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한삼재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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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화한삼재도회》(函丈和氣法眼仲安謂予曰,劉完素有言,
『欲爲醫者,上知天文,下知地理,中知人事,三者俱明, 然後可以語人之疾病。不然,其如蔽目夜遊,無足登涉也。』
予聽師之敎誨,奉之服膺,因玆不顧不敏,執藥匙之睱,涉獵和漢之黃卷,夐求耳學口碑之者,凡三十有餘年,有所證者,靡不畢記其要領,有形色者,各爲畵圖,方今書成百五卷。
函丈、和氣法眼仲安、予に謂て曰く、劉完素、言へること有り。
『醫を爲んと欲る者は、上は天文を知り、下は地理を知り、中は人事を知り。三の者俱に明にして然して後、以て人の疾病を語るべし。然らざれば其れ、蔽の目の夜遊、足無して登涉するが如し。』
予は師の敎誨を聽て、奉之服膺す。玆に因て不敏を顧ず、藥匙を執るの睱に、和漢の黃卷を涉獵し、耳學口碑の者を夐求すること凡て三十有餘年。所證有る者、畢く其の要領を記せずと云ふこと靡し。形色有る者、各々畵圖をして方に今に書、成って百五卷。
나의 스승인 와케 주안(和氣仲安, ? ~ ?)[1]
선생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유완소(劉完素)[2] 의 말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하셨다."의사가 되려고 한다면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고, 가운데로는 사람의 일을 알아야 한다.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모두 밝아야만 비로소 사람의 질병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데 밤에 노닐고, 발이 없는데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너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받들어 마음에 새겨서, 스스로의 불민함을 돌아보지 않고, 약을 조제하는 여가에 일본과 중국의 서적을 섭렵하였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여 전해지는 것을 빠짐없이 구하여 무릇 삼십여 년이 지났다. 증거가 있는 것은 그 요점을 남김없이 기록하였으며, 형체가 있는 것은 각각 그림으로 그렸으니, 방금 책이 완성되었는데 105권이다.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 1654 ~ ?), 《화한삼재도회》자서(自叙)[3]
#
2. 특징[편집]
제목에 들어간《삼재도회》(三才圖會)는 명나라 시절 저술된 중국의 백과사전이다. 제목을 따라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성에서 《삼재도회》를 많이 본땄다. 삼재(三才)는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데, 이에 걸맞게 본 책도 '천부'(天部), '지부'(地部), '인부'(人部)로 나뉘었다.[6] 단, 여기서는 천부 - 인부 - 지부 순인데, 이는 물리적인 순서로 하늘이 제일 위, 땅이 제일 아래에 있고 사람은 그 사이에 있는 것과 같다. 이 분류는 표지에 "화한삼재도회" 제목 위에 天/地/人 중 하나가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있는 식으로 표시되어있다. 人이 표시된 9권 표지
《삼재도회》(三才圖會), 《본초강목》[7] , 《오잡조》(五雜俎), 《서양잡조》(西洋雜俎),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8] 등의 책을 인용하였다. 더 나아가 이웃 조선의 문헌인 《해동제국기》와 《동국통감》도 인용하였다(하우봉 2020: 343).
최종권에는 '소목록'(小目錄)이라 하여 이로하 순 색인이 있다. 이 점은 근대적 백과사전의 일면으로도 볼 수 있는 점이다(하우봉 2020: 343). 각 항목을 이로하 순으로 정렬한 뒤 건곤(乾坤), 인물(人物), 지체(支體), 기형(氣形), 식복(食服), 기재(器財), 금석(金石), 초목(草木)이라는 8개의 대주제로 분류가 되어있다.
지리 관련 장에서는 이웃 조선 이야기도 언급된다. 13권 이국인물(異國人物)의 한 항으로는 조선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9] 당시 조선어가 몇 단어 정도 수록되어있어 눈길을 끈다. 지리 부분에서는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다소 모호한 면도 있어서 14권 외이인물(外夷人物)에서는 마카오(阿媽港)를 다루다가 뒤에서는 개 얼굴을 한 인간이 사는 나라(狗國)가 등장하는 등 믿기 어려운 내용이 등장한다.
