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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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erun_Gromoverzhecz_by_Andrey_Shishkin.jpg
러시아의 화가 안드레이 시쉬킨이 묘사한 페룬.

1. 개요
2. 어원
3. 신화 속 묘사
4. 기타


1. 개요[편집]


동유럽 슬라브 신화뇌신이자 주신.

슬라브족의 신화에서 페룬(Perun)은 그리스 신화제우스인도 신화인드라처럼 다른 모든 신들을 다스리는 최고의 신이자 천둥과 번개, 비바람을 일으키는 신이며 전쟁신이기도 하다.

2. 어원[편집]


'페룬'(Perun)이라는 이름은 슬라브어로 '번개'라는 뜻이다. 논란의 여지가 분명히 있지만, 발트 신화에 등장하는 페르쿠나스(Perkunas), 페르콘(Perkon)과 어원적으로 관련이 깊다고 보는 언어학자들이 많다. 더 높이 올라가면 원시인도유럽어를 쓰던 부족이 믿던 뇌신 페르쿠노스(*Perkwunos)와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원시 슬라브어에서 참나무를 페르쿤(*Perkun)이라 하였는데, '페룬'이란 신명도 여기와 관련이 깊었을 것이다. 슬라브 문화에서 참나무는 페룬의 신성한 나무였다. 아마도 참나무가 숲에서 높이 자라는 수종이라 번개를 맞기 쉬웠기 때문에, 참나무가 뇌신의 신성한 나무로 간주받은 듯하다.

아마도 슬라브족의 역사에서 처음 '페룬'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0세기 초, 정확히는 911-944년 사이 언젠가인 듯하다. 키예프 루스동로마 제국이 911년 맺은 조약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가, 944년 맺은 두 번째 조약에서는 등장하는 데서 추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신앙이 불현듯 나타났다고 하면 이상하고, 이름이 비슷한 뇌신 신앙은 원래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0세기 초쯤에 일부 슬라브족 사이에서 갑자기 '페룬'이란 이름으로 신앙이 갑자기 대두되어 슬라브 만신전에서 주신 로드(Rod)를 제치고 새로운 주신이 된 듯하다.


3. 신화 속 묘사[편집]


페룬은 창조신 로드(Rod)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다. 로드의 화신이 민물꼬치고기의 형상으로 나타나자 스바(Sva) 여신이 잡아먹었다가 임신하여 페룬을 낳았다고 한다.

페룬은 악룡에게 사로잡혀 잠든 채로 지하세계에 3백 년이나 갇혔지만, 어머니 스바가 도와주어 깨어날 수 있었다. 페룬은 깨어난 뒤 지상으로 돌아와 힘을 추스르고 다시 지하세계로 되돌아가 악룡과 싸워 결국 죽이고야 말았다.

천상계와 지하계를 관통하는 거대한 참나무[1]의 가장 높은 가지에 좌정하여 수리와 함께 세상을 굽어보다가 돌망치(또는 돌도끼)를 던진다고 한다. 이는 석기시대에는 무기가 돌도끼인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후대에는 금속도끼나 돌화살로 묘사가 바뀌었다.

페룬은 구리 수염을 가진 억세고 거친 남자로 묘사된다. 그는 산양이 이끄는 바퀴 2개 달린 전차를 타고 거대한 도끼나 때때로 망치를 던진다. 페룬이 던지는 도끼는 사악한 자들을 쳐 없애고 나면 반드시 그의 손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페룬은 북유럽 신화의 뇌신 토르와 매우 비슷하다.

나무의 뿌리 아래에 있는 깊은 지하는 그의 적인 독사나 들이 사는 장소였다. 이것은 페룬이 가진 가축이나 가족들을 훔쳐 그를 도발한 지하와 물의 신인 벨레스(Veles)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페룬은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쳐 적 벨레스를 공격해 쫓아냈고, 벨레스는 자신을 각종 동물로 모습을 바꾸거나, 나무나 집 또는 사람들의 뒤에 숨어서 달아났다. 민간전설에서 번개가 어디든지 치는 것은 벨레스가 바로 그곳에 숨자 분노한 페룬이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페룬은 끝내 벨레스를 죽이지 못하고 그를 지하세계로 쫓아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처럼 슬라브 신화에서 하늘의 최고신이 폭풍우와 천둥을 부르며 지하 세계의 존재와 싸운다는 이미지는, 슬라브족이 그리스도교화된 이후에 그리스도교의 유일신과 악마의 싸움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슬라브 계통의 민족인 세르비아의 전통 민요에서는 한 신혼 부부의 결혼식에서 벌어진 페룬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페룬)는 황금 사과 3개를 밖으로 가져가서 가장 높은 하늘에서 던졌다. 번개 3개가 하늘에서 내려치자, 신부의 젊은 처남 2명과 말은 부서져 산산이 타버렸다네. 그들이 죽자 결혼식 하객 600명들은 달아났고, (페룬이) 그들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네.


