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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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고려의 왕족으로 본명은 왕서(王恕). 신종과 선정태후의 차남으로 희종의 동복동생이다.
2. 생애[편집]
신종 3년(1200) 덕양후에 봉해지고, 또 그 뒤에 양양공에 봉해진다. 덕양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양양은 강원도 양양군을 가리킨다. 신종 7년(1204) 1월 부왕이 양양공의 집에서 죽음을 맞는다. 희종 7년(1211) 최충헌이 형 희종을 폐위시켜 강화도로 유배보내는데, 양양공은 강화도 교동현(喬桐縣)으로 쫓겨난다.
今司空某, 皇大弟襄陽公之胄子也, (...)
지금의 사공 아무개는 황대제 양양공의 맏아들로 (...)
《파한집》
파한집에서는 양양공을 황대제로 부르는데, 형 희종에게 태자가 멀쩡히 있었으므로 양양공이 왕위 계승자의 입장에 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황제의 큰 동생”의 의미로 쓴 것이라고 봐야 할 듯.
3. 가족관계[편집]
시안공 왕인 - 서원후 왕영 - 익양후 왕분 - 순화후 왕유 - 정원부원군 왕균은 후일 이성계에 의해 옹립되는 공양왕의 직계 선조다.
딸은 김약선의 아들 김미와 결혼한다. 김미는 왕족과 결혼한 덕분에 생전에 사공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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