천문/지리 부분에서는 약 100년 전에 일본에 유입된 《천경혹문》(天經惑問)의 영향도 크다. 화한삼재도회에 실린 세계지도는 천경혹문의 지도와 정확히 동일하다.# 화한삼재도회에서는 지구 구형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 역시 천경혹문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40권 우류・괴류(寓類・恠類)에는 요괴 이야기도 실려있다. 현대인에게는 현실적인 다른 내용보다 이런 얘기가 오히려 더 관심이 갈 수도 있다. 현실 항목들이야 인터넷 같은 데서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요괴 같은 것은 옛날 문헌의 민담으로 접하면 더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글에 '화한삼재도회 요괴' 식으로 치면 "어느어느 요괴가 화한삼재도회에 언급됐다더라" 하는 인터넷 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에도 유입되어 널리 읽혔다고 한다. 이덕무가 이 책의 전질을 구해 읽었으며(하우봉 2020: 344) 자신의 저서인 《청령국지》(蜻蛉國志)에도 다량 인용하였다.
웹에는 105권 조양(造醸) 편 만두 항목의 "네덜란드 인들은 팥 없는 만두를 먹는데 이를 빵이라 한다", 59권 금류(金類) 편 아연 항목에서 '아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유래를 소개하는 내용 등이 알려져있다.
최종권 소목록을 통해 추산해보면 화한삼재도회에 실린 표제어 수는 약 6000개 가량이다.[10] 105개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매권 약 50~60개의 표제어로 구성되어있는 셈이다. 단, 권별 표제어 수는 10~150개 가량으로 편차가 큰 편이다.
3. 목차[편집]
총 105권[11] 과 수권(卷之首)/미권(卷之尾)으로 되어있으며 1~6장이 천부(天部), 7~54가 인부(人部), 55~105가 지부(地部)이다.#[12] 1888년판은 1~36 / 37~71 / 72~105 로 분권되어있다. 왼쪽의 주제는 이 문서에서 분류한 것이다.
표 내의 괄호는 원문에서 첨자이다.
4. 형식[편집]
표제어는 모두 한자로 되어 있으며 우측에 히라가나로 일본어 뜻을, 좌측에 (필요한 경우)[16] 해당 한자의 중국 음을 가타카나로 적었다. 가령 望(보름달 망) 표제어에는 우측에 もちつき(보름달),[17] 좌측에 ワン(왕)이 써져있다. 일본어 풀이에서 훈독을 한 경우 일본 한자음을 '音○'과 같이 직음법으로 달아두었다. 간간히 반절을 사용해 음을 표기한 것도 있다.物物圖形狀書名目下記異名右傍以倭字著和名左傍以徧假字附唐音
物物形狀を圖して名目を
書 し下に異名を記し右の傍(に)倭字を以て和名を著 け左の傍に徧假字 を以(て)唐音を附て각각의 형상을 그리고 명칭을 썼으며 별칭을 하단에 기재하였다. 우측에 가나로 일본 명칭을 적었으며 좌측에 가타카나로 당음을 부기하였다.
《화한삼재도회》범례 7번#
몇몇 항목은 항목과 관련된 와카를 인용하고 있다.
본문은 한문으로 되어있으며 일본 훈점(訓點)이 기재되어있어 훈독할 수 있다. 훈점은 1715년본이 좀 더 상세히 기입되어있다. 1888년본에서는 음합부/훈합부와 같은 표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씩 관련된 일본 시가 히라가나로 인용되어있다. 1715년본의 한자 부분은 자형이 세로로 약간 긴 편이다. 한자는 비교적 정자에 가까운 서체를 썼으나 독음이나 와카에서 보이는 가나는 초서체로 되어있어 현대인으로서는 읽기가 매우 어렵다.[18] 1888년본은 가나도 근대 활자로 되어있어 읽기가 편리하지만 아직 가나 표준화가 이루어지기 전이기 때문에[19] 헨타이가나가 종종 쓰인다. 표기법은 물론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따르고 있다.
