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사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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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위
崔士威


캐릭터
지위
호부시랑 (1 ~ 4회)
→ 형부상서·통군사 (5 ~ 16회)
→ 참지정사 (16 ~ 22회)
내사시랑평장사 (23회 ~ )
등장회차
1 ~ 9회, 12회 ~
배우
박유승

1. 개요
2. 작중 행적
2.1. 1 ~ 4회
2.2. 5 ~ 6회
2.3. 7 ~ 8회
2.4. 9회
2.5. 12 ~ 15회
2.6. 16회
2.7. 17회
2.8. 18회
2.9. 19회
2.10. 20회
2.11. 21회
2.12. 22회
2.13. 23회
2.14. 24회
2.15. 25회
2.16. 26회
2.17. 27회
2.18. 28회
2.19. 29회
2.20. 30회
2.21. 31회
2.22. 32회(최종회)
3. 묘사
4. 어록
5. 여담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항상 고려 조정에 있었으나, 거란이 침입하자 통군사로서 참전해 몸소 전장에 나갔다. 현종이 지방제도를 개혁하기 시작했을 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그 일을 추진한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강감찬 이전 문신 출신의 군 사령관으로 전장과 조정의 이해관계에 일절 휘둘리지 않고 국가와 군주를 위하는 강직한 신하이다.


2. 작중 행적[편집]



2.1. 1 ~ 4회[편집]


첫 등장 당시 직책은 호부시랑이다. 유진, 최항, 채충순과 더불어 목종 말년의 재상단의 일원이다. 2회에서 거란 황제모후가 중병이라는 사실을 조정 중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알린다. 당시 재상단 중에서는 직책이 가장 낮고 엄밀히 따지면 재상도 아니다 보니 초반 비중은 제일 낮으며, 3~4회에서도 별다른 활약은 없다.


2.2. 5 ~ 6회[편집]


현종이 즉위하면서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5회에서 형부상서로서 재상들과 함께 거란 사신 한기를 설득할 때, 달래는 태도로 접근한 재상들과 달리 고려에도 용맹한 군사와 장수들이 있다며 위협하는 역할을 맡는다. 동원령이 내려지자 행영의 군무를 총괄하는 통군사가 된다.

6회에서는 강조와 함께 작전을 논의한다. 흥화진 쪽 사정을 걱정하며 지금이라도 수성전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수성전에 들어가면 적의 기병이 국토를 휘젓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검차를 믿고 적을 섬멸해야한다'는 강조의 논지에 수긍한다.


2.3. 7 ~ 8회[편집]


7회에 고려군의 우위를 맡아 지휘하던 중 강조가 사로잡힌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절망한다. 여기에 총지휘관의 생포로 인해 휘하 병력들도 급속히 와해되었다. 결국 8회에 퇴각하던 중 김훈의 계책[1]에 따라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개경에 전투 결과를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2.4. 9회[편집]


9회에 서경에서 강감찬을 만나고 난 후 개경으로 내려가 현종을 알현하였고, 현종의 명을 받아 군사를 모으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2] 이 때 "그 정도 일은 조정의 다른 신하를 보내도 되지 않느냐?"라고 의문을 표했지만, 되려 현종으로부터 "조정의 여론이 항복으로 기울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2.5. 12 ~ 15회[편집]


12회에서 충주에서 병력을 모으려 하는데, 그 곳의 호장인 박진이 아들을 잃은 분노에 더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성상폐하이다."라면서 전면으로 반발하자 이 모습에 분노해 칼을 빼들어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다행히 충주사록 김종현이 와서 일단락 되는 듯 했지만, 그에게서 개경 함락의 소식[3]을 전하면서 현종을 호위하려고 했는데, '동원할 충주의 관군이 15명'이라는 김종현의 발언[4]에 탄식하면서 그 병력이라도 모아서 호위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13회에서 김종현과 수습한 군사들을 이끌고 가던 중 몽진 중이던 현종 일행을 만나 충주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권고[5]하고, 이후 몽진 행렬 참여하면서 14회에는 호장들에게 동원된 백성들과 싸우는 등 온갖 고난을 겪는다. 15회에서는 김종현과 함께 현종과 별개로 피난하는 원정황후의 호송을 맡으며 황제 일행과 다른 피난길을 가게 되었다.


