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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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장관 (1990~2001)


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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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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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54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대한민국 제55대 교육부장관
서남수
徐南洙 | Seo Nam-soo


파일:optimizes.jpg

본관
당성 서씨(唐城 徐氏)[1]
출생
1952년 3월 22일 (72세)
서울특별시
재임기간
제54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2013년 3월 11일 ~ 2013년 3월 22일
제55대 교육부장관
2013년 3월 23일 ~ 2014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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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인 문성희, 슬하 2녀[1]
학력
서울강남초등학교 (졸업)
서울고등학교 (졸업 / 23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 / 학사)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 대학원 (교육학 / 석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2])
동국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 박사[3])
신체
178cm, B형
종교
불교
병역
공군 방위병 일등병 전역 (1975. 3 ~ 1976. 3)
약력
제22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경기도교육청 부교육감
서울특별시교육청 부교육감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위덕대학교 총장
제54대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제55대 교육부장관 (박근혜 정부)
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장

1. 개요
2. 생애
3. 논란
3.1. 인사청문회 5.16 답변 회피
3.2. 병역 의혹
3.3. 양도세 탈루
3.4. 황제 주차 논란
3.5. 황제 라면 논란
4. 관련 문서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관료.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이었다.


2. 생애[편집]


1952년 3월 22일 서울특별시에서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8.15 광복 직전에 월남한 실향민으로, 본래 경기도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現 개성시 용흥동)에 살았다고 한다. 이곳은 서남수의 선조인 화담 서경덕이 평생 살았던 곳으로 묘소도 이 마을에 있는 화계계곡에 있고 서경덕을 배향한 화곡서원(花谷書院) 또한 이곳에 있었다.

서울강남초등학교, 1971년 서울고등학교(23회), 1975년 2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징병검사에서 좌우 시력 0.5가 나와 색각이상(2A.색맹) 판정을 받았고, 하악관절 장애가 함께 나타나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이에 1975년 3월부터 1976년 3월까지 공군방위병으로 입대해 병역을 마쳤다.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합격한 뒤 이듬해인 1979년 문교부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1999년까지 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에서 대학학무과장, 교육정책총괄과장, 기획관리실 교육정책기획관 등으로 재직했고, 그 사이 미국으로 유학해 1985년 5월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캠퍼스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귀국 후 1988년 2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영국 런던 대학교 교육학대학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으며, 1996년 6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경기도교육청 부교육감,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지원국장,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대학교 사무국장,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 2004년 미국 동서문화센터 객원연구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특별시교육청 부교육감 등을 지내는 등 교육부와 교육청의 요직을 맡아오며 교육정책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참여정부 시절 임기 말인 2007년 6월 21일부터 2008년 2월 28일까지 제49대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냈다. 재임 시절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사태가 발생했고, 2008년 2월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 선정 논란으로 김신일 제50대 교육부장관이 사퇴하자,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퇴임해 공직 생활을 접었다. 2008년 7월 경인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좌교수에 임용되었으며, 2012년까지 한국교육개발원 객원연구위원,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서울장학재단 이사, 관정이종환교육재단 고문 등을 지냈다. 2012년 9월 1일부터 제5대 위덕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2013년 3월 11일부터 2013년 3월 22일까지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제54대)을 지내다가 곧 내각 개편으로 교육부장관에 유임되어 제55대 교육부장관이 되었다. 교육관료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교육부장관이라고 한다. 임기 중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가 발생했다. 서남수 장관이 오히려 교학사 교과서를 비호했다는 이유로 야당이 해임 건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으나, 여당이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하면서 무산됐다.

2014년 3월, 광주광역시 지역 고등학교를 방문한 서남수 장관의 의전차가 주차 구역 3칸을 차지하는 '황제 주차'가 논란이 되었다.

세월호 유족들의 빈소를 방문하였을때, 부하 직원이 유족 한 명을 툭툭 치면서 "교육부 장관님 오셨습니다"라고 하자, 본인도 화가나 부하 직원에게 "가만히 계세요! 가만히 좀 있어..."라고 주의를 주었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유족이 "교육부 장관이면 어떤데요? 어떻게 하라고 나한테?"라고 하며 화를 내자, 본인이 유족들에게 대신 사과하고 부하 직원에게도 사과드리라고 하며 중재하였다.

결국 2014년 7월, 2기 내각 발표 직전에 박근혜 대통령은 서남수 장관을 경질했다.

이후 세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내던 중 2015년 9월 25일 EBS 제6기 이사회 이사장에 선출되었다.


