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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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정치인으로 대통령을 지냈다.
넬슨 만델라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했으며, 현재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936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정치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58년 포체프스트롬 대학교 졸업으로 법학 학위 취득 후, 하우텡주의 소도시인 베레니깅에서 법률사무소를 세우고 변호사로 근무하였고 1972년 국민당 선거에 출마, 당선되면서 정치인이 되었다. 그 후 주요 부의 장관을 지냈다.
1989년 8월 15일 건강이 나빠진 P. W. 보타가 국민당 총재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자 국민당 총재로 취임했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선거에서 후임 남아공의 제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취임하였다.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로 국내외 여론의 압박을 받던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한 클레르크는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하기 위한 업적을 남겼는데, 1990년에 아프리카 국민회의의 합법화 선언, 1964년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중이던 '46664' 넬슨 만델라를 석방했다.
1992년에는 백인을 대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관한 투표가 있었으며 투표 참여자의 68.7%가 투표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찬성했다. 1993년에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하도록 했으며, 같은 해에 넬슨 만델라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또한 선대 정권 시절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핵개발을 통해 보유했던 핵무기를 자진 폐기하는 비핵화를 달성하는 업적도 남겼다.
1994년 4월 27일 인종에 상관없는 총선이 실시되었으며, 같은 해 5월 10일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제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부통령 겸 대리 통령[1] 이 되었으며 1997년 정계를 은퇴했다.
그 후 조용히 케이프타운의 Fresnaye라는 곳에서 여생을 보냈고 간간히 경제자유투사당과 같은 극단적인 흑인 민족주의 세력과 백인우월주의 극우 세력에게 공격 받았지만[2] 2021년 6월에 중피종을 선고받고 투병하다 2021년 11월 11일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남아공의 양대 국부(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렀다.# 따로 추도식까지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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