2.6. 16회[편집]


이후 김종현과 함께 원정황후를 어느 관아에 모셨는데, 그녀가 사산한 것을 듣고 오열한다.

전쟁이 끝나고 논공행상에서 참지정사로 승진되었다. 김훈과 함께 현종에게 탁사정, 박섬 등 전쟁 중 도망친 자들을 벌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2.7. 17회[편집]


현종이 밀어붙이는 지방 개혁에 형부시랑 김은부, 판어사대사 장연우, 중추사 채충순, 시어사 황보유의와 함께 포섭되어 지지를 표명한다.

자신 또한 호족의 일원이기에 이를 따르면서도 강경한 개혁에 역풍을 우려하는 장연우와, 송에서 귀부한 인물로 개혁에 자신의 이해관계가 별로 없지만 역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언급하는 채충순과 달리 제2차 여요전쟁에서 국력을 동원하는 도중 강경한 충주 호족들의 훼방을 직접 보아온 입장이기에 큰 이견 없이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이러한 배경에 대해 궁금해 한 다른 재상들(유진, 최항)의 의문에 실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기도 했다.


2.8. 18회[편집]


충주 호장 박진이 개경 복구의 명을 받고 올라오자 이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나왔다.[6]


2.9. 19회[편집]


현종이 낙마한 이후 원정왕후와 유진에 의해 행영도통사로서 서경을 비롯한 서북면으로 가게 되어 남쪽으로 내려간 채충순과 더불어 자신들을 내쫓는 것으로 판단하고 형부시랑 김은부를 지킬 것을 판어사대사 장연우에게 부탁한다.


2.10. 20회[편집]


채충순과 함께 장연우가 김은부를 지켜낸 무용담을 듣는다.

그이후, 현종과의 대담에서 강감찬이 타협안을 받아들인다.

2.11. 21회[편집]


친조를 요청하는 거란 사신과 긴 설전을 벌인다. 이 후 외교전을 벌이기 위해 채충순과 함께 사신단을 꾸리라는 명을 받는다.

이 후 강감찬의 거짓 친조행렬 계책 제안에 찬성하며 '거란군은 전쟁할 수 있는 시기가 한정되어있기에 전쟁을 벌이려면 당장 국경으로 이동시켜야하지만, 우리가 진짜 친조행렬을 하는 척하면 거란군은 기껏 군사를 이동시킨 명분을 잃고 얌전히 고려 측에서 친조하러 오길 기다리거나 다른 명분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지체시킨다면 끝내 거란군이 전쟁할 수 있는 시기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2.12. 22회[편집]


이제는 현종의 친조 말고 강동 6주를 내놓으라는 거란의 요구에 가장 격하게 반대한다. 영토의 할양은 있을수 없으며 당장 거란 사신의 목을 베고 전쟁을 준비하자며 그간 조정 내 최고 주전파였던 강감찬보다도 강경한 태도를 보일 정도.

거란 사신에게 베푸는 주연 자리에서도 다시 한번 강동 6주를 요구하는 거란 사신에게 무슨 권리로 그 땅을 요구하냐며 우리 힘으로 여진을 몰아내고 얻은 땅이라고 반박한다.

거란 사신과의 협상 과정에서 거란의 목표가 강동 6주가 아니라 흥화진으로 줄어든 뒤 채충순 등이 흥화진을 내어주고 다른 성의 방비를 강화하자고 주장하자 강하게 반대한다. 이후 대소신료가 모인 자리에서 거란의 흥화진 할양 요구를 거부하는 현종을 보고 감격에 찬듯 고개를 끄덕인다.