3. 논란[편집]



3.1. 인사청문회 5.16 답변 회피[편집]


2013년 2월 28일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민주통합당 박혜자 의원이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존중한다며 즉답을 하지 않고 답변을 회피했다. 이후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잇따랐지만 서남수 내정자는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다, 다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정치적 영향이 과도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해서 편을 가르게 돼 있다"라고 밝혀 끝까지 답변을 회피해 논란이 되었다. #


3.2. 병역 의혹[편집]


인사청문회 당시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1974년 징병검사 당시 양안 시력이 0.5였는데 1979년 공무원 임용 당시 신체검사에는 1.5로 나왔다.', '공무원 인사기록 카드에는 적록색약으로 기록됐지만 군 신체검사에서는 색맹 판정을 받았다.' 라며 병역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영국 런던 대학교에서 유학하면서 교육학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뒤 1999년 귀국해 경기지방경찰청에서 국내 운전면허로 전환하기도 했다.#

서남수 내정자는 시력 논란에 대해 눈이 피곤해 시력이 급격하게 저하된 것이라고 해명했으며. 색맹 판정은 징병검사표에는 색맹이든 색약이든 전부 색맹으로 분류한다고 해명했다. #


3.3. 양도세 탈루[편집]


2013년 2월 26일 진보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서 후보자가 1989년 가족과 함께 경기도 과천시로 이사하면서 본인의 주소지를 기존 서울 아파트에 남겨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면서 주민등록법과 소득세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


3.4. 황제 주차 논란[편집]


2014년 3월, 서남수 장관은 광주 지역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해 자유학기제와 돌봄교실, 특성화 교육 실태를 점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남수 장관의 의전 차량이 세로로 주차장 3개면을 모두 차지한 채 주차돼 있어 이른바 '황제 주차' 논란으로 비판받았다. #


3.5. 황제 라면 논란[편집]


파일:external/tenasia.hankyung.com/2014042218421321142.jpg

2014년 4월 16일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진도 실내 체육관 진료소에 방문한 서남수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2] 그런데 오마이뉴스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팔걸이 의자에서 라면먹고... 장관님, 여기 왜 오셨나요?'라는 타이틀을 내걸었고, 이틀 뒤에는 '장관님, 응급 의약품까지 밀치고 라면 먹어야 합니까'라는 추가 보도를 하였다. 이로 인해 서남수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사과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경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와서 보면 겨우 라면 먹은 것 가지고 조금 과하게 비판받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라면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커녕 부실한 식사의 상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관 씩이나 되는 사람도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라면으로 허기를 때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추가로, 서남수가 앉은 자리는 원래 빈 테이블이었고 당시 진도 실내 체육관에는 진료를 요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뒤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서 장관이 먼저 그냥 먹은 것도 아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가 먼저 같이 먹자고 제안해서 몇 차례 고사하다가 함께 먹었던 것이라고 한다. "끼니를 거른 박준영 지사가 서 장관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손짓을 해서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후 서 장관이 라면을 먹은 것만 언론에 보도됐다"라는 관계자의 증언도 있었다. 기사1, 기사2, 기사3 즉, 오마이뉴스에서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사진을 편집해 여론을 선동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반대쪽에도 조리된 컵라면이 놓여있는 걸 볼 수 있다.

다만 아무리 선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고작 라면을 먹은 것이라 원래라면 당장 옹호 여론이 있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당시에 전혀 그렇지 못했던 건, 아무래도 라면 자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그만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의 잘못되고 부실한 대처들로 인해 여론 자체가 극심하게 나빴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 관련 문서들을 보면 알겠지만 박근혜 정부는 참사 당시 대처과정에서 무엇하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최악의 모습만을 보여줬다.[3] 이 때문에 국민들이 극도로 실망한 와중에 서 장관이 재수없게 걸린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다 민경욱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사석에서 그를 감싼답시고 "라면에 계란을 넣어먹은 것도 아닌데"라고 굳이 안해도 될 말을 해서 오히려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른다'는 비난의 여론이 더욱 가중된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민경욱의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 민심을 전혀 생각치 않은 발언이었던 것. 참고로 이 부분은 사석에서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한 발언이었지만 보도되었고 이로 인해 청와대 출입 금지 징계를 내렸다고 한다. 기사

4. 관련 문서[편집]




5. 둘러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3 03:42:24에 나무위키 서남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조선일보 포커스 인물정보. 2022년경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서 있었던 남양(당성) 서씨 문중행사 영상을 보면, 스스로 화담 할아버지의 후손이라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2013년 5월 10일 문화일보 기사에도 화담 서경덕의 후손으로 기재되어 있다.[2] 컵라면 외형을 보면 왕뚜껑이다.[3] 몇 가지만 예를 들어봐도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날부터 실종자(이후 전원 사망으로 확인)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인간이 나오질 않나, 가족들을 '피해자'가 아닌 '반정부 가능성이 있는 불순 예비세력'으로 취급하며 사찰하질 않나... 사건 직후 며칠간 대응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는 이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