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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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문 출신 정치인.
2. 생애[편집]
1950년 7월 29일, 전라남도 목포부에서 김대중과 차용애[1] 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960년대에 가족들과 함께 상경하여 서울용강초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서울 대신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학군사관 11기 출신으로 육군 중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1980년 신군부 군사정변 이후 아버지 김대중과 함께 체포, 고문, 가택연금을 당하였으며, 1982년 미국으로 망명 미주하여 인권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였다. 1988년 귀국하여 광고회사 밝은세상을 설립, 운영하며 제15대 대통령 선거까지 아버지의 선거 활동을 도왔다.
김홍업은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각종 이권청탁과 함께 수십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등으로 징역 2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 6,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었다.# 재판부는 또 김씨의 친구 김성환씨에 대해서는 징역 4년에 추징금 20억 6,000만원의 실형을 확정지었다.
훗날 김성환은 병환으로 사망 이틀 전, 검찰 진술 내용은 강요에 의한 거짓이었다며 김홍업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것임을 녹취로 남겨 증언하였다.[2]
이후 한화갑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무안-신안 선거구가 공석이 되자,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제17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하기도 했으나, 공천 문제로 2008년에 탈당하여 총선에 출마했지만, 전라남도의회 의장을 지낸 무소속 이윤석 후보에게 패해서 낙선했다.
2019년 4월 20일에 형을, 2019년 6월 10일에 새어머니를 떠나보냈다. 나중에 계모 이희호가 맡았던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직을 물려받았다.
2023년 2월 16일에 전직 대통령의 아들들인 박지만, 김현철, 노재헌과 함께 사석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최근 극단화된 정치 지형에 대한 우려와 함께 통합과 화합의 필요성에 공감했으며, 아버지들 간에는 정치적인 아픔들이 있었으나 아들들끼리는 싸우지 말고, 앞으로 모임을 자주 가지자고 하였다.(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공교롭게도 박지만은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홍업의 아버지인 김대중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