그를 기리는 기사가 나왔다.

2022년 8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혁명무력의 핵심골간을 키운 위대한 동지애의 품"란 기사를 통해 최형관, 박기서, 김성규와 함께 전재선을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조국의 천리방선을 지켜 부대의 싸움준비와 전투력강화에 기여한 대련합부대장'으로 언급하였다.

3. 참고문헌[편집]


  • 2013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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