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지 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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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61년 8월 14일, 일본 오키나와현 히라라시(현 미야코지마시)에서 시장을 역임한 정치인 아버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오키나와 현립 미야코고등학교, 중앙학원대학 상학부 상학과를 졸업해 아버지가 창업한 교통회사에 들어갔으며, 현 내에 카레점을 열거나 1991년부터 대미건설 부사장직을 역임했다.
1996년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오키나와 1구에 출마해 패배했으나 석패율제로 비례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당선 후 헤이세이 연구회에 입회하여 오부치 내각에서 오키나와개발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어 제1차 개조내각 때까지 역임하였다.
2000년 제42회 중원선에서 선거구에 출마하지 않고 비례블록에 입후보하여 1번으로 당선되었다. 2002년 제1차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 정무관에 취임했다.
2003년 제43회 중원선에서 자공간의 선거협력이 부실하게 끝나 자민당 당적을 남긴 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보수신당이 추천하는 공명당 후보에게 낙선했다.
이후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두고 자민당이 주장하는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을 반대하고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자민당과 대립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자, 자민당으로부터 탈당 권고를 받고 2005년에 자민당을 탈당했다.
2005년 제44회 중원선에서 민주당의 추천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같은 해 12월 정당 소조라는 지역정당을 창당해 대표로 취임했다.
2007년 중의원의 원내회파 "국민신당·무소속의 모임"에 가입해 회파 이름이 "국민신당·소조·무소속의 모임"으로 바뀌었다. 이후 2008년 8월, 정당 소조의 대표 직을 한 지방의회 의원한테 양보한 뒤 고문에 취임했고, 한달 뒤 정당 소조를 탈당해 국민신당에 입당했다. 이후 당 정책심의회장 대행에 취임했다.
2009년 9월, 정책심의회장이었던 지미 쇼자부로가 간사장에 취임하자, 정책심의회장[B] 에 취임했다. 또 이토가와 마사아키 국회대책위원장이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국회대책위원장도 겸임했다. 2010년 2월, 같은 해 10월에 열릴 제22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의 당 선거대책본부장에 취임해, 정무조사회장을 사임했다. 6월에는 지미 쇼자부로 간사장의 내각 입각에 따라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2년 국민신당의 당대표였던 가메이 시즈카가 소비세 증세와 관련 법안의 각의 결정에 반대하여 민국 연립 정권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선언했으나, 지미 쇼자부로와 시모지 등 당 임원 6명이 연립 정권 탈퇴에 반대해 의원총회를 열고 가메이 시즈카와 가메이 아키코 정무조사회장을 탄핵시켰다. 이후 국민신당은 연립 정권에 잔류하게 되었다. 같은 해 4월에는 국민신당의 대표대행도 겸임한다. 같은 해 8월, 오키나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 소조의 당대표 직에서 복귀했음을 선언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노다 제3차 개조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방재 담당) 겸 우정민영화담당대신에 취임해 간사장 직을 유지한 채 직책을 수행했다.
12월 제46회 중원선에서는 자민당의 신인 후보에게 낙선했고, 이후 다음 해에 지미 쇼자부로 대표가 자민당 복당 및 합당을 모색하게되자 이에 반발해 국민신당을 탈당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정당 소조의 대표로서 오사카 유신회와 변노고에 기지 이설 추진 등의 정책협정을 체결해, 이전의 이전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그리고 7월에 정당 소조의 임원회의에서 대표직을 사임, 탈당 후 무소속으로 오키나와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선거 결과 3위로 낙선했고, 공탁금도 몰수되었다.
이후 제47회 중원선에서 정당 소조와 유신당으로부터 출마 요청을 받아 오키나와 1구에 출마하고 낙선했으나 비례 블록으로 부활해 당선되었다.
2015년, 정당 소조에 소속된 현의원 및 시구정촌 의원들을 유신당에 입당시킨 후 정당 소조의 대표직에 복귀했다. 같은 해 유신당 분열에 오사카계 쪽과 동조해 유신당을 탈당하여 오사카 유신회를 결성, 당 국회의원단 정무조사회장에 취임했다.
2017년 제48회 중원선에서도 일본유신회 소속으로 오키나와 1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비례블록으로 부활했다. 2019년 당 국회의원단 부대표와 선거대책본부장에 취임했다.
이후 2019년 12월, 내각부 부대신이었던 아키모토 쓰카사가 중국 기업 관계자로부터 뇌물을 수령한 혐의로 체포되어 2020년 1월, 경찰 조사에서 시모지를 포함한 5명의 의원이 중국 기업 관계자로부터 뇌물을 수령했다고 폭로했다. 시모지는 7일 탈당 신청서를 당에 제출했으나, 당에서 탈당서를 수리하지 않고 제명을 시키면서 동시에 의원직 사직도 권고했다. 시모지는 의원직을 사직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9월, 오키나와 1구에서는 일본공산당의 아카미네 세이켄이 독주하고 있던 가운데, 시모지는 오키나와 1구를 염려로 두어 보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원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시모지가 자민당 복당을 희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자민당에서는 시모지의 복당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후 시모지는 30일, 자민당 오키나와현연합에 복당서를 제출했다.
12월에는 뇌물 수령 사건의 재판에서 "자신의 관여를 인정하는 사람은 없었다"라며 제명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같은 달 9일에 일본유신회의 마쓰이 이치로와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공동대표를 향해 제명 처분을 철회하라는 상신서를 제출하고, 철회가 인정되면 다시 복당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2021년 10월 4일, 총리 지명 선거에서 자민당의 기시다 후미오 총재에게 투표했고, 10월 31일에 실시된 제49회 중원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오키나와 1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했다.
2022년 7월, 9월 11일에 실시될 예정인 오키나와현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선거 결과 결국 3위로 낙선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며, 낙선 소감에서 정계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