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미얀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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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2.3.1. 2020년대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태국미얀마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서. 양국간에는 전쟁이 치러진 적이 많아 영불관계한일관계와 비슷하게 역사적인 앙숙이자 라이벌 관계라고 할 수 있다.[1][2]


2. 역사적 관계[편집]



2.1. 20세기 이전[편집]


고대부터 태국과 미얀마는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인도의 영향으로 불교(상좌부 불교)가 전파되었고 데바나가리 문자에서 파생된 버마 문자태국 문자가 각각 미얀마어태국어에 사용되었다. 그외에도 버마인태국인들의 조상이 중국 남부로 이주하면서 왕국을 세웠다. 양국은 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동시에 국민성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어서 태국은 미얀마에게 '거칠고 공격적'이라 했으며 미얀마 역시 태국을 '거만하다'고 각각 무시했다.

미얀마는 왕조때부터 태국과 전쟁을 자주 치렀다. 버간 왕조 당시 영토를 확장하면서 태국과의 전쟁이 있었다. 당시 태국측에서도 버간 왕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게다가 아유타야 왕조는 미얀마의 침략을 받는 등 양국은 전쟁을 수없이 치러야 했다.

미얀마의 여러 왕조가 태국을 공격하는 동안, 18세기말에 영국이 미얀마를 공격했고 미얀마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식민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설치하면서 갈등이 빚어질 뻔 하다가 결국 영국과 프랑스가 태국을 완충국으로 삼는다고 합의하면서 미얀마와 달리 태국은 식민지배를 받지 않게 되었다.


2.2. 20세기[편집]


양국간의 관계는 미얀마 지역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잠시 없어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는 태국이 일본 제국과 함께 미얀마를 침략하였고, 일부 영토를 강탈했었지만 전후 다시 미얀마에 반환하였다. 이후 미얀마와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에야 관계를 다시 맺었다.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태국은 군부독재하에서 반공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었으며 이에 태국 정부는 미얀마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서방의 지원을 받았다. 때문에 당시 미얀마와 태국은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2.3. 21세기[편집]


양국은 아세안에 가입되어 있다. 양국간의 경제적인 격차도 크다보니 미얀마인들 중에는 태국으로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태국내에서 미얀마인들은 차별받고 있다. 또한, 미얀마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 목적으로 태국으로 오는 경우도 있어서 미얀마와 태국 국경 지역은 한곳을 제외하고는 폐쇄된 상태이다.


2.3.1. 2020년대[편집]


코로나19 사태 중 미얀마인들의 혐오 정서가 터져나갔다.#

2021년 3월 23일에 태국의 쁘라윳 찬오차 총리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지원 의혹을 부인했다.#

3월 29일 쁘라윳 총리는 미얀마 쿠데타 사태로 인한 난민 유입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태국 정부는 미얀마 난민들이 태국 영토로 탈출하는것을 원하지 않지만 인권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5월 15일 쁘라윳 총리는 유엔의 미얀마 특사와 회담을 하며 태국 국경으로 피신온 미얀마 난민들을 강제 송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5월 21일 미얀마군이 반군을 공격하려고 쏜 박격포탄 3발이 태국 국경의 마을에 떨어지자 태국군은 연막탄을 쏴서 중지하라고 경고했으며 미얀마군에게 태국 영토로 작전을 확대하지 말라는 경고서한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태국측이 미얀마 소수민족 600여명을 미얀마로 송환하자 인권단체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태국에서 추방된 미얀마 난민 3천여명이 미얀마쪽 강둑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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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는 <가로세로 세계사> 2권[2] 중근세를 다룬 태국의 영화에서 태국의 적국으로 자주 등장하는 국가가 미얀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