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충(삼국지)

최근 편집일시 :

王忠
?~242



1. 개요[편집]


후한 말, 삼국시대 조위의 무장으로 옹주 부풍군 사람.


2. 정사[편집]



2.1. 젊은 시절과 조조 시대[편집]


젊어서 정장을 지냈지만 이각, 곽사집권으로 장안 일대의 치안이 막장이 되자[1] 왕충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인육을 먹었다. 이렇게 굶주림에 시달리던 끝에 고향을 버리고 무관으로 갔다.[2]

남양 일대의 군벌이었던 누규유표를 의지하고 있었는데, 누규는 왕충에게 유표에게 귀부할 것을 제의했지만, 왕충은 이에 반발해 오히려 다른 유랑민 무리들과 함께 누규를 격파했다. 이 과정에서 누규의 군사들 일부를 흡수해 1천의 무리를 거느려 조조에게 귀부했다.

정사 정혼전에 정태왕충과 함께 동탁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이 왕충을 말하는지 확실하지가 않다.[3]

이후 조조를 따라 각종 전투에 참여했는데 199년에 유대와 함께 차주를 죽인 유비를 상대하러 갔다가 이기지 못하고 유비한테는 "너희 같은 놈들은 100명이 와도 안 무서우니 조조나 끌고 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기록상 확인되는 왕충의 행적은 많지 않지만 중랑장을 거쳐 양무장군으로 승진해 도정후에 봉해졌다.

213년에는 다른 여러 신하와 함께 위공 취임을 청하는 문서를 썼다. 이때 조조 수하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 중에서도 앞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그것도 무려 하후돈의 다음 순서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전기는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영향력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

명단 앞자리에 이름이 올라간 인사들 중 현대에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집안도 받쳐주고 독자적인 세력이 있어서 이걸 조조에게 바치고 귀부한 무리로 봐야 되는데, 이렇게 볼 경우 왕충은 경조 지역의 최말단 관리였기에 문벌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욱이 거지떼나 다름없던 난민 출신인데다 소수의 무리로 조조에게 귀부했기 때문에 실력으로 그 위치까지 올라간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220년에 세워진 비문 상존호비에서도 위나라 주요 신료들의 명단과 서열을 열거하고 있는데, 왕충은 경거장군, 도정후로 총 46명 중 일곱번째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으며, 장료, 장합, 서황 같은 오자양장 멤버들은 물론 조진, 조휴 같은 황족들보다도 상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이걸 순전히 개인의 능력으로 봐야 하는지 다른 요소가 있었는지는 안 나와 있기 때문에 무능한 높으신 분들로 볼 여지는 존재한다. 일단 능력에 대한 기록이나 인품이 좋았냐 나빴냐의 기록도 없는 데다가 출세를 하는 데 능력이 좋아야 한다는 법도 없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능력이 있다면 적어도 그 점이 기록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능한데 줄타기를 잘해서 출세를 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 1천의 무리를 거느려 조조에게 귀순했던 점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유력자이기도 했으니 그 덕을 봤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쨌든 크게 출세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2.2. 조비 시대[편집]


조비 시대에는 경거장군까지 승진해 있었다.

조비가 오관중랑장이던 시절, 조조를 수행하는 왕충이 식인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조비는 광대를 시켜 무덤에서 해골 하나를 도굴한다. 그리고 그걸 왕충의 안장에 매달게 해서 웃음거리로 삼아 조비의 인성불량적 성격을 여과 없이 과시한다.

이후에도 별 기록은 없으나 배송지가 인용한 오질별전의 토막 일화로 등장해 224년에는 조비의 총신 오질[5]이 수도로 입조하자 조비는 오질의 이름으로 연회를 열고 상장군 이하 고관들을 모두 참석하도록 했다. 술판이 질척해지자 오질은 광대를 시켜 조진의 비만한 체구를 놀렸는데, 그 놀림이 심하자 조진은 부끄럽고 화가 나 오질에게 따지자 왕충은 조홍과 함께 오질을 거들면서 "오질 장군께서 장군의 비만을 걱정하시는 것이니 장군이 살을 빼셔야겠소.'라고 조진을 달랬다.[6] 이에 조진이 더욱 화를 내며 칼을 뽑아들며 좌중들을 욕했고, 오질도 조진을 욕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주삭이 나서 말려보려 했지만 오히려 더욱 분위기가 개판이 되어 연회가 끝난다.