1715년본의 행자수는 본문에서 15행 22자, 근대 간행본에서는 판본에 따라 행자수가 다르다. 본 위키에서 주로 참고한 1888년본은 본문이 16행 32자 구성이다. 본문 서술에 중간중간에 그림이 많고 전근대 동아시아 문헌치고는 내용별 줄바꿈이 많아서 공백이 꽤 있는 편이다. 1면 전체를 행으로 다 채운 페이지가 거의 없다.
각 원문에는 일부 문장에서 1칸 들여쓰기, 드물게 2칸 들여쓰기가 되어있다. 들여쓰기가 이루어진 단락은 대개 첫줄뿐 아니라 모든 줄에서 들여쓰기가 이루어져있다. 다만 어떤 내용의 단락들에서 들여쓰기가 되어있는지 규칙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긴 어려운 편이다. 아래 언급된 '△按'으로 시작하는 단락은 항상 1칸 들여쓰기가 되어있다. 본 위키의 원문 입력에서도 가능한 한 원문의 들여쓰기를 반영하였다.
본문에서 △ 기호와 함께 나오는 按(누를 안)은 유서 류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 중 하나로, 인용이 아닌 저자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이다. 동아시아 유서 류의 대부분이 고서 인용부터 시작하므로 인용 부분과 저자의 말을 분리한 것이다. 화한삼재도회에서는 주로 일본 당대의 현상을 서술할 때 쓰인다(고인덕 2016: 432).[20] 이 문서에서는 '생각건대'로 번역하였다.
책의 크기는 원간본 기준 27.1×18.0cm, 반곽(半郭)[21] 이 20.5×15.5cm이다. 난상(欄上)이 약 5.5cm, 난하(欄下)가 1.4cm로 난상이 더 많이 비어있는 편이다. 광곽(匡郭)은 4변이 모두 단선(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판심에는 위쪽에만 아래쪽 까만 어미가 있다(상하향 흑어미上下向黑魚尾). 본문 안은 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무계(無界)이다.[22]
5. 판본[편집]
5.1. 원간본[편집]
아래 두 자료는 당대에 간행된 것이다. 아래 링크는 모두 1715년본이다. 1712년 초간본은 아직 웹에서 접근 가능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
- 와세다대학 소장본(1715년본[추정]) #:[23] 표제는 '왜한삼재도회'이나 판심, 권내 서에는 '화한삼재도회'로 되어있다. 와세다대학에서는 출간 연도를 확인할 수 없으나 아래 시마네 대학 소장본과 같은 판본으로 추정되므로 이 소장본 역시 1715년 경으로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서문과 소목록을 포함한 107개의 권이 81개 책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권을 이미지 혹은 PDF 파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접근성이 좋고 화질이 좋은 편이지만 가장자리에 벌레 먹은 자국이 많은 편이다. 본 위키에서 말하는 "1715년본"은 이 판본을 말한다.
- 시마네 대학 소장본(1715년본) #: 표제는 '왜한삼재도회'이나 판심, 권내 서에는 '화한삼재도회'로 되어있다. 1715년 출간되었다. 2018년도 경까지는 위 와세다대학 소장본과 유사하게 각 권의 내용을 웹에서 이미지로 제공했으나 링크가 사라졌다. 현재는 PDF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와세다대학 소장본과 마찬가지로 81개 책으로 구성되어있다. 와세다본과 거의 유사하나 벌레 먹은 자국이 적은 등 보존 상태가 더 양호하다. PDF 화질은 와세다 소장본보다는 약간 흐리다.
5.2. 근대[편집]
아래는 본문의 내용을 인쇄체로 새로 인쇄한 것이다.
- 中近堂(1888년본)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라이브러리
105권의 내용을 상중하 세 권으로 엮었다. 아래 파일에서는 상, 중권은 권별 책갈피가 제공되지만 하권은 책갈피가 없어서 좀 불편할 수 있다.
열람이 용이해 본 위키의 본문 입력에서 주된 저본으로 삼았다. 본 위키에서 "1888년본"이라고 칭하는 것은 이 판본을 말한다.
