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씨(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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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侯氏
(188년[1] ~ ?[2])
1. 개요
2. 정사
3. 장비 로리콘 설
4. 납치혼? 정략혼?
4.1. 납치혼 설
4.2. 정략혼 설
5. 기타
6.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 말과 촉한의 여성이자 장비의 아내로 하후연의 조카딸,[3] 하후패의 사촌여동생. 이름은 불명. 예주 패국 초현 사람.


2. 정사[편집]


위략에 따르면 연주, 예주에 대란이 일었을 때, 하후연은 기근 때문에 어린 아들을 버렸으나 죽은 아우의 딸은 살렸다. 하후연이 구한 조카딸이 이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또다른 조카딸일 수도 있다.

200년, 하후패13세인 사촌 여동생이 고향집에서 땔감을 주우러 나왔다가 장비에게 사로잡혔고 장비는 그녀가 양가의 딸임을 알아채고 아내로 삼았다. 장비의 처는 하후연의 조카였기에 나중에 하후연이 죽었을 때 요청하여 하후연을 묻어줬다고 한다.

여담으로 하후씨와 손부인 덕분에 위촉오 세나라가 친인척으로 이어지게 된다.# 손권은 유비의 처남이 되었고, 장비와 하후씨의 딸이 유선에게 시집을 갔으므로 유선은 하후연의 조카의 사위가 된다. 그래서인지 유선은 추후 촉에 귀순한 하후패에게 자신의 아이를 보여주며 "이 아이는 하후씨의 외손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3. 장비 로리콘 설[편집]


장비와 결혼할 때 하후씨가 13~4세여서[4] 장비 로리콘 설이 나돈다. 하지만 당대의 관점으로 볼 때 하후씨의 나이가 큰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당대의 결혼 적령 연령기를 생각 못하고 하는 주장인데, 장비와 같은 시대는 물론 그 이전과 이후 시대에 어린 나이로 결혼하는 이들은 매우 흔했다. 육적의 딸인 육울생도 13세에 장온이라는 사람에게 시집갔으나 이걸 문제라고 지적한 사람은 없었으며, 장비와 같은 시대 인물 순욱은 아예 1~2살 정도였을 164년에 결혼하게 된 일화도 존재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혼인나이가 세는 나이로 15~16살이였고, 2차 성징이 끝나가는 무렵인 16~17살부터 성인으로 대접하는데, 서기 2~3세기 무렵의 중국은 오죽하겠는가.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짧기도 했으니 결혼을 미루면 그만큼 자손을 보기 힘들어져서 오히려 현대에는 빠르다는 말까지 있는 20대까지 결혼을 안 했으면 뭔가 집안이나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5] 즉, 하후씨는 결혼 적령기 나이에 장비의 아내가 됐다고 볼 수 있다.[6]

어차피 이 시대에는 남자도 15살이면 관례를 올리고 성인 대접을 했으므로[7] 18~19살에 결혼을 한 격이다.

게다가 나이 차이도 큰 일이 허다했다. 당장 장비와 동시대에 산 인물들 중에는 자기 손녀뻘 나이인 여자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은 유명인사들이 적지 않다.[8]


4. 납치혼? 정략혼?[편집]


장비와 하후씨의 결혼이 사서의 기록대로 납치혼인지 아니면 정략혼인지 의견이 갈리는데 역사학계에서의 정설은 없다.



4.1. 납치혼 설[편집]


  • 위략에 촉한에 왜곡된 기록이 있긴 하지만 현재 위략에서 문제가 되는 기록은 배송지 등이 주석을 달면서 타당한 이유를 들어 반박했기 때문이지 위략 전체가 가치없는 찌라시 사료라서가 아니다. 하후씨의 기록은 주석에 아무런 반박이나 이의가 없으므로 위략의 기록이라는 것만으로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 해당 기록에는 장비가 하후씨 집안의 여식을 처로 삼은 것에는 딱히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지 않다.

  • 촉인들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위나라의 공신인 하후연의 신상 명세와 관련된 기록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 하후씨의 사촌오빠 하후패가 촉에 귀순할 때, 유선이 그를 외척이 주로 맡는 거기장군에 임명한 것을 보면, 장비와 하후씨가 연관이 없는 관계였다고 부정하기 어렵다.

