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돈
덤프버전 :
분류
1. 소개[편집]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전직 교수.
2. 생애[편집]
1953년 2월 2일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읍(現 창원시 진해구)에서 중등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 주일능(朱一能)[5] 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복수(朴福守) 사이의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 1995년 계명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를 졸업하고 1983년 12월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18년 2월에 정년 퇴임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교수회의장, 박물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로 신라사, 가야사에 관해서 연구를 많이 하였으며,[6] 특히 한국에서 신라사 연구 방면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자로 손 꼽힌다. 금석문, 목간, 죽간 등과 같은 문자자료에 주목하여 신라사 및 한국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엄청난 논문 편수와 연구성과를 학계에 제출할 만큼 학자로서의 성실함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원래는 해방 공간 이후 현대사 연구자가 되고 싶었으나 당시의 커리큘럼 문제와 연구 부재 등으로 한계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고대사 연구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고 한다.
46년 동안의 대구 생활을 마치고 2017년 3월 29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살고 있다. 신라사 최고 권위자 주보돈 교수, “신라 문화 대중화에 기여할 것”
3. 경력[편집]
1975년 신라사를 전공하던 학도로서 경주 황오시장 내 37호 고분 발굴에 발굴 단원으로 참여하였다. 15박 16일 동안에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을 참관하였다.
그리고 1977년 경북대학교 사학과 조교로 경상북도 고령군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45호분의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3년 5월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18년 2월에 정년퇴임을 했다. 1987년 2월 한국고대사학회 창립 멤버이며 초대 총무간사를 지냈다.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한국목간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 밖에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오늘날에는 노중국 계명대 교수, 노태돈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한국 고대사학계의 거두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학자이다. 노중국 교수가 백제사 연구로, 노태돈 교수가 고구려사 연구로 유명하다면 주보돈 교수는 신라 및 가야사 연구로 유명하다.[7] 사족으로 이 세 사람은 이종욱 서강대 교수와는 학문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같은 대학의 이문기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이영호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역시도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사 연구로 유명하다.
가장 중점이 되는 연구 시기는 신라 중고기(中古期)이지만 신라사 전반에 걸쳐서 연구를 진행하였고 이밖에도 가야사, 백제사, 낙랑사, 고고학 연구에 관해서도 많은 연구를 제출하였다. 경북대 대학원 고고인류학과에서 신라고고학, 백제고고학, 가야고고학 강의도 이따끔씩 했다.
이밖에도 대구 및 영남지역사에 관해서도 연구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2018년 2월에 35년 가까이 재직한 경북대에서 정년퇴임하였고 현재는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4. 저서[편집]
다수의 학술논문과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4.1. 주요 저작[편집]
단독 저자로서 집필한 책을 중심으로 기재한다.
5. 관련 문서[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11:11:21에 나무위키 주보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음력 1952년 12월 19일.[2] 1984년생으로 대구한의대학교를 졸업한 뒤 한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쓸데없이 자세하다.[3] 석사학위 논문: #[4] 박사학위 논문: 新羅 中古期의 地方統治와 村落(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와 촌락).[5] 족보명 주재우(朱宰禹).[6] 본인은 처음에는 가야사 쪽에 더 뜻이 있었지만 가야 자체가 워낙 사료가 부족하다보니 가야와 연계성이 큰 신라사를 더 먼저, 중점적으로 다루었다고 한다.[7] 여담으로 노태돈, 노중국, 주보돈은 모두 영남과 연이 있다. 노태돈 교수는 경상남도 창녕군 출신이며, 대구의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노중국 교수는 경상북도 울진군 출신으로(다만 태어날때 울진군은 강원도 소속이었다) 계명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모과에서 교수를 지냈고, 주보돈 교수는 경상남도 진해군(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이후 경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모과에서 교수를 지냈다.[8] 사실 이 부분은 학자간에도 이견이 좀 있는 부분인데, 신라사 연구의 권위자인 주보돈 교수가 이렇게 단언한게 사실이라면 꽤 흥미로운 대목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