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바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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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바레시의 역임 직책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역대 주장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1985~1988)

주세페 바레시
(1988~1992)

주세페 베르고미
(1992~1999)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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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주세페 바레시
Giuseppe Baresi

출생
1958년 2월 7일 (66세) /
이탈리아 트라발랴토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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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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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7cm
직업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풀백 / 은퇴)
축구코치
소속
선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76~1992)
모데나 FC (1992~1994)
지도자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8~2014 / 수석코치)
국가대표
18경기(이탈리아 / 1979~1986)
가족
동생 프랑코 바레시
레지나 바레시

1. 소개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여담



1. 소개[편집]


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이자 현재 세리에 A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수석 코치이다. 더 유명한 그의 동생 프랑코 바레시AC 밀란에서 모든 경력을 보낸 것처럼 그는 그의 경력 대부분을 인테르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프랑코 바레시 역시 형을 따라 인테르에 소개 받았지만 거부당한 뒤 지역 라이벌인 AC 밀란에서 뛰면서 1980년대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는 이들 형제간의 대결을 볼 수 있었다. 이후 2008년 주제 무리뉴가 인테르의 감독이던 당시 수석 코치가 되었다. 이후 라파엘 베니테스가 오면서 기술 이사를 맡았다가 그가 경질되고 레오나르두 아라우주로 바뀐 뒤부터 다시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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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시아 지방의 트라바블리아토에서 태어난 바레시는 어렸을 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유스팀에서 뛰었다. 1977년 6월 8일 코파 이탈리아에 출전해 프로에 데뷔하여 1976-77시즌 유벤투스 FC를 1-0으로 꺾고 이듬해 시즌에 세리에 A에 데뷔했다. 이후 1988년부터 1992년까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주장으로 뛰었고, 총 16시즌을 보내 총 559경기[1]를 뛰며 13골[2] 을 넣어 세리에 A 우승 2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슈퍼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했다. 1991-92시즌 말에 인터를 떠난 바레시는 세리에 B의 모데나 FC에서 두 시즌 동안 뛰다가 1994년 36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클럽에서와 달리 주세페 바레시는 동생 프랑코 바레시와 달리 국가대표 커리어는 초라했다. 1979년에서 1986년 사이에 와 18경기를 치렀을 뿐이었고, 1977년 FIFA U-20 월드컵과 1978년과 1980년 U-21 유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걸 제외하면, 주세페 바레시는 동생 프랑코 바레시와 함께 UEFA 유로 1980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뽑혔으나 이탈리아는 4위에 그쳤다.[3] 1982년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에 의해 월드컵 예선을 위해 소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세페는 동생 프랑코 바레시와 달리 위해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엔트리에 제외되었고, 그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하는 걸 TV로 지켜봐야했다.[4] 운이 좋게도 바레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이탈리아는 미셸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에게 16강에서 패해 탈락하였다. 이후 더이상 바레시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열심히 뛰어다니고 끈질긴 볼 승부로 경기를 읽을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바레시는 타고난 센터백 역할 외에 풀백이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도 활약할 수 있어 그의 세대 중 가장 훌륭하고 다재다능한 이탈리아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4. 지도자 경력[편집]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유스팀에서 지도자 활동한 후, 2008년 6월 2일, 주제 무리뉴의 밑에서 수석코치로 일했다. 라파엘 베니테스가 부임한 후 베니테스는 모리시오 펠레그리노를 자신의 수석코치로 데려왔고, 바레시는 기술 코치가 되었다. 베니테스가 경질된 후 레오나르두 아라우주로 바뀐 뒤부터 다시 수석 코치를 맡았다. 이후 2011-12 시즌 초에 세리에 A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는 자신의 코치인 브루노 카누를 제노아 CFC에서 데려왔지만 9월에 경질되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가스페리니 대신 바레시가 수석코치가 되는 동안 다시 기술부서의 위치에서 교체되었다.


5.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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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레지나 바레시와 함께
파일:바레시 형제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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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프랑코 바레시와의 대결
  • 위에서 언급한 동생 프랑코 바레시AC 밀란의 위대한 주장인데, 프랑코 바레시가 AC 밀란에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경기를 뛰고(719경기), 처음으로 영구결번에 올랐고, 주세페 바레시는 인테르에서 역대 다섯 번째로 많은 경기를 뛴(559경기) 선수이다. 형제가 각각 라이벌 구단에서 레전드 대우를 받는 드물고도 훈훈한 사례.
[1] 세리에 A 392경기, 유럽대항전 73경기, 코파 이탈리아전 94경기 포함[2] 세리에 A 10골, 유럽대항전 1골, 코파 이탈리아 2골을 기록했다.[3] 간신히 준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에 주세페만이 출전할 수 있었지만, 바레시 형제가 아주리 군단의 국제무대에 출전한 유일한 대회였다.[4] 아이러니하게도 동생 프랑코 바레시도 1982년 월드컵에서 단 1경기도 뛰지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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