  • 명문가의 여자가 땔감 줍는 게 충분히 그 당시에 있을 만한 일이었다. 후한 말 중국의 경제 사정은 호적의 80~90%가 유실될 정도로 국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때였기 때문에 하후씨의 고아가 땔나무를 하러 산에 가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으니 건안 5년이면 황제가 끼니를 거르고 관리가 길거리에서 굶어 죽던 삼보의 난으로부터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 납치혼이 가능할 시기를 찾자면 무제기, 선주전, 조인전 등을 따르면 200년 관도대전 당시 유비는 여남의 황건적 유벽이 조조를 배반해 난을 일으켰으니 도우라는 원소의 명을 받아 여남으로 가 허도 인근에서 조조의 배후 교란을 꾀했고 이후 조조에게 파견된 조인과 싸워 패주한 전적이 있으므로 이때 허도 인근에 있던 하후씨를 유비 휘하에 있던 장비가 데려갔다고 하면 이야기는 된다.


4.2. 정략혼 설[편집]


  • 위략에서는 납치혼으로 나오지만 위략은 철저하게 위의 시각에서 서술된 저작이기 때문에, 특히 정통성 측면에서 위와 상극인 촉한에 관한 기록에 있어서 그 신뢰성이 강하게 의심받고 있고, 실제로 유선 벤허설처럼 누가 봐도 왜곡인 기록이 위략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해당 기록 부분은 배송지가 인용해서 삼국지 주해로 사용한 부분이 아니다.[9]

  • 아무리 당시 상황이 어려워도 하후연은 조조 휘하 고위 관료이며,[10] 명문가 출신들인데[11] 이런 집안의 귀한 아가씨가 혼자서 땔감을 손수 주우러 간다는 것도 이상하다. 조정의 고위관료인 하후연이 사정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유비, 원소와의 전쟁 중에 조카딸 혼자만 땔감 주우러 보낸다니 이상하다. '그 시기는 난세라 고관대작도 풀뿌리를 캐어먹고 살았다, 하후연은 미관말직인데 충분히 그 집안 여자애가 주변서 땔감 주울 수도 있는거 아니요!'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건 고관대작에게도 늠료를 제공해주지 못하던 삼보의 난 시절 헌제 조정 얘기다. 이 시점은 사정이 많이 달랐다. 그 정도로 당대 허도의 식량 및 물자 사정이 심각한 상황이었다면 조조가 관도대전 이전부터 여러번 원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 어린 조카딸 혼자 황건적 잔당이 설치는 위험한 고향에 혼자 땔감을 가져오라고 밖에 내보냈다는 건 하후연을 비정한 삼촌으로 만드는 격이 된다. 그것도 기근 때 자기 아들을 포기하고 살린 조카딸임에도 박대한 것이다. 게다가 위략에서는 하후연이 전사하자 하후씨가 청하여 하후연을 묻어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장비의 납치설이 진짜라면 하후씨는 자기를 박대한 삼촌을 용서한 대인배로 추켜세워지게 된다.[12]

  • 조인전에는 유비가 교란하던 허도 인근 지역이 명확하게 명시되는데 허현(허도) 남쪽 예주 여남군 은강현 주위의 여러 현들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놓고 적인 유벽과 유비가 허도 주위를 공격하는 중이고 조인이 한창 그들과 허도 인근에서 전투 중인데 규중의 아가씨가 거기까지 땔감을 주우러 갔다? 이건 풀뿌리 운운하기 이전에 그냥 죽고 싶어서 거기로 갔다는 얘기밖에 되질 않는다.[13]

  • 납치혼으로 누군가의 아내가 된 게 분명한 동시기 사람이 진류 출신인 채염인데, 이 사람은 흥평 연간(194-195)에 흉노에게 납치당해 좌현왕의 첩이 되었다. 이 때는 이각과 곽사가 깽판을 치고 조조와 여포가 드잡이질을 하던 정말로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으며, 채염은 아버지도 잃고 남편도 잃고 자식도 없어 보호해 줄 일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와중에 납치당한 거다. 그런데 하후씨는 사정이 달랐다. 그녀는 하후연이 기근 중에 자기 아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살려낸 귀한 조카딸이다. 당연히 200년 시점에도 하후연이 가장 든든한 보호자로 건재했다. 막말로 유비 세력이 허도를 점령해서 혼란에 빠뜨렸다면, 하후씨 소녀도 삼촌 하후연의 보호를 못 받는 사태가 발생해 납치당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유비 세력은 허도 남쪽의 전선을 교란하다가 조인에게 패주했다. 허도에는 발도 못 들였다.

