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스마네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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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왕국 10대 군주
ფარსმან | 파라스마네스 1세
제호
한국어
파라스마네스 1세
조지아어
ფარსმან
라틴어
Pharasmanes I
생몰 년도
미상 ~ 58년
재위 기간
1년 ~ 서기 58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이베리아 왕국 10대 군주.

2. 생애[편집]


이베리아 왕국 7대 군주 파르나바즈 2세의 양자 카르탐과 파르나바즈 2세의 딸의 아들이다. 기원전 30년, 미리안 2세가 반란을 일으켜 파르나바즈 2세와 카르탐을 살해했다. 이때 카르탐의 임신한 아내는 아르메니아로 망명한 뒤 그를 낳았다. 그는 '아드레키'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다가 서기 1년 아르메니아의 지원에 힘입어 이베리아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아르탁시아스 2세 왕은 이에 맞서 이베리아 전역에 병력을 소집하고 파르티아로부터 일부 병력을 받아내 그와 맞섰다.

양군은 트살리카에서 조우했다. 이틀간의 전투 끝에, 아르탁시아스 2세가 패배한 뒤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이후 파라스마네스 1세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이후 수십년간 나라를 평온하게 이끌던 그는 35년 로마 제국 황제 티베리우스의 부탁을 받아들여 형제인 미트리다테스를 아르메니아 왕에 앉혔다. 그러자 아르메니아를 자국의 영역으로 삼고 싶었던 파르티아 샤한샤 아르타바노스 2세는 아들 오로데스 휘하의 대규모 부대를 아르메니아로 파견했다. 그는 이에 맞서 사르마티아 및 알바니아인 용병대를 고용해 병력을 증강시킨 뒤 아르메니아로 들어가 미트리다테스와 합류했다.

양군이 곧 조우한 뒤 격전을 한창 벌이던 중 벌어지던 중 그와 오로데스 왕자가 서로 맞붙었다. 그가 오로데스의 투구를 베어 상처를 입혔지만, 오로데스가 말을 몰고 달아나서 목숨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파르티아인들은 왕자가 죽은 줄 알고 혼란에 빠져 도주했다. 이에 분노한 아르타바노스 2세는 대군을 끌어모아 36년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갔지만, 그가 험준한 산세를 활용하여 철저한 방어와 유격 전술로 일관하면서 곤란을 겪다가 파르티아 귀족들이 티리다테스 2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반란을 일으키자 물러나야 했다.

그런데 37년 봄 미트리다테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칼리굴라 황제에 의해 폐위되어 로마로 송환되었다. 아르타바노스 2세는 이 때를 틈타 오로데스를 아르메니아 왕위에 앉혔다. 42년 오로데스가 사망하자,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는 미트리다테스를 아르메니아 왕위에 복위시켰다. 로마 수비대는 아르메니아 수도 아르탁사타 인근의 고르니(Gornae) 요새에 주둔하여 미트리다테스의 왕위를 보장했다. 그러나 50년대에 이르러 그와 미트리다테스와의 사이가 악화되었다. 미트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에서 입지가 어느 정도 보장되자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의 아들 라다미스투스가 오래도록 왕위에 있는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를 짐작하고 있던 그는 아들을 설득해 아르메니아 왕위를 노리게 했다. 라다미스투스는 51년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미트리다테스를 처단하고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52년 파르티아 샤한샤 볼로가세스 1세가 동생 티리다테스 1세를 아르메니아 왕에 앉히고자 아르메니아를 침공했을 때, 라다미스투스는 지역 귀족과 로마의 지원을 받지 못하자 이베리아로 달아났다.

53년, 그는 파르티아가 내란에 휘말려 다른 데 관심을 쏟지 못하는 틈을 타 로마군의 지원을 받으며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티리다테스 1세를 축출하고 라다미스투스를 아르메니아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라다미스투스가 티리다테스 1세와 협력한 인사들을 모조리 처형하는 등 공포 정치를 일삼자, 이에 분노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그를 몰아내고 티리다테스 1세를 복위시켰다. 라다미스투스는 임신한 아내 제노비아와 함게 이베리아로 달아났다. 그러다 제노비아가 너무 지쳐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그녀가 적의 손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겠다며 그녀를 칼로 찌르고 아락스 강(오늘날 아라스 강)에 던졌다. 이때 양치기들이 강에 떠내려가는 그녀를 구출하여 치료해준 뒤 아르탁사타로 데려갔다. 이후 아르메니아인들의 초청을 받은 티리다테스 1세는 파르티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아르탁사타에 순조롭게 입성했고, 제노비아를 왕족으로 대우했다.

58년, 라다미스투스는 그에 의해 반역 혐의로 처형되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라다미스투스가 아내 제노비아와 외가 식구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에 반감을 품자,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들을 처형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을 자기 손으로 처형한 것에 심히 충격받았기 때문인지 얼마 안가 사망했고, 차남 미흐르다트 1세가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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