전반적인 형식은 1888년본과 유사하다. 1888년본과는 달리 앞 항목의 서술이 좀 짧다 싶으면 서술 부분을 지면의 절반만 잡고 다음 항목의 그림에서 여백을 잘라 집어넣기도 한다.#(朢 항목)
근대 출간본인데도 판심(版心)으로 상하향 흑어미(上下向黑魚尾)가 새겨져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 1권
- 中外出版社(1902년본)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라이브러리
여러 권의 내용을 약 5개의 책(추정)으로 나누었으며 각 책의 권두에는 항목들이 나열되어있다.
아래 영인본들과 유사하게 4개의 면이 한 페이지에 들어가있는 형식을 하고 있다. 24행 24자(상하 합쳐 48자) 구성이다. 4면을 합친 구성인데도 1자의 크기가 제법 큰 편이라 빽빽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아래는 원간본 영인을 새로 실은 것이다.
- 하버드-옌칭 도서관 소장본(1906년본) - Chinese Text Project
권두에 항목들이 나열되어있다. 항목 목록은 근대의 인쇄체로 되어있다. 본문은 앞서 언급한 대로 원간본의 영인으로 문장 배치나 서체는 1715년본과 거의 일치한다. 1715년본의 책 양면을 합친 것을 1쪽에 상하로 실어둔 형식을 하고 있다. 즉 1928년본의 1페이지에는 1715년본의 4개 페이지가 들어가게 된다.
- Chinese Text Project: 본문은 303쪽부터 시작한다.
- 도서관 링크
- 日本随筆大成刊行会(1928년본)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라이브러리
- 상권
- 삼재도회집성(三才圖會集成, 2014년)
- 東洋文庫(1985-1991)#
6. 본문[편집]
* 후리가나는 본문을 따라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쓰되 탁점과 스테가나는 맥락에 맞게 적용하였다. 헨타이가나는 표준 가나로 입력하였다.
* 표제어에 역독점이 기재된 경우 후리가나에 해당 한자를 그대로 올리고 순서를 바꾸어 적었다.
예: 論ニス日ノ遠近一ヲ는 후리가나로 日のとおさちかさを論す로 기재하였다.
* 표제어 좌측에 기재된 당음은 현대 중국음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나 참고용으로 현대 중국음을 한어병음으로 부기하였다.
* 표제어 원문에 '音○'으로 기재된 경우 참고 사항으로 한국 훈음을 기재하였다.
* 한문의 훈점은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한문과 훈독문(書き下し文)을 함께 실었다.
* 본문의 가나점은 원문에서 모두 가타카나이나 현대 일본어의 규정에 따라 히라가나를 기본으로 하고 외래어인 경우에만 가타카나로 표기하였다.
* 가나점은 현대 일본어 후대형의 표기 기준에 따라 후리가나와 오쿠리가나, 후리가나와 조사로 나누어 적었다.
예: 아래 조양류 캐러멜 항목의 원문에
* 훈독문에 기재된 가나(후리가나 포함)는 원문의 가나점을 따르되 관습적인 독음에 따라 가나를 추가하였다.
* 也(なり), 可(べし)와 같은 조동사는 훈독문에서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가나화하였다.
* 훈독문에서의 구두점은 대부분 이 문서에서 자의적으로 찍은 것으로 선행문/후행문의 경계가 혼동될 때 쉼표를, 가나점을 통해 종지형임을 확인할 수 있을 때 마침표를 찍었다.
* 훈독문의 (한자) 괄호는 훈독문에서 해당 한자가 아닌 다른 곳에 부기된 가나점을 통해 이미 읽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표기한 것이다.
* 원문/훈독문과는 달리 현대 한국인이 사용하는 어휘 위주로 번역하였다. 번역은 이 문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다.
* 자료의 판본은 일본 국회국립도서관의 1888년 인쇄본을 기준으로 하였다. 훈독문에서 (훈독문)으로 표기된 것은 대개 1888년 인쇄본에는 없으나 1715년본에는 가나점으로 기재된 것을 적은 것이다. 1888년본에는 주석에 가나점이 거의 없기에 주석의 가나는 1715년본을 따른 것이다.
