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개(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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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관내후(關内侯)[1]
최종직위
편장군(偏將軍)
성씨
(黃)

(蓋)

공복(黃蓋)
생몰기간
(? ~ 215?[2])
고향
형주 영릉군 천릉현
1. 개요
2.1. 초기 생애
2.2. 산월족으로부터 지켜 다스리다
2.4. 무릉만의 태수
2.4.1. 어디의 태수인가?
2.5. 죽음
2.5.1. 215년 사망설
4. 평가
5. 기타
6. 미디어 믹스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후한 말, 삼국시대 손오의 무장이며 자는 공복(公覆)으로[3] 형주 영릉군 천릉현 사람. 정보, 한당과 함께 손가 3대의 공신이다.

황자렴의 후손인데, 황개의 조부 때부터 영릉에 자리잡고 살아갔다고 한다.


2. 정사[편집]



2.1. 초기 생애[편집]


황개는 어렸을 때부터 고아가 되어 어린 나이 때부터 흉난을 만나고 일찍이 갖은 고생을 겪었으나, 굳센 의지가 있어 비록 빈천한 삶을 살아도 범용한 보통 사람들과 스스로 같지 않아 항상 땔나무를 지는 틈에도 책을 공부하고 병법를 강독했다는 것이 오서에 있는 그의 옛 생활의 설명.

처음에는 군의 관리가 되었는데 효렴으로 천거되어 공부에 불려간다. 그 후 손견을 따라 남의 도적들을 격파하고 북에서는 동탁을 격파하는 등 공을 세우니 별부사마로 배수된다.

손견이 죽은 후, 황개는 손책을 수행하며 태사자와 만날 때도 수행하였으며 무봉 교위로 있을 때는 황조를 공격하는데 참가한다.

후에 손책이 죽고 손권이 뒤를 이은 다음에는 손권을 수행하면서 몸에 갑옷을 입고 전진하였으며, 위험한 지역까지 가서 성을 공략했다.


2.2. 산월족으로부터 지켜 다스리다[편집]


산월족이 복종하지 않고, 도적들이 침입하여 혼란스럽게 한 현들이 있었으므로, 황개는 이를 지키는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석성현(石城縣)의 관리들은 특히 검색하고 제어하기가 어려워서 관리 두 명을 배치하여 나누어 관서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 때 '어려운 시국에 일을 맡은 만큼 너희를 믿겠다. 일을 하던 과정에서 속임수를 쓰더라도 채찍이나 곤장은 쓰지 않을 것이다. 마땅히 충실히 일해라'는 교서를 내렸다.

처음에는 두 관리 모두 그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아침저녁으로 직책을 충실히 지켰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들은 황개가 문서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점점 사람들의 청탁을 받아들였다. 물론 황개는 때때로 감찰을 하고 있었기에 두 관리가 각기 법을 받들지 않고 있음을 알아챘고, 어느 날 두 관리를 불러 술과 음식을 내린 뒤 자신이 감찰했던 사실을 꺼내 그들을 힐문했다. 두 관리는 대답할 수 없었으며 모두 고개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이미 경고했소. 나는 끝까지 채찍이나 곤장을 쓰지 않을 것이오. 당신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오.

그 다음에 그들을 사형에 처했다.

그리고 춘곡현(春穀縣)·심양현(尋陽縣) 등 9현을 지키면서 가는 곳마다 평정해 단양(丹陽)의 도위(都尉)로 승진하여, 강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우니, 산월족이 귀부할 마음을 품었다.


2.3. 적벽대전[편집]


적벽대전에서는 주유의 부장으로 참전하는데 손오 수군이 조조의 군대를 상대로 한차례 승리를 거둔 뒤 황개는 주유에게 화계를 사용할 것을 건의한다. 즉, 사실 화계는 황개가 낸 계책이었던 것.[4] 이런 황개의 말에 따라 주유는 몽충과 투함 수십 척을 취해 풀을 가득 싣고 그 가운데에 기름을 부어 휘장을 씌우고, 위에 아기를 세우고 편지를 써서 조조에게 거짓으로 항복한다고 알린다.

조조는 황개의 사자를 만나 자세히 묻고, "너희들이 속이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황개가 만일 진실하다면 당연히 전례를 뛰어넘는 작위와 상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보기 좋게 걸려드니 황개는 날랜 배를 미리 준비하여 각각 큰 배의 뒤에 매고 순서대로 함께 전진했다. 조조군의 관리와 병사들은 모두 목을 빼고 바라보며 황개가 투항한다고 말했으나 도착한 황개는 여러 배를 풀어 동시에 불을 질렀다. 당시는 바람이 매우 사나웠으므로 해안 위의 진에까지 불길이 번졌다. 순식간에 연기와 불꽃이 하늘 가득 퍼졌고, 불에 타죽거나 익사한 병사와 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었다.