2.13. 23회[편집]


거란에 사신으로 갔다가 붙잡힌 형부시랑 김은부의 서찰을 통해 거란이 자신들을 속인 것을 알고 현종이 자신을 비롯한 제상들을 부르고 나서 회희에서 거란 사신을 억류해야 한다는 현종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이때 자막에 관직이 내사시랑평장사가 되었다.

2.14. 24회[편집]


김훈과 최질을 파직하라는 장연우와 유진의 상소에 동조하며 파직이 어렵다면 중랑장으로 강등하라고 현종에게 조언한다.

2.15. 25회[편집]



2.16. 26회[편집]



2.17. 27회[편집]



2.18. 28회[편집]



2.19. 29회[편집]



2.20. 30회[편집]



2.21. 31회[편집]



2.22. 32회(최종회)[편집]




3. 묘사[편집]


원작 소설에서는 첫 등장부터 형부상서 겸 임시직으로 통군사를 맡고 있다고 나오는데, 청렴하고 현명한 고려 제일의 인재 중 하나이자 문무를 겸비하여 존경의 대상이라고 소개되며, 강조에게 행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직접 세 방면으로 진군하여 거란군을 견제하기 위한 계책을 주장하는 등 군사 지휘에서 높은 권세를 지녔다고 나온다.[7]

드라마에서는 왕실에 충성하고 본인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신하로 묘사된다. 통주에서도 강조의 작전에 대해 수긍하며 따르고, 현종의 호종도 함께 하며 이후 현종의 개혁 정책에도 찬동하며 시행하는 등 전체적으로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관리로 묘사된다. 은근히 강단도 있어서 전쟁 전 거란과 외교 회담을 할 때 한기를 쏘아붙이거나 문신임에도 전투 상황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모습도 보여주고, 전쟁 이후에는 강감찬과 더불어 거란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다.

문관 출신 사령관인 강감찬과 유사한 포지션이나 주인공이자 역사적으로 위인의 반열에 오른 강감찬에 비해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며 차이점 또한 분명하다. 지방관임에도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중앙 정계로 진출한 강감찬과 달리 최사위는 능력과 별개로 애시당초 조정의 요직에 속한 중신이었다. 강직한 성격 또한 공통점이나, 군주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아 수많은 반대의견을 겪었던 반골에 가까운 강감찬과 달리 최사위는 직설적일지언정 군주의 명령을 충직하게 따르는 신하였다. 또한 최사위가 군주 현종의 몽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과 달리 강감찬은 대외적으로 거란과의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결정적으로 최사위가 군을 통솔하는 장군임에도 거란과의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것과 달리[8] 강감찬은 3차 여요전쟁에서 군을 이끌고 거란을 패퇴시켰다.

사실 실제 역사에서 최사위는 군사적 식견은 다소 떨어졌지만 현종 대의 지방 제도개혁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며 죽은 후 현종의 배향공신에 들어갈 만큼 현종 치세에서 중역을 맡았던 재상이었는데, 본작에서는 비록 본격적인 시작을 하지 않아 향후 전개를 알 수 없지만 실제 역사에서 지방제도 개혁 주도 역할을 한 그의 공이 김은부에게 빼앗긴 측면이 있다. 사실 김은부는 지방행정 개혁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딱히 기록이 없으며[9], 고려사 최사위 열전을 보면 최사위가 지방 제도 개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21회 작중 김은부는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거란에게 붙잡혀 있고, 23화에서 강감찬이 현종이 김은부를 잘 있는지 보기 위해 동북면으로 파견을 가는 실제 역사가 드라마에 반영되었으므로 최사위가 지방제도 개혁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사실도 드라마에서 묘사될 가능성이 있다.[10]

4. 어록[편집]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귀국의 피해도 상당할 것이오.

폐하께... 이 일을 어찌 고해야 하겠나?

이럴 수가... 개경이 함락되다니, 개경이...