  • 위략 왈: '하후씨는 本郡에 있다가 땔감을 주우러 나갔다 장비에게 잡혔다' [14] 한다. 하후씨 집안이 다 허창에 있었을텐데 혼자서만 고향집에 있던 일도 이상하지만 하후씨, 조씨 일족 고향은 예주 패국 초현. 그러니 이 말은 한창 하북, 서주, 허도 인근에서 열심히 조조군과 드잡이질 하던 장비가 그와 동시에 어느새 조조 고향까지 쳐들어가서 하후씨를 납치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하후씨가 일단 위략 기록대로 초현에 있다 가정해 보면, 설령 그런 기록은 없지만 만에 하나 서주로 가는 길에 들렀다고 한들 조조의 장수 주령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수로 납치를 했겠는가? 이후 유비군이 서주에 있었을 때는 199년 6월부터 200년 1월까지로 유비는 한창 유대왕충을 상대하고 곧이어 조조를 맞이한 터라 200년에 예주 초현에 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또 같은 예주 패국이지만 초현과 소패라고 알려진 유비의 주둔지 패현은 무려 150km도 넘게 떨어져 있다. 또 이후에 유비 일당이 조조군의 영토 안에서 활동하던 지역인 여남군 은강현은 지금의 허난성 뤄허시 린잉현에 위치하는데 지금의 쉬창, 즉 허도 바로 밑이다. 초현은 지금의 안후이 성 보저우시인데 허창에선 이 당시 조조와 원소가 맞붙던 관도(허난 성 정저우 시 중무현 인근)와 허창 거리보다 더 멀리 있었다. 대략적으로 따져서 지금의 쉬창시와 보저우 시인 허창과 초현 사이의 거리는 초현이 동쪽에 있어 직선거리로 200km 정도다.[15] 한 마디로 한참 여남군과 허도 주변의 대대적인 호응을 받고 이 지역을 공략하며 거기에다가 곧이어 조인이 이끄는 조조군과 사투를 벌이고 곧바로 하북으로 도주했어야 할 장비가 굳이 거길 갈 이유가 없다. 긴 거리를 장비가 끊임없이 주군 유비가 조조군의 조인과 싸우는 도중에 혼자 주파해 하후씨를 보자마자 납치했다는 것이다.[16] 그 시대에 실시간 SNS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비가 무슨 재주로 200km 떨어진 곳에 하후씨가 혼자 땔감 구하러 왔다는 걸 알아차리는가.

  • 또한,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은 이미 200년 기준으로 조조의 최측근인 하후돈, 하후연, 조홍, 조인은 모두 유비, 관우, 장비와 상당한 안면이 있는 사이라는 점이다. 반동탁 연합군이 발호하는 시기 전후로 이미 유비는 조조 휘하에서 객장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적어도 유비의 서주 귀환~관도대전 이전까지 유비군은 조조군에게 그다지 적대적인 포지션이 아니었다. 물론 양측의 내심에는 서로 경계심과 적대감이 분명 있었지만,[17] 일단 표면적으로는 여포에게 쫒긴 유비에게 조조가 좌장군 예주목이라는 상당히 높은 직급까지 상주하고 여포 토벌도 같이 진행했으며 서로 같은 수레를 탈 정도로 우대하면서 적당히 친분이 있는 관계였기 때문에 정략혼 얘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정략혼 설을 따른 다음과 같은 추측도 있다. 유비가 서주에서 달아나 조조에게 의탁했을 당시 조조는 유비의 최측근들에게 관직을 주면서 자기 인재로 은근슬쩍 포섭하려는 시도를 했다.[18] 이때 다른 사람들처럼 장비에게 중랑장 벼슬을 주며 하후연의 조카딸을 아내로 주었는데[19] 유비의 인재들을 포섭하는 데 실패하자 하후씨 집안 아가씨를 장비가 강제로 납치했다는 언플을 하려고 땔감 주우러 나왔다가 사로잡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내용의 추측이다.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조조가 장비를 포섭하려 장비와 하후씨를 정략결혼시켰는데 장비는 결혼만 하고, 포섭에는 불응한 것이다.

5. 기타[편집]


일화에 따르면 남편 장비의 참을성을 길러주기 위해 바늘귀에 실을 넣게 하고 장비가 그걸 힘들게 해내면 실을 다시 뽑아서(...) 다시 넣게 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결국은 그러고도 성격을 고치지 못해 부하들에게 끔살당했지만.