* 인용의 표기는 저서의 앞글자-항목으로 표시하였다. ex) 《본초강목》 소주 항목: 本-燒酒
* 일본 시는 기울임 처리를 하였다. 자료를 참고해 탁음을 표기하고 와카의 일반적인 5-7-5-7-7 자수율에 맞춰 ・점을 찍었다. 훈독문에서 출전/저자명이 원문에서 축약된 것을 정식 명칭으로 풀고 번역문에서 한글로 독음을 썼다. 표기는 원문의 한자 표기를 따라가되 훈독문에서 독음을 후리가나로 표시하였다. 항목과 관련된 단어에 밑줄을 쳤다. 대개의 경우 번역은 생략하였다.
* 원문 한자 중 벽자인 것은 가급적 한 글자로 실린 것을 찾되 마땅치 않은 경우 한자 모양 설명 문자(⿰, ⿱, ⿲, ⿳, ⿴, ⿵, ⿶, ⿷, ⿸, ⿹, ⿺, ⿻)를 이용해 모양자가 합쳐졌음을 나타냈다. 입력이 가능한 경우에도 환경에 따라 제대로 표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글자는 해당 자형 뒤에 \[⿰○○] \ 식으로 주석을 삽입하였다.
* 현대 표준 자형과는 다른 자형을 사용하는 경우 원문의 자형으로 입력하되 현대의 자형을 \[(] 로 부기하였다. 현대 한자 코드상 폰트로만 구별하거나 미비한 차이인 경우(예: 旣~既) 한국의 표준 자형을 위주로 입력하였다.
* 본문에서 자주 인용되는 와카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
* 古狀-古狀揃(고조소로에)
* 新古狀-新古狀揃(신코조소로에)
* 古今-古今和歌集(고킨와카슈)#
* 新古-新古今和歌集(신코킨와카슈)#
* 夫木-夫木和歌抄(후모쿠와카쇼)#
* 拾芥-拾芥抄(슈가이쇼)
* 拾玉-拾玉集(슈교쿠슈)
* 拾遺-拾遺和歌集(슈이와카슈)#
* 後拾遺-後拾遺和歌集(고슈이와카슈)#
* 風雅-雅和歌集(후가와카슈)
* 万葉-万葉集(만요슈)#
* 新六-新撰和歌六帖(신센와카로쿠조)#
* 名寄-歌枕名寄(우타마쿠라 나요세)#
6.1. 서문[편집]
각 서문 말미에 나오는 쇼토쿠(正徳)는 1711~1716년을 가리키는 일본의 연호이다. 쇼토쿠 2년은 1712년(임진년), 쇼토쿠 3년은 1713년(계사년)이다.
1715년본을 기준으로 약서, 범례, 후서는 정자체에 가까운 반면 서와 자서는 약간 흘겨쓴 서체로 되어있다. 4개의 서문(약서畧序\, 서敍\, 자서自敍, 후서後序)에서 7행 11자이며 범례만은 8행 12자이다. 행자수에서도 보듯 서문은 본문(15행 22자)에 비해 글자 크기가 확연히 크다.
근대 간행본은 근대 활자체로 서문을 새로 인쇄한 것이 많다. 특히 1901년본은 4개의 서문이 모두 11행 19자[25] 로 인쇄되었다. 1888년본은 범례만 14행 26자의 근대 활자체로 쓰고 4개의 서문은 모두 원간본과 유사한 서체과 형식으로 되어있다. 특히 서, 자서에서는 거의 복각에 가까운 동일한 필체를 보이고 있다. 1902년본에서는 서문 중 제일 앞에 있는 약서(畧序)만 9행 17자의 근대 활자체로 바뀌어있다. 후서는 실려있지 않다.
이후 각 권에서 항목의 목록을 먼저 나열하고 있는 판본도 있다. 1888년본에는 권 항목 목록이 없다.
아래 정렬은 열람의 편의를 위하여 본 문서에서 추가한 것이다.