이때 오질의 관직은 정확하진 않지만 시기상 아마 북중랑장이었을 것이고 반면 조홍은 표기장군, 왕충은 경거장군으로 위나라 전체를 통틀어서도 그보다 높은 자리는 손에 꼽아야 할 정도로 최고위직의 반열인데다 개국공신군부의 대원로 격에 해당하는데, 이런 양반들이 고작 북중랑장에 아들뻘 되는 오질이 안하무인으로 상장군을 능멸하는 하극상을 저질렀는데, 그가 조비의 측근 심복이란 이유로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부하는 걸 보면 은근히 안쓰러운 대목이다.

더군다나 조홍과 왕충이 나란히 조비한테 찍힌 양반들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눈물이 날 지경.


3. 연의[편집]


유비가 서주를 차지할 때 공격하는 것만 나오는데, 조조가 원소를 상대하는 동안 유비가 차주를 죽이고 서주를 차지하자 유대와 함께 한세트로 시간벌이를 할 목적으로 유비를 공격한다. 제비뽑기를 통해 먼저 공격하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바로 관우에게 사로잡히며, 유비한테 잘 대접받고 돌아갔는데 하마터면 조조한테 죽을 뻔 했다가 공융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4. 미디어 믹스[편집]



4.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파일:external/kongming.net/251-Wang-Zhong.jpg
삼국지 8~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052.jpg
삼국지 13, 14

삼국지 2삼국지 3에 등장하고 그 뒤로 쭉 출현이 없었다가 삼국지 8에서 다시 복귀했는데 최하권에 진입할 정도의 쓰레기적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백하팔인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근접하다. 삼국지 12 편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잠혼(7~10) 황호(7~10) 문호(8~11)등과 함께 네 시리즈 연속으로 같은 일러스트를 우려먹었다.

삼국지 8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60/지력 33/정치 34/매력 39. 전법은 난격 2며 무특기. 그나마 이 때의 능력치가 제일 높았다. 유대군에서 군주 빼고 무력이 가장 높다는 이유로 반동탁 연합군에서 자주 참전하나, 난격은 레벨이 낮으면 위력이 많이 떨어지기에 별반 활약은 못 한다. 유대군의 다른 부하로 교란 3에 열화 3도 있는 원유나 교란 2에 화시 3이 있는 교모가 더 쓰기 좋다. 이들도 다 난격 2는 있는데다 무력도 각각 56, 58로 별로 낮지도 않아, 인간이 유대군을 플레이한다면 당연히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인공지능이 바보짓하는 것. 분명히 시리즈 통틀어 최강의 왕충인데 이 조차도 다른 장수들에 밀리는 지경이니 삼국지 시리즈에서 왕충이 얼마나 안 좋은 장수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5/무력 58/지력 23/정치력 25. 특기로는 분전 하나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2/무력 58/지력 21/정치력 29/매력 20으로 역시나 쓰레기. 특기가 회복 1개 밖에 없지만 무특기는 면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9/무력 57/지력 21/정치력 27/매력 49로 역사를 반영하여 조비의 혐오 무장으로 들어가 있다. 의리도 낮은 데다가 조조군 소속이라 쓸모는 없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일러스트는 불쌍해 보이는 얼굴로 두 손을 가슴에 올리고 있으며 통솔력 39/무력 57/지력 21/정치력 27. 중신특성은 없고 특기는 연전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당연히 연전이고 전법이 궁방약화였지만 PK에서 금족으로 변경되었다. 병과적성은 창병 C/기병 C/궁병 B다. 가난해서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 때문인지 기호품은 보물이고, 물욕은 탐욕으로 설정되어 있다. 비록 쓰레기급 능력치를 가지고 있지만 감릉에서 재야로 등장하기 때문에 인재가 부족한 유대군으로 플레이 한다면 등용해서 전투용으로 써주자.

