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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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B-3 연굉-3/옌홍-3(研轟-3) 폭격기
1. 개요[편집]
2차 대전당시 중국[1] 은 자국산 전투기인 XP-1,XP-0를 개발하면서 폭격기인 XB-3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H-5와 함께 중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해낸 몆안되는 폭격기이다.
2. 역사[편집]
저우찌아런(朱家仁) 공군 소장이 AFAMF를 지휘하면서 계획[2] 했으며 때마침 소련과의 조약체결로 투폴레프 SB(M-100A와 M-103 엔진 모델 모두) 288대를 들여올수 있게 되었다. 중국공군은 SB에 만족하긴 했지만 계속되는 손실을 완화하고 외국산 수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1942년 9월에 공장장인 Zhen Baoyuan(鄭葆源)과 디자인국의 수석 디자이너인 Tang Xuny(唐勳貽)에게 맡겨 설계를 시작하였다.
다른 XP 기체들도 그렇지만 남아있는 부품을 이용하기위해 일부 부품(엔진, 프로펠러, 착륙 기어, 계기판 게이지 등)이 호환되지만 동체 설계와 재료구성은 중국만의 설계였다. 그러나 제3 AFAMF의 생산시설이 있던 샤헤바오(沙沙) 주변 청두 동부지역 부근에서 일본군의 공습을 계속하면서 1943년 10월에서야 1대의 XB-3 제작할 수 있었다. XB-3 프로토타입은 1944년 1월 분해되어 타이핑시 비행장(太平寺机场)으로 수송되어 청두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다시 조립하여 시험 비행을 준비하였다. XB-3의 처녀 비행은 황룽샹이 실시했으며 큰 이슈없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2차 비행시험은 탕쉰이가 맡았으며, 기동성을 시험하기 위해 비행장 주변에서 저고도 비행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다시 한번 시험비행은 큰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3번째 비행에서 XB-3는 비행시간 30분 만에 추락했다. 착륙할 때 조종사(이름미상)는 착륙 기어가 하나만 남을정도로 처참하게 착륙한다. 기어가 부러져 항공기가 회전하는 바람에 주익부분이 파손되고 기체가 수십 미터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항공기에 불이 붙지 않았지만 조종사는 중상을 입었고 XB-3는 다음날 복구되어 공항 밖에 버려졌다. 이 불행한 사건이후, 디자인 팀은 XB-3에 대한 모든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XB-3가 전쟁 전 설계에 기초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약 최전방에서 운용한다 하더라도 1944년경에는 상당히 구식이었을 것이 분명하다.[3] 아직도 중국공군에서 운용중인 투폴레프 SB 폭격기 몇대는 일반적으로 2선 임무로 격하되거나 아예 비행하지 않았다. 미국의 랜드리스는 이미 중화민국에게 충분한 양의 B-25 폭격기를 제공함에 따라 투폴레프 SB를 대체하여 최전방 폭격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XB-3 프로토타입의 사고는 프로젝트의 종료를 이끌어냈다.
중국의 자체적인 설계가 있긴했지만 기술력과 노하우 부족으로 소련의 SB-2를 기초로하여 DB-3가 섞인 절충안으로 XB-3을 설계하게 되었다.
3. 기타[편집]
대만에서는 1946년까지 몇대의 시제품을 더 만들었다고하는 주장도 있으나, 대체적으론 1대만 완성되었다는것이 유력하다.
4. 제원[편집]
[1] 당시 중화민국[2] 이때 대부분 전투기(XP)들을 계획하긴 했지만 폭격기(XB)와 훈련기, 수송기등도 1942년까지 매우 활발하게 계획하였다.[3] 이는 P-36을 베이스로 만든 XP-0과 XP-1도 해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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