6.1.1. 약서(畧序)[편집]
和漢三才圖會畧序}}}{{{#!wiki style="text-align:center"
(1713년 봄 3월 하순)正德三年春三月下旬翰林院編修記注起居玉峰顧秉謙所撰三才圖會行於世便于用尙矣顧其爲書上自天文下至地理中及人物旁逮器用時令宮室身躰衣服人事文史珍寶禮制細而夭喬蠢而羽毛鱗介經史子集及稗官小史所載靡不旁搜逖覽字櫛句比區分臚列務極其耳目之所加神識之所詰者也原夫天壤之內品物最繁別類者欲一々而肖如化工之付物馳想往古覃思將來或下入九淵之底或上極九天之高吞收渠祿搜攪二酉非有書淫傳癖腐毫塚筆而陶鑄出之恐不易辨也固其難矣哉浪速醫士法橋寺島良安衛生家者流也寄心文學勵業仁術追慕其跡傚依其樣舉示其部分聚其類欲正習俗之誤以助多識之功聊有所加亦有所畧也頃歲作和漢三才圖會畧凡百五卷託物以附意颺言以切事闕疑而傳其信斥似而釆其眞考索之勞思辨之志可以嘉㢡焉書已成矣帙亦堆矣事具自序凡例請一語于余因題卷端云爾
{{{#!wiki style="text-align:right"
朝散大夫大學頭藤原信篤識}}}
6.1.2. 서(敍)[편집]
和漢三才圖會叙}}}{{{#!wiki style="text-align:center"
時維醫之體者理也醫之用者術也理與術兼備而後可以論功也苟居此業者匪仰觀天文俯視地理中察人身則何足軒岐之澤施于斯民也故經有陰陽應象有異方法宜有四氣調神微論奥旨悉示天人合一之理也余門流支裔寺島良安刀圭之暇涉獵群書搜羅百家著和漢三才圖會日月星辰雨露霜雪山林川澤草木禽獸及神祠之舊事招提之遺事多聞具載吁良安於其業可謂勤也書己成矣居我語汝徐叔紹之治服玉石而患冷疾人為非冬月則不能是洞曉天之時而爲治者也扁鵲之過邯鄲入咸陽是能知地之利而爲治者也醫緩之視平公是明察人之骨髓者也未有三十廢一而明于醫者也復未有明醫而不通于三才者也此書首尾條分縷析明而且盡也欲玩醫之理精醫之術者須博學而後守約余於良安喜竊傚玄晏之書淫以故題梗槩於卷首云
{{{#!wiki style="text-align:right"
(1713년 계사년 4월 하순)正德癸巳之年孟夏下澣
前大醫令和氣伯雄甫書}}}
6.1.3. 자서(自敍)[편집]
和漢三才圖會自叙}}}{{{#!wiki style="text-align:center"
時函丈和氣法眼仲安謂予曰劉完素有言欲爲醫者上知天文下知地理中知人事三者俱明然後可以語人之疾病不然其如蔽目夜遊無足登涉也予聽師之敎誨奉之服膺因玆不顧不敏執藥匙之睱涉獵和漢之黃卷夐求耳學口碑之者凡三十有餘年有所證者靡不畢記其要領有形色者各爲畵圖方今書成百五卷概擬王氏三才圖會也蓋歷代人物有像無像者可計以千萬焉欲錄之而未果故省畧人物系傳焉且於天地人也事物廣大而不能以悉盡因號名三才圖會畧鳴呼文之杜撰事之目論徒爲世所姍笑也然亦勝於夜遊登涉者乎庶幾博雅之君子删正而爲之大成則其德用猶擁腫材得爲芝蘭室乎哉
{{{#!wiki style="text-align:right"
(1712년 임진년 5월 상순)正德二壬辰歲五月上浣
法橋寺島良安書於
浪華杏林堂}}}
6.1.4. 범례(凡例)[편집]
凡例}}}{{{#!wiki style="text-align:center"
원문에서는 범례 뒤에 전체 105권의 목차인 대목록(大目錄)이 이어진다.[27] 여기서는 위 3문단에 이미 실었으므로 생략한다.一引用書更不贅之題其首爲出於何書如小說及所秘者則不著其題號而爲或書曰也雖末書而詳審者則取用之却不著本書
一本草綱目集解諸先生異論許多取其中適要者𣢟[⿰甘欠]
用二氏三氏之言混爲一唯爲本綱曰一諸國神社傳記多秘之白地不解或有異說未一决者豫從于古傳
一佛閣及古人系傳有未諟者肰有近恠誕者共據緣起小說等而強不誣之
一官家衣冠及武具之名狀不掌其職分而不克辨正之故以傳聞粗記之
一禽獸也蟲魚也草木也金玉也土石也入藥用者皆改氣味之異說拾主治之要領且如單方而有效或方外而有驗者記之
