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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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도시. 면적은 2,448km2이고 인구는 42만 2천 명으로,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인 피렌체를 제외하면 토스카나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주거하는 도시다.
가죽 가공업이 현 경제의 35%를 책임지고 있으며, 의류 산업과 IT 산업도 2000년대 이후 성장세이다. 물론 이탈리아답게 피사의 사탑으로 대표되는 관광업도 발달하였으나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남부에는 피사 국제공항이 있는데, 주로 유럽의 저가항공사들이 취항한다. 시내에서 접근성은 그리 좋지 않은 편.
AC 피사 1909의 연고지이기도 하다.
2. 역사[편집]
고대 이전에는 아예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던 야트막한 섬이었다. 그러던 것이 퇴적 작용으로 주변부가 빠르게 육화하면서 지금의 피사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다양한 민족이 왕래하였으나, 기원전 180년 로마 제국에 복속된 이후 지금까지 이탈리아의 영토로 남아 있다.
서로마 제국 붕괴 후, 이탈리아가 분열되자, 토스카나 지방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왕래하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한 요식업, 숙박업 등으로 성장하였으며, 피사는 이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로 성장하게 된다. 해안에 면한 입지조건을 살려 지중해 곳곳에 교역도시를 세우고 식민도시로 삼는 등 지중해 교역으로 부를 축적했고 십자군전쟁에서도 주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멜로리아 전투에서 제노바에 패배한 뒤 13-14세기에 걸쳐 쇠퇴하여 멸망하였고, 꾸준히 영토를 확장하던 피렌체가 1405년 쇠퇴하는 피사를 지역민들의 반발을 제압하면서 사들였다.
중세 피사의 자세한 역사는 피사 공화국 문서 참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미군이 피사를 공격, 점령했다. 참고로 이 피사 점령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김영옥이다. 도하 작전을 일부러 2번 실패하여 적군의 경계심을 낮춘 뒤에 3번째에 전력으로 밀고들어가 피사를 먹는데 성공했다고.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피사는 피렌체에 비해 압도적 차이로 토스카나 주 내의 콩라인으로 남게 된다.
3. 관광[편집]
피사의 사탑이 세계적인 랜드마크급으로 유명하지만 피사의 사탑 말고도 원래 본 메인이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절정인 주교좌 대성당, 여기 딸린 산 죠반니 세례당에 수많은 연식이 800년은 훌쩍 넘어가는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 건물들과 비교적 잘 보존된 역사적 구시가지를 자랑한다. 피사 대학교도 연식이 14세기 까지 올라가는 굉장히 유서깊은 중세 대학 중 하나이고, 아르노 강 따라 건설된 많은 역사적 다리와 귀족들의 궁전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관광지이다. 오히려 나머지 도시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명승지인데 사탑의 유명세 하나때문에 더 빛이 바래는 경우. 피렌체와 거리도 가깝고 입지도 비슷하게 토스카나의 역사적 중심도시 중 하나였는데도 피사는 사탑 주변에만 관광객들이 몰리고 나머지 도시는 수박 겉핥기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관광 인파에 덜 시달리고 오히려 느긋하게 토스카나 문화의 정수를 체험하기에도 좋다.
[1] 이탈리아어 발음은 [ˈpiːza\](피자)에 가까우나 이탈리아어 표기법에 따라 '피사'로 표기한다.[2] 2015년 1월 1일 기준.[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5]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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