6. 미디어 믹스[편집]



6.1. 삼국지 시리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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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0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958.jpg
삼국지 12, 13, 1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0부터 등장한다.

특이한 점으로는, 기본적으로 삼국지 시리즈는 그 특성상 15세를 성인으로 치며 대부분의 무장들이 15세가 되어야 등장을 하는데, 하후씨는 역사대로 200년에 13살의 나이로 등장[20]한다. 역시 13세 쯤에는 이미 사마의와 결혼해 있던 것으로 알려진 장춘화는 15세가 되는 203년에 등장을 하는데도 말이다.

삼국지 10에서 장비의 아내로 등장한다. 결혼 이벤트는 따로 없고 특정 년도부터 장비의 아내로 존재한다.

삼국지 11 PC판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콘솔판에서 추가되었다. 능력치는 통솔력 13/무력 5/지력 62/정치력 68/매력 74. 특기는 간파. 이 특기는 원래 고대무장 범증의 전용 특기였는데 하후씨도 들고 나왔다.

삼국지 12에서는 전작들에 비해서 조금 성숙해진 일러스트로 나왔는데 앉은 상태로 꽃을 들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4/무력 13/지력 42/정치력 68. 중신특성은 없고 전법은 주위공격, 병과적성은 창C/기B/궁B. 특기는 농업 1, 일기 1(장비 인연 효과)이며 전수특기는 농업. 활용도는 D급 문관으로 사실상 일러스트 감상용 캐릭터로 일러스트는 삼국지 12와 동일하다. 상성이 조조 쪽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포로로 잡히거나 할 경우 친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꽤 볼 수 있다. 군주가 유비라면 큰 상관이 없지만 세력이 망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유비가 군주가 아닐 경우 하후씨 하나로 삼형제를 전부 빼 오는 스노우볼이 가능하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4/무력 6/지력 52/정치력 60/매력 63으로 전작에 비해 지력이 10 상승했지만 통솔력이 2배, 무력이 7, 정치력이 8 하락했다. 개성은 응원 하나 밖에 없고[21]이고 주의는 예교, 정책은 본초학 Lv 2, 진형은 장사, 전법은 아예 없고 친애무장은 장씨, 혐오무장은 없다.

전투하고는 상관없는 능력치지만 응원 개성이 3칸 주위의 남성 무장에게 능력치 10% 올려주는 귀한 전투 버퍼이므로[22] 약간의 병력만 주고 아군 뒤에서 버프 토템으로 쓸만하고 자녀들과 남편과 혈연 연계 버프는 있어 전법 연계가 가능하고 여유가 있다면 장사진형의 산악 기동력을 이용하여 별동대로 마을점령에 써도 괜찮다.

6.2. 삼국지대전[편집]


삼국지대전에서는 하후월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월희는 일본인이 지은 흥망 삼국지에서 창작한 이름이다.[23]


6.3. 진삼국무쌍 시리즈[편집]


하후희 항목 참조.


6.4. 영걸전 시리즈[편집]


파일:조조전 온라인 하후홍.png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 장수로 등장. 병종은 책사. 이름은 하후홍(夏侯紅)으로 나온다. 16코스트에 사신 소환이 있으나 사신 소환 책사로는 1코스트 낮고 연공면까지 있는 이유가 훨씬 더 적격이므로 굳이 하후홍을 키울 이유는 없다. 그래도 특성이 아주 나쁜 편이 아니고 여성 사신 소환 책사 중엔 가장 저렴한 편이라서 애정으로 키울 정도는 된다. 물론 여성에 성능까지 원한다면 1코스트 높고 방능전을 갖춘 황월영이나 2코스트 높고 연속 책략까지 있는 채염이 더 좋아서 굳이 하후홍을 올릴 필요는 없기는 하다.

장비전 연의에서 등장하는데, 유관장 3형제가 뿔뿔히 흩어진 후 장비가 돌아다니다 산적에게 잡힌 하후홍을 보고 구출하는 과정에서 해당 산적단의 두목으로 추대되었고 하후홍은 이후 장비와 사랑에 빠졌다는 식으로 적당히 미화해 각색했다. 그리고 장판파 전투에서 장비를 위해 기도하고 버프를 주는 역할로 등장. 장포의 어머니로 나온다.[24]

아만전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산적들에게 납치당했다가 조조와 하후돈에게 구출되는 장면으로 짧게 등장한다.