一物物圖形狀書名目下記異名右傍以倭字著和名左傍以偏假字附唐音令童蒙易見
一若麗春花則入穀部阿仙藥則入蟲部之類甚麽叵卟者衆別有一卷小目錄用以呂波假字類字便于一覽
一、引用の書、更に之を贅ぜずして其の
首 に題して何の書より出るとす。小說、及び秘する所の如きは則ち、其の題號を著はずして或書に曰くとす。末書と雖へども、詳審なる者は則ち、之を取用し、却て本書を著さず。一、本草綱目の集解に諸々の先生の異論、
いは二氏、三氏の言を用ゐて混して一とす。唯だ、本綱に曰くとす。許多 なり。其の中、適要の者を取りて𣢟 [⿰甘欠]一、諸國、神社、傳記、多くは之秘して
白地 に解かず。或いは、異說有りて未だ一决せざる者は豫 め古傳に從ふ。一、佛閣、及び古人の系傳、未だ諟ならざる者有り、
肰 も、恠誕に近き者有り、共に緣起、小說等に據て強 ちに之を誣 ず。一、官家の衣冠、及び武具の名狀、其の職分を掌どらず。而して之れを、克く辨正せず。故に傳聞を以て之れを粗記す。
一、禽獸や、蟲魚や、草木や、金玉や、土石や、藥用に入る者は、皆な氣味の異說を改て、主治の要領を拾ひ、且つ單方にして效有り、或いは方外にして驗有る者の如きは之れを記す。
一、物物、形狀を圖して名目を
書 し、下に異名を記し、右の傍に倭字を以て和名を著 け、左の傍に偏假字 を以て唐音を附て童蒙をして見易からしむ。一、
麗春花 は則ち穀部に入り、阿仙藥は則ち蟲部に入るの類の若き、甚麽 れ卟 へ叵 き者、衆 し。別に一卷の小目錄有り、以呂波假字 類字を用ゐて一覽に便りす。
1. 인용서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앞에 제목을 적어 무슨 책에서 나왔는지를 적었다. 이야기(小說)나 은밀히 전해지는 것은 제목을 밝히지 않고 '혹서(或書)에 이르길'이라고 했다. 주석서(末書)라고 해도 상세하다면 그것을 채용하고 오히려 본서를 적지 않았다.
1. 《본초강목》(本草綱目) 집해에 여러 선현들의 이견이 상당하다. 그 중 적당한 것을 뽑거나 2명, 3명의 말을 섞어서 하나로 만들었다. 이를 단지 "본강(本綱)에 이르길'이라고 했다.
1. 제국(諸國), 신사(神社), 전기(傳記) 대다수는 알려지지 않은 게 많아 완전히 알기 어렵다. 또는 이설이 있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 것은 일찍이 고전을 따른다.
1. 불교나 옛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확실하지 않은 것이 있다. 게다가 기담에 가까운 것이 있다. 이러한 것은 전설이나 이야기를 따르며 억지로 지어내지 않았다.
1. 관가의 의관 혹은 무기의 이름이나 형태, 직분은 파악하기 어려우며 확정하기 힘들다. 따라서 들은 바로써 이를 조악하게 적었다.
1. 새, 짐승, 벌레, 물고기, 풀, 나무, 금속, 흙, 약품 등은 냄새와 맛의 이설을 종합하여 주된 쓰임새를 모아 단방(單方)[26]
으로 효과를 적었다. 혹은 주된 처방 이외에 효과가 있는 것을 적었다.1. 물건의 형상을 그리고 명칭을 썼으며 별칭을 하단에 기재하였다. 우측에 가나로 일본 명칭을 적었으며 좌측에 가타카나로 중국 음을 부기하였다. 그리함으로써 어린이도 보기 쉽게 했다.
1. 양귀비(麗春花)는 곡부(穀部)에 있고 아선약(阿仙藥)은 충부(蟲部)에 있는 등 어디에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그러므로 따로 1권의 소목록(小目錄)을 만들어 이로하 노래 순으로 열람하기 편리하게 했다.