삼국지 14에서 능력치는 통솔 44, 무력 57, 지력 21, 정치 27, 매력 20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5 상승했다. 개성은 절감, 소심, 동요, 단려, 주의는 아도, 정책은 병참개혁 Lv 1, 진형은 봉시, 전법은 없고 친애무장은 유대, 혐오무장은 누규, 조비다. 연주자사 유대와 친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오히려 장안의 재야로 등장하는데 하필 진나라를 세울 수 있게 기틀을 닦은 사마의가 세력을 이끌고 있는 대도시다.[7] 이렇게 능력치가 구린데도 불구하고 장안의 재야로 등장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 차라리 안정 같은 소도시의 재야로 등장하거나 아니면 유대의 부하장수로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4.2. 진삼국무쌍 시리즈[편집]


진삼국무쌍 7의 위 IF 시나리오 허창정변전에서 반란을 막는 조비, 견희, 하후돈, 하후연 앞에 나타나 반란군과 함께 덤벼드는 간 튀어나오는 짓을 저지르는가 싶더니 이건 좌자가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4.3.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편집]


파일:전략왕충.png

유대와 더불어 행적이 굴욕적이다.


4.4. 삼국전투기[편집]


헬싱아카드로 나온다. 인육을 먹은 포스 때문에 그런 듯. 같이 나온 유대와 함께 팽성 전투 (4)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팽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조조의 명령으로 유비를 제거하고자 유대와 함께 서주로 군사를 끌고 간다. 유대가 먼저 관우, 장비에게 멍석말이를 당하며 털린 뒤 유대의 지시로 공격에 나서지만 관우, 장비에게 털리고, 이어진 유비의 도발에 정신적 데미지를 크게 입어서 허도로 돌아갔다고 나온다. 이후엔 등장이 없음.

[1] 당시 인구수 총 30만 가구가 넘었던 경조 일대가 2년 사이에 전멸했다고 한다.[2] 형주 북쪽 경계인 남양군의 서쪽이다.[3] 같은 시대는 아니긴 하지만 한자만 다른 왕수의 아들 왕충도 있다.[4] 물론 유훈 같은 인물이 하후돈 앞자리에 들어갔으니 그렇게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유훈은 능력은 둘째로 치더라도 젊어서부터 조조와 친분을 가진 유력 가문 출신으로, 회남에 대세력을 형성했던 원술이 공중분해되자 그 잔당을 긁어모아 그대로 조조에게 갖다 바쳤기에 대단한 총애를 받으며 당시 초법적인 권세를 휘둘렀던 양반이었다. 그와 관련된 두기의 일화도 있다.[5] 오질은 조비의 심복 측근으로 조비의 태자 즉위에도 공헌한 인물인데, 현재에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지만 조비는 오질을 매우 총애했고 심지어 견씨를 시켜서 접대할 정도로 문자 그대로 파격적인 총애를 받았다. 오질 또한 이를 믿고 방자함이 극심했다고 평가된다.[6] 조롱이라고 하기에는 조홍과 왕충에게 가혹한 잣대일 수는 있는게 조홍은 조조의 거병 초기부터 함께하고 반동탁의용군 거병 당시 본인의 생명조차 돌보지 않고 조조의 생명을 구해줬어도 조비에게 금전대차거래를 안 해줬다는 같잖은 이유로 조비에게 원한을 사서 조비 즉위 후 재산은 몰수되고 사형이 논의되다가 조신들의 구명운동도 다 무시되다가 무선황후의 적극적 조력을 받고서야 겨우 생명과 재산을 보전할 수 있었고 왕충은 지위는 높아도 조비에게 과거의 가난으로 인해 불가피한 연명행위가 유희의 대상이 될만큼 조비에게 푸대접을 받았기에 조비 눈 밖에 더 나면 두 명 다 본인들의 생명을 영 보전할 수가 없는 위치였다. 조비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조비의 성격상 조비에게 한 번 미움을 사면 그 뒤는 겉잡을 수 없다는걸 이미 경험한 조홍과 왕충이 조비의 총신 오질 뒤에 있는 조비가 두려워서 조진을 말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 자체가 더 벼슬자리가 아래인 오질이 군주 조비와의 친분만 믿고 더 윗사람인 조홍과 왕충의 아첨을 받은 전횡과 그만큼 위나라의 위계질서가 조비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진 것을 뜻하는 에피소드일 뿐 이 때 조비에게 잘못 보이면 조홍, 왕충, 조진, 주삭 등 오질을 제외한 모두가 위험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7] 사마의 일가를 도운 서질은 맹장인데도 불구하고 무장들이 많이 있는 한수 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안정의 재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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