6.5. 삼국전투기[편집]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웨다로 패러디되었지만 하후씨라는 성은 커녕 뒷배경에 대해선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하레와 구우가 각각 장포와 장성채로 패러디 되면서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장비와 하후씨가 이어지게 된 일화는 일절 생략해버리고 개그로 처리했다.[25]

여남 전투 편에서 장비의 가족들이 전부 등장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기억을 잃은 장비를 속여서 가족을 빙자한 일꾼으로 부려먹고 있다고 묘사됐다(...) 조조의 추격대를 따돌린 직후 의형제들의 기억을 떠올린 장비가 반대로 자기들과 지냈던 기억을 싸그리 잃자 바닥을 치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26]

창정 전투 편에서는 망탕산을 떠나 자식 2명과 함께 장비를 따라간 것으로 묘사된다.


6.6. 여자 제갈량[편집]


작중 이름은 하후련. 정략결혼설을 차용해서 장비와는 놀아주면서 친해진 사이지만 그 때 이미 정략결혼 얘기가 진행되고 있던 것으로 묘사된다. 이때 곽가는 이런 순욱의 결정에 반발하는데 여성으로서 같은 여성을 이용하는 행태를 참을수 없었던 듯 하다.

이후에 유비가 조조를 피해 도망칠 때 몰래 숨어들어가 놀래키려다 같이 휩쓸려 가게되었다는 설정으로 나왔다.[27] 장비는 다시 되돌려주자고 하지만 유비는 이미 도피중인데 돌아가는건 자살행위라고 하면서 그냥 데리고 살라고 한다. 동생을 도둑놈을 만들어 놓은...


6.7. 최강무장전 삼국연의[편집]