이 노래에서 언급된 황금 사과 또한 페룬의 다른 상징물이기도 하다. 구전(球電)현상을 신화의 필치로 묘사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4. 기타[편집]


슬라브 신화를 서술한 모든 역사기록들에서 페룬은 제일 많이 등장한다. 6세기에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Procopius)가 페룬을 남쪽의 슬라브족들이 믿는 신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저서 <전쟁사>에서 남쪽의 슬라브족들은 아스트라페스 데미우르고스(ἀστραπῆς δημῐουργός)[2]라는 신을 만물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믿는다 하였다.[3]

여기서 '아스트라페스 데미우르고스'란 고전 그리스어로 '번개의 창조자'라는 뜻인데[4] 여기에 대응하는 정확한 슬라브어 명칭은 현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표현이 아마도 당시에 있었던 페룬, 또는 페룬 신앙의 전신에 해당하는 신격의 한 가지 이칭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기록들을 찾아보면 서슬라브 쪽에서는 명확히 '페룬' 또는 페룬에 대응하는 신격을 믿었다는 이야기가 없지만, 하늘에 최고의 신이 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서기 980년,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대공은 자신의 궁전 앞에 슬라브 신들의 목상 5개를 세웠다. 페룬은 이 목상들 사이에서 은으로 된 머리카락과 황금빛 콧수염이 달린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노보고르드에 있는 중세의 공중 취락 시설의 지하에서 발견된 페룬의 고대 신전에서는 희생물을 바치는 제단과 그를 상징하는 상 8좌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이 동로마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페룬 신상을 파괴하고 숭배를 금지시킴으로써 페룬 신앙은 공식적으로는 절멸되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정교회 신앙과 적당히 혼합된 채로 옛 신앙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내려왔다.

988년 루스 공국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임을 두고 후세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정교회를 국교로 삼고 숭상한 제정 러시아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폭력과 혼란으로 얼룩진 러시아에 평화와 행복이 찾아왔다고 찬양했던 반면, 그리스도교를 탄압했던 소련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수많은 백성들이 조상 대대로 믿어온 전통신앙을 강제로 잃어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고 부정적으로 보았다.

러시아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들의 이웃인 유럽인들이 러시아를 그리 친근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서유럽인들은 러시아인을 가리켜 '세례받은 곰'[5]이라고 부를 만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열왕기하 2장 11절[6]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엘리야랑 동일시되기도 했다. 슬라브 신화에서 하늘의 신은 불의 신이기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유럽 등지에서는 엘리야가 '천둥의 엘리야'라고 불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동유럽 발칸반도의 국가 불가리아에 위치한 내륙도시 페르니크(Перник, Pernik)의 시명도 이 페룬 신의 이름에서 유례된 이름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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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표상은 북유럽 신화위그드라실을 연상케 한다.[2] 정확하게는 원문에선 '아스트라페스 데미우르곤(ἀστραπῆς δημιουργὸν)'이라고 목적격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 표현을 그리스어 문법에 따라 주격으로 바꾼 것이 '아스트라페스 데미우르고스(ἀστραπῆς δημῐουργός)이다.[3] 유일신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 신이 최고신이라는 뜻이다.[4] 저자 프로코피우스는 6세기 사람이지만 고전 그리스어로 글을 썼다.[5] 비록 그리스도교를 믿지만 처럼 미련하고 난폭하다는 뜻이니 지독한 멸칭이다. 실제로 서유럽인들은 러시아에 대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멸시하기도 했고...[6] "그들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길을 가는데, 난데없이 불말이 불수레를 끌고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는 떨어지면서 엘리야는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공동번역)[7]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리아의 이웃나라 그리스 또한 그리스의 수도이자 제1도시인 아테네의 시명도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이름에서 유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