5. 여담[편집]


  • 실존 인물 최사위는 문신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무려 수문하시중까지 지냈고 현종을 도와서 당시 호족으로 인해 내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고려의 지방 행정을 정리했고 현종과 강감찬이 사망하고 10년 뒤인 서기 1041년에 80세로 사망했다.

  • 최사위 역을 맡은 배우 박유승은 현 출연진 중 본작을 포함하여 KBS 대하드라마총 13번이나 출연하여 경력이 가장 많은 배우이다.[11] 웬만해선 주인공과 대립하는 진영의 인물이나 나중에 죽는 인물들을 연기했는데, 처음으로 아군 측 진영에 작품이 끝나는 시점까지 살아남은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다.

[1] 김훈 본인이 전열을 정비해 적을 막는 동안 통군사가 흩어진 패잔병들을 수습해 각각 곽주와 서경으로 배치하는 계책이다. 사실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강조가 생포되고 고려군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임시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강조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에 멘붕에 빠진 후 남쪽으로 조원과 함께 퇴각하던 도중 그에게 동북면 도순검사 탁사정에게 가서 동북면의 병력을 모아 서북면의 서경 쪽으로 가라고 말한다.[2] 참고로 원작에서는 최사위 등이 군사를 모으는 일에 관하여 조정에서 논의가 오갈 때에 김종현이 처음 등장한다.[3] 이때 김종현이 일부러 귓속말로 전했는데, 이는 직전인 5회에서 이미 박진과 한 번 대치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후 최사위가 크게 놀랐기 때문에 박진도 얼핏 눈치는 봤다.[4] 그것도 이 '15명'이 충주 사록인 김종현을 포함한 숫자이다.[5] 이게 호재가 된 것이 추격대를 지휘하는 야율적로가 호장 한 명을 잡아 협박하여 길잡이를 하게 하였는데 호장은 백산을 지났으니 충주로 향한 것이 분명하다며 그 쪽으로 유도했는데, 아닌 게 되어 거란군의 추격이 늦춰졌다. 안타깝게도 그 호장은 야율적로에게 죽게 되지만.[6] 12화에서 통군사인 자신에게 대놓고 개기는 것도 모자라 현종까지 모욕하는 박진을 직접 겪었고 여기에 분노해 칼까지 빼들었던 최사위 입장에선 갑자기 재물까지 바쳐가며 개경 복구를 돕겠다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7] 이때 그의 작전에 항마군 및 김숙흥을 포함한 귀주군도 참여하는데, 거란군이 그의 예상보다 더 격렬히 저항하여 귀주군이 시간을 벌어줬으나 그의 후퇴 명령을 받고도 도망치지 못하고 포위되는 등 난항을 겪으며, 그의 부대도 거란군에 의해 궤멸할 위기에 처하다가 귀주 기병대의 등장으로 가까스로 탈출한 귀주군 덕분에 목숨을 건진 후 전령을 보내 강조에게 사실상 후퇴하라고 청하여 통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이후 김숙흥의 활약을 칭찬하며 그를 임시로 귀주의 부방어사에 임명한다.[8] 최사위 1명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사령관 강조를 위시한 고려 제장들 전체가 안일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9] 고려사의 기록 누락과 부족을 생각하면 김은부도 나름대로 이 일과 관련해서 일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방개혁 주도는 엄연히 최사위가 했다.[10] 다만 이무렵 최사위도 서북면 지역에 몇 차례 파견을 간 기록이 있어서 실질적으로 주도할 시간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11] 고려 거란 전쟁 외에 대하드라마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 찬란한 여명에 처음 출연하여 이후 용의 눈물에서는 민제의 집사, 왕과 비에서는 단역 선비, 태조 왕건에서 진호를 비롯한 여러 단역, 제국의 아침에서는 박수경의 둘째 아들인 박승경, 무인시대에서는 금나라 통역관, 불멸의 이순신의 덕구, 대조영에서는 이문의 부장 수봉, 광개토태왕에서는 고운의 수하 원봉, 정도전에서는 심효생, 징비록에서는 겐소, 태종 이방원에서는 윤소종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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