이렇게 적벽대전에서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으나 이 와중에 굴욕적인 기록이 있다. 황개는 전투 중에 유시에 맞아 차가운 물속에 추락해 오나라 병사들이 일단 구해주기는 했는데 구한 사람이 황개인지 몰라 그냥 평상 옆에 둔다.[5] 황개는 죽기 전에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한당을 부른다. 운 좋게도 한당이 이를 듣고 "이는 공복의 소리다."라고 하며 그에게 향해 가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옷을 풀어 바꿔 입으니, 겨우겨우 살아나게 된다.


2.4. 무릉만의 태수[편집]


그 후 무봉 중랑장으로 배수되는데 무릉만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성읍을 공격하자, 황개에게 태수직을 맡겼다.

이때 군중에 병사로 쓸 만한 사람은 5백명에 불과했는데 황개는 낙심하지 않고 성문을 열어두고 도적들이 반쯤 들어올 때 이에 공격하니, 수백 명을 참수하고 나머지들은 모두 달아났으며, 만이의 측에 넘어간 읍락들을 모두 회복하였다. 우두머리들은 주살하여 토벌하고, 귀부하여 따르는 자들은 사면하였다.

봄부터 여름에 이르기까지, 침구하는 난리가 모두 평정되었고, 여러 유수의 파, 예, 유, 탄읍의 후와 군장들이 모두 지조와 절개를 바꾸어, 예를 받들어 알현하기를 청하니, 군의 경내가 마침내 깨끗해졌다.

후에 장사군 익양현이 산적들의 공격을 받자, 황개가 또다시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관직에 편장군이 더해졌다.


2.4.1. 어디의 태수인가?[편집]


무릉만의 반란을 무찌르고 태수가 되었다고 하는데 정말로 저 기록에는 어디에 태수로 임명되었는지 기록이 안 나와있다. 이곳에 대해서는 무릉 태수라는 의견과 장사 태수라는 의견이 있다.

무릉태수라는 의견은 무릉만이들의 주 공격 대상이 무릉 일대이고, 오군에서는 황개가 무릉만이를 무찌르고 그곳의 태수로 임명되었다고 했으니 이렇게 하면 유비에게 김선이 항복한 이후 무릉 태수의 공백이 채워진다는 것. 거기다가 익양대치 때 손권이 여몽에게 장사, 계양, 영릉은 점령하게 시켰음에도 무릉은 점령하라는 말을 안 한 것도 이것의 근거가 된다. 다만 이러면 선주전 주석 헌제춘추에 유비가 남군을 얻은 후 직접 무릉군 잔릉현에 주둔했다는 기록과 상충된다. 유비가 직접 무릉에 주둔했는데 황개가 무릉태수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헌제춘추의 이 기록은 유비가 손에 넣었던 다른 군은 태수의 인선이 기록되어 있는데 유독 무릉만 누가 태수인지 알 수 없다는 문제를 유비가 직접 무릉 태수를 겸임하고 있었다는 설명으로 해결하기도 하며 이는 상당히 일리 있는 설명이다.[7] 따라서 이미 유비가 무릉에서 사실상의 태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면, 아무래도 황개가 같은 시기 무릉태수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장사태수라는 의견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무릉만을 황개가 토벌하면서 파, 예, 유, 탄 네 곳의 읍장의 귀순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곳은 모두 장사군의 영역이다. 따라서 무릉만이 장사군의 이 근방에 출몰했고 황개는 이들을 토벌했다는 것이다. 215년에 손권은 유비에게서 장사를 온전히 받았기 때문에 이 무렵에 황개가 장사태수가 되었다고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거기에 익양대치 당시 장사군은 태수 요립이 도망갔어도 유비 휘하에 있던 군장들이 끊임없이 반항하여 여대 등이 이를 공격했는데 황개가 이를 토벌하는데 같이 종군했다면 내용이 딱 맞아 떨어진다. 특히 군의 경계를 넘어 영향력을 끼친 일은 "군의 경계를 넘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는 안 붙은 것도 이걸 지지하는 내용.

거기다가 이걸 황조 토벌 시기에 일어났던 일로 보는 의견도 있는 등, 일단 결론은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이다.


2.5. 죽음[편집]


황개는 관직에 있다 병으로 죽었다.[8]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황개 형상의 그림을 그려서, 사시사철 제사를 지냈으며 나중에 손권이 제위에 오르자, 그의 공을 추론하여 그의 아들 황병에게 관내후의 작을 하사했다.