6.1.5. 후서(後序)[편집]
和漢三才圖會後序}}}{{{#!wiki style="text-align:center"
(1713년 계사년 10월 중순)正德癸巳陽月中旬日天地之間庶類品彙變化無窮飛潛動植之生以至人爲制作器用度數之著固區以別焉若夫時氣或異化土宜或殊產乃復就一物隨一種以推之聲色臭味體製形容葢有不可勝盡者也况其取品物逐一以得較計請量之乎是則非圖畫之巧筆舌之力所可以能悉也必矣學者於是宜光明性情倫理以立其大者然後察其緩急索其要約漸以致其精則夫可而已孟子曰夫物之不齊物之情也信乎此言也於讀本草綱目三才圖會等之書便亦不可不以知此意矣難波毉士寺島良安嘗著和漢三才圖會乃傚顧玉峰之編者也比者携來其書示之且以請爲之題跋予既以前言告之而謂此書也固於助多才攷物象則可謂博而勤者焉蓋夫不測變化之道不辨先後之序要必於一槩取足於此編強以爲盡是焉乃恐將非編輯者之意矣乎讀者夫鑒諸
{{{#!wiki style="text-align:right"
正三位大藏卿淸原宣通誌}}}
후서에는 훈점이 부기되어있지 않다.
6.2. 1권: 천문[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1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3. 7권: 인륜류[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7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4. 13권: 이국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13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5. 14권: 외이인물[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14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6. 50권: 무린어-하호[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50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7. 81권: 가택류[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81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8. 82권: 향목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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柏 -
樅 전나무 -
檜 -
栝 -
檜柏 -
檉 -
伽羅木 -
柀 -
槇 -
仙柏 -
椹 화백나무 -
栂 -
松 소나무 -
五葉松 잣나무 -
落葉松 -
杉 삼나무 -
肉桂 -
桂心 -
桂枝 -
箘桂 -
桂 -
木犀花 목서 -
水木犀 후피향나무 -
木蘭 목련 -
辛夷 -
沈香 -
奇楠 -
木蜜 붓순나무 -
深山樒 -
丁子 -
檀香 -
降眞香 -
楠 -
樟 -
釣樟 -
樟脳 장뇌 -
霹靂木 -
鳥薬 -
櫰香 -
必栗香 -
楓 -
雞冠木 -
乳香 -
薫陸香 * -
沒藥 -
騏驎竭 -
安息香 -
蘇合油 -
篤耨香 -
龍腦香 -
阿魏 -
廬會 -
胡桐淚 -
返魂香 -
兜木香 -
扉木 -
山礬 -
瑞香
6.9. 105권: 조양[편집]
자세한 내용은 화한삼재도회/105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참고 링크[편집]
- 나가노전파기술연구소 부속도서관 - 항목 정보 #
- 고인덕(2016), 《삼재도회》에서 《화한삼재도회》로 - 그림(圖)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중국어문학논집, 96, 427-448.#
- 조영광(2008), 중국 "떡" 문화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보고, 동아시아식생활학회 학술발표대회논문집, 15-29.#
- 하우봉(2020), 동아시아의 백과전서파 실학과 황윤석, 한국실학연구, 40, 331-368.#
- 한국어 위키백과 화한삼재도회 문서
- 45~51, 57장의 한문/훈독문이 입력된 개인 사이트#
105卷 81冊. 四周單邊, 半郭, 20.5×15.5cm, 無界, 半葉 15行 22字, 上下向黑魚尾, 27.1×18.0cm. 참고 페이지[23] 와세다대학 고전적 종합 데이터베이스(古典籍総合データベース)이다.# 이 자료 외에도 여러 고전들을 여기서 열람할 수 있다.[24] 이 묶음만은 다른 묶음과는 달리 웹페이지에서 1901년으로 표기되어있다.[25] 단, 약서의 첫 페이지만은 13행 19자이다.[⿰甘欠] A B [26] 한 가지 약재만으로 구성한 처방문.[27] 본문이 끝나고 이어지는 최종권의 소목록(小目錄)과 대응을 이룬다. 소목록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표제어들을 이로하 노래 순으로 나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