연의 내용도 팍팍 생략하는 본 작품 답지 않게 장비와 하후씨의 결혼 이야기를 넣었다. 여기서 하후씨가 하후련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1] 165년생으로 추정되는 장비와 무려 23살 차이난다.[2] 하후연이 전사 시 살아 있었고, 유선이 하후패가 항복할 당시 하후씨에게 데려간 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을 하후씨의 외손자라 소개한 것을 보면 이 시점에는 이미 사망했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 보면 사망 년도는 219년에서 249년 사이로 잡을 수 있는데, 너무 범위가 넓어서 예측의 의미는 별로 없다. 20대 초반부터 50대 초반까지의 범주 안이니...[3] 하후연의 조카라면 하후돈의 조카일 수도 있을텐데, 하후돈의 조카인 하후씨로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하후연과 하후돈은 정사에서는 친형제가 아닌 친족 형제라서 그렇다. 하후연은 하후돈의 족제, 즉 유복친(상복을 입을 수 있는 가까운 친척)이 아닌 안에 들지 않는 먼 친척동생이란 얘기가 된다. 그렇기에 하후연의 조카라고 자동으로 하후돈의 조카가 되진 않는다. 이 경우 하후돈은 먼 친척 아저씨 정도가 된다.[4] 이때 장비의 나이는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165년생 정도로 추정. 하후씨는 188년생 정도이니 나이 차이가 굉장히 큰 편이다.[5] 지금으로 치자면 30대 후반에 결혼하는 격이다(...)[6] 물론 이런 시대에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이들도 있어서 젊은데 남편이 없는 아내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 관점으로는 여성의 재혼은 좋게 여기지는 시기기 아니므로 이건 택하기 힘든 선택지이다.[7] 사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성인으로 대우받는 나이가 16~17살 정도였다.[8] 통상적으로 봤을 때 가장 유명한 인물이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인데 64세에 공자를 보았다. 장비와 동시대에도 종요가 손녀뻘되는 장창포에게서 자식을 본 사례가 있다. 조조의 막내아들 조간은 조조가 61~62세 무렵에 낳은 늦둥이로 조조의 살아남은 아들들 중 가장 장남인 조비와는 30살 차이였다.[9] 위략 자체는 소실되었기에 위략은 2차 문헌으로 인용된 부분들만 남아있는 사서이며 주로 배송지의 인용에 의해 그 내용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해당 부분은 배송지의 주에는 없는 부분이다.[10] 하후연은 조조의 주요 근거지인 영천, 진류 태수를 맡을 정도로 조조 친인척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관도 당시에는 독군교위 직이었는데 여기서 한대의 독군(督軍)이라는 것은 원래 한나라 때 부터 정벌군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감독하고 관리(지휘가 아니다)하는 벼슬을 의미하고 때로는 물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기도 하는 직위이며 실제로 하후연은 관도대전 이후 연주, 예주, 서주에서 물자를 공급했다.[11] 삼국지에서 하후씨하면 조조 휘하의 장수들을 생각하기 쉽겠지만, 한의 개국공신인 하후영의 후손들으로 당대의 명문 집안이다.[12] 아주 만약 하후연이 진짜 조카딸을 박대해서 멀리 나무하라고 보낸 거면 한편의 막장 드라마 스토리다.[13] 당장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조조와 도겸이 한참 싸울 때 도겸의 영지를 눈치없이 지나가다가 도겸의 부하에 의해 살해당한 일이 있다.[14] 時霸從妹年十三四,在本郡,出行樵採,爲張飛所得。飛知其良家女,遂以爲妻,產息女,爲劉禪皇后。故淵之初亡,飛妻請而葬之。[15]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전주 쯤 거리가 된다.[16] 조인의 기록에서 유비가 허도 부근에서 게릴라전을 펼치자 조인이 직접 게릴라 소탕을 위해 유비와 싸움을 했다고 나온다.[17] 서주에서 복수심에 난리를 치던 조조군을 상대로 유비가 서주를 구원하여 조조와 격돌한 적도 있고, 조조의 책사들이 유비를 내심 상당히 경계했으며 조조 본인 또한 면전에서 대놓고 천하에 영웅은 오직 사군(유비)과 이 조조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유비를 의식했던 기록이 명확하며, 유비 또한 조조 암살 계획인 의대조 사건에 참여하거나 관우가 조조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다가 유비가 말린 적이 있는 등 이 시기에도 이미 조조와 유비가 서로를 내심 경계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료가 넘쳐난다.[18] 관우야 두 말하면 입이 아프고, 미축과 미방은 조조가 장악한 조정에 관직을 주고 불러오려고 했다.[19] 또한 이미 조조는 손책이 강동에서 세력을 떨치자 조카 딸을 손광에게 시집보내고, 아들 조창을 손분의 딸과 짝을 지어줘 인척 관계를 맺는 정치적 계산을 한 사례가 있다.[20] 등장연도인 200년이 시작인 관도대전 때는 아예 유비 세력에 속한 채로 시작하고, 그 이전이라면 허창에서 재야로 등장한다. 단, 관도대전 시나리오에서도 유비 세력에 속해 있지만 장비의 아내는 아니다.[21] 사실 14에서는 딱히 전승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고 이름만 나오는 여성무장들에게 줄 개성이 애매하면 그냥 응원 하나만 주고 때우는 경우가 많다.[22] 삼국지 14는 난이도가 오를수록 적들이 받는 버프가 엄청나게 올라가기 때문에 관장조라 하더라도 따로따로 적진에서 싸우면 3-4지역 버프받은 B급 무장 하나에게도 털린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버프와 필드에서 아군의 능력을 올려주는 개성이 유용하다.[23] 중화 문화권에선 여자 이름에 달 월(月) 자를 잘 쓰지 않는다. 月의 자형이 고기 육(肉)이 부수로 쓰일 때의 형태인 육달월 부(月)의 자형과 동일하다 하여, 화류계 여성의 이름에 종종 들어가기 때문이다.[24] 이 장비전 연의에서 장포는 형주남부 평정전부터 등장하여 적장 형도영을 단기 접전으로 베는데, 장비가 하후홍을 부인으로 맞이한게 200년 경인데 형주 남부는 208년에 평정했으니 장포는 9살에 전장에 나가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고증오류가 발생한다. 다만 조조전 온라인의 연의는 이야기의 매끄러움을 위해 등장인물의 생몰년도를 조정하는 경우는 흔히 등장하는 편이다.[25] 망탕산에서 의식을 잃다가 구조된 장비는, 관우가 원소와 푸닥거리 벌이는 사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있었는데 기억을 잃어버려 상실이 아저씨라 불리고 있었다.[26] 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는 장비에게 자기들이 부려먹은 건 싹 빼놓고 기껏 먹이고 입혀서 살려놨더니만 기억을 못 하냐면서 기억왜곡을 시도했다(...)[27] 짐에 숨어 있었는데 조조한테서 도망친다고 제대로 정비할 틈도 없이 물건을 서둘러 들고갔다. 장비를 놀래키려고 했던 것이 목적인만큼 사람들이 기겁하고 장비도 놀라자, 만족하고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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