2.5.1. 215년 사망설[편집]


황개의 몰년에 대해 215년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손교전에 손유와 황개가 같이 죽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다면 손유가 215년에 죽었기 때문에 황개도 215년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3. 연의[편집]


젊은 시절 손견이 큰 뜻을 이루고자 몸을 일으켰을 때부터 따라 다닌 4명의 공신 중 한 사람. 이후 손책, 손권까지 3대를 받든 오나라의 원로가 되었다. 같은 시기에 손견을 모시기 시작한 정보, 한당, 조무와 함께 손견의 사천왕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다. 노장인만큼 사천왕 중에서는 당연히 맏형격이다.

적벽대전에서 존재감이 급상승하는데 우선 항전을 주장하는 주전파의 일원이기도 하고, 동오의 문관들이 제갈량을 힐난하며 설전을 벌이자 그들을 꾸짖는 것으로 개념인 인증을 한다. 그리고 유명한 일화라면 역시 고육지계(苦肉之計). 압도적인 대군으로 조조가 쇄도해 오자, 조조를 속이기 위해 주유와 짜고 조조의 첩자가 보는 앞에서 뼈와 살이 분리되도록 주유에게 매질을 당한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만큼 주유가 "그 조조를 속이기 위해서는 고육계가 따라야 하는데 장군께서는 연로하셔서 아니 됩니다." 라며 말리나 황개가 "나는 3 걸쳐 손씨 가문에 은혜를 입은 바, 손씨 가문을 위한 일이라면 뼈가 으스러진다 해도 원망치 않으리다!" 라며 기어코 자신이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걸 노장파와 소장파 세력의 다툼으로 오인하여 신뢰한 조조의 뒤통수를 치고 추격하다 장료의 활을 맞고 물에 떨어졌다는데, 한당이 구해준 일화를 반영한 듯 여기서도 구출되어 죽지는 않았지만 그 뒤에 딱히 등장하는 대목이라고는 손부인 에피소드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그냥 한마디 언급에만 그쳤다.

물론 적벽대전의 과정 중 상당수가 나관중의 창작인 만큼[9] 황개의 고육지계도 삼국지연의의 창작이긴 하지만, 적어도 황개가 사항계(거짓 투항)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정사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삼국지 연의에서는 나관중이 콤비를 좋아해서인지 한당과 짝을 이뤄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10]


4. 평가[편집]


정사 삼국지에서 황개는 용모는 엄숙하고 굳세며, 병사를 기르기를 잘하니, 매번 정토할 때마다 사졸들이 모두 다투어 선두에 나섰을 정도였으며 관직에 임하여서는 결단력이 있어, 일이 지체되는 게 없었느니, 국인들이 그를 사모하였다고 한다.


5. 기타[편집]


민간설화에서의 포지션은 용사. 괴물 오징어가 나와서 마을을 공격하자 활 3발로 오징어를 발라버렸다는 민간설화가 있다.

무기는 철편(鐵鞭)을 쓴다고 하는데, 항목에서 보이듯이 이는 채찍이 아니라 몽둥이에 가깝다.


6. 미디어 믹스[편집]



손견의 사천왕 중 노장의 이미지가 가장 강해서 2차 창작물 대부분 노인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 정보는 한동안은 중년 장수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엔 황개보다 연배도 높고, 노장의 이미지도 같이 입혀지고 있다.[11]


7. 둘러보기[편집]


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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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본인이 아닌 아들이 받은 것이다[2] 자세한 내용은 후술한다.[3] 글자의 뜻을 생각한다면 '공부'로 읽어야 하는 것이 정확하다. 覆은 본래 '뒤집을 복', '덮을 부'였으나, 후에 '덮을 복'으로 바뀌었다. 황개의 蓋 또한 '덮을 개'이기 때문이다. 속음 문서로 말이다.[4] 다만 주유 문서에서도 설명하 듯, 계책을 낸 건 황개지만 지휘관으로서 이를 채택하여 성공적으로 실행한 주유의 공도 있다. 후대에 주유만 너무 주목받아서 문제지 말이다.[5] 삼국지집해 황개전에 근거가 있다. '맹강孟康이 이르길 : 측 廁 은, 평상 옆이다.' 측간이라고 번역한 것은 김원중 정사 삼국지의 오역이다.[6] 유비가 있는 무릉을 점령하라는 것은 사실상 유비를 죽이라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7] 위에서 말한 여몽이 무릉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은 것,[6] 이릉대전 당시 무릉만이들이 촉에 우호적이었던 것까지 설명이 된다.[8] 여담으로 그가 죽은 후의 군대는 손교가 거느리게 된다.[9]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적벽대전이 삼국시대 내에서 가지는 의미가 낮아지는건 아니다.[10] 나관중은 짝을 이루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데 대표적으로 황개와 한당, 서성정봉, 장흠주태, 황충엄안, 조운제갈량 등이 있다.[11] 코에이 삼국지 6에서 정보가 153년생, 황개가 145년생으로 나왔지만, 7 이후로는 정보가 151년생, 황개가 154년생으로 설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