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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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41년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남양주시 금곡동)에서 태어났다.[1] 서울 무학여자중학교, 무학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미국 예일 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사로 강의하였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부총재로 임명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같은 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98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어 1999년까지 재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합류하여 당 대표를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남양주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최재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같은 해 3월부터 8월까지 통합민주당 최고위원,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여성위원회(현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21년 재보궐선거 때 타 전직 국회의원 115명과 함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2. 개인적 면모[편집]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만큼 성품도 좋고 온화한 편이다. 그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온화한 인품의 할머니 같다고 한다. 또 같은 당에 합류했던 정치적 동지이자 같은 구민주계 출신인 김민석 의원과 친하다.
새천년민주당 시절에는 한광옥, 한화갑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지금도 매우 좋지 않다.
2003년 가수 장호일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섰다.
3. 소속 정당[편집]
본인 말로는 후단협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한다.
2004년 국민통합21이 공중분해 될 당시에는 한나라당으로 이적하려고 생각했으나 곧 접었다고...
그래도 의정 활동도 성실하고 호주제 폐지와 최초의 페미니즘 법안 통과 등으로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 같은 진보정당쪽에서도 호감도가 꽤 높은 몇 안되는 새천년민주당 정치인이었다. 또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진보주의 계파들이 탈당한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개혁의 칼날을 댄 것 또한 그녀가 긍정적으로 평가된 요인이다. 또 새천년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을 지속적으로 괴롭히자 탈당하였다는 점도 긍정적이게